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이희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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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녀는 덤덤했다. 짧게 한 마디씩 글로 옮기며 정갈하게 1922년 이후를 회고했다.
공주병에 걸려도 뭐라 욕할 수 없을만큼 철저하게 유복한 집안에서 나고 자라 이화여대와 서울대를 경유(?) 하여 서른두 살에 스스로 선택한 미국 유학을 떠났고, 학위를 취득하고 서른 일곱에 귀국하여 YWCA에서 총무로 4년간 눈부신 활약을 한다. 최소한 요새 말로 골드미쓰의 조건은 두루 갖춘데다 자력으로 뭔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여걸 중에 여걸이었다.



그녀는 이승만의 공과에 객관적이었으며, 친일파로 비판받는 스승 김활란에 대한 용기있는 옹호 발언을 하였으며, 전쟁통에 사경을 헤매고 있던 첫사랑을 외면하고 유학을 떠났던 아픈 고백까지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이 글 시작에서 아무런 편견없이 인용하는 '그녀'라는단어에 대해 유독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만큼 중무장한 여성운동가였다.

그 위대한 불혹의 여걸이 1962년 3월 어느 날, 탑골공원에서 매우 정치적인 프러포즈를 받는다.

"당신도 알고 있듯이 나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참된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하며 나와 아이들을 돌보아주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69쪽)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여 국회의원에 이 된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민주당 간부로서 부패와 용공혐의로 조사받고 핍박 받던 시절에 DJ에게는 전처가 남긴 중학교1,2학년의 예민한 두 아들과 노모, 병들어 누워있는 여동생과 함께하는 전세방이 전부였다.
핼쓱한 얼굴로 오랜만에 나타나 손해볼 것이 확실한 청혼... 이에 대해 그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으며, 그때부터 50년 가까운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그들의 위대한 동행은 시작되었다.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비명횡사 했던 1979년10월26일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재규는 군사 법정에서 의인처럼 행동했다. 부마항쟁의 실상을 보고하니 대통령은 몇십만 명쯤, 차지철 경호실장은 몇백만 명쯤은 죽어도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중략) 남편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를 포함해 일관되게 김재규를 의인으로 보는 시각과 운동에 반대했다. 그는 말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쿠데타나 암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184쪽)


그녀와 DJ는 그토록 자신들을 탄압했던 독재자의 불행한 죽음에 기뻐하지 않았다. 장기 독재의 종식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암살이란 수단은 비열했고, 조만간 이승만처럼 국민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진리인데, 불의가 불의를 단죄한 것이므로 결코 정의가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김대중은 정말이지 죽음도 불사하며 독재에 대항했고, 정정당당한 대결만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 위대한 지도자를 폄하 하기 위해 기득권층과 언론이 취한 행동은 YS와 JP처럼 함량미달의 정치인들과 싸잡아 '3김'이란 말로 동격화 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며칠 전, YS는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DJ와 화해했다고 봐도 된다."
웃기는 소리다. DJ는 결코 YS를 대놓고 비난한적도 없으며 그를 존중해 줬는데, YS는 허구헌날 DJ의 업적과 행동들을 폄하하며 망언을 그치지 않았었다. 그런 그가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DJ에게 문병을 다녀온 뒤 화해를 했다는 것이다. 화해는 커녕 사과를 해도 받아줄까 말까한데 화해라니... 보수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비판 없이 양김이 화해했다고 대서특필 했다. 수십년간 정치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도 당하기만 했던  DJ가 떠났다. 지상에서 남편과의 동행을 끝낸 그녀의 아픈 마음이 애틋함을 불러일으킨다. 슬프다!

2009년 8월18일, 그녀의 50년 동행은 멈췄다. 삼가 고민의 명복을 빌며, 이 땅의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위대한 인물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깔끔하게 뒷바라지 한 이희호 여사님께 큰 박수를 보내며, 정갈한 문장과 편집에도 감사 드린다.

현대사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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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8-2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