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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6인 6색 인터뷰 특강 ㅣ 인터뷰 특강 시리즈 6
금태섭 외 지음, 오지혜 사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평점 :
요새 이런 책들이 참 많다. 인터뷰나 특강 내용을 지면으로 옮긴 책...
올 봄, 한겨레가 숙명여대 강당에서 '화'를 주제로 각계 전문가 6인의 초청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구어체인 걸 보면 보통의 책들에 비해 편집자의 노력이 덜해 보여서 참으로 책 쉽게 만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고, 잡지를 읽는 기분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난 처음에 이 책을 김어준 빼고 대충 읽어 보려 했다. 진중권도 볼만큼 본 것 같고, 정재승 교수도 뻔한 내용을 이야기 할 것만 같았다. 나머지 분들은 한겨레에 글을 많이 기고했다고 하는데, 내가 한겨레 애독자가 아니라서인지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당초 계획대로 나는 맨 뒤에 실린 김어준의 글만 읽고 덮어 버렸다. 그리고 이 책에 관심을 꺼버렸다. 그러다가 어젯밤 화장실 가면서 '뭐 간단한 잡지 없나?'하는 마음으로 서재를 어슬렁 거리다가 이 책을 들고 들어갔다. 아! 그리고, 화장실에서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 너무너무 유익한 내용들이 많아서...
화장실에서 나온 뒤에도 스탠드 아래 엎드려서 잠도 자지 않고 읽었다.

특히, 금태섭 변호사의 사형폐지론은 분노의 시대에 극단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대중들이 꼭 한 번 읽어볼만한 가치있는 이야기라 생각되었다. 내가 단편적으로 생각하던 문제들이 참으로 심오하게 다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조갑제 기자가 썼다는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가 읽고 싶게 만들었고, 수많은 사례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사형제의 대안이 감형 없는 무기징역이라고 단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두렵듯 이 글을 단 한 쪽도 대충 읽을 수 없을만큼 주옥같았다.
금융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위원이 동양철학으로 설명하는 돈 문제 또한 참으로 신선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화는 아래로 흘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이 책의 제목 '화'가 왜 한자가 아닌 한글로 '화'인가를 다시 한 번 폭넓은 화의 의미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돈이 돌고 돌아야 하듯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물과 불이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한 돈의 흐름이라는 것...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듯 부자감세가 소비를 촉진시킨다는 이론)의 허구적인 레토릭의 지적... 신자유주의의 선도자들의 뒤늦은 반성 등을 알기 쉽고 날카롭게 이야기 한다. CEO 숭배론을 이야기 할 때 장미란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모두가 300kg을 들 수는 없다는 비유나, 신자유주의에서 그다지도 가슴아픈 TINA(there Is No Alternative)이론에서는 깊은 밤 자던 가족을 깨운 아버지가 맥주 마시러 가자고 했을 때 반대하는 가족들에게 "그럼 대안이 뭔데?"라고 질문하면 되겠느냐는 비유는 아주 좋았다. 앞으로 자주 써먹어야 겠다. "맥주대신 폭탄주 마셔요."가 정답은 아니지 않는가? ^^;;
바른먹거리에 대한 후델식품건강연구소의 안병수 선생님 강연도 멋진데 기억에 남는 구절을 인용하자면...
당신이 만약 어떤 식품을 구입 했다면, 당신은 그 식품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지지하는 소비자가 있는 한 절대로 그 식품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해로운 거라도 소비자가 지지해주면 절대로 안없어집니다. (241쪽)
진중권은 기득권 세력이 대중의 분노를 초래하는 방식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대중들이 진정한 적을 몰라보고 (피해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결과는 모두가 깊이 새겨듣고 행동으로 옮겨야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도 인터넷 뉴스를 보니 미용실이나 안경점 자격증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쟁의 구조로 만들겠다는 뉴스가 뜨고 댓글들이 미용실이나 안경점의 폭리에 대해서 욕을 하며, 정부가 참 잘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뉴스는 날마다 수도없이 쏟아져 나온다. 뭉쳐야할 사람들이 지들끼리 치고박고 싸운다. 쩝...
UN에서 명예훼손까지 폐지하자는 판에 오히려 사이버 모욕죄까지 추가하자는 이 정권과 70%가 넘는 국민 지지율... 격정에 휩싸인 우리 국민들에게 구술문화의 잔재가 있기 때문이라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다.
강연이 일방적이지 않고 청중과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장기적인 분노에 대한 이야기 깊이 공감한다. "그 정도면 됐다 그만해라~" 얼마전 언론악법 날치기 할때 슬쩍 입장을 바꾼 박근혜를 보는 느낌 그대로... 열심히 분노해주다가 결국 며칠 못가서 문제는 해결도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됐다.'는 자위파들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김어준의 웃으며 화내는 법은 신간 '건투를 빈다'의 정신과 소재를 거의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저자에게 따로 인세가 가는지 궁금해 진다.
아무튼 내게는 유익한 독서였고, 책의 바탕이 된 관련기사는 다음과 같다.
[진중권] “분노의 표적을 명확히 알라”
[정재승] 알려주자, “나 지금 화나 있거든”
[금태섭]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거두라
[홍기빈] ‘돈’이 위로 몰려 화가 뻗친다
[안병수] 화나세요? 오늘 뭘 드셨나요?
[김어준] “부모에게서 독립해 연애와 여행을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