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우상 : 김형욱 회고록 5 -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20일
김경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정인숙의 피부가 대리석 같다는 말 그대로 나오나?"
얼마 전 점심을 함께 하던 어른이 이 책을 보시더니 물었다. 그랬다. 제3권에 나온다. ^^;;
그 어른이 바로 지금의 내 나이 때 출간되어 재미있게 읽었다던 바로 그 이야기...
내가 태어나기 직전의 이야기에서부터 내가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
바로 그 이야기가 개정증보판으로 출시된 것이다. 




가까운 후배는 책제목을 보자마자 말했다.
"하이구야~ 행님, 박그네 죽이기 시작되았심꺼?"
그렇다. 박근혜의 아버지가 우상화된 조잡스러운 대한민국 근대사의 깊숙한 진실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꺼번에 여러 책을 번갈아가면서 읽는 나의 독서습관은 이 책을 읽는데 보름이란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 보름간은 참으로 의미 있는 독서시간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참으로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이자, 검증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많은 명예훼손과 반박의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논픽션들이다.

1973년 4월, 김형욱은 그토록 충성을 다했던 박정희에게 버림받고, 미국 망명을 선택했다.
1997년 4월, 주체사상의 설계자 황장엽은 김일성 부자를 등지고 남한으로 망명했다.
누릴 것 실컷 누리다가 누리던 것이 없어지니까 정치적 반대파에게 도망가는 것부터가 두 사람은 닮은 꼴이다. 나는 황장엽의 궤변을 많이 접해 왔기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에게 짜증이 났지만, 지레 궤변일거라 짐작했던 김형욱은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적인 연민이 밀려왔다.
남파공작명 천보산이라는 자칭 이중간첩 조용박과 프랑스 양계장의 헤머밀(사료분쇄기) 사건을 통해 가십처럼 알고 지내던 그의 죽음에 관한 측은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김경재 선생님이 고인의 육성을 받아 옮기고, 그가 실종된 뒤의 이야기들을 취재한 글...
이 다섯 권의 회고록은 김형욱의 죽음을 포함한 수많은 의문사항에 대해 그토록 단순하게 규정짓지도 않았고 다양한 가능성과 설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보여준 뒤,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뭐 딱히 객관적일 수 없는 객관적인 노력을 다한다. 나름대로 멋지고 의미 있는 표현이었다.

역사는 분명 승자의 논리를 따른다.
역사적 패자인 김형욱 개인의 감정과 그를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는 김경재 개인의 감정이 개입된 대한민국의 근대사이기에 정통역사가 아닌 야사처럼 전해지겠지만 수많은 직접인용법의 증언들과 역사적 근거들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빛낸다.

김형욱이 반해버린 정치인 김대중, 김형욱이 그토록 혐오했던 동기생이자 박정희의 조카사위 김종필... 한 나라를 쥐고 흔들던 사나이가 미인계에 스스로 무너지듯 실종되어 버린 이야기, 가증스러운 수많은 언론인들과 그 대표적 인물 문명자, 작가와 따로 만나 자신의 처지를 술회하던 조용박...

분명한 지역차별주의자였던 박정희이건만 그의 강경한 옹호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도 한때는 전라도에서 엄청 인기 있었고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표를 많이 얻어 대통령이 된 인물이며, 김대중은 그런 평화로운 대한민국에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진 비겁한 인물이라고... 박정희가 전라도에서 몰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으로 치사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돈으로 태풍 피해를 입은 전라도민을 우롱하여 표를 이끌어 내는 권모술수는 작은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울러 이 회고록 곳곳에는 작가의 정치적 반대파였던 김대중에 대한 존경심이 넘쳐흐른다.
김형욱은 김대중을 탄압하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그의 됨됨이에 반해 있었고, 박정희의 독재를 막아낼 인물은 오로지 김대중 밖에 없음을 단계적으로 깨닫고,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정치적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시각에서 김대중을 주시하며 거듭되는 존경심을 보낸다. 부마항쟁을 이끌어낸 김영삼도 가택연금 중인 김대중의 조연일 뿐임을 알게된 전혀 새로운 발견이었다.

음... 기본으로 돌아가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
혁명과 우상... 혁명은 무엇이고 우상은 누구일까?

"5월16일이 좋겠습니다."
"그 이유가 뭐요, 김중령?"
"오늘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내일과 모레는 주말입니다. 주말에는 사병들의 외출이 많아서 병력 동원에 어려움이 예상되며 또 정부 요인들의 소재지가 불분명해 그들을 체포하는 데 지장이 있을 것입니다. 15일은 월요인인데 그날은 마침 국무총리 장면이 제1군 사령부 창설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게 됩니다. 따라서 15일에도 요인 체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5월16일로 합시다." (제1권120쪽)


당시 서른여섯의 김형욱은 박정희의 조카사위였던 김종필과 동기라는 인연으로 박정희의 쿠데타에 가담했고,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실패한 110년 뒤 박정희가 미군의 간섭을 스스로 극복하고 성공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있었다.
쿠데타 1년 1개월 전에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국무총리 장면은 혁명 당일에 잠적해 버렸는데, 독립운동가나 적에게 쫓기는 군인같은 도망자의 이력과 슬기가 없던 탓에 수녀들의 치마폭 사이로 꽁꽁 숨어버렸고 너무 오랫동안 깊숙히 꽁무니를 빼서 반격의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들이 혁명이라 부르는 5.16.쿠데타는 그렇게 쉽게 성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혁명이라 부르는 그 역사의 주인공을 우상화 하기 위해서는 해결사가 필요했다.

그 첫번째 인물이 박정희의 치부를 너무도 깊이 알고 있는 김형욱을 제거할 조용박이었다. 일본 태생인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북한공작원이 되어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을 납치하라는 지령을 받았지만 오히려 중앙정보부에 찾아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박지만을 결정적으로 살리는 공로를 세운 이중간첩이었다. 증거는 불충분하지만 김형욱 제거의 일등공신으로 알려진 그는 박정희 정권 말기의 핵심적인 해결사가 아닐 수 없다.

혁명와 우상을 잘 포장하는데에도 또 다른 해결사, 행동대장도 필요했었다.

"만일 부산같은 사태가 생기면 이제는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어. 자유당 때는 최인규와 곽영규가 발포 명령을 내려 사형을 당했지만 이번에 내가 직접 발포를 명령하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시키겠어?"
옆에 있던 차지철이 의분을 참지 못한 듯이 끼어들었다.
"각하, 캄보디아에서는 300만명을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 대원 100만이나 200만쯤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제5권165쪽)


개처럼 충성하던 행동대장, 독재자를 떠받드는데 이보다 더 쓸만한 해결사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마지막 경호대장 차지철은 독재자의 눈과 귀를 막고, 결국 김재규의 손에 주인과 함께 쓰러져 버린다. 우리들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은 그들만의 내면 깊숙했던 이야기들...

일개 독자인 내 눈에 '혁명과 우상'이란 제목은 '쿠데타와 독재자'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동백련 사건, 인혁당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간첩 김신조 사건, 실미도 사건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각도의 이야기였다.
김형욱 자신은 청렴결백을 주장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박정희는 전두환보다 더 많이 해먹은 사실이 근혜양네 남매들이 상속받은 유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25년 전, 3권짜리로 출간되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김형욱 회고록'이 이번에 4권으로 재구성 되고 이에 한 권 덧붙여 다섯 권 시리즈로 오늘날의 국어로 다시 정리되어 출간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간 지역주의에 편승한 호남의 정치인 중 1인으로 치부했던 김경재 선생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기회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민중은 자신들이 위대한 혁명의 주체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권력 장악을 노리고 총칼을 들어본 적이 있는 자들만이 민중의 위대함을 뼈져리게 깨닫는다. (제1권20쪽)

그들의 혁명이 쿠데타였음을 자각하고, 이제는 우리가 혁명의 주체임을 자각할 때인 듯 싶다.

생애 마지막 순간, 오로지 유신의 종식만을 꿈 꿨던 돈까스 혹은 멧돼지라 불렸던 사나이...
그가 실종된 보름 후에 후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으로 꿈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P.S.
네이버 인물 정보에 김형욱의 생몰이 1925년1월16일(황해도 신천)부터 1984년10월8일로 되어 있다.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수정불가라고 한다. 실종된 인물에 대해 5년이 흐른 다음 법적으로 사망신고를 했기 때문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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