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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칠십리길 ㅣ 우리글대표시선 15
이생진 지음 / 우리글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새로운 시집이 눈에 띄어 잡아 들었을 뿐인데...
내 아버지처럼 세계대공황이 시작된 해에 태어난 이생신 선생님 작품이었다.
제주도에는 돌아갈 곳이 많다
귀덕리(歸德里)로 돌아가고
지귀도(地歸島)로 돌아가고
차귀도(遮歸島)로 돌아가고
서귀포(西歸浦)로 돌아가고
그렇다면 나는 천귀포(天歸浦)로 돌아갈까
(137쪽 돌아갈 귀 중에서)

이 건강한 노시인이 지천명에 이르기도 전인 1970년대 중반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발표했었는데, 이제 삼십여년이 더 흘러 다시 한 번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노래하고 있었다. 같은 제목의 詩가 이 시집 31쪽에 수록되었으나 '운명의 노래'란 부제가 붙어 있고, 받아들이는 나의 느낌도 달랐다.
그래서 먼저 오래된 시를 읇조린 다음에 경건한 마음으로 새롭게 오감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물론 위 詩는 이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이생진 선생님의 30여년 전 작품이다.
이는 내가 중학교 때 박인환의 시와 더불어 좋아했던 시 중에 하나였으니 살아가면서 늘 익숙했다. 처음 내가 이 시를 접했을 때는 제주도를 전혀 경험하지 않았던 시기이고 어른들의 고독이나 그리움을 이해한다는 것도 말같지 않을 그런 시기였는데 내가 왜 이 시를 좋아했을까? 이해가 안된다. ㅡㅡ;;
이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주도의 자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인이 사실은 제주도 출신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제주도를 완벽하게 훑어낸 데에서 내 기억 속의 제주도가 오버랩 되면서 아버지 같은 이생진 선생님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 생생했다.
바다를 팔아먹는 사람과
바다를 사먹는 사람
시퍼런 바다 앞에서 이런 거래가 오가는 것을
바다가 알고 있을까
바다에게 미안하다
아, 우리들은 봉이 김선달만 비난했지 이것저것 다 팔아먹고 사먹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자성은 부족했던 것 같다. 이 시집 16쪽에 수록된 방값이란 시의 마지막 다섯줄이 숙연했다.
섶섬, 문섬, 범섬, 마라도, 우도, 정방폭포, 천지연, 외돌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시집이다.
나와 우리들 모두에게 제주도는 참으로 많은 추억을 선물해 준 곳이 아닐까?
그 추억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 시인이 있어 더욱 감사하다.

아닌 것 같지만 '벌레 먹은 나뭇잎'도 결국 제주도와 같은 시선으로 노래하는 것 같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 제주도의 바다와 바람과 그 밖의 모든 것들...
정확히 1년전 오늘, 서울 을지로 지하도를 걷다가 느낌이 너무 좋아 형편없는 카메라로 찍어둔 사진이다. 지금도 그 벽면에 이 시화가 붙어 있었으면 몹시 반가울 것 같다.
2009년초, 서귀포 칠십리길에 팔순의 건강한 시인이 남긴 뚜렷한 발자국이 있다.
기쁘다. 그 발자국이 내 마음을 먹여살린 흔적 중에 하나라는 것이...
p.s.
시집 34쪽에 4번째 줄에 '성선포'라고 있는데, '성산포'를 잘못 타이핑 했을거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