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조조 5 - 영웅, 스러지다
한종량 지음, 김태성 옮김 / 신원문화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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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2 개봉을 앞두고 삼국지 다시 읽기를 결심한 나는 '영웅조조' 시리즈를 선택한 것이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적벽대전이 주유의 관점으로 진행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다들 입장이 있는데,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기반으로 한 삼국지들은 유비와 제갈량의 관점이기에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시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삼국지를 조조의 관점에서 읽어 보니 그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저는 조조를 영접하여 항복할 수 있지만 장군께서는 절대 그러시면 안됩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조조에게 항복하면 조조는 저를 적어도 자신의 아래에 두거나 종사에 제수할 것입니다. 제게는 여전히 시중을 드는 시종이 있게 되겠지요. 또한 수레를 타고 선비들 사이를 누비게 될 것이고 한두 해가 지나면 군사를 거쳐 자사로 승관하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저 노숙은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군께서 조조에게 투항 하신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제5권29쪽) 

조조가 강동으로 쳐들어 올 때 갈등하는 손권에게 맞서 싸울 것을 권장하는 노숙의 이 한 마디는 적벽대전의 서막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시작된 적벽대전은 즐겁다. 하지만 삼국연의의 적벽대전만큼 흥미롭거나 가슴 뛰게하는 감동은 별로 없다. 그 느낌을 다른 책들을 통해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즐겁게 읽었을 뿐이라 생각된다. 단지 조조의 관점이기에 적벽대전의 종말에 이런 글들이 있을 뿐이다. 

조조가 기억을 회복한 후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사방에서 불길이 일고 있는 듯한 고통이었다. 수염과 머리는 다 타버리고 코에는 시신이 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그는 사슴 고기든 양고기든, 불에 구운 고기만 보면 토악질이 나 먹지 못했다. (제5권 129쪽)

이 글을 보면 조조도 나약한 인간일 뿐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조조의 나약한 모습이 몇 차례 그려진다. 나는 문득 이 책의 지조 없음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싶어졌다. 조조를 띄우려면 확 뜨우거나 밟으려면 철저하게 밟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비인간적인 냉혹함을 강조하다가도 나약한 인간의 면모를 강조하는 등... 일관되지 않은 조조의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영웅조조 제1권에서 제4권을 읽는 동안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연의 느낌 그대로 간사하고 비열한 조조의 모습이 무궁무진하게 그려졌었는데, 제5권은 그나마 조금 달라보였다.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하려는 듯 조조의 인간적인 모습과 검소한 모습, 황건적이나 흑사적에게서 존경받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수없이 펼쳐진다.

조조의 죽음 앞에서 '일찍이 천하의 일을 자신의 소임이라 생각하고 온 백성을 재난에서 구하려 했던 위대한 인간 조조' (제5권 405쪽)라고  언급하지만 적어도 작가 한종량의 글에서 조조에 대한 평가는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제목이 '영웅조조'이고 보니 낙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 이 역사적인 인물의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수습하는 차원에서 그 죽음을 미화하고, 아름답게 치장을 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제5권은 조조를 매력적인 인간으로 묘사하려고 여기저기 노력한 모습이 넘쳐난다. 다만 나와 같은 독자가 설득되지 않을 뿐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썩 나쁘지 않았고, 삼국지 팬들에게 권해볼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마치 작가가 조조에 대한 평을 오락가락 했던것처럼 나 역시도 어쩔 수 없는 오락가락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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