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차원으로의 여행 - 통찰과 자가 치유로 이르는 길
클레멘스 쿠비 지음, 송명희 옮김 / 열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올해 예순한 살인 독일인이 있다. 그는 서른두 살 어느 깊은 새벽에 무슨 일인지 자신의 집 다락에서 굴러 떨어져서 척추를 다쳤다. 이웃 농부의 도움으로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 하는 그 이의 미래를 예언해 주었다. 의사가 말도 안된다고 했지만 그는 자신의 발가락을 움직이게 했다. 그는 차원이 다른 믿음으로 오늘 날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다.

"주여 감사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당신의 선하심과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클레멘스 쿠비라는 사람을 통하여 주님은 치료의 기적을 우리 눈앞에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며 우리의 지식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쿠비씨는 이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하시고 위대하신 주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원 속에 계시는 주님이시여, 아멘!" (55쪽)

하이델베르크 슐리어바흐 병원의 수석의사인 패슬락은 이렇게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고, 자신이 치유 과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못을 박으면서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다. 1981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그는 퇴원하여 아내와 자녀들에게 되돌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서른여덟에는 한 친구가 들려주던 미지의 세계 라다크로 여행을 떠난다. 오래된 미래의 바로 그 공간... 물론 두 발로 걸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도로가 없고, 전기가 없으며, 관광객도 없고, 흰 밀가루도 없고, 설탕도 없는 곳...
병원에 누워 있을 때 희망과 명상으로 자신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던 동기를 부여한 라다크...

쿠비는 1968년 학생운동 때 접한 까뮈와 사르트르 등의 멘토에 이어 라다크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을 계기로 새로운 의식세계 확장을 경험한다. 어어지는 티베트에서의 경험은 정신력의 위대함에 관한 차원이 다른 정의를 갖게 된다. 직관의 효력은 다만 우리가 그 영역을 몰랐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양권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를 배출하듯이 티베트 같은 정신적인 문화권에서는 예지력이 높은 사람을 배출하는 것이고, 서양의 초등학교 1학년이 음악수업을 의무적으로 학습하듯이 정신적인 문화권에서는 출생과 동시에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교육 받는 것을 경험한다.

남인도에서 사이 바바라는 아바타를 만나는데, 그는 기대와 달리 벤츠를 타고 나타났으며 불교권에서는 사이 바바를 영성성이 없는 인도의 마법사 정도로 치부했고, 그의 추종자들과 적당한 거리감을 경험한다.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나는 쿠비의 여행은 남인도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신비로운 토다족을 만나기도 하고, 예지능력을 갈고 닦아 '실바 마인드'를 선 보인 텍사스의 호세 실바를 만나 예지 능력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갈고 닦으면 된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른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에프게니의 '바이오-장소 맞추기'도 일종의 예지력인데, 그는 러시아 해군의 전투에 이용되기도 한 인물이다. 텔레파시(독심술?)가 아닌 일종의 정신적인 힘인데, 딱히 정신이라고 믿을 수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능력을 접하게 된다. 쿠비는 원시부족의 상당수가 에프게니와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지만 현대 문명은 단지 그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한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인 오커초비(Okeechobee)의 근방에서 캠핑 중이던 인디언의 후예 갓프레이 칩스를 만난 것도 색다른 차원의 여행이었다. 그는 위대한 치료사였지만 윤리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고, 사기꾼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어쨌거나 여러 경로를 통해 그는 능력을 입증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필리핀에서 만난 로렌스 칵텡은 사기꾼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녀의 사기성에 질문을 던지는 말 "그래서요?" 중요한 것은 지리의 문제가 아니라 효과의 문제라는 지적은 일종의 큰 깨우침이었다.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난생 처음으로 극장에 온 인디언이 연극이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속임수를 썼다고 배우를 꾸짖는 다면 문명인들은 뭐라고 반박할 것인가? 인디언에게 연극공연은 문명인의 눈에 비쳐지는 필리핀의 치료술과 같은 과정이라는 것이 뭔가 꺠달음을 줬다. 실제로 수술을 했건 수술하는 척을 했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차원이 다른 관점 말이다. 수술이 잡힌 날짜까지 환자는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 대해 영혼에서 우러나와 말하도록 요구를 받으며 뒤이어 집중적인 대화가 진행된다. 수술은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하일라이트일 뿐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훌륭한 퍼포먼스가 훌륭한 치료행위라고 쿠비의 시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쿠비는 카트만두에서 고열로 누워 있을 때, 몇 사람이 호텔방으로 찾아 온 경험을 한다. 그 사람들 틈에는 예전에 남인도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아 있는 '사이 바바'도 있었는데 그는 강행군으로 지친 쿠비에게 "당신은 영화를 찍으려고 그렇게 멀리 여행을 할 필요가 없어요." (206쪽)라는 조언을 하고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떠났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함께 있던 카메라맨도 사이 바바의 방문을 증언했고, 사이 바바의 말도 안되는 공간 이동 같은 것을 체험한 작가는 인생이란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은 후에 한국을 방문하지도 않고 2년 후 자신이 제작한 영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한국의 무당 박희아를 내세우게는 될 만큼 차원이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의 무당 박희아가 심각한 마약중독자인 유배를 치유하는 과정은 무아지경 속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위대한 기록으로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주술사로서 많은 인기를 얻은 박희아는 그 현상을 영화로 만들어 많은 인기를 누리지만 종교지도자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듯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다. 책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지만 그 이후 박희아에게도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던 듯하다.

네팔에서 만난 라모 돌카의 무아지경 포퍼먼스는 설령 그것이 속임수일지언정 작가의 무릎 통증을 치유했고 그러한 경험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를 관람한 카타리나라는 여성의 아픈 무릎 통증까지 치유하는 기적을 낳는다. 버마의 '우 샤인'은 데바신이 꿈속에 나타나 처방해 주는 데에 따라 처방전을 기록하였다가 '골드 애쉬 파우더'라는 이름으로 제조된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만난 파파엘리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인물로도 전해 오고, 페루의 돈 아구스틴은 "자신의 몸을 떠나본 사람은 완전히 순수해져서 돌아옵니다" (248쪽)라고 말한다. 수단에서 만난 샤이히를 통해 경험한 죽은자의 매개가 되는 역할을 하고 그 새로운 이슬람의 정신세계는 영화 다음 차원으로의 여행을 통해 5억 인구의 믿음을 다루게 된다.

서양 사람에게 행복이란 물질과 육체적인 것에 달려 있는 반면 이슬람 세계에서는 정신적인 길이 지침이 된다. 두 세계는 서로의 길이 옳다고 주장하면 온당하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길을 인정하게 되면 권력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지배자나 이슬람의 지배자는 둘 다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전쟁은 두 지배자들에게 필연적이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여행을 통한 쿠비의 깨달음이었다. 그는 여행의 끝에 도달하여 여행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느 날 대안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가 연극에서 가브리엘 대천사의 역을 맡아서는 종교와 과학 속의 딜레마에 빠진 쿠비에게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우리 인간에게 금기가 된 것들이 있음을 가르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금기를 배우고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지배 당할 수 있어요. 금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들 위에 존재하는 지배자를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사람들은 환영받지 못해요." (296쪽)

이 책에 저자가 여행하는 과정에서의 경험이나 깨달음의 언어들은 참으로 멋지다.
영혼은 모든 차원에 깃들어 있고, 아무것도 망각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에서 이상적인 배우자를 찾는 것도 자녀를 얻는 것도 환생에 관한 이야기도 아주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려오지만은 않는다. 샤머니즘의 세계에 관한 존중을 희망하는 저자는 분명히 행운이 넘치는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에 관한 그의 지적은 현대인들이 직시해야 하는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의식의 영역을 넓히고 자신의 힘을 강하게 믿으면 무엇보다도 죽음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치유'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뮌헨의 한 병원에서 의사와 나누는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허리에 심한 통증이 있어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의사는 엑스레이 결과를 분석하고는 분명하게 걸을 수 없다고 못을 박는 의사와 걸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환자 쿠비의 비논리적인 대화... 결국 의사는 쿠비를 이해하게 되는 데, 그 의사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쿠비는 책의 앞쪽 어딘가에서 치유란 살기를 원하는 소망의 결과라고 말했다.
설령 영적인 무엇인가를 통해 병이 치유가 되더라도 무절제한 행동은 되찾은 기쁨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주변인의 사건을 경험담으로 들려 주기도 했었다. 쿠비가 처음 사고를 당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패슬락 교수가 들려준 '고통은 좋은 현상'이라는 말이 다시 한 번 밀려온다. 그는 고통에서 희망을 느끼며 독백했었다.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건강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가! 그리고 이 건강한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영혼과 대화했던 것을 또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가! (57쪽)

모든 상황에서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하는 것이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작가가 만난 사람들도 작가 스스로의 삶도 영혼에 대한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닌 의미있는 조언이었다.
영혼과 동기 부여를 찾아 떠나는 차원이 다른 여행기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읽은 M 출판사의 어떤 책과 이 책을 비교하면서 출판사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고 싶어졌다. 만약 이 책이 그 책과 같이 자간과 행간 및 활자를 키우고, 표지를 하드커버로 했더라면 이 책의 가격은 아마도 두 배 정도 비싸졌을 것이다.
좋은 책이 읽기 편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출판되었기에 더 기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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