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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인간의 뛰어난 상상력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나무 위에서 올라가서는 평생 동안 내려오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의 이야기나 13세기 후반 가상의 도시들을 마르코 폴로의 관점에서 그려낸 조화로운 이야기 등을 통해서 만난 이탈로 칼비노의 기발하다 못해 위대한 상상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 책은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20세기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작가 이탈로 칼비노에게는 호메로스가 있었고, 오비디우스가 있었으며, 발자크와 스탕달, 헨리 제임스와 헤밍웨이, 톨스토이와 보르헤스, 스티븐슨과 콘래드, 디드로와 디킨스 등 쟁쟁한 쪽(藍)들이 있었고, 그 쪽으로부터 푸르디푸른 상상력의 칼비노가 탄생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칼비노는 자신의 책장을 통해 우리에게 그 당연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바로 이 책을 통해서...
이 책에서 나열되는 문장과 책들을 들여다보노라면 과연 내가 이 책들을 모두 읽어 볼 수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이탈로 칼비노가 아니기에 그런 식으로 연연할 필요는 없고 단지 칼비노의 서재를 훑어보는 재미로 그의 독후감과 사연들을 만나는 여행이 나의 독서 방법이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 옛날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통해 접하는 우주의 인접성, 플리니우스의 자연사를 통해 만나는 천문학·인간·육지동물의 이야기, 수니파 이슬람 교도였던 네자미가 쓴 '일곱 공주'를 통해 만나는 이슬람 신비주의와 조러아스터교의 과거 호출, 스페인의 백기사 티랑 로 블랑의 전설, 아리오스토가 보이라르도의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의 속편으로 쓴 미완의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에 바치는 칼비노의 감동적인 후기,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위안'이나 '나의 생애'에 관한 추억, 갈릴레오가 남긴 '철학은 우리 눈앞에 영원히 펼쳐져 있는 우주라는 거대한 책 안에 씌어 있다'로 시작되는 미로와 같은 지식의 연결구, 바로크 양식의 작가 시라노 드 베라주라크의 '다른 세상'을 통해 만나는 달나라, 대니얼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마치 난파당한 선원의 진실한 기록처럼 보이게 한 출판인 W.테일러의 속표지 문장과 상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관한 일기, 볼테르의 철학 소설 '낙천주의자, 캉디드'의 숨 가쁜 서술 속도,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서 발견되는 반소설, 메타 소설, 하이퍼 소설의 창조적인 면모들과 로랜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가 갖는 유사성과 주제, 실랄하고 비관적이었던 자마리아 오르테스, 스탕달(앙리 벨)의 '연애론', 누벨 로이즈', '마농 레스코'를 통해 만나는 개개인의 에너지보존법칙 혹은 지속적인 에너지 재생의 과정에 관한 희망, 스탕달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파르마의 수도원'이란 작품에 관한 칼비노의 느낌들, 발자크의 '페러거스', '13인의 이야기', '랑제 공작부인', 금빛 눈을 한 소녀', 디킨스에게 위대한 유산을 창조해 낸 '고리오 영감', 찰스 디킨스의 추종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읽지 못했다는 그의 소설 '우리 서로의 친구', 구스타프 플로베르가 어떠한 종교와도 상관없이 성취한 가장 독특한 정신적 여정을 증언하는 작품 '세 편의 이야기', 이해하기 쉽지 않은 톨스토이의 보통 작품들과 달리 구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써의 '두 경기병'에 관한 단상, 마크 트웨인의 '헨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를 통해 만나는 선물로 위장된 금화의 복수, 헨리 제임스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출간되자마자 대중적 환호를 받았던 '데이지 밀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과 '해변의 별장'이 전해 주는 염세주의, 사후에 진정한 평가를 받은 조셉 콘래드의 작품들로 읽어 내는 신념의 규칙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통해 본 칼비노의 글은 1958년에 남긴 글답게 혁명에 대한 고민에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를 극찬하는 칼비노의 고집은 '고뇌의 인식'을 통해 아티초크와도 같은 시종일관 무의미한 절망의 철학들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으며, 그의 또 다른 작품 '메룰라나 가의 무서운 혼란'를 통해 혁명적인 서사구조와 언어에 관한 극찬한다.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시 '어느 날 아침'에 관한 극찬과 몬탈레의 절벽,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통해 만나는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두 마음을 지닌 큰 강', '노인과 바다'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그들의 세대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50년 전에 쓰여진 오래된 세대의 글이 되어 읽혀진다. 프랑시스 퐁주의 자연을 노래하는 감각들이 풀에 대한 묘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낸 '풀밭의 제작'과 나무와 인간을 자주 비교하는 문장들, '픽션들'과 '알렙'을 통해 입문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관한 총체적인 애정과 경의들, 레몽 크노의 작품과 철학에 대한 예찬은 이 시대의 알랭드 보통을 연상시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예사롭지가 않았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체사레 파베세의 '달과 불', '레우초와의 대화'는 느낌이 생소하다.
이 책은 이렇게 35 가지의 주제로 수십 명의 명문가들의 고전을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인이 쓴 글이다 보니 당연히 이탈리아와 유럽에 편향될 수 밖에 없는 시각이로 읽혀진다.
또한 그가 그렇게도 극찬하는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 사상을 보면 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구라를 풀 줄 아는 대가가 아니던가?
그런데 우리더러 설마 이 많은 책들을... 그것도 국내에 번역되지도 않은 책들도 많은데... 이런 게 고전이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다행히 칼비노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기록을 통해 고전읽기를 예찬하고 있을 뿐이니 독자들은 괜히 쫄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어느 한 해에 집중하여 집필된 책이 아니고, 틈틈히 칼비노가 여기저기에 발표한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며 매 장 끝마다 그 글이 써진 연도가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으니 시대적인 관점은 독자의 판단에 맡겨지기도 한다.
그동안 이현경 선생님의 번역서를 통해 만난 이탈로 칼비노의 뿌리를 이소연 선생님의 번역을 통해 만난 것도 큰 수확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 독법이 내 상상력의 틀을 제한하지 않는 선에서 더 푸른색으로 빛나는 밑거름이기를 희망해 본다.
타인에게도 이탈로 칼비노가 고전에 대한 정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 강조 하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진정한 이유이자 이 모든 본문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도입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 여기서 '다시'란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고전이란 어린 시절 읽었던 느낌과 달리 읽혀지는 매우 다른 기쁨이 있다.
2. 고전이란 그것을 읽고 좋아하게 된 독자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조건에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만이 그런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설령 어린시절 독서의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해도 변하지 않는 일종의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 고전이다.
3. 고전이란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 책들이다.
4. 고전이란 다시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책이다.
5.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6. 고전이란 독자에게 들려줄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7. 고전이란 이전에 행해졌던 해석의 그림자와 함께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며, 그것이 한 문화 혹은 여러 다른 문화들에 남긴 과거의 흔적들을 우리의 눈앞으로 다시 끌어오는 책들이다.
8.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
9.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책이다.
10. 고전이란 고대 전총 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드러내는 모든 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11.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는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12.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련의 위계 속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13. 고전이라 현실을 다루는 모든 글을 배경 소음(잡음)으로 물러나게 만드는 책이다.
14. 고전이란 배공 소음처럼 존속해서 남는 작품이며, 이는 고전과 가장 거리가 먼 현재에 대한 글들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준비되고 있는 동안 피리로 음악 한 소절을 연습하고 있었고, 누군가 '대체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오?'라고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우지 않겠는가." 이탈로 칼비노는 누군가 고전읽기에 대해 반문한다면 루마니아 출신의 프랑스 사상가였던 시오랑이 이야기 했던 바로 이 소크라테스와 피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노라고 말했다. 1981년에...
책에 대해서 말하는 책, 특히 고전에 대해서 말하는 책들이 내 책장에 가득하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신영복의 '강의', 정혜윤의 '침대와 책',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정일의 '공부', 정명원의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표정훈의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명문장가들일수록 청출어람 청어람을 강조한다.
동양고전에 옛사람과의 만남에 관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있다.
맹자 말씀에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될 수 있다(讀書尙友)"는 명문이 있어 듣는 이의 고개가 절로 끄덕이게 하지만
장자 말씀에 "책은 옛 사람의 찌꺼기입니다.(然則君之所讀者, 故人之糟魄已夫)"는 문장도 있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도 한다.
위에 말은 누구나 동의할만한 말이며, 아래의 말은 옛 사람들도 자기의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므로 임금께서 읽고 계시는 책도 기껏해야 옛날의 성인이 남긴 찌꺼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문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답은 달리 해석될 수 있을 것이지만 정답은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내가 혹은 우리가 아직 접하지 못한 더 많은 위대한 독서론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나는 3년 전에 어떤 계기로인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188권을 완독해 봤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도 했고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책들도 초심으로 다시 읽어봤다. 유행에 민감할 필요없이 읽는 것자체가 큰 즐거움임을 느끼게 해준 독서였다.
어떤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꾸준한 동서양의 고전 읽기를 결행한다는 것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