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 제2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64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련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a water lily' 혹은 'a pond lily'라 한다.
그동안 나는 이 영어 뜻처럼 연못에 서식하는 식물이기에 한자로는 당연히 수련(水蓮)이 맞는 줄로만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이 시집을 처음 구입해서 뒷 표지를 읽다가 수련(睡蓮)이라는 한자를 보았으며 백과 사전보다도 더 자세한 수련의 진정한 의미를 깨닳았다. 지식이 풍부한 선배에게 유도심문하듯 수련의 의미가 무어냐고 물었더니만 '홍련과 백련 등 모든 수련은 정오쯤 피었다가 저녁 때 오므라들기를 사·나흘간 되풀이 하는 까닭으로 수련이다.'라고 했다. 왜 난 몰랐던걸까?

다른 일을 하다가도 가끔 펼쳐보는 것이 개인적인 시집 읽기의 방법이다.
이 시집의 시들을 음미 하노라면 결코 백과사전 못지 않은 수련을 느낄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시집과 함께 하는 동안 살아 있는 수련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 겨울이 가고 연못에 수련이 가득할 계절이 찾아 오면 어떤 하루를 물가에서 보내고 싶다. 그날은 다른 무엇 보다도 시인과 한 마음이 되고 싶다.

인상파의 창시자인 끌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수련으로 유명하다. 나는 시인의 작품과 끌로드 모네의 작품들을 연상하며 근 50일 동안 자주는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채호기 시인의 '수련'을 읽었다. 몇 페이지 되지 않지만 원래 시집이라는 것이 그렇게 소설 읽듯이 단방에 마쳐지는 것도 아닐 뿐더러... 앞으로도 또 펼쳐보게 될 그런 책이 아닐까 한다. 수련, 늘 손 가까이 이 두고 싶은 시집이 되었다. 수련의 계절이 기다려진다. 시인처럼 나도 수련과 연애하고 싶다.



수련1

안개 낀 새벽에 수련의 저 흰 빛은
수련이 아니다. 누가 공기의 흰 빛과
수련의 흰 빛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부풀어오르며 대기를 가득 채우는 수련,
공기처럼 형태도 없이 구석구석
끝도 없이 희게 빛나는 수련이여!

안개 낀 새벽에 공기는 수련처럼
희게 빛나다가 물처럼 푸른 두께로
출렁인다. 수련은 창틀 없는 유리처럼
푸른 깊이의 메아리. 물이 저 밑바닥의
내면으로부터 물풀을 흔드는 물고기
헤엄치는 혀로 푸드덕 말을 할 때
솟아오르는 커다란 공기 구릉―수면을 깨뜨리는

흰 포말 흰 파편은 수련,
물-말이 깨어져 날카롭게 빛나는 흰 수련!

수련 주위의 보이지 않는 저 공기는
수련의 생각들이다.
우리가 글자를 읽어나갈 때
우리 주위에서 태어나는 생각의 파동들처럼



수련 2

흰 주름치마

오므린 치마 말기에서 서서히
육감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다시
치마단으로 가면서 약간 오므라드는
흰 치마

바람이 들추면 얼핏
감추인 속살이 들여다보이는
인조견 흰 속치마 갈래갈래 찢겨진 속치마

치마를 끄르면
촘촘히 짠 융단 같은 꽃밥
화주(花柱)화사(花絲)화분낭
수술, 암술, 꽃수염
씨방
화피, 꽃물
꽃망울, 꽃방울
화탁, 꽃받기
화경, 꽃꼭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