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박천홍 지음 / 산처럼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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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명세를 접어 두고 가수 본인이 가장 애착이 갖는 곡이나,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나, 화가 스스로가 최선을 다한 그림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대중적인 인기와 무관한 참으로 좋은 예술을 만나게 된다. 지리산에서 만난 윤양미 사장(도서출판 산처럼)께 '미안하지만 나는 귀 출판사를 모릅니다. 혹시 가장 추천해 줄 수 있는 책이 무엇인가요?'라고 여쭸더니 약간의 망설임 끝에 바로 이 책을 이야기 했다.

제목과 달리 책의 내용은 매혹적인 것보다 암울함이 가득하다. 기차와 함께 시작된 조선의 종말과 일제 강점기의 역사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암울함이 소재가 되었을 뿐이다. 단지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자살의 매혹 정도가 이 책에서 거론되는 매혹이란 단어의 용도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마냥 서글프거나 기운 빠지는 암울한 독서시간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근대가 일본이라는 거간꾼을 거쳐 조선으로 수입되었을 때, 한국 근대의 운명은 비극적 양상을 띠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조선에 '근대성'과 함께 '식민성'마저 끼워 팔았기 때문인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수 많은 문학작품에서 인용된 기차와 철로의 이야기나 소재들을 인용하고, 다양한 역사서와 각국의 신문 기사 등을 적절하게 발췌하여 해석해 주는 내공은 저자의 성장 배경에 까지 관심을 갖게 했다. 이미 서문에 거론되었지만 어린시절 기차길 옆에서 자라고, 철도공무원이던 아버지와 함께 했던 작가의 생활환경을 알게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문학과 문화의 예시도 위대했지만... 300년전 기계시계의 발명과 함께 speed라는 단어가 생겨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시계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영국의 리버풀이 세계 최초의 철도가 개통된 지역이라는 사실과 함께 풀어주는 시간과 운송수단의 관계론은 저자인 박천홍 선생님의 깊은 내공을 절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법 가치있는 학문적 가치를 발견한 나는 실크로드학의 대가이신 정수일 선생님의 (학문적인) 젊은 시절이 바로 이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이 일제시대 중심의 철도이야기이고, KTX가 운행을 시작하기 전인 2003년4월에 아직 30대이던 박천홍 선생님의 우리 철도사이기에 현재도 더 많은 학문적 도전이 있을 것이며 앞으로도 더 많은 연구의 결과가 출판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에서 돈버는 방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살찌는 마음을 발견했다. 박천홍 선생님이 좋다.


매끈한 디자인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표지가 너무 미끈거려서 들고 읽기가 힘들었다는 점은 출판사 관계자 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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