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미래 - 생명공학이여, 질주하라
라메즈 남 지음, 남윤호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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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국민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영국에서 세계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다는 뉴스를 TV로 접했다.
"아부지, 인자 여자들 배 부르지 않고도 재료만 있으면 아기를 맹글 수 있단 소리지랍?"
장난꾸러기 시골 소년이던 나는 뉴스를 보자마자 아버지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질문을 했고, 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재료를 구해서 내 말을 잘 듣는 아기들을 만들어서 물건너 이웃동네 아이들을 점령해야겠다는 황당한 계획도 세웠었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었는데, 체외 수정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판 세력은 체외수정을 개발한 스텝토와 에드워즈에게 신의 흉내를 내려한다면 맹비난 했었다고 한다. 어쩌면 당시의 나와 같은 철없는 어린이의 상상력으로 지구정복을 꿈 꾸거나, 다른 사고칠 생각만 하는 어른들이 존재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았을 것이니 경계 했어야 하는 것이 옳았을 성 싶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그들의 우려대로 시험관 아기는 지탄받아 마땅한 기술인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마이클베이 감독의 '아일랜드'와 같은 미래를 다루는 수 많은 문학과 영화들이 이미 보여줬듯이 인간 문명의 발달과 생명공학의 진보는 겁나게 무서운 측면을 충분히 보여왔다. 나 역시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명분에 쉽게 반대할 수 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환영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탐구를 금지하기보다 인간의 심신을 개선할 힘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제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생명윤리적인 측면의 전문가들 의견을 나열하고 시작한다.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질병치료를 위한 연구는 찬성하지만, 기능강화를 위한 연구는 막아야 한다."
"유전공학은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행위다."
"클로닝의 금지는 자제와 책임으로 가는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다."
"우리의 지성도 능력도 이만하면 충분하다."

부시 행정부의 생명윤리자문위원이나 진보적 철학자, 보수언론 편집인 등 저명한 전문가들의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의 이야기를 주장 또는 전달하고자 한다.

첫째, 인간의 능력 강화를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생명공학 연구를 금지시키는 것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다. 암시장만 커질 뿐이다.
셋째, 인간의 능력 강화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자유'에 있다.
넷째, 자기 자신을 바꾸고 변혁에 개선하려는 충동은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특징의 하나이다.

생명공학의 연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저자는 생명공학의 진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기계와 과학의 발전을 통해 더 강하고 똑똑하게 진화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과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신체적으로 곤란한 상태에 놓여 생명을 위협받거나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추척하여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해 가는 과정을 예시로 들어 긍정적이고 행복해지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천적인 면역체계 이상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아샨티 데실바'라는 소녀가 유전자 치료 덕분에 오늘날에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본문은 그러한 불해한 환자들이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옳다 말인가를 되묻는 형식이다.
현대의 EPO(적혈구 생성 촉진인자)는 안정성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체력을 향상시켜준다. 약물검사에서 적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악용하면 골치거리일 수 있지만 시한부 생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치료법이라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조용한 주장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14명이 루게릭병(ALS;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진단을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진단후 2~5년후 근육을 통제하는 신경세포를 완전히 잃고 사망한다. 이를 위해 근육을 강화하는 유전자 치료법이 성공적으로 만들어 진다면 이는 보다 멋진 몸매를 갖고 싶은 이들을 위한 미용적인 측면에서 더 인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이유로 이 유전자 치료법에 대한 연구를 중단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의 주장은 일방적이지 않아서 좋다.
어떤 의료기술의 임상실험에 임하는 사람들은 슈퍼맨이 되려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그냥 병세가 악화되어 죽을 것인가. 아니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유망해 보이는 치료법을 받아 볼 것인가?

저자는 의약분야가 아닐지라도 모든 금지하는 것들은 되레 역효과이며 다만 지하로 숨어들 뿐임을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충분히 증명된 사실들도 많기에 그 주장에는 설득력이 충분하다. 일례로 낙태가 합법인 나라에서 출산도중 산모가 사망하는 확률은 낙태가 불법인 나라의 보다 700배나 낮다는 자료 등은 무조건 금지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혹시나 모를 극소수 부유층의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겠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저자는 약의 특허와 관련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의 특허는 개발·출원된 후 20년간 유효하지만, 특허권자의 독점적 지위가 보호되는 기간은 10년도 채 안 된다. 따라서 초기에는 부유층만 이용할 수 있을만큼 꽤 비싸지만 시간이 흐르면 경쟁자들이 생기거나 환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현상 등에 따라 가격이 확실하게 떨어지고 전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보수생명윤리학자들이 특정한 이유로 금지한다면 (선악 판단은 일단 미루더라도) 불법약품이 되고, 금지할수록 가격은 더 높아지는 법이다. 만약 특정 국가에서만 금지하는 신약이 있다면 돈 있는 사람들의 경우 외국으로 나가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통계를 보면 인류의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는데,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면 아직까지 통계가 제시하는 것들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지 않도록 각종 위험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일뿐 서기 1,900년과 2,000년의 70세 노인을 기준으로 한 평균 기대수명은 불과 3년 길어진데에 불과하다. 지난 1세기 동안 나이가 들어버린 노인의 기대 수명이 이처럼 별로 늘어나지 않은 것은 그 동안의 신약 개발 작업이 노화를 막기보다는 질병치료 위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심장마비나 암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몸의 노화 증세다. 그때마다 치료나 수술을 통해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지만 그 다음엔 또 다른 질병에 걸리곤 한다. 알츠하이머 병이 좋은 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이 병을 앓는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의 생명공학이 노화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영생을 얻은 스트럴드브러그의 추악한 노화는 얼마나 비참한 삶인가? 절대로 죽지 않고 늙어가는 것 말이다. 질병치료의 목적만이 도덕적이며 능력의 강화는 부도덕하다고 주장하는 보수 전문가들의 주장은 마냥 옳은 것일까?

소식(少食)이라고도 이해될 수 있는 CR(Caloric Restruction;칼로리 제한)은 수명 연장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CR은 나이에 따른 정신기능의 쇠퇴도 막아준다. 가장 흥미로운 효과는 병적 상태의 단축이다. 건강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턱 죽는다. 지병으로 주변 사람 불편하게 수년 수십년 동안 노년을 보내다 죽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를 아는 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행복한 일인지 잘 알 것이다. 하지만 CR에도 부작용은 있다. 젊을 적에는 면역체계의 기능이 약하고 추위에도 약하며, 성욕도 많이 감퇴된다고 한다. 이러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금욕적으로 장수한다는 것은 과연 의미있는 삶일까?
만약에 생명공학의 발달로 이러한 모든 부작용을 해결하고 인간 수명이 길어진다면 젊은 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면서까지 자신의 지위에 매달리려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는 많이 고민해볼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일방적은 생명공학 예찬론자가 아니기에 이 책의 저자에게 끌린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거리들 때문에 인간의 노화를 방치한다면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이 연장되는 온 세상의 노인들이 벽에 똥칠을 하면서 헛소리나 해대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며 가족가 국가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노인들의 현실을 방치한다면 그것은 더 불행한 인류의 미래이지 않겠는가?

생명공학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중에 하나가 클로닝이다.
현재의 기술로 생식 목적의 클로닝은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 아울러, 사람들이 영화나 문학을 통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또한 클로닝이다. 혹시 이 독후감을 읽고 있는 당신은 클로닝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가?
지구상에는 이미 4천만명 이상의 클론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바로 일란성 쌍둥이들이다. 그들은 개별적인 인격체일 뿐이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가 독립적 클론인간으로서의 개인이듯이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태어나는 클론도 독립된 개인이며, 더구나 원본과 수십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나기 때문에 더 걱정할 필요가 없는 클론인 것이다. 걱정을 한다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이다. 아놀드 슈워제너거와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클론 인간이 나온다고 해서 그와 똑같은 우람한 육체를 지니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죽은 아이를 못 잊어 유전자 복제를 통해 살려내는 부모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서 죽은 아이의 부활을 찾으려는 감정적인 미련을 가질 때 그것이 큰 비극을 불러올 뿐이라고 저자는 우려섞인 글인 글도 접할 수 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자신들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동성애 커플에게 클로닝은 생물학적 접점을 지닌 아이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다. 물론 동성애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기 때문에 아예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말이다.

1998년 바이오 메디칼 에식스의 논문은 체외수정(IVF)으로 태어난 아이의 정서에 대한 각계의 (삭막하고 정이 없을 것이라는 등)우려와 경고도 무색하게 IVF로 태어난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오히려 보통 아이들보다 인간적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알려준다. 근거 없는 추리만으로 반대하기에는 결과가 너무 좋았다.

전신 마비인 사람에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장착하여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선보인 것은 꽤 오래전 일이며 이제 로봇 팔과 다리 등을 조작하는 초보단계를 지나가고 있다. 비록 16*16픽셀의 해상도에 지나지 않지만 맹인이 세상을 보고 물건을 식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런 기술들이 점점 발달하여 오히려 손으로 그림을 그릴때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컴퓨터가 그려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냥 불행한 일일까? 물론 인간 의지나 노력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도 아주 많이 상상된다.

내이 임플란트 실험이 성공한 뒤 FDA의 승인을 받는데까지는 무려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파킨슨병의 떨림 증세를 전기로 억제하는 연구 결과가 일반인이 쓸 수 있는 장치로 개발되어 승인될 때까지도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의 실험실에서는 놀라운 BT의 발견과 개발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사람들과 자연의 섭리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는 보다 나은 육체와 정신을 원하고 있는가, 그냥 신의 뜻대로 살다 갈 것인가 깊이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흑백논리도 없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저자의 윤리에 낮은 점수를 주었지만 나는 그의 윤리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을 읽고 나의 윤리관이 바뀐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일면 환상적이면서도 막연하게 두려워 했던 생명공학의 현주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출간된 이 책은 일부 내용에 그 유효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을 것 같다. 잘 구성된 과학잡지의 생명공학 특집을 읽은 기분으로 이 책을  덮었다.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생명공학과 생명윤리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재구성해서 세상을 봐라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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