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가 돌아왔다 1
방동규.조우석 지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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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보다 별명이 더 유명하다지만 난 그의 이름도 별명도 처음 들었다.

"돈과 권력과 여자는 먼저 빼앗는 놈이 임자. 그러나 세 가지 모두 동냥하거나 구걸해서 얻을 순 없다."
배추 방동규의 단짝 백기완의 부친 백홍열 선생 말씀이다. 이 말은 특히나 방동규의 인생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명언이 아닐까 싶다.

나는 평소에 1935년생 직후 몇 년간의 세대들이 우리 역사상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학교에 들어갈무렵 해방을 맞이하고, 육이오 전쟁 때는 자기 몸 추스릴만한 청소년이면서 직접적인 전쟁에 참가해야할 군인은 아닌채 보내고, 전쟁이 끝난후 개발독재 시대에는 한 없는 경제성장기에 청춘을 불사르고, 자녀들에게는 제대로 못먹고 제대로 못배운 한 많은 자신의 삶을 교훈적으로 설파할 수 있는 나이,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할 때 IMF환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해서 속상했지만, 대대적 인원감축으로 인한 명예 퇴직, 실직 등은 그저 너무 편안하게 자란 못난 자식들의 전유물일 뿐... 여하튼 바로 그런 세대(1935~40년생 정도)의 선두그룹에 해당하는 특정 인물의 삶이 바로 이 책이다.
내 성격상 이런 류의 책을 돈 주고 구입할 생각은 절대로 못했을텐데, H사의 세미나에서 이벤트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의 자전적 삶을 만났다. 배추장수 같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탓에 배추가 된 방동규 아저씨의 즐기는 삶이 유쾌하게 그려지는 책이다. 표지는 만화같지만 내용은 단편수기들의 모음으로 35년 돼지띠 아저씨의 좌충우돌, 소풍같은 인생이야기이다.


인생은 소풍이다. 누가 뭐래도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삶의 지리멸렬함에 치를 떨기도 한다. 그래서 때때로 인생은 무거운 짐, 혹은 고단한 여행길로 다가온다. 여기 인생을 하나의 소설처럼, 예술처럼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다가올 때마다 거기서 기회를 찾고 과감하게 도전한 사람, 삶을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한 번쯤 꿈꿔온 삶을 실천한 사람, 그 사람의 삶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이유는 아니듯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어딘가 더 신나고 즐거운 삶이 있을 것 같다고 꿈꾸지만, 꽉 짜인 생활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머물러 있기에 더욱 작아지는 우리네 인생.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아 매순간 출항의 돛을 올렸던 한 남자의 유쾌한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용기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배추의 통쾌하고 파란만장한 삶은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는 무한한 꿈과 도전하는 삶이 무엇인지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배추에 함께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중년이후의 세대들에게 진한 향수와 가슴 뛰게 하는 한 편의 통쾌한 인생드라마를 선물한다.
역사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시대 명사들의 소탈한 면면을 훔쳐보는 또 다른 재미도 가득 넘실거린다. 현대사를 가로질러온 배추라는 한 인간을 통해 시대상을 통째로 엿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배추 방동규 보다 연배가 좀 높은 우리 아버지께 이 책을 권해 드렸더니 지난 수십년간 세간에 오르내린 명사들의 사생활과 배추의 패기 넘치는 사생활들을 읽고 나름대로 즐거워 하시더라~ 나중에 경복궁에 가면 이 멋진 노인을 만나 인사 한 번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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