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1 - 밤이 깊을수록 별은 빛나고 김정산 삼한지 1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김정산 작가가 직접 사인해 준 삼한지 1권을 선물 받았을 때는 예의상 1권 정도는 읽어줘야 겠다는 의무감이 들었었다. 그런데, 1권을 마치고 나니 꽤 괜찮은 역사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머지 아홉 권을 구입하려 했더니, 아홉권(2~10권)을 구입하는 합계금액이 시리즈10권 전체를 구입하는 가격보다 할인율 때문에 오히려 비싸더라는 것. 그렇게 나는 비록 고도의 상술에 말려들어 10권을 새롭게 구매하고, 여유가 생긴 첫번째 권을 누군가에게 미끼로 던져야하는 아픔(?)을 경험했다.

삼한(三韓)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三國)의 다른 이름이다. 중국 '삼국지'가 불과 80년 역사의 위,촉,오나라를 소재로 했던데에 반해 우리의 삼한지는 700년 사직의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3한의 시대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게 되는 80년사를 중심에 놓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탄탄하게 풀어간 작품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교훈을 우리 민족 삶의 터전과 민족의 영웅을 통해서 고스란히 구현해낸 것이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은 신라에 의해 삼국통일이 이뤄지는 80년간이며, 공간적으로는 고구려, 신라, 백제를 중심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년 전에 읽은 김별아의 '미실'과 바로 연결되는 시대배경이라 독자로서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는 바로 그런 역사소설이었다.


민족주의에만 얽매이지 말고 약육강식의 삼국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작가의 소설은 시작되는데... 작가는 중학교2학년때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으며 관우의 목이 잘리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한다. 나중에 커서 보니 그렇게 온몸으로 읽은 감동의 역사 소설이 우리나라 것이 아닌 중국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데에 크게 실망하고 아쉬워 한 것은 비단 작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작가는 하얀 종이로 벽을 도배하고, 거기에 삼국시대의 역사를 도표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누워서도 보고, 밥 먹으면서도 볼 수 있는 자신만의 삼국시대 인물 계보와 사건 사고의 메모를 채우다 보니 어느덧 일년이 흘렀고, 작가 자신의 말투와 몸짓 또한 어느덧 시대를 거슬러 올라 옛 선비의 분위기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집필을 결심한 후로 제대로된 진도도 없이 꼬박 2년을 채울무렵 현장답사차 떠난 경주여행에서 길을 잘못들어서 헤매게 된 작가는 큰 깨달음으로 소설의 영감을 만났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분이 드디어 강림하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렇게 확실한 안내표지판을 두고도 길을 헤매는데,


3권62쪽 - 요동성을 찾아와 투항할 것을 촉구하는 수양제 양광의 황문시랑 배구에게 을지문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는 한나라때 광무제가 침범한 요동만 알지 그 이전의 요동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오.광무제 사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무신왕때 잠깐 있었던 일로, 이런 것으로 국경을 논하자면 어느 나라인들 강역으로 삼을 곳이 있겠소. 이는 비유하자면 내가 밟고 지나가는 길이 모두 내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천하의 주인은 그후로도 여러번 바뀌었고, 세상사 또한 크게 변하기를 여러 수십번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거늘 어찌 공은 수백년 전에 있었던 일로 오늘을 말하려 하시오?"하며 득롱망촉(得隴望蜀;농나라를 얻은 뒤 촉나라까지 탐했다는 폭군 광무제의 욕심에서 비롯된 말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을 예로 들어 공격하는 을지문덕의 지혜는 수백만 대군을 자랑하는 것 또한 그 많은 군사의 식량은 어찌 감당할 것이냐며 몰아부친다.

3권298쪽- 연나부의 욕살로 지내던 연태조의 둘째 아들은 갓 쉰에 본 아들로 갓 쉰의 한자음 표기가 '개소문'이라 어려서 그리 불리던 것이 이름으로 굳었다 한다.

수가 망하고 당이 급부상하는 혼란스런 정국에서 외할아버지 금왕(백정왕)에게 새우 미끼로 잉어를 낚는 이하조리(以蝦釣鯉)의 계책을 제안하며 자신이 새우가 되어 당나라도 떠날 뜻을 내비추는 5척 단구 스무살 청년 김춘추(4권148쪽). 금왕은 처음에 외손을 걱정하여 반대하다가 얼마후 눌최(충신 도비의 아들)와 함께 가도록 허락한다.
이에 용춘은 아들 춘추에게, 조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진지왕(춘추의 할아버지)의 이야기며 백정왕의 둘째딸 천명과 혼인하여 춘추를 얻은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고기 한 토막을 놓고 싸우던 개도 범이 나타나면 꼬리를 내리고 물러간다는 이야기로 범이 될 것을 당부한다.(4권156쪽)

숫사슴의 뿔을 탐하여 좇는 사냥꾼을 보고 크게 깨달은 용춘은 백반을 찾아가 자신의 품계를 성골에서 진골로 낮춰 줄 것을 요구한다. "성골이란 임금이 되지 못할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마치 숫사슴의 뿔과 같아서 오히려 위험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4권179쪽)

한때 70여명에 이르던 용화향도가 우두머리 김유신이 금성에 상수로 잡혀와 술로 날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용화향도 무리는 한 차례 내분을 겪은 뒤 30명 남짓으로 남고 만다.(4권193쪽)

나이 서른넷에 낭비성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김유신에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왕이 벼슬을 거론하자. 물리는 유신... 이미 왕은 나무이고 신하는 새와 같아서 새는 나무를 가려 앉을 수 있으나 나무는 새를 가릴 수 없다는 아버지 서현의 충고 탓... (5권191쪽)

신묘년(631) 백반의 반란, 용춘은 칠숙이 비록 역모에 가담하였으나 그의 재주가 아까워 투항을 권유하는 서신을 보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는 임금을 시해한 사람이다. 천지가 가물어 사방이 타들어가는데 논두렁에 든 미꾸라지가 어찌 살아나기를 바랄 것이며, 설혹 논두렁을 벗어난다한들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이냐? 호의는 고마우나 그럴 수 없다고 아뢰어라. 나는 끝까지 섬기던 사람을 섬길 것이다. 미꾸라지는 날이 가문 것을 탓하며 죽어갈 뿐, 처음 논두렁에 들어간 것을 원망할 수 없지 않느냐?"(5권284쪽)

김춘추가 당태종과 피로써 동맹을 맺고 있을 때, 압량주 민심을 수습한 김유신이 대야성 전투에서 윤충의 장수 8명을 생포한 다음 "전날 우리 군주 김품석과 그 아내의 유골이 그곳 옥중에 묻혀 있으니 우리에게 두 내외의 뼈를 보내고, 산 사람 여덟과 바꿔가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제안하여 의자왕을 의아하게 만들었는데, 백제의 성충은 김유신의 지략을 꽤 뚫으면서도 그와 같은 제의를 한 순간에 이미 김유신이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의자왕에게 아뢰고 장수 여덟명의 목숨은 마땅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교환 직후, 기세가 오른 김유신과 신라군은 긴장이 풀린 백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이후 백제군은 단 한 번도 신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8권106쪽)
알천의 처신은 과연빛났다.어떻게든 임금이 되려고 군사까지 동원했던 전대의 내란들을 돌아보면 더욱 그러했다. 그가 임금자리를 양보하고 춘추가 세번씩이나 이를 사양했다는 미담이 알려지자 신라백성들은 저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왕실과 조정의 권위는 일시에 되살아나 그 어떤 엄법보다 빠르고 폴넓게 전국을 복종시켰다.(8권194쪽)

오천의 오합지졸로 황산벌 전투에 임해야 했던 충신 계백은 처자식을 직접 죽이고, 성충의 묘 앞에 눈물을 흘리고 돌아왔을 때, 계백의 처 자식을 묻어주던 오천의 백제군사들은 더이상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적군의 손에 내맡겨질 비참함보다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처단해야 하는 비장함이 만들어낸 결과였다.(9권21쪽)

백제가 망하던 날, 신라태자 법민이 백제왕자 부여융을 무릎 꿇리고 얼굴에 침을 뱉고 있을 때, 당나라 군사들에 능욕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던 200여명의 백제 궁녀들은 의자왕의 처세에 불만을 품은 민심이 3천 궁녀의 낙화암 전설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9권77쪽)

복신과 부여풍이 복국을 논하다가 결국 권력욕에 사로잡혀 서로 싸우다 대업을 그르친 뒤, 과거의 태자 부여융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으로 부임하여 흑치상지가 부여융을 받들어 뒷날을 모색하려하려 한다고 하자. 지수진은 흑치상지의 변절을 꾸짖고, 흑치상지의 으뜸 별부장이던 사타상여가 말한다.
"그들이 말하고 우리는 믿을 따름입니다. 뒤에 변하는 건 그들이지 우리의 믿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사타상여는 지수진을 죽이고, 오랜 벗 흑치상지의 설득에 맞서 흔들림 없는 자신의 마음을 말하며, 임존성의 부하들을 부탁하고 떠난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9권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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