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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생존법 - 대한민국 99% 비즈니스 파이터 '을'들의 필살기
임정섭 지음 / 쌤앤파커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몇달 전 한 온라인 서점의 보수언론 광고에 보이콧 하는 이용자들의 집단탈퇴 압박이 있었는데, 대립각을 세운 쌍방은 상대방의 입장과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몇 가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나는 평소에 그 서점이 나를 바라볼 때 진정한 고객으로 대우한다기 보다는 그냥 예의상 고객으로 불러줄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단순 이용자일뿐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비록 구매량이 많은 이용자(고객?)일지라도 나 하나쯤은 존재하지 않아도 전체 매출에 큰 영향이 없는 상태라는 판단을 했단 말이다. 즉, 나는 '을'이고 그 온라인 서점은 '갑'이 된다. 하지만 수백명의 이용자가 한 가지 이슈에 맞서 집단 반발을 하는 순간, 을들의 습격은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갑에게 '당신 乙 한 번 해볼래?'라는 압박이 가능하다. 이 순간에 제 아무리 갑이라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갑이 목소리를 높일 때 을은 신속하게 찌그러져야 하며, 찌그러지지 않으면 을은 무참히 짓밟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을의 반격을 '갑'은 두려워 한다.
그 사태는 깔끔하게 수습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시장1위 기업이라 배가 부른 '갑'이기 때문에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배부른 갑의 냄새를 풍기며 나름대로 배짱으로 맞서는 순간에 나와 나의 동지들은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그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대갈을 굴렸을 것이다. '이 순간에 나는 갑일까 을일까?' 생각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결국 이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솔직히 나는 그들이 백보 양보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카드를 몰랐다. 그들이 과연 스스로를 갑으로 생각하는지 을이라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팽팽한 순간에 갑이 되고자 노력했다. 갑이 되어 양보를 해주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맥없이 아주 어설프게 물러났다. 분명히 물러났다. 깔끔하게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물러 났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를 '을'로 표현한데에 감사했다. 물론 찝찝하지만 윈윈을 선택하고 싶었다. 갑과 을의 세계는 늘 잔인하다. 하지만 윈윈하는 방법도 있다. 윈루즈 게임보다는 윈윈이 낫지 않겠는가? 윈루즈(Win-loose) 게임을 고집하다가 나에게 루즈게임이 된다며 결국 내가 을이었지 않겠나 생각했다. 나는 갑이 되고 싶어서 멈췄지만 찝찝한 마음은 남아 있었고, 상황은 다시 반전되어 그들은 반복적인 실수를 했다.
나는 결국 그 온라인 서점을 떠나 알라딘으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이 온라인 서점이 마냥 나를 갑으로 대접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희망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의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시장 1위 기업은 출판사에 대해서 명확히 갑의 관계에 있을 것이지만 그들이 온라인서점을 시작하여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을의 역할을 수행해 왔을 것이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찾아 다니며 사정하고 사정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언론사에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대는 홍보팀의 아부가 있었을 것이다. 유명 작가를 초대하면서는 제발 자리를 빛내 주십시오 하며 수많은 삼고초려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을의 나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갑이 되어버린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비록 떠났지만 그들이 그 오래 전 '을'의 정신을 잃지 않기를 주문하고 싶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결코 을로 살고 싶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벤처기업 H사에서 제대로 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케팅과 홍보 담당자로 일한다는 것은 갑의 즐거움을 줬다. 나는 갑의 위치에서 매우 편안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행운아였는지 모르지만... 을로 단련되지 않은 까닭에 수 많은 좌절의 나락에 빠져버린 이후의 세월도 있었다. 을로 시작하여 갑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부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도 나는 업무적으로 을의 위치에서 갑의 눈치를 보며 일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고 믿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다.
내가 지금은 비록 힘없는 을의 역할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자신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쩌면 영원한 을의 늪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이 세상의 모든 불쌍한 존재(을의 존재)들에게 생존의 지혜를 알려주는 주옥같은 라이프-매뉴얼(?) 이다. 이 책을 읽고 그 지혜를 깨우칠수만 있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갑'이 되어 세상을 호령할 것이며, 갑이 된 이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을로 추락하지 않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분석한 참으로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