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니지 않는 인생 - 마침내 원하는 삶을 발견한 사람 이야기
라파엘 조르다노 지음, 김주경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어느 절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국에 있는 유명한 불교 명소 중에 한 곳이었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내가 찾아가지는 않았을테니까. 청소년기의 언젠가, 나는 어느 절에서 참 어려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이요, 진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법문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분명 한국말인데 왜 이해가 안 되는지 이상하다는 느낌만 받았다. 스무살도 안 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감상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었더랬다. ‘아. 참 좋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너무 어렵고 졸린 이야기였어. 다음에는 안 갔으면 좋겠다.’ 뭐 이 정도.

눈에 보이는 것이 진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허상 아닌가, 라는 의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그 스님, 그걸 바꿔 말씀하신 거 아닌가. 내가 졸면서 들어서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정신없이 놀기에만 바빴던 시절의 한 조각이 기억의 수면위로 무심하게 올라왔는데, 하필 그게 저런 기억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구나’라고 느꼈던 감정은 내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고 오래가는 건가보다.

 

저 말을 들은 지 십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저 법문이 이해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진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우리의 정신, 의식과 생각, 마음에서 빚어져 보이는 세계 즉 우리의 몸, 눈빛, 표정, 말투, 행동과 우리가 몸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것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진상의 산물이 눈에 보이는 세계로 고스란히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서 때로 우리의 몸은 마음과 다르게 굴고 우리의 말은 생각과 다르게 나온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은 허상이다.

반백년도 살지 못한 내가 인생이 뭐니, 진리가 뭐니 이런 걸 쓰고 있자니 참 우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가 겪고 느낀 내 인생에 비추어보면 불편함이나 괴로움, 외로움 같은 많은 고통들이 의식과 육신의 괴리에서 오더라. 현대인의 심리적, 신체적 병리의 원인을 저러한 괴리에서 찾는 연구결과나 서적들이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우리의 의식이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끌려다니지 않는 인생>은 책은 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그린 자기계발서다. 변화라는 가치 있는 도전에 성공하기 위해서, 의식을 차츰차츰 바꿔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마시멜로이야기>처럼 소설 같은 자기계발서다. 프랑스에서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나에겐 소설 자체로서는 그다지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여성이다. 남편과의 사이는 대면대면하고 아들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늘 시간에 쫒기는 카미유는 우연히 타성 치유 전문가라는 클로드를 만나게 된다. 클로드는 플라톤의 동굴 이론을 인용하면서 카미유에게 조언을 건넨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현실을 변형시킨다. 인생을 변화시킬 힘은 생각에 있고 그 생각을 변화시킬 힘은 당신에게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우리 인생의 의무다.’ (저 마지막 말은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게 만든 고마운 문장이다.) 본래 카미유는 자기가 썩 행복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비교적’ 원만한 자신의 인생 어딘가 항상 마음이 허물어져 가는, 무언가 나를 갉아먹어 지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알아차린 그녀는 타성 치유 전문가인 클로드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카미유의 성장 과정에는 보통 사람들이 가정과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에 참고할 만한 여러 가지 팁들이 잘 녹아 있다. 심리학을 공부한 저자가 실전에서 적용해볼만한 좋은 방법들을 이야기에 잘 담아냈다. 대화법이라든지 처세술이라든지,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볼만한다. 스토리 형식이라 쉽게 읽혀 하루 만에 금방 읽게 된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스스로 실천해볼만한 가이드가 있으니 그런 걸 참고해서 일상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카미유의 가이드였던 클로드의 말대로 우리의 의식부터 변화시키고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클로드 같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트럼프 승자의 생각법 - 무엇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도널드 트럼프 지음, 안진환 옮김 / 시리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의 대통령들은 임기를 마감하고 난 후에야 회고록 출간을 하지 않나. 아니, 전혀! 이제는 대통령 임기를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자서전을 출간하는 게 트렌드가 될 것이다

대통령들이 자서전을 출간하는 일에 있어서도, 트럼프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취임식도 치르지 않았는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는 당선 직후에 자서전을 출간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의 성공담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가 부제로 달린 만큼 이 책은 한 개인으로서의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도널드 트럼프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더불어, 도널드 트럼프가 그간 걸어온 길이 아니라, 앞으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전조 혹은 힌트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Trump Never Give Up'이다. 최악의 파산 위기를 마주한 상황에서도, 모두가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비아냥대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고, 트럼프는 정말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투자 스케일이 크면 위기도 클 수밖에 없는 법이고, 위기를 겪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 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독자에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사업가로서 혹은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인으로서의 트럼프에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건 미국의 거대한 뱃머리를 움직이는 키를 그가 쥐었다는 것이다. 대선 기간 동안 그의 공약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중 다수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다 최근 나는 트럼프의 정책과 지향점에 대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과연 트럼프는 정말 고립주의자인가? 이 책에 따르면 대답은 No. 힌트는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부분이다.

 

트럼프는 수많은 외국의 자본들이 미국의 별장을 구입하고 있다는 최근의 흐름에 주목하며 이렇게 썼다.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립주의자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수많은 미국인들이 외국에 별장을 구입했지만, 펜이 지적하듯이 이제는 그러한 물결이 우리의 해안에 상륙했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앞으로의 상황을 예고하는 전조라고 생각한다.’ (본문 159쪽)

 

물론 트럼프가 오바마처럼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강화하는 측은 분명 아니나 그렇다고 에누리 없이 꽉 막힌 봉쇄정책으로 나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기업가다. 그냥 기업가가 아니고 능력있는 기업가다. 능력 있는 기업가는 상대와 협상할 줄 알뿐 아니라 양자간 윈윈이 되는 협상이야말로 최고의 협상임을 알고 있다. (이건 심지어 본인이 책에 쓰기도한 내용 이다. 본문262쪽) 위대한 미국의 회복도 이뤄야겠고 그러면서도 상대와도 적당히 타협하기 위해 상당히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겠구나, 싶다. 전문가들은 예측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본인들은 실용주의라고 이야기할 터다.

 

이 책에서 트럼프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힌트를 주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에도 나선다.

 

대선에서는 거친 아웃사이더 이미지로 승부했지만 미국 대통령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그런 모습이면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건가. 자서전에서 그는 규율 있고 비전 있는, 주도면밀하고 근면성실한 트럼프의 모습을 상당히 자주 내세운다. 하지만 글로벌한 부동산 재벌로서 그간의 사업을 이끌어온 인물이 일벌레에 주도면밀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1987년에 트럼프가 쓴 거래의 기술 이후 두 번째 읽는 그의 책인데, 다 읽고 나서는 역시 트럼프는 트럼프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내가 만약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를 매우 존경하고 아마 손가락에 꼽는 롤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사람이 가진 기업가적 역량과 도전정신에 순수하게 탄복하고 박수를 보내는 부분이 많다. 기업가로서 그는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쓴 두 권의 책에서 나는 그 어느 문장에서도 인간 트럼프는 만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직 사업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고 어떤 점을 배웠는지만 있을 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사업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수 있지만 관계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이 책이 '승리'에 집중하고 있어 그럴지도 모르겠다만, 일에서 승리하기 위해 인간성을 거세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그래서 그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할 수가 없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성이 간절한 이 시대에,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는 지도자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신화로 읽는 심리학 - 그리스부터 북유럽 신화까지
리스 그린.줄리엔 샤만버크 지음, 서경의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 우리 집에 만화로 된 그리스신화 전집이 있었다.

여섯 살의 나는 그리스 여신들의 아름다운 의상과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에 매혹되어 그 책을 참 즐겨읽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신화 그 자체를 즐겼다기 보다는 만화로 그려진 여신들의 모습을 즐겼다고 해야 맞는 말이겠다. 그때 읽었던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까.

그랬기에 청소년기에 접했던 그리스 신화는 왠걸,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게 신들의 이야기라고?

나중에야 그것은 신이라는 거죽 아래 다사다난한 인간사를 켜켜이 담아낸 이야기라는 해석을 듣고 나서 그리스 신화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화로 읽는 심리학' 서문에서 저자들이 쓴 바, 신화는 인생의 거울이다.

신이라고 이름지었지만 사실 모두 인간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고 한없이 너그러운 듯 하나 질투하고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또 한계없는 동정과 포용을 베풀수도 있는, 그런 아이러니하고 알쏭달쏭한 인간. 나 역시 그런 인간이고, 이 지구상에 바글바글한 사람들 역시 모두가 그런 인간들이기에 사람들은 신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나보다.

 

'신화로 읽는 심리학'은 52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의 심리의 다채로운 얼굴을 엿보고자 한 책이다. 에피소드는 그리스 신화가 메인이지만 그외에 아프리카 민족의 전통신화, 성경, 중동지역 고대 신화 등등 다양한 문화권의 이야기들까지 한데 모았다. 그래서 심리학 안내라는 책의 집필 목적을 잊고 읽다보면 다양한 신화를 읽는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다.

 

신화를 통해 인간의 심리 곧 나의 심리를 이해하고 나의 내면을 바꾸는 방법으로 쓰겠다고 한 저자들의 의도도 매우 좋다. 이야기란 항상, 인간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동원되어온 가장 전통적인 거울이니까.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의 해석에 의문을 표하게 되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평면적으로 해석하여 아주 단편적인 방향으로만 인간의 심리와 관계에 적용해 놓았다. 평면적 해석에만 그치면 다행인데, 어떤 부분에서는 실제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한다.

 

제일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카인과 아벨 에피소드였다.

저자들은 여기서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형제 갈등으로 보고 이 형제 갈등을 촉발한 것이 편애하는 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나님이 카인이 제사로 올린 곡식은 안 받고 아벨이 제사로 올린 양은 받은 이유는 하나님이 곡식보다 양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하나님이 카인보다 아벨을 더 사랑했다고 한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부모가 자녀를 편애했을 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경고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창세기 4장 5절에서 8절에 읽어보면 하나님이 카인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 받은 이유가 분명히 나온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카인의 제사가 거부된 이유는 신이 아벨을 편애해서가 아니라 카인이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카인과 아벨 에피소드는 형제간 갈등도 아니고 편애하는 신의 문제도 아니라 인간과 죄의 문제다. (그걸 왜곡해서 저렇게 책으로 내다니, 그것도 심리학 서적으로. 책 나오기 전에 감수 안 보나.)

 

이렇게 나의 내면에 갈등을 일으키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오십 편이 넘는 다양한 신화들을 한 권으로 주르륵 훑어볼 수 있다는 책이라는 것에 의의를 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정말 지독한 오후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커피를 마시다가 아니면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다가, 그런 순간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거기서 내가 그런 말을 했어야, 혹은 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때 그 순간에 내가 네 손을 말없이 잡았어야, 혹은 놓았어야 했나.

내가 아무 준비 없이 마주한 뒤 순식간에 놓아버려야 했던, 의미 없는 일상이라고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고 여겼던 그런 순간들이 실은 아주 결정적인 한 때 였다는 걸 깨닫고 마음이 내려앉는다.

흘러가도록 무심하게 지켜보았던 순간들이 실은 그렇게 무심하게 굴면 안되는 순간들이었다고, 시간이 말해주는 그런 때마다 후회나 분노 어쩌면 두려움 같은 것들이 선명해진다.

대부분 그런 순간들은 나의 혹은 상대의 진심이 드러나는 때다. 그런 순간을 그 당시에 알아채지 못했던 건 그게 진심이었다는 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왜냐면 나에게 혹은 상대가 간직했던 진심이 그런 얼굴, 그런 말일줄 상상도 못했으니까.

 

리안 모리아티의 작품이 흡인력을 갖는 건 그런 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보여주기 때문일터다. 모리아티는 작품 속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각자의 의식과 감정의 파도를 촘촘하게 늘어뜨리다 서로의 인식 혹은 감정이 맞닦드리는 그 순간을 민첩하게 엮어낸다.

그리고 이렇게 엮인 그물 속에 독자는 기꺼이 낚이게 되는 것이고.

 

600페이지가 넘는 긴 소설이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호기심 많은 독자가 덥썩 물 미끼들을 충실하게 던지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3쌍의 부부들이 함께 벌인 바비큐 파티라는 '그 날' 즉 과거와 그 이후 혼란과 후회 그리고 분노 속에서 갈등하는 현재의 시간이 촘촘하게 교차된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에서 출발한 나의 궁금증은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도대체 이 사람들, 서로의 진심은 대체 뭐야?'로 전환되었다. 사건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삼아, 결국 나는 이 책의 마지막까지 쉼없이 읽어갔다. 직업이나 삶의 모습, 형편 등 겉으로는 이상적이고 평온해보이는 호주 중산층의 삶은 매우 피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호주 중산층만의 일이랴. 어릴 때부터 삼십대인 지금까지 서로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그리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보는 클레멘타인과 에리카의 사이는 뭐라고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사이다. 친구일까, 적일까. 그 둘 사이를 오가는 감정은 적의인가, 호의인가. 어쩌면 그 둘은 서로를 질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정도로 서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것일까. 저자의 성실하고 짜임새 있는 전개와 문장, 묘사 덕분에 저런 의문들은 클레멘타인과 에리카 사이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관계를 바라볼 때마다 바쁘게 떠올랐다. 제일 흥미로운 인물이었던 해리. 그가 그의 이웃에게 가졌던 감정은 분노인가, 질투인가 아니면 그리움, 그것도 아니면 두려움인가.

 

모든 감정은 한 가지 얼굴을 하지 않는다. 애정에는 질투와 두려움, 분노가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고 분노에는 공포와 애착 등의 감정들이 어깨를 같이 한다. 단지 한 가지 감정에 매몰된 내가 혹은 우리들이 그 복잡다양한 얼굴과 표정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사람이란 안팎으로 얼마나 많은 표정과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그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오랜만에 사람이 궁금해지는 마음으로 읽은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잡학콘서트 : 핵, 과학이 만든 괴물 - 지식의 신세계로 떠나는 오싹한 호기심 여행 ㅣ 잡학 콘서트 시리즈 1
공공인문학포럼 지음 / 스타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선거 유세 때부터 고립주의를 표방했던 트럼프가 결국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 지금, 한국은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는 모래폭풍 속에 갇힌 느낌이다.

이전의 그 어떤 대통령과도 판이하게 다른 트럼프라는 새로운 인물이 세계 패권을 쥐게 된 상황에, 있는 눈치 없는 눈치 죄다 발휘해가며 앞날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바지대통령에 열받은 국민들은 추위도 막지 못한 뜨거운 촛불을 들고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고 대통령은 죽어도 자기자리 못 내놓겠다며 배째라로 일관.

상심한 국민들이 지갑을 닫고, 이름 밖에 없는 대통령은 그나마 있는 이름이라도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계시느라 나라 일은 뒷전(이라고 썼지만, 이 분은 아마 취임 이후에 내내 나라 살림에는 뒷전이셨을 거라고 추측된다) . 이러니 덩달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역시 모두 일시정지 상태일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가 급변하는 이 마당에 외교까지 마비상태니 한국이란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그나마도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는 거 아닐까, 걱정이 들던 차에오늘 아침에 한 기사를 읽었다.

한국이 국제 외교에서 특히 대북외교와 안보 분야에서 소외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려가 현실이 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정치니 외교니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나라 앞날이 이렇게 막막한데....... 어찌 할까나.

이런 싱숭생숭한 마음을 전혀 위로해 주지 않는, 희망이라곤 절대 주지 않는 책 한권을 읽었다.

 

잡학콘서트라는 제목 뒤에 '핵'이라는 주제를 품은 이 책은 핵의 탄생을 시작으로 현재 국제사회에서 핵의 영향력, 핵 보유국과 그들의 관계 등에 대해 정리한 핵의 상식사전 같은 책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핵실험을 하는 북한을 정수리에 두고 살면서도 핵에 그다지 큰 관심도, 두려움도 없다. 나는 이게 우리가 핵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잠시 외국에 지낼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서 세계가 북한 미사일 뉴스로 뒤숭숭했었다. 하필 그때 한국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던 나에게 옆집 사람들은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다. '지금 한국에 꼭 들어가야하니? 전쟁이 날 것 같아. 너무 위험해. 무섭지 않니? ' 나는 정말 무섭지가 않았다. '괜찮어. 북한이 뭐 하루이틀 저랬나? 늘 그러는 애들이야.'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그때 나는 정말 저렇게 대답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국제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같은 땅을 함께 쓰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최소한이라도 알고 지내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의 시선이 아닌,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북한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예측이 안되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운 존재인지를 경험하고 나서였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을 이해하려면 핵을 이해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참 반갑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저자인 공공인문학포럼의 목소리대로 우리나라에는 대중이 핵과 핵문제, 핵이 불러온 관계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변변한 서적이나 매체가 적다. (없다고는 못하겠다. 나도 모든 책을 다 찾아본 건 아니니까) 이 책의 등장은 그렇기에 더 반갑다.

 

이 책은, 핵이 세상에 태어나던 그 때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재의 핵보유국, 핵을 보유하려고 노력하는 나라들(특히 북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등장 그리고 북한으로부터 비롯되는 서울의 핵 공격 가상 시나리오 등등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한 꼭지는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 책 전체에 핵을 중심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주제의 이모저모를 잘 담았다. 특히 핵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 충분히 설명하고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에서 핵의 참혹한 실상을 감추고 있다는 부분으로 책을 마무리 지은 부분은 정말 좋았다.

 

핵이라는 가공할 무기는 이미 지구상에 너무 많고 너무 충동적이고 책임감없는 리더들이 핵무기의 조종대를 손에 쥐고 있다. 더 두려운 일은 IS와 같은 일당들이 실제로 핵무기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핵무기 암시장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당장 오늘밤에라도 지구 어딘선가 핵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현실. 본문 중에 인도는 평화 목적으로 핵실험을 하고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하지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지구상의 모든 핵은 반드시, 되도록 빨리 폐기되어야 한다. 핵을 빨리 폐기하지 않으면 정말 핵이 지구를 폐기해버릴 테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