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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다니지 않는 인생 - 마침내 원하는 삶을 발견한 사람 이야기
라파엘 조르다노 지음, 김주경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2월
평점 :
지금은 어느 절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국에 있는 유명한 불교 명소 중에 한 곳이었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내가 찾아가지는 않았을테니까. 청소년기의 언젠가, 나는 어느 절에서 참 어려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이요, 진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법문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분명 한국말인데 왜 이해가 안 되는지 이상하다는 느낌만 받았다. 스무살도 안 된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감상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었더랬다. ‘아. 참 좋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너무 어렵고 졸린 이야기였어. 다음에는 안 갔으면 좋겠다.’ 뭐 이 정도.
눈에 보이는 것이 진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허상 아닌가, 라는 의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그때 그 스님, 그걸 바꿔 말씀하신 거 아닌가. 내가 졸면서 들어서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정신없이 놀기에만 바빴던 시절의 한 조각이 기억의 수면위로 무심하게 올라왔는데, 하필 그게 저런 기억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구나’라고 느꼈던 감정은 내 생각보다 훨씬 힘이 세고 오래가는 건가보다.
저 말을 들은 지 십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나는 저 법문이 이해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진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우리의 정신, 의식과 생각, 마음에서 빚어져 보이는 세계 즉 우리의 몸, 눈빛, 표정, 말투, 행동과 우리가 몸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것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진상의 산물이 눈에 보이는 세계로 고스란히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서 때로 우리의 몸은 마음과 다르게 굴고 우리의 말은 생각과 다르게 나온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은 허상이다.
반백년도 살지 못한 내가 인생이 뭐니, 진리가 뭐니 이런 걸 쓰고 있자니 참 우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내가 겪고 느낀 내 인생에 비추어보면 불편함이나 괴로움, 외로움 같은 많은 고통들이 의식과 육신의 괴리에서 오더라. 현대인의 심리적, 신체적 병리의 원인을 저러한 괴리에서 찾는 연구결과나 서적들이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 우리의 의식이란 확실히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끌려다니지 않는 인생>은 책은 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그린 자기계발서다. 변화라는 가치 있는 도전에 성공하기 위해서, 의식을 차츰차츰 바꿔나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마시멜로이야기>처럼 소설 같은 자기계발서다. 프랑스에서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나에겐 소설 자체로서는 그다지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여성이다. 남편과의 사이는 대면대면하고 아들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늘 시간에 쫒기는 카미유는 우연히 타성 치유 전문가라는 클로드를 만나게 된다. 클로드는 플라톤의 동굴 이론을 인용하면서 카미유에게 조언을 건넨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현실을 변형시킨다. 인생을 변화시킬 힘은 생각에 있고 그 생각을 변화시킬 힘은 당신에게 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우리 인생의 의무다.’ (저 마지막 말은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게 만든 고마운 문장이다.) 본래 카미유는 자기가 썩 행복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비교적’ 원만한 자신의 인생 어딘가 항상 마음이 허물어져 가는, 무언가 나를 갉아먹어 지치게 만드는 그런 느낌을 알아차린 그녀는 타성 치유 전문가인 클로드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한다.
카미유의 성장 과정에는 보통 사람들이 가정과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에 참고할 만한 여러 가지 팁들이 잘 녹아 있다. 심리학을 공부한 저자가 실전에서 적용해볼만한 좋은 방법들을 이야기에 잘 담아냈다. 대화법이라든지 처세술이라든지,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볼만한다. 스토리 형식이라 쉽게 읽혀 하루 만에 금방 읽게 된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스스로 실천해볼만한 가이드가 있으니 그런 걸 참고해서 일상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카미유의 가이드였던 클로드의 말대로 우리의 의식부터 변화시키고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클로드 같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