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영원한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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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낯선 작품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헤맸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델마 할머니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여 델마 할머니의 이야기, 루이스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두 할머니가 거리로 나서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갈 때 혼란스러웠다. 왜 제목이 델마와 루이스지? 왜 이 두 할머니는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지 않는거야? 결말 꼭지 부분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이 작품의 제목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빌어온 것이 맞다는 확인과 함께, 그러나 그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 역시 맞다는 확인을 해 준다. 불친절한 저자와는 달리 이 작품의 결말은 친절하다. 두 할머니들은 집을 나온 채로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고, 그 두 할머니의 가족들은 할머니들의 장사를 외지에서 치른 후에 겪을 기묘한 분노와 당혹감, 의문에 휩싸인채로 여생을 보내지 않을 터다. 할머니들은 이제까지의 삶이 그러했듯 가족의 옆에서 그들의 염치를 증명하다가 아무런 잡음도 남기지 않고 소천하고 남은 가족들은 또 그들의 생애를 따라 살아가겠지.

 

 첫 작품을 읽고 나서 <아홉번째 파도>, <토기박물관>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짚어내는 지겹고도 지겨운 삶의 맥을 따라 가게 되었다. 그 맥은 참 고단하면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징글징글하면서도 그렇게 쉽게 떨쳐지지 않는 묘한 박동이었다. 분명 더 나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데로 하지 못하는 삶. 갯바위에서 던지면 분명 아홉 번째 파도에 이르기 전에 월척을 낚을 수 있게 될 좋은 낚싯대를 수중에 쥐고도 예전의 선택을 다시 하게 되는 여자(<아홉번째 파도>의 인물)나 남편이 죽은 후 지나온 삶의 조각을 꿰어 맞추며 이리저리 분열하며 어그적거리는 생애를 살고 있는 여자(<토기박물관>의 미라)의 이야기는 지겹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이 슬픔은 <넝쿨>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내 기억이 진실이 아닐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가 있다. 어제 술값을 계산했던 게 내 친구인 걸로 기억하는데 실은 나였을 때 다음달 카드값 청구서가 꽤나 묵직하겠지. 그리고 내 식사는 가벼워질 터다. 새로 알게 된 거래처 직원이 하도 낯이 익어 대학 동창인 걸로 기억해냈는데 실은 학부 때 미팅으로 만나 아주 더럽게 헤어진 썸남이었을 때, 당분간 회사 생활이 골치 아파지겠지. 기억이란 시간과 공간이 채색하는 대로 갖가지 색을 덧입거나 지우기 마련이다. 더구나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 자기방어력이 가장 강한 생물아닌가. 왜곡되고 비틀려진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불러온 비극. 영국의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이 주제를 아주 세련되고 날렵하게 잘 다루었는데, 그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 좀더 명료하고 쓰린 충격을 준 작품이 <넝쿨>이다. 


 <넝쿨>이 그린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내가 진범이라고 지목하여 사회적으로 사형을 당하고 실제로 투옥되어 형을 살고 있는 인물이 실은 진범이 아니었다고, 진범이 따로 있었다는 전개는 아프지 않다. 그것은 놀라움의 일이지 아픔의 일이 아니다. 내가 아팠던 부분은 주인공 형윤의 의식이었다. 범인을 잡고 난 이후에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공포와 충격. 진범이 밝혀지고 난 이후에는 가해자가 응당 받기에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비난과 자기 자신이 주는 자책이라는 채찍질이 더해져, 그녀는 실로 순교자 같았다. 그녀 자신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그녀의 기억을, 단 한 번도 재생하기 싫은 그 끔찍한 순간들을 여러 번 오가며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징계는 가혹하고 처절했다. 누구에게라도 이 순간의 원인을 떠맡기고 싶어지는 밤,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여서 어디 피할 데도 없어진 형윤은 하느님이야말로 이 게임의 범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같은 가해자가 된 형오(형윤의 오빠)는 타국으로 도망을 가는 길을 택했으나 그녀는 아니었다. 형윤은 그녀가 짊어져야 하는 생애를 악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견디는 쪽을 택했다. 이런 삶이라도 견디고 있다는, 도망가고 싶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만 그저 여기 있기를 택한 형윤의 의지는 <넝쿨>의 뒤를 이어 전개되는, 이 책의 표제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으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분명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개체마다 다르게 시작되는 운명의 차원이나 상처의 방식도 아니라고.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더럽고, 냄새나고, 그저 꿀떡꿀떡 삼켜야 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자는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다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그것은 오직 그들이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50쪽)”

 

 이 한 구절이야말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여러 개의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들과 그 수많은 삶을 꿰는 단 하나의 실이 아닐까 한다.

 

 어린 제자와 동행했던 하룻밤에 P선생은 어린 제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때 P선생은 악몽을 막아준다는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이후 P선생의 일생은 온통 악몽의 도가니에서, 도저히 삼켜지지 않는 그 생애를 삼키려 경련하는 시간이었다. P선생의 사생아인 M의 연이이었던 화자는 M으로부터 악몽을 막아준다는 깃털장식을 선물 받았다. 그러나 화자 역시 인간의 도리를 거스르는 상상, 이를테면 헤어진 M을 다시 만나려면 P선생의 장례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다 실제로 P선생의 장례 소식이 전해지고, 그 장례식장에서 화자는 P선생과 그 여인 그리고 M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입밖으로 확인하고는 그런 것 따위를, 누군가의 악몽 따위를 서슴없이 전하고 믿는 부끄러운 인생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 밤, 화자는 생이 통째로 멈출 길 없이, 덜커덕 달리고 있어 사람은 통증을 잊기 위해 꿈속으로 들어가고 참회를 하지만 그 역시 잠꼬대에 불과하며 생은 영원히 반복되는 또 하나의 밤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모두 밤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밤은 깊어가도 끝나는 대신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그 밤을 빗겨가는 길은 꿈이지만 꿈에서의 생애는 잠꼬대. 그러니 살아있는, 살아가는 태도는 악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이 든 교수의 아이를 가진 미혼모가 된 여자가 보리밥을 욱여넣어 삼키고는 방귀를 뿡뿡 뀌는 우악스러운 몰골일이지라도, 이미 태어나 시작된 존재의 방식을 부정하지 못하고 살아낸다. 고고한 교수가 온갖 오물보다 더한 루머와 오명 속을 악몽을 꾸듯 거닐어도 그만의 존재 방식으로 살아간다. 


 별난 능력도 없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 그냥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도 오늘 현실 속에서 밤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미 시작된 생애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윤처럼 자신도 모진 일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역시 모진 일을 행했을지라도, 미라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더듬어 꿰어 맞추는 쓸쓸하고 혼란스러운 말년일지라도, 두 번의 이혼 끝에 실패자(본인 기분으로는 쓰레기)가 된 기분으로 아들의 눈물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아빠(<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의 주인공)일지라도 그냥 거기 살아있음으로 해서 존재한다. 그 안에서 꿈을 꾸거나, 고요한 비밀에서 가만히 빗겨 있는 채로 생이 평탄하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특별한 쓸쓸함을 마주하는 시공인 밤. 밤은 때로 고통으로 때로 위로하며 이들을 덮는다. 그래서 때로 영화 주인공 같은 순간을 보내기도 하고(델마 할머니), 슈퍼히어로가 되기도 하면서 생은 통째로 덜커덕 달리는 것이다.

 

 사람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심지어 그 자신에 대한 것조차도 다 알지 못한 채로 생애를 살아간다. 그 사이에서 사람이 겪는 혼란과 갈증, 끝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불만들은 그 자신이 유별나게 문제적 사람이기 때문이라거나 어딘가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사람이란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겪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한계이자 짐인 것 아닐까. 


 사람이 겪는 이 한계와 짐 그러니까 밤 같은 인생의 어려움을 소설로 그려낸 저자는 위로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말하자면 ‘인생 다 그래요. 그 생애는 그 개체만의 것, 아주 사소하고 별거 없지만 이미 시작된 것이고 나 자신에게만은 사소하지 않아요.’라는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으로. 
 언젠가 이 쓸쓸하고 달콤한, 특별한 쓸쓸함을 지금보다 더 깊이 느끼게 되는 나이에 나는 내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을 반추하기 위하여 혹은 다가올 밤을 지낼 소박한 용기를 얻기 위하여 이 단편집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세상에는 분명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개체마다 다르게 시작되는 운명의 차원이나 상처의 방식도 아니라고.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더럽고, 냄새나고, 그저 꿀떡꿀떡 삼켜야 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자는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다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그것은 오직 그들이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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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든 눈물 참은 눈물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승우 지음, 서재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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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저자가 쓴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의 작가의 말을 읽을 때, 나는 굉장히 지쳐 있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업무는 몇 개월짜리 마라톤을 100미터 경주하듯 달려야 했던 건이었다. 9월 중순에 비로소 그 건을 마무리 짓고 나니 나는 숯도 안남은 장작개비가 되어 있었다. 머리 꼭지까지 피로가 차서 도저히 움직일 기운도 없고 그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지경에서 이 책을 편 것은 순전히 책 표지 때문이었다. 짙푸른색 이파리들의 향연이 이유 모를 힐링을 선사해주어서? 아니, 손가락 같은 이파리들을 나부끼며 잎줄기들이 저들끼리 얽혀 있는 모양이 어딘가 깊은 피로를 웅변하고 있는 듯해서였다. 과부 마음 알아주는 홀아비를 기대하며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는 내 기대에 부응하기 전에 먼저 카프카와 톨스토이를 건넸다.

 

‘카프카는 질문을 통해 대답하고, 톨스토이는 대답을 통해 질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카프카는 대답하기 위해 질문하고, 톨스토이는 질문하기 위해 대답했다고 할까요. 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소설에서 질문과 대답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첨예하고 지겨운 의문은 언제나 단 하나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의 일은 항상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나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갈등이 이 의문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답은 이미 네 안에 있다’고 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존재다. 진짜를 알고 있어도 그 진짜가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이상 내면의 소리에 제아무리 귀기울여봤자다. 연기하는 나와 그 연기조차 연기가 아닌 것처럼 감추려는 나. 그런 기묘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내가 찾은 답, 적어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거다. 도구적 인간, 사회적 인간 등등 호모 무슨무슨투스 중에 가장 앞서는 건 ‘속이는 인간’이라는 것.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27개의 짧은 소설을 함께 엮은 책이다. 소설의 길이도 저마다 다르고 주인공도 다 다르다. 하지만 구슬을 엮듯 각양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주제가 있다. 나는 이 책이 ‘속이는 인간’에 대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영화배우 역시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케이는 쉽게 알아차렸다. 그는 일부러 눈물을 만들어야 했고(왜냐하면 사죄의 뜻을 극적으로 표현해야 했으니까) 그것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또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던 (참는 것은 흐르는 것을 전제한다. 흘린 자만이 참을 수 있다)것이다. 그리고 곧 자기가 정말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억지로 눈물을 만들려고 한 것인지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어졌을 것이다. 억지로 만들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애써 참으려 한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연에 반하여 연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연기에 제대로 속고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자신이라는 사실은 아마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케이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랬으니까.

22쪽 [ 만든 눈물 참은 눈물 ]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가 가지고 있는 어휘가 부족해서기도 하고, 언어가 본래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뻔한 이유 말고 무언가 다른, 보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이를테면 그는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말하려고 하는 주체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말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틴다는 식의 상상을 했다. 바꿔 말하면 주체는 어떤 말을 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말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 감정 상태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식이었다. 혹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고 할까.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51쪽 [말하려 한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거리]

 

 

대여점 직원은 소득이 좋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놈들 덕분에” 하며 개들을 가리켰다. 다음에는 다리 저는 놈을 한번 이용해보라고 직원이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놈들이면 충분해요. 지나치면 탈 나요. 애들도 너무 매가리 없게 하지는 말고.” 직원은 감탄사를 토해내는 입 모양을 하고 그를 보았다. “내일은 안 나오지요?” 그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토요일이니까.” 직원은 “그럼 월요일에 봐요”하고 인사했다. 그는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에 오겠다고 대답했다. 직원이 왜요? 하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벽에 걸린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월요일, 근로자의 날이잖아.”

193쪽 [근로자]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던가. 속임수는 그 망각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기술이다. 잊었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고, 내가 지금 바라는 그것이 현실에는 없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있으리라고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속임수는 오직 인간만이 사용하는 기술이다. 흥미로운 건 이 속임수를 인간이 인지하고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게 속임수를 쓰는 순간에조차 그는 그런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 저자는 우리 삶에 수많은 조각으로, 일상의 담배 연기처럼 떠다니는 이 불쾌감을 포착해 27개의 이야기로 그려냈다.

[네 몸과 같이], [집 이야기], [낯설지 않습니다] 등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간 인간에게 느꼈던 불쾌감과 불편함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를 비로소 알았다. 동시에 안심했다. 그것을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느꼈던 내가 이상하거나 틀린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그 어떤 문장보다 나에게 큰 힐링이 되었다.

저자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부자연스럽고’ ‘의도적인’ 인간의 삶 특히 바로 지금 한국사회에 상존하는 그 모습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평소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느낀 나 같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위로를 준다. 말과 정서가 함께 건너오는 구전은 버림받고 정보만이 전이되는 인터넷을 선택한 이 시대의 문명이 정말 편리하고 편안하기 만한가? 사람보다 반려동물이 더 큰 동정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공기보다 더 많은 말을 쓰면서 우리는 왜 먹지 않는 것과 굶는 것의 차이에 이토록 둔감한가?

저자는 서두에서 분명하게 카프카와 톨스토이까지 언급하며, 질문하기 위해 대답하거나 대답하기 위해 질문한다고 했다. 이 책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저자의 목적은 분명히 성공했다. 소설은 때론 답을, 때론 질문을 번갈아 던지지만 소설 자체는 질문도 답도 아니다. 그저 짧은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2018년의 대한민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의도는 분명 위로가 아니었음이 분명한데 나는 위로라고 느낀다. 깨달음은 어깨를 토닥이며 대접 받는 따듯한 밥 한 끼보다 더 강렬한 위로다. 나는 이승우 작가의 책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 이 책이 준 위로가 너무나 강렬하여 아마 또 다른 위로를, 또 다른 질문을 받고 또 다른 대답을 읽기 위하여 저자의 다른 책을 탐독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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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사람이 말하면 사고 싶을까? - 끄덕이고, 빠져들고, 사게 만드는 9가지 ‘말’의 기술
장문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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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일즈나 마케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직종에서 일한다. 아, 이렇게 쓰고 나서 보니 또 저렇게 무 자르듯 아무 관련 없는 직종은 또 아닐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말이라는 걸 다루는 업이다보니 어떻게든 저떻게든 서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든다. 뭐, 말이 좀 길었는데. 내가 저 첫 문장을 쓴 이유는 사실 이 책은 내 관심 분야도 나와의 관련 업종도 전혀 아니었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서다.

 

 장문정 저자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이 책을 골랐다. 저자에 대한 정보도, 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전혀 모르고 순전히 [왜 그 사람이 말하면 사고 싶을까?]라는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홈쇼핑을 보다보면 정말 저 말을 실감한다. 똑같은 갈비 세트를 파는데 저 채널에서 파는 건 사고 싶고 이 채널에서 파는 건 별로 구매욕이 생기질 않는다. 왜? 언제나 소비자의 입장이었을 뿐인 나는 이 ‘왜?’를 순간적인 의문으로만 남겨두었다. 이 ‘왜?’를 분석하고 파고들고 물고 늘어져서 대체 ‘왜 그 사람이 말하면 사고 싶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 좀더 솔직해지자. 나는 책 제목에서부터 이미 저자의 말을 반 이상 구입한 상태의 마음이었다. 이미 마음이 그렇게 기운 상태로 이 책을 읽었으니 그 결과야 오죽하랴. 나는 꼭지마다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와 경험담을 생생하게 그리고 치밀하고 명석하게 배열하여 나에게 보여주는 저자의 말에 완전히 넘어갔다.

 

 [왜 그 사람이 말하면 사고 싶을까?]는 마케팅 도서로 분류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을 마케팅에 대한 책으로만 읽기엔 너무 아깝다. 이 책은 팔리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솔깃해하고 주목하고 마음을 주고 급기야 완전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말에 대한 책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구입할 때 돈을 지불한다. 그래서 돈을 움직이는 기술, 지갑을 열게 하는 감성 등등에 마케팅의 역점을 둔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소비의 과정을 실어나르는 것은 말이다. 소비가 시작되게 하는 것도, 소비가 끝나고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게 하는 것도, 멈췄던 소비조차도 다시 흐르게 만드는 것이 말이다. 그 강력한 말이라는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내 상품을, 내가 가진 것을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팔 수 있는가? 이 책의 기저에 꾸준히 흐르고 있는 이 질문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이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제시하는 저자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어쨌건, 결론은 이 책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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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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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몇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내다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집을 두고는 짐이 정리되지 않았다. 짐과 집은 나의 삶을 한자리에 묶어놓는 닻이었고,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중력이었다. 그런 것을 ‘삶의 중심’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삶에서는 가족이나 직장이 할 법한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중심을 ‘나’로 정했기 때문에 또 다른 중력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8쪽

 

 나는 가난뱅이다. 내 통장은 내일을 살지 않는다. 나와 내 통장은 둘이 한 몸이 되어 그저 오늘만 산다.
 그런 나에게 소비란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건 공기를 마시는 일이다. 자작나무 숲으로 여행을 갔던 날, 가슴을 활짝 열고 폐에 꾹꾹 눌러 담을 것처럼 그 맑은 기운을 들이마시는 일 같기도 하고 고깃집에서 나와 옷에 배인 음식점 냄새를 진저리를 치며 맡는 일 같기도 하다. 때로는 내 앞서 걸어가며 담배를 피운 예의 없는 자식이 내뿜은 담배연기를 어쩔 수 없이 들이마시는 일 같기도 하고, 피로에 절은 늦은 밤에 마음을 위로해주는 달빛 젖은 밤공기를 마시는 일 같기도 하다. 


 할 때의 기분은 각양각색이지만 하고 나서의 일은 대부분 동일하다. 물건이 남겨진다. 들숨 후에 날숨이 이어지듯 돈을 지불하면 물건이 수중에 들어온다. 소비는 굉장히 복잡하고 예민하고 복합적인 것이지만 그 결과는 항상 단순하고 명료하다.

 날숨을 다 비우면 들숨이 다시 필요하다. 바지가 한 벌 있다고 다른 바지 안 사냐. 모든 인간들은 호흡을 하듯이 물건을 사들인다. 자꾸 자꾸 물건을 사들여서 쌓아둔다. 들숨이 제대로 되려면 날숨 그러니까 비우기가 잘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의 소비는 실상 비우기에는 거의 젬병이다. 한없는 들숨, 들숨, 들숨. 그러다보니 내 수중에 들어와 있던 물건들과 내가 위치를 바꾸는 일이 자연스레 벌어진다. 주객이 전도된다고 내가 물건의 주인이 아니라 물건이 나의 주인이 되고 마는 것.  


 이숙명 작가가 그의 에세이에서 ‘짐과 집이 나의 삶을 묶어놓는 닻이었고,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중력’이라고 이야기한 건 바로 이런 세태를 이야기한 것 아닐까.
 하지만 저자가 이내 자기 삶의 중심을 그 자신으로 정했다고 했듯 나 역시 내 삶의 중심과 주인을 통장이나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이라고 정했기에 다른 중력들은 거추장스럽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훌훌 털어버리고 정리하고 비우는 게 답이다.

 [사물의 중력]은 이숙명 작가가 그를 묶어두는 그의 사물의 중력을 어떻게 털어버렸는지를 담은 기록이다. 작가 생애의 첫 소유라고 부를만한 물건이었던 애착인형, 자취 인생의 표상으로 삼을 만한 손톱깎기, 가난뱅이여도 가질만한 물건인 명품백이나 명품의자,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요긴한 밥솥. 그는 끊임없이 물건을 소유했다가 정리했다가 다시 소유했다가 또 다시 정리해버리곤 한다. 저자의 사물기를 읽노라면 모든 인간의 인생 플로우가 이와 같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 재미있다. 타인의 취향, 생활기, 그 물건들의 서사를 읽는 게 뭐 그리 재미있겠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저자와 내가 소비와 소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삶이 자세가 비슷해서인가.

 

 

 취향 없는 사람의 눈에는 이 세계가 포화 상태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한다. 더 새로운 것, 더 멋진 것, 더 편리한 것을 갖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고는 폭탄 돌리기하듯 서로에게 짐을 떠넘긴다. 어쩌면 우리는 그걸로 공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공허감이든 허영심이든 불안함이든 뭐든, 채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141쪽

 

 

 물건이든 집이든 뭐든, 쓰임에 맞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편한 운동화를 사려고 해서 운동화를 샀으면 편하면 그뿐이다. 거기에 더 얹어, 내가 소유하지 않은 디자인을 또 하나 장만해야겠다든가 더 유명한 브랜드의 신상을 사겠다고 덤비는 타입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게 좋다. 지금 짊어지고 사는 것만으로도 내 작은 방은 이미 꽉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에게 배웠다. 하나를 버리기 전엔 하나를 사지 않는다. 사면서 버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버려 놓고 사러 간다.

 위의 인용구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공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은 아주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 머리말부터 저자에게 깊은 공감을 보내며 단번에 에피소드 전체를 읽게 될 것이다.
 아, 진짜. 더 버리고 싶다. 사물의 중력이 더 이상 나를 무겁게 묶지 못하도록 더 가볍게. 
 

취향 없는 사람의 눈에는 이 세계가 포화 상태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한다. 더 새로운 것, 더 멋진 것, 더 편리한 것을 갖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고는 폭탄 돌리기하듯 서로에게 짐을 떠넘긴다. 어쩌면 우리는 그걸로 공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공허감이든 허영심이든 불안함이든 뭐든, 채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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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발견 - 이근철의 고품격 컬처 수다
이근철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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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워낙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 채널을 돌리다 이 프로그램의 재방송이라도 보게 되면 바로 리모컨을 내려놓고 방송에 빠져들곤 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온 아재 3인방의 한국체험기를 방영 중인데 생소한 한국문화에 온몸을 맡기기를 마다않는 이 아저씨들의 마인드가 매우 인상적이다. 로버트였나?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인터뷰를 했더랬다. 한국에 와서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한국에 왔으면 한국문화를 배우고 가고 싶다고. 그런 그들은 아침식사조차 미국식으로 먹고 싶지 않다며 한국의 로컬 푸드를 찾아 거리를 누빈다. 호텔 직원이 자주 간다는 근처 식당을 소개 받은 그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현지 음식을 주문하곤 그 음식이 나오자 맛있다는 감탄을 연발하며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게, 바로 그 전날 김치박물관에서 김치를 담그고 왔던 그들이 그 배운 풍월을 그대로 살려 오이소박이니 파김치를 음미하며 김치 양념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장면이다. 김치가 생소한 외국인들이 한국식 밥상에 오르는 다양한 김치를 단번에 즐기기는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걸 당연한 듯 씹고 맛보고 즐기는 미국 아재 3인방을 보며 여행도 문화도 배운 만큼 만끽하게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김치박물관에서의 경험은 미국 아재들이 한국식 밥상을 보다 풍부하고 거침없이 느끼게 하는, 한국 식문화의 저 밑바닥까지 단번에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치트키가 아니었을까.
 이근철 선생이 쓴 [교양의 발견]은 타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저런 김치박물관 같은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고품격 컬처 수다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이 책은 19개 나라의 문화를 보다 쉽게, 보다 깊게 이해하고 맛보고 즐기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치트키의 역할을 한다.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도전이 수반된다. 하지만 여행 한 번 가자고 백과사전 펴놓고 공부하는 건 어딘가 좀 미련한 일이다. 때문에 여행서적이나 각종 문화, 역사 서적들은 가볍게 여행을 다녀오는 김에 그 나라를 좀더 이해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이드를 제공한다. [교양의 발견]은 그 가이드에 스토리텔링을 더했다. 이렇게 스토리를 더한 각 나라의 문화이야기는 독자에게는 문자 그대로 ‘교양’이 된다. 
 


 나는 교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무슨 허풍이나 있는 척으로서의 교양이 아니라, 지식으로서의 교양이라는 안경은 내가 더 높고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김치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한국식 밥상을 대하는 여행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거꾸로 나 역시, 타국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고 그 나라의 식탁을 접한다면, 그 식탁의 요모조모가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나 맛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교양의 발견]은 읽는 보람과 재미가 함께 있는 책이다. 교양 교과서라고 부를 만한 알찬 내용도 좋고 영어 문장이나 키포인트 기재 등 깨알 같은 팁들이 곳곳에 있어 한 장, 한 장 읽는 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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