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눈물 참은 눈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승우 지음, 서재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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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저자가 쓴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의 작가의 말을 읽을 때, 나는 굉장히 지쳐 있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업무는 몇 개월짜리 마라톤을 100미터 경주하듯 달려야 했던 건이었다. 9월 중순에 비로소 그 건을 마무리 짓고 나니 나는 숯도 안남은 장작개비가 되어 있었다. 머리 꼭지까지 피로가 차서 도저히 움직일 기운도 없고 그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지경에서 이 책을 편 것은 순전히 책 표지 때문이었다. 짙푸른색 이파리들의 향연이 이유 모를 힐링을 선사해주어서? 아니, 손가락 같은 이파리들을 나부끼며 잎줄기들이 저들끼리 얽혀 있는 모양이 어딘가 깊은 피로를 웅변하고 있는 듯해서였다. 과부 마음 알아주는 홀아비를 기대하며 작가의 말을 읽는데, 작가는 내 기대에 부응하기 전에 먼저 카프카와 톨스토이를 건넸다.

 

카프카는 질문을 통해 대답하고, 톨스토이는 대답을 통해 질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카프카는 대답하기 위해 질문하고, 톨스토이는 질문하기 위해 대답했다고 할까요. 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소설에서 질문과 대답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첨예하고 지겨운 의문은 언제나 단 하나다. ‘인간은 무엇인가?’ 나의 일은 항상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나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갈등이 이 의문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답은 이미 네 안에 있다고 하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는 존재다. 진짜를 알고 있어도 그 진짜가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 이상 내면의 소리에 제아무리 귀기울여봤자다. 연기하는 나와 그 연기조차 연기가 아닌 것처럼 감추려는 나. 그런 기묘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내가 찾은 답, 적어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거다. 도구적 인간, 사회적 인간 등등 호모 무슨무슨투스 중에 가장 앞서는 건 속이는 인간이라는 것.

 

[만든 눈물 참은 눈물]27개의 짧은 소설을 함께 엮은 책이다. 소설의 길이도 저마다 다르고 주인공도 다 다르다. 하지만 구슬을 엮듯 각양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주제가 있다. 나는 이 책이 속이는 인간에 대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영화배우 역시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케이는 쉽게 알아차렸다. 그는 일부러 눈물을 만들어야 했고(왜냐하면 사죄의 뜻을 극적으로 표현해야 했으니까) 그것이 성공하자 이번에는 또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했던 (참는 것은 흐르는 것을 전제한다. 흘린 자만이 참을 수 있다)것이다. 그리고 곧 자기가 정말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억지로 눈물을 만들려고 한 것인지 애써 눈물을 참으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어졌을 것이다. 억지로 만들려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애써 참으려 한 것 같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연에 반하여 연기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연기에 제대로 속고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자신이라는 사실은 아마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케이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랬으니까.

22[ 만든 눈물 참은 눈물 ]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말하려고 하는 것 그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가 가지고 있는 어휘가 부족해서기도 하고, 언어가 본래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뻔한 이유 말고 무언가 다른, 보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이를테면 그는 자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말하려고 하는 주체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말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틴다는 식의 상상을 했다. 바꿔 말하면 주체는 어떤 말을 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말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 감정 상태에서 혼란을 겪는다는 식이었다. 혹은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려고 한다고 할까.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51[말하려 한 것과 말해진 것 사이의 거리]

 

 

대여점 직원은 소득이 좋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놈들 덕분에하며 개들을 가리켰다. 다음에는 다리 저는 놈을 한번 이용해보라고 직원이 권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놈들이면 충분해요. 지나치면 탈 나요. 애들도 너무 매가리 없게 하지는 말고.” 직원은 감탄사를 토해내는 입 모양을 하고 그를 보았다. “내일은 안 나오지요?” 그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토요일이니까.” 직원은 그럼 월요일에 봐요하고 인사했다. 그는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에 오겠다고 대답했다. 직원이 왜요? 하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벽에 걸린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월요일, 근로자의 날이잖아.”

193[근로자]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던가. 속임수는 그 망각을 포함하는 보다 포괄적인 기술이다. 잊었다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고, 내가 지금 바라는 그것이 현실에는 없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있으리라고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속임수는 오직 인간만이 사용하는 기술이다. 흥미로운 건 이 속임수를 인간이 인지하고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게 속임수를 쓰는 순간에조차 그는 그런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이 부자연스러운 상황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 저자는 우리 삶에 수많은 조각으로, 일상의 담배 연기처럼 떠다니는 이 불쾌감을 포착해 27개의 이야기로 그려냈다.

[네 몸과 같이], [집 이야기], [낯설지 않습니다] 등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간 인간에게 느꼈던 불쾌감과 불편함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를 비로소 알았다. 동시에 안심했다. 그것을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느꼈던 내가 이상하거나 틀린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그 어떤 문장보다 나에게 큰 힐링이 되었다.

저자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부자연스럽고’ ‘의도적인인간의 삶 특히 바로 지금 한국사회에 상존하는 그 모습들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평소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느낀 나 같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위로를 준다. 말과 정서가 함께 건너오는 구전은 버림받고 정보만이 전이되는 인터넷을 선택한 이 시대의 문명이 정말 편리하고 편안하기 만한가? 사람보다 반려동물이 더 큰 동정을 받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공기보다 더 많은 말을 쓰면서 우리는 왜 먹지 않는 것과 굶는 것의 차이에 이토록 둔감한가?

저자는 서두에서 분명하게 카프카와 톨스토이까지 언급하며, 질문하기 위해 대답하거나 대답하기 위해 질문한다고 했다. 이 책의 의도가 그러하다면 저자의 목적은 분명히 성공했다. 소설은 때론 답을, 때론 질문을 번갈아 던지지만 소설 자체는 질문도 답도 아니다. 그저 짧은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2018년의 대한민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

저자의 의도는 분명 위로가 아니었음이 분명한데 나는 위로라고 느낀다. 깨달음은 어깨를 토닥이며 대접 받는 따듯한 밥 한 끼보다 더 강렬한 위로다. 나는 이승우 작가의 책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 이 책이 준 위로가 너무나 강렬하여 아마 또 다른 위로를, 또 다른 질문을 받고 또 다른 대답을 읽기 위하여 저자의 다른 책을 탐독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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