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미래보고서 2020 - 세계적인 미래연구기구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2020 대전망!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이희령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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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에 유엔의 새천년 미래예측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8년 만에, 1996년에 글로벌 미래를 연구하는 싱크탱크 NGO가 유엔 산하에 창립되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유엔을 비롯해 유엔 산하의 각 연구기관 및 EU, OECD 등 다양한 국제기구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문제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전 세계에 66개 지부를 두고 있고 각 분야 4,500여 명의 정부인사, 기업인, 전문가 등을 이사로 두고 지구촌을 위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기회와 위기 등을 분석하며 미래사회 경영에 힘쓰고 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한국지부는 (사)유엔미래포럼이다.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한국지부 대표와 본부의 대표가 함께 지은 이 책 [세계미래보고서2020]은 2020년을 지나 향후 세계에 변화를 불러올 중요한 기술들과 그 영향에 대한 보고서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인공지능, DNA 시퀀싱 및 유전자 편집가위, 로봇공학의 확산, 태양광 및 재생에너지의 비용 감소, 비즈니스 및 금융 환경을 뒤집는 블록체인과 암호 화폐의 성장 등 다섯 가지를 2020~2030년을 관통하는 플랫폼 기술로 꼽았다. 이 책은 이 다섯 가지 기술의 발전 현황과 이 기술에 연결된 산업들에 대한 전망 그리고 이것들이 불러올 사회적 변화를 짚어 본다. 


 당장 몇 달 밖에 남지 않는 2020년에 일어날, 우리 눈 앞에 다가온 변화는 무엇일까? 단연 자율주행과 초고속 모바일 네트워크 5G로 인한 일상의 변화다. 책은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코앞으로 다가온 변화를 짚어보고 블록체인으로부터 바이오기술까지를 6개 장에 걸쳐 살펴본다. 마지막 7장에서는 도전과제로 남은 이슈들을 살펴보며 책을 마친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박영숙 대표의 서문이 흥미롭다.

 

 

 2020년을 앞둔 지금, 우리의 삶은 20년 전이나 10년 전과는 상당히 다르다. 기술의 발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노라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두려움은 대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온다고 한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래를 공부하는 것, 지금 어떤 기술이 나타나고 그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전망하며 불확실성을 없애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래를 잘 이해하고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책 16쪽 
 


 그렇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발원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앎이다. 저자는 이 책이 두려움을 없앨 뿐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책을 펴냈다. 아마 저자의 서문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다만, 여러 기술의 발전과 상용화로 점철된 미래가 모든 이에게 꽃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해도 내가 그런 의학의 혜택을 입을 정도로 지불할 돈이 없으면 말짱 헛것이 된다. 기술은 빈부격차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리라는 기대도 시기상조다. 민주주의의 확산, 성차별의 완화, 교육의 확대 등 역시 보장받을 순 없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지구촌 전 인류의 안녕한 생활을 위하여 정말 필요한 건 뭘까? 이 책을 읽으며 폭발하는 기술의 바람 속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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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ㅣ 소소의책 역사교양서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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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학자로 유명한 브라이언 페이건이 쓴 이 책 [고고학의 역사]는 고고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1800년대부터 폭발적인 확장세를 타기 시작한 고고학은 초반에는 도굴과 거의 비슷한 선상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유적들을 발굴하여 발표하면 순식간에 부와 명성까지 얻을 수 있었던 그 때에는 인류의 흔적을 발견해서 우리 모두의 자취를 밝혀보겠다는 목적보다 돈이 되고 명예를 떨쳐 보겠다는 욕심이 앞서는 때였다.
 
 인류의 아주 오래전을 추적해보겠다는 열망이 있는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옛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려면 어떻게든 발굴을 해야 했다. 이 발굴의 과정은 파괴적이다. 파헤치고 움직이고 흔들어보는 동안 세월의 흐름 속에서 명백히 자기 존재를 지켜온 이 유적들은 파괴당하기 일쑤다. 최근에는 발굴 기법이나 전략이 고도로 섬세해져서 유적이 손실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200년 동안 고고학은 엄청나게 발달해온 것이다.

 [고고학의 역사]는 고고학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변혁의 길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40개의 챕터를 통하여 저자는 동굴의 벽화부터 시작하여 피라미드, 스톤헨지, 얼음 속에서 발견된 냉동인간 등 그간 발견되어온 획기적인 유적과 유물들을 나열하고 그 발견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을 설명한다. 그리고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의미와 사회적 역할까지를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고고학’이라는 학문에 대하여 떠올릴 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은 화석이나 석기시대의 뗀석기 같은 원시인류의 도구 아니면 동굴 벽에 그려진 소나 사슴 그림 따위들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인디아나 존스 정도?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한다. 고고학은 인류의 생활과 항상 함께 해왔고, 고고학이란 인류 삶에 대한 것이라고. 유물 전시에만 집중되어 고고학의 가치가 흐려진 이 시점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간절하다.


 다만 도구 전시는 여전히 고고학이 지닌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저 인간 행위의 비인간적인 상징으로서 유물만 있었다. 관람객은 유물이란 언젠가 살았던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한 것임을 종종 잊어버린다. 고고학은 이렇게 유물과 사람의 연결 고리를 잃고 있다.
책 106쪽


보통 사람들에게 보다 쉬운 그리고 보다 본질에 가까운 고고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책은 다소 두껍다. 하지만 재미있고 흥미롭다. 이 책을 읽어볼 만한 이유에 대하여, 이 책을 번역한 역자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며 마무리 한다.

 고고학은 과거 인간 행위의 물적 잔재를 연구대상으로 삼지만, 유적과 유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과거 인간 행위와 문화, 그리고 역사의 전개를 알아내기 우해서는 상당한 이론적 정교함과 방법론적 엄격함이 필요한 것이다.
책 3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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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문제 - 1천만 채의 충격
마키노 토모히로 지음, 김현진 옮김 / 월페이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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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현재 고민하고 있는 사회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은 중요하다. 일본에서 대두된 사회 문제들이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왕따, 비혼, 고령화 등 일본과 우리나라는 유사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본이 직면한 문제들이 종종 우리나라에도 일어나는 까닭에, 일본의 고민거리를 참고하면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문제들을 예방 혹은 일어난 후에 해결하는 데에 어느 정도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다. 이번엔 부동산이다.

 

 일본의 빈집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거론되어 왔던 중요한 사안이다. 인구감소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의 현 세대들이 부동산에 대하여 갖는 인식도 바뀌었다. 이전에 부동산은 부의 원천이었지만 이제 일본인들에게 부동산은 애물단지다. 특히 집이 그렇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더 이상 교외의 집에는 살 사람이 없다. 아무리 임대료를 싸게 내놓아도 집에 들어와 살겠다는 인구 자체가 없다. 이렇게 돈도 안 되는 부동산의 상속세는 만만치 않다. 상속세와 관리가 부담스러운 자녀 세대들은 부모의 부동산을 기피한다. 


 이런 문제는 더 이상 교외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빈집문제 1천만 채의 충격] 보고서를 쓴 저자는 여러 지표와 그래프, 객관적 현상들을 증거로 일본의 빈집 문제는 수도권을 덮친 상태이며 이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도시라해도 안전하지 않음을 전망한다.

 

 

 임대 주택의 공실이 지방만의 문제인지 묻는다면, 3대 도시권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오사카는 심각한 상황으로 공실 비율이 20%에 달하고 있다. 오사카가 특히 심각하다는 점은 수도권 이상으로 고령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오사카의 인구는 약 1,800만 명이다. 이에 비교해 고령자 인구는 485만 명. 고령자 비율은 이미 26.9%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2020년에는 이 비율은 29.1%, 2050년에는 40%에 달할 것이다.
책 41쪽

 

 빈집문제에서 가장 치명적인 점은 이것을 해결할만한 획기적인 방안 자체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인구감소가 회복되어야 빈집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텐데 문제는 인구감소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향후, 일본이 인구정책을 근본부터 바꾸고, 대량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등의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국내정책만으로는 인구를 유지하고 증가시킬 만큼 일본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지금에 와서 출산을 장려하고, 육아시설을 정비하고, 육아를 위한 각종 지원제도를 확충한다 해도, 실제로는 출산이 가능한 여성 인구 자체가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책 16-17쪽

 

 물론 이 책 [빈집문제 1천만 채의 충격] 후반부에서 저자는 여러 솔루션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것의 실효성은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점은 단연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다. 우리나라 역시 인구와 가임기여성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니 일본의 저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야말로 부동산 불패 신화가 지배하는 사회 아닌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참 마음도 머리도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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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그림 - 대충 그럴싸하게 그리는 야매스케치
강수연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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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미술을 공부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어릴 때 우리집에는 이런 저런 미술실기 책이 꽤 많았다. 엄마는 나에게 캐리커처 그리는 법 등의 책을 사주기도 하셨다. 나는 엄마를 따라서 연필로 연습도 해보거나 뭐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백하건데 나는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지 좋아하지만 단, 그리는 일 만큼은 별로다. 이건 어릴 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발견한 몇 가지 확실한 것들 중 하나였다. ‘너는 참 그림을 못 그리는구나.’

 

 엄마와는 정 반대로 그림에는 똥손을 가진 내가,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집에 있는 온갖 미술책들은 고스란히 유물이 되었다. 어디 창고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고물상에 팔아버렸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나의 책장에 새로운 책 하나를 들였다. [오늘부터 그림] 이라고.

 살면서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내가? 왜? 그림에는 똥손인데.’라는 워낙에 기정사실이 있거니와, 딱히 그림으로 뭔가를 해야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다이어리니 메모장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낙서도 아닌 그림도 아닌,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저 볼펜자국들은 뭐죠?;;;;

 

 그림을 딱히 잘 그리고 싶진 않지만, 적당히 어느 정도, 내가 즐거울 정도로 혹은 필요할 정도로만 그림을 제법 그릴 줄 알면 얼마나 좋겠나. 그림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림이야 못 그려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비주얼 시대에 그림으로 내 생각이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살면서 내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잡기 하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그림을 그려보자. 아주 쌩초보니까 초보답게, 적당히 내가 즐거울 만큼만 해보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무조건 추천한다.

 일단 교과서가 아니다. 가이드도 아니다. 이 책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덧 인생의 유용한 기술로 ‘그림그리기’라는 걸 장착하게 된 저자의 경험담 같은 책이다. ‘나는 이렇게 그렸더니 쉽더라고. 그대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라는 정도다. 그래서 아주 가볍고 부담없이 그림 그리기를 시도하도록 이끈다. 


 가벼운 그림 그리기 시도를 하게 만드는, 이 책이 훌륭한 점은 어쨌거나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는 점을 잘 설명한다는 거다. 그림이든 글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집을 짓든, 인생을 짓든 어디든 안 중요하겠나. 그림의 기초는 선 그리기인데, 저자는 이 선 그리기가 연습이 아니라 게임 비슷한 게 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유도한다. 그리고 말한다. 중요하니까 이걸로 손 풀어보라고.

 

 이 책 한 권으로 한 달 정도 뒤에 나 역시 카톡에 스티커를 출시하게 됐다거나 그런 꿈은 없다. 그런 원대한 꿈 따위는 ‘가벼운 시도’에는 금물. 그냥 나 역시 4컷 만화나 내가 손수 그린 축하 엽서 같은 걸 해보며 좋겠다고만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온대로 슬금슬금 펜질을 하다보면 언젠가 내 손으로 그린 아담한 엽서 같은 걸로 선물을 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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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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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주인공은 해원이다. 지방에서 홀로 상경한 30대 싱글 여성의 서울살이는 녹록치 않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던 해원은 고단한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인 북현리로 내려왔다. 고향에 돌아온 해원은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동갑내기 은섭과 만난다. 학창시절 이후 한번도 서로를 보지 못했던 둘의 해후는 뜻밖의 로맨스로 발전하고, 은섭의 책방 ‘굿나잇책방’을 중심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북현리 사람들, 명여 이모의 펜션 가꾸기, 은섭네 큰아버지의 겨울 한정 아이스링크 운영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함께 펼쳐진다.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채 내부에서 곰삭은 상처는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이 소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어린 시절에,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마주해야 했던 해원은 유난히 예민하고 염세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엄마와도, 그녀를 키우다시피 한 명여 이모와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사람을 그리는 게 싫어 인물화를 그리지 않을 정도인 그녀는 자기 그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세상에 솜씨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넘치는데 자기의 꽃 하나 나뭇잎 하나를 더 보탠들 무슨 차이가 있냐고 자문한다. 


 겨울 바람처럼 서늘한 그녀의 마음을 바꾼 것은 이름도 다정한 ‘굿나잇책방’이었다. 더 정확히는 ‘굿나잇책방’을 운영하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은섭이었다고 해야겠다. 은섭은 세상에 대한 환멸로 얼어붙은 해원의 가슴을 배려와 격려로 살금살금 녹이며 결국 해원의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은섭의 성정 이면에도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 위에서 자라 성인이 된 은섭은 거부당하지 않기 위하여 큰 소리 내지 않고 나긋나긋하게 그러나 나그네처럼 떠돌 듯 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반쯤은 체념하듯, 침묵하며 살아온 은섭의 생각을 바꾼 것은 역시 해원이었다.

 

 

 한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중략) 어쩌면 거부당하지 않을 곳.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책 388쪽 - 은섭의 책방 블로그 비공개 글 중에서

 

 

 세상에 많은 책들이 있고 그중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애소설들이 매년 출간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연애소설 중에서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은 분명한 자기의 자리와 공간이 있다. 이 소설이 자기만의 자리에 머물며 이 소설이 확보한 위치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바로 이 메시지에서 나온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격려.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게 타인이다. 나도 나를 다 모르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다 알겠으며 나 역시 어떻게 남의 속을 다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거나 입으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니 상처를 꽁꽁 감추고 싸매어 곪은 채로 살아가지 말자. 그 상처에 매몰되어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달콤한 로맨스 속에 온화한 격려를 담아서 전한다. ‘괜찮아요. 어디든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는 곳이 당신의 자리입니다.’

 

 해원과 은섭 모두 소설 초반에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한 채로 아슬아슬한 30대를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을 읽는 20-30대의 독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직업을 바꿔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걱정하고,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버거운 계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해원과 은섭의 사정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그런 두 주인공이 어쩌다 만나 첫 키스를 하고 다투고 어긋나고 다시 재회하는 과정은 누구나 다 겪는 보통의 로맨스인 동시에, 나의 연애담이 될 수도 있는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평범함의 마력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해원이 어느새 인물화를 다시 그리고, 환멸을 느꼈던 미술계로 돌아가 결국 자기가 직접 쓰고 그린 첫 그림책을 출간하는 결말은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전해준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에 희망을 잃은 해원이 스스로에게 했던 ‘세상에 솜씨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넘치는데 자기의 꽃 하나 나뭇잎 하나를 더 보탠들 무슨 차이가 있냐’는 말을, 나도 내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있다. 세상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데, 나 하나를 더 보탠들 무슨 차이가 있냐고 자문했던 것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 나무의 잎사귀들을 보라.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한 장 한 장의 잎사귀들이 수만 장이 모여 나무가 된다. 모든 잎사귀가 저마다의 자리를 가지고 하나의 공간과 위치에서 자기 몫을 한다. 우리의 생애는 아마 다 저런 거라고, 그래서 특별한 어떤 인물이 되거나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한 노력보다 더 필요한 건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보통의 하루가 아닐까 하고.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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