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주인공은 해원이다. 지방에서 홀로 상경한 30대 싱글 여성의 서울살이는 녹록치 않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던 해원은 고단한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인 북현리로 내려왔다. 고향에 돌아온 해원은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동갑내기 은섭과 만난다. 학창시절 이후 한번도 서로를 보지 못했던 둘의 해후는 뜻밖의 로맨스로 발전하고, 은섭의 책방 ‘굿나잇책방’을 중심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북현리 사람들, 명여 이모의 펜션 가꾸기, 은섭네 큰아버지의 겨울 한정 아이스링크 운영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함께 펼쳐진다.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채 내부에서 곰삭은 상처는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이 소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어린 시절에, 예기치 못한 사건들을 마주해야 했던 해원은 유난히 예민하고 염세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엄마와도, 그녀를 키우다시피 한 명여 이모와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 사람을 그리는 게 싫어 인물화를 그리지 않을 정도인 그녀는 자기 그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세상에 솜씨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넘치는데 자기의 꽃 하나 나뭇잎 하나를 더 보탠들 무슨 차이가 있냐고 자문한다. 


 겨울 바람처럼 서늘한 그녀의 마음을 바꾼 것은 이름도 다정한 ‘굿나잇책방’이었다. 더 정확히는 ‘굿나잇책방’을 운영하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은섭이었다고 해야겠다. 은섭은 세상에 대한 환멸로 얼어붙은 해원의 가슴을 배려와 격려로 살금살금 녹이며 결국 해원의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은섭의 성정 이면에도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 위에서 자라 성인이 된 은섭은 거부당하지 않기 위하여 큰 소리 내지 않고 나긋나긋하게 그러나 나그네처럼 떠돌 듯 생을 살아왔다. 그렇게 반쯤은 체념하듯, 침묵하며 살아온 은섭의 생각을 바꾼 것은 역시 해원이었다.

 

 

 한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중략) 어쩌면 거부당하지 않을 곳.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책 388쪽 - 은섭의 책방 블로그 비공개 글 중에서

 

 

 세상에 많은 책들이 있고 그중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애소설들이 매년 출간된다. 그러나 그 수많은 연애소설 중에서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은 분명한 자기의 자리와 공간이 있다. 이 소설이 자기만의 자리에 머물며 이 소설이 확보한 위치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은 바로 이 메시지에서 나온다.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격려.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에게 타인이다. 나도 나를 다 모르는데, 어떻게 남이 나를 다 알겠으며 나 역시 어떻게 남의 속을 다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거나 입으면서 살아가는 듯하다. 그러니 상처를 꽁꽁 감추고 싸매어 곪은 채로 살아가지 말자. 그 상처에 매몰되어 자기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작가는 달콤한 로맨스 속에 온화한 격려를 담아서 전한다. ‘괜찮아요. 어디든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는 곳이 당신의 자리입니다.’

 

 해원과 은섭 모두 소설 초반에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한 채로 아슬아슬한 30대를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을 읽는 20-30대의 독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직업을 바꿔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걱정하고,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버거운 계절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해원과 은섭의 사정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그런 두 주인공이 어쩌다 만나 첫 키스를 하고 다투고 어긋나고 다시 재회하는 과정은 누구나 다 겪는 보통의 로맨스인 동시에, 나의 연애담이 될 수도 있는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평범함의 마력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해원이 어느새 인물화를 다시 그리고, 환멸을 느꼈던 미술계로 돌아가 결국 자기가 직접 쓰고 그린 첫 그림책을 출간하는 결말은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전해준다.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에 희망을 잃은 해원이 스스로에게 했던 ‘세상에 솜씨 좋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넘치는데 자기의 꽃 하나 나뭇잎 하나를 더 보탠들 무슨 차이가 있냐’는 말을, 나도 내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있다. 세상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데, 나 하나를 더 보탠들 무슨 차이가 있냐고 자문했던 것이다.
 지금은 달라졌다. 붉은 물이 들기 시작한 나무의 잎사귀들을 보라.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한 장 한 장의 잎사귀들이 수만 장이 모여 나무가 된다. 모든 잎사귀가 저마다의 자리를 가지고 하나의 공간과 위치에서 자기 몫을 한다. 우리의 생애는 아마 다 저런 거라고, 그래서 특별한 어떤 인물이 되거나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한 노력보다 더 필요한 건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보통의 하루가 아닐까 하고. 이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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