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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그림 - 대충 그럴싸하게 그리는 야매스케치
강수연 지음 / 생각정거장 / 2019년 10월
평점 :
엄마는 미술을 공부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어릴 때 우리집에는 이런 저런 미술실기 책이 꽤 많았다. 엄마는 나에게 캐리커처 그리는 법 등의 책을 사주기도 하셨다. 나는 엄마를 따라서 연필로 연습도 해보거나 뭐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백하건데 나는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지 좋아하지만 단, 그리는 일 만큼은 별로다. 이건 어릴 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발견한 몇 가지 확실한 것들 중 하나였다. ‘너는 참 그림을 못 그리는구나.’
엄마와는 정 반대로 그림에는 똥손을 가진 내가,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집에 있는 온갖 미술책들은 고스란히 유물이 되었다. 어디 창고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고물상에 팔아버렸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나의 책장에 새로운 책 하나를 들였다. [오늘부터 그림] 이라고.
살면서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내가? 왜? 그림에는 똥손인데.’라는 워낙에 기정사실이 있거니와, 딱히 그림으로 뭔가를 해야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다이어리니 메모장 귀퉁이에 그려져 있는 낙서도 아닌 그림도 아닌,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저 볼펜자국들은 뭐죠?;;;;
그림을 딱히 잘 그리고 싶진 않지만, 적당히 어느 정도, 내가 즐거울 정도로 혹은 필요할 정도로만 그림을 제법 그릴 줄 알면 얼마나 좋겠나. 그림으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그림이야 못 그려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요즘 같은 비주얼 시대에 그림으로 내 생각이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살면서 내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잡기 하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과 같다.
그렇게 ‘그림을 그려보자. 아주 쌩초보니까 초보답게, 적당히 내가 즐거울 만큼만 해보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을 무조건 추천한다.
일단 교과서가 아니다. 가이드도 아니다. 이 책은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어느덧 인생의 유용한 기술로 ‘그림그리기’라는 걸 장착하게 된 저자의 경험담 같은 책이다. ‘나는 이렇게 그렸더니 쉽더라고. 그대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때요?’ 라는 정도다. 그래서 아주 가볍고 부담없이 그림 그리기를 시도하도록 이끈다.
가벼운 그림 그리기 시도를 하게 만드는, 이 책이 훌륭한 점은 어쨌거나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는 점을 잘 설명한다는 거다. 그림이든 글이든 기초가 중요하다. 집을 짓든, 인생을 짓든 어디든 안 중요하겠나. 그림의 기초는 선 그리기인데, 저자는 이 선 그리기가 연습이 아니라 게임 비슷한 게 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유도한다. 그리고 말한다. 중요하니까 이걸로 손 풀어보라고.
이 책 한 권으로 한 달 정도 뒤에 나 역시 카톡에 스티커를 출시하게 됐다거나 그런 꿈은 없다. 그런 원대한 꿈 따위는 ‘가벼운 시도’에는 금물. 그냥 나 역시 4컷 만화나 내가 손수 그린 축하 엽서 같은 걸 해보며 좋겠다고만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온대로 슬금슬금 펜질을 하다보면 언젠가 내 손으로 그린 아담한 엽서 같은 걸로 선물을 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