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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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연애소설 [셰어하우스]

 

‘소유’에 질린 우리들은 이제 '공유'에 눈을 떴다. 에어비앤비, 쏘카 등을 이용해 숙박 공간과 차량을 공유하는 건 물론 옷, 책이나 사무 공간, 취업 정보까지도 함께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1인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미니멀리즘까지 유행하면서 무엇이든 ‘공유’하여 쓰는 게 우리 시대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공유경제라는 단어로 총칭되는 이 세계적인 패러다임 속에는 당연히 셰어하우스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 셰어하우스의 경우 공유의 적정선이 조금 미묘해진다.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차단한 채로 각자의 영역을 꾸려가는 정도의 셰어하우스라면 그들의 관계는 그냥 기숙사를 함께 쓰는 지인 정도가 될 것이다. 한데 단순히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음식을 공유하고 음식을 먹는 기분을 공유하고 음식을 먹은 후에 예정된 나의 계획까지 공유하는 사이라면 이들의 관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셰어하우스]의 주인공 티피는 남자친구의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살다가 그와 헤어지면서 급하게 거주지를 구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런던의 집값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라서(서울의 집값도 못지않다는 점에서 티피의 절박함에 자연스럽게 이입이 된다) 티피는 어떻게든 집값을 줄여보고자 낯선 남자의 셰어하우스로 들어가게 된다. 이 남자, 리언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동생의 변호 비용을 대기 위하여 야근 업무에 추가 업무까지 떠맡아가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온 집의 모든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조건으로 그가 얻게 될 월세는 그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셰어하우스 메이트가 여자라고 했을 때, 애인인 케이가 눈에 쌍심지를 켰음에도 불구하고 티피를 하우스메이트로 들이는 걸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을 학대한 남자친구로부터, 그가 채워놓은 족쇄 같은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트라우마 투성이인채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는 티피와 동생의 구명, 환자 돌보기, 까칠한 여자친구 비위 맞추기에 24시간이 모자란 리언의 동거에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둘은 서로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 케이는 리언이 티피와 직접 이야기하지 않도록 자신이 리언의 대언자가 되어 티피에게 셰어하우스와 관련한 내용들을 전달했다. 티피 역시 리언의 여자친구인 케이에게 연락을 받는 걸 당연히 여겼다. 이 기묘한 동거에 신묘한 감정이 흐르게 만든 것은 얇디얇은 포스트잇이었다.
 베이킹을 잔뜩 해 놓고 포스트잇에 자기가 왜 이렇게 많은 먹거리를 구웠는지 적은 티피. 티피의 메모를 읽으며 티피가 구운 빵을 먹고 그녀에게 답문을 써서 그 옆에 붙여 놓은 리언. 욕실 사용의 디테일에 대해서, 윗집과 아랫집 이웃들에 대해서, 쓰레기를 내놓는 날에 대해서, 침대 밑에서 발견한 손뜨개 목도리들에 대해서, 어느 날 리언의 동생 리치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때의 기분과 감정에 대해서 둘은 포스트잇 메모를 주고받았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순간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잇들을 타고 주고받은 감정은 인연의 끈이 되어 그들 사이를 엮었다. 마치 티피가 열광한 프라이어 씨의 손뜨개 목도리처럼, 촘촘하고 알록달록하게 엮인 티피와 리언은 결국 연인이 되고야 만다. 공유가 이렇게나 대단한 것이다. 기분과 감정의 공유는 서로가 상대의 얼굴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둘을 연인이 되게 하니까. 
 


 프라이어 씨 – 선생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걸 좋아하는지 몰랐어. 워낙 홀로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그게 케이하고 같이 살지 않는 이유 아닌가?
 내 사생활 얘기를 환자들과 나누는 짓을 이제 그만두어야겠다.
 나 - 이건 다른 거예요. 저는 티피를 만나지 않아도 돼요. 우린 그냥 메모를 주고받는 것뿐이라고요. 정말이에요.
 프라이어 씨가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인다.
 프라이어 씨 – 편지의 예술이란 게 있지. 몹시도... 친밀한 행위야. (중략)
 이튿날 밤이 되자 홀리까지 티피에 대해 알고 있었다. 환자의 상당수가 병상을 못 벗어나는 병동들 사이로 별 흥미로운 것도 없는 소식이 빨리도 퍼진다. 신기할 따름이다.
 홀리 – 예뻐요?
 나 - 나도 몰라, 홀리. 그게 중요해?
 홀리가 말을 멈췄다.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홀리 – 착해요?
 나, 잠깐 생각하고 나서 – 그래, 착해. 좀 야단스럽고 특이하지만, 착해.
책 106-107쪽

 

 

 영국작가인 베스 올리리의 소설 [셰어하우스]는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아니, 어울린다기보다는 필요한 연애이라고 해야 더 맞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의 연애는 소유와 수집, 집착에 매몰되곤 했다. 내 남자, 내 여자 혹은 우리 자기. 연인들 간에 ‘너는 내 소유’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당연했고 이 합의에는 너의 시간, 너의 거취, 너의 선택도 모두 내 소유가 된다는 계산이 깔리기도 했다. [셰어하우스]는 이러한 연애와 사랑의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저자는 티피와 리언을 통하여 연애도 사랑도 더 이상 소유가 아니라 SHARE 공유라고 이야기한다.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소속되어 내가 너의 시간과 감정, 너라는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감정, 경험, 문제, 위기, 갈등을 공유해서 함께 만들고 해결해 가는 점을 말이다.

 

 소유로서의 사랑과 공유로서의 사랑은 티피와 리언 각자의 전(前) 연인들 사이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티피의 전 남자친구 저스틴은 티피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쌍놈이다(욕을 적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런 쌍놈이 서울에도 많다는 사실에서 또 한 번 자연스럽게 티피에게 이입되지 않을 수 없다.) 저스틴은 ‘가스라이팅’으로 여성을 학대하고 길들이며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많은 남성들을 대표한다. ‘너 같은 걸 만나주는 남자는 나밖에 없다, 너에게 이렇게 대단한 선물을 나니까 해주는 것이다, 너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내 결정만이 옳다.’로 일관하는 저스틴은 여성으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 개체로서의 티피를 완전히 뭉개놓은 장본인이다. 자신의 행태가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 저스틴과 그에게 휘둘리는 티피의 관계는 서로에게 파괴적이다. 티피만 아니라 저스틴도 이 관계에서 피해를 입는 것이다. 이 굴레를 깨고 이 관계가 병(病)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티피나 저스틴은 평생 온전한 개체로서,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설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티피는 주변에 똑똑한 친구들과 공감능력이 높은 리언을 만나 소유가 아닌 공유로서의 건강한 연애에 눈을 뜬다. 


 한편 리언의 전 여자친구인 케이는 저스틴과는 다른 의미에서 파괴적이다. 공감능력이 낮은 케이는 리언과는 상극이었다. (사실 이 둘이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지 책을 다 덮고 나서도 의아하다.) 리언의 상황과 그의 절망, 가족애와 인류애, 애틋하고 따듯하게 주변을 돌보는 마음을 케이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케이는 그저 리언에게 관심과 시간과 애정을 달라고 요구하는, 소유로서의 연애가 전형적인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공감과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리언의 가슴을 찢어놓는 말을 한 것은 어쩌면 그녀로서는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우리 시대에 수많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주려는 마음보다 상대로부터 관심과 감정을 수집하기에만 급급한 현실이다.

 


 케이 - 요즘 당신은 2주마다 면회를 다니지.
 진심으로. 감옥에 갇힌 동생을 만나러 가서 화가 났다는 건가?
 케이 - 그것 때문에 화내면 안 된다는 거 나도 알아. 잘 알아. 하지만 그냥.... 당신은 시간이 너무 없고, 이제 그 없는 시간 중에 더 작아진 짜투리만 내 몫이라는 기분이 든다고.
책 165쪽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30대로 접어들고 나서는 ‘연애소설’이 좋아졌다. 사람들이 왜 로맨스코미디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지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이 장르의 열렬한 팬으로 동참하게 된 건 두말 할 것 없고.
 연애소설을 읽게 되는 건 유사연애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가 아니다. 연애가 얼마나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지, 성숙하고 빛나고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다시금 확인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셰어하우스]는 이 책의 홍보문구 그대로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로맨스’다. 모든 것이 공유 문화에 접어들고 있는 우리 시대에 이제는 사랑도 공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TMI의 인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티피의 매력 그리고 연인의 조건으로 ‘남다른 공감 능력’을 1순위에 올리게 만든 리언의 따듯함에 폭 빠져 그들의 로맨스를 부러워하게 만드는 소설, [셰어하우스]다.

홀리 – 예뻐요?
나 - 나도 몰라, 홀리. 그게 중요해?
홀리가 말을 멈췄다.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홀리 – 착해요?
나, 잠깐 생각하고 나서 – 그래, 착해. 좀 야단스럽고 특이하지만, 착해.
책 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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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라이언 노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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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눈에 ‘도대체 이게 뭔 책인가?’ 싶다면 저자의 이력을 먼저 확인해본다. 40살도 안 된 젊은 작가 라이언 노스는 마블 코믹스 ‘스쿼럴 걸’ 시리즈의 작가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그는 그의 전공을 십분 살려서 ‘이건 분명 공학도가 쓴거야’ 싶은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그의 명랑발측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이 통했는지 이 책 [문명 건설 가이드]의 책 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에서 그는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소개된다.

 왜 명랑 발측한 작가라고 이야기했냐면 이 책의 콘셉트 때문이다. 지은이가 멀쩡하게 라이언 노스라고 소개되고 있는 이 책에서 정작 저자는 ‘이 책을 쓴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진짜 저자는~~’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최초로 ‘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전문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밝히면서.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콘셉트가 다소 생소하고 낯설어 골치아프다고 느껴진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라이언 노스가 이것저것 깔아놓은 이야기들은 이 책을 읽는 데에 크게 필요치 않다. 이 책을 읽고 재미를 느끼는 데에 필요한 건 그저 21세기 지구를 살아가는, 구글 어스에서 내가 사는 곳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정도의 부피감을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가질만한 적당한 호기심 뿐이다. 무슨 호기심? 오늘날 이 세계를 있게 한 ‘문명’에 대한 호기심 말이다.

 
 

당신의 문명은 5가지 기술 체계를 바탕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각각의 체계는 정보에 기초한 것으로, 기본 개념만 갖추면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옵니다. 또한 물질이 아닌 관념 형태로 존재하므로 회복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다시 말해 이 관념은 당신이 세운 문명의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한 (적어도 책의 형태로라도. 10.11.2절 참조) 파괴되지 않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나열된 5가지 기술 체계는 밑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만 이해하면 얼마든지 쉽게 발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그 체계를 생각해내기까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39쪽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기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이 시작되어 어떤 흐름을 거쳤을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든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을 나름의 기준과 관점으로 정리한 책들은 대부분 저 주제를 가지고 있다. [문명 건설 가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 문명의 체계의 기반을 음성 언어, 문자 언어, 수 체계, 과학적 방법, 잉여 열량 등 5가지로 정리한 저자는 온도나 무게 등을 재는 단위, 농업, 식량, 영양소, 화학, 철학 등 문명 전체를 관통하는 굵직한 분류들을 차례로 다루면서 책을 풀어간다. 이 책 제목 아래 부제로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라고 붙어 있는데 이 말이 사실상 이 책의 제목 같다.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고 특히 폭넓은, 잡다한 과학 지식을 수집하는 독자라면 아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만한 거리들이 가득한 책이다. 그러나, 역시 전지적 서구인의 시점에서 쓴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문자 언어의 발명을 이야기하면서 한글을 언급하지 않다니. 저자가 언어학자가 아닌 공학도이기 때문에 놓친 점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암튼 이제 곧 해가 바뀌는 시간, 정신없는 연말이 지나가고 새해를 시작하는 휴일을 맞았을 때 이 책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유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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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사랑처럼
윤보영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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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서점엘 갔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곳이 고시생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는데, 거기 대로변에 4층짜리 쇼핑몰이 있었다. 쇼핑몰 지하가 서점이었다. 그 주변 서점은 죄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필요한 교재나 문제지들만 잔뜩 파는 곳이었는데, 그 쇼핑몰 지하 서점 만큼은 소설과 시집을 주력으로 팔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그 손바닥만한 시집들을 읽고는,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서재에는 시집이 많았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들은 죄다 무겁고 너무나 결사적이라 무섭기까지 했다. 교과서 밖에서 만난 시들은 아주 달랐다. 그냥 순수하고 가볍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연애감정을 이야기했다. 보송보송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시들이 좋았다. 이름 없는 시인의, 대단한 시적 깊이 같은 건 생각하지 않은 시라고 해도 그런 시들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그 기분 때문에 나는 지금은 시집의 제목도, 시인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많은 시집들을 일부러 보러 가서 사오곤 했나보다.

 

 [세상에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사랑처럼]은 제목에서 모든 걸 털어놓고 출발하는 시집이다. '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너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담은 시들이다. '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를 사랑해서, 꽃처럼 핀 내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쉼터]

 

내 마음에
정자 하나 만들었습니다.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쉬어가고
하지만
정말 쉬어가게 하고 싶은 건
그대입니다.

(책 속에서)


이 시집을 읽다보면, 사진으로 콕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시들을 만난다. 책의 뒷페이지에는 이해인 수녀의 추천시도 실려 있다. 연말이라 일정도 복잡하고 마음도 복잡한데, 이런 시집 읽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시, 이 시를 같이 나누고 싶은 사람들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겠지.
보내주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도록 만듦새도 좋다. 연말이 아니라 신년에 이 책 한 권 보내주면서 인사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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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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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저기 길 끄트머리의 어둠 속에서 불어온 밤바람과 함께, 그가 잠시 행복이라고 여겼던 어떤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적은, 물론 몇 번 안 되지만, 언제나 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그 값을 톡톡히 치렀구요.”
108쪽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약사가 말을 잊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한 그가, 해야 할 말도 찾지 못한다면 그의 남은 생애는 어떻게 될까? 승리자를 칭송하는 중세 서사시 읊기를 즐겨하는 그에게 그런 생애란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는 이후로 무엇을 위하여, 왜 살아가야 할까?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후광에 이끌려 나는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환상문학이니 뭐니 어쩌니 떠도는 말들은 많으나 결국 가장 중요하고 주요한 것은 내가 직접 읽어보고 내가 직접 생각해보는 일이다. 나의 신조에 따라서 나는 주저없이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를 읽었다. 탁스함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나는 마치 소설의 주인공인 약사가 말을 잃듯 페이지 넘길 시간을 잃었다. 오메... 이거 나하고 안 맞는 소설이구나. 처음 열 장 정도를 읽으면서 느꼈다.

 

 보통은 나하고 안 맞는 책이라고 느껴지만 나는 읽기를 멈춘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로부터 굳이 고생을 체험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 책의 경우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결국 다 읽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 읽는 데에만 성공했다.  

 이 책을 다 읽고 심증이 더욱 굳어졌다. 노벨문학상이란 한림원 평가자들의 개취에 따른 선정일 뿐이라는. 모르겠다. 내가 기꺼이 수용하는 문학 작품의 수만큼 내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문학 작품도 많은 세상이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것을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만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서 발췌한 메모들을 따로 읽어보는 지금 이 순간조차, 나는 이 책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쓰지를 못하겠다. 안개처럼 어렴풋한 분위기만 떠돌아서, 어딘가 아쉽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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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 상처만 주는 가짜 자존감 나를 지키는 진짜 자존감
전미경 지음 / 지와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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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첫 장에 실린 추천의 말 네 편으로 시작한다.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 이용택 백상경제연구원장, 임명호 단국대 교수 등이 이 책의 저자인 전미경 원장에 대한 신뢰와 찬사를 짧은 추천사에 담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송효섭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의 추천사다.

 

 - 경쟁과 효율만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해 한국 사회는 가짜 자존감이 창궐한다. 이 책을 계기로 진짜 자존감에 대한 대중적 이해가 높아지고, 그에 맞는 사회 구조와 교육 체제의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책 4쪽)

 

 남을 이기거나 혹은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나의 존재감’이 지켜지는 것처럼 살아가는 일은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하다. 그래서 서점마다 ‘우리는 괜찮지 않다’고 외치는 책들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밟고 올라서야 하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거나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외면하고 눈을 감은 채로 ‘자존감 세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단순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나는 나야’라는 의식을 부적처럼 간직하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해왔다. 그러다 나는 내 생각의 함정에 빠지기도 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은 남과 단절되는 것이 아닌데, 남과 나를 단절시켜야만 즉, 남을 외면해야만 비교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착각 속에 살기도 했다. ‘나의 존재감‘에서 타자를 삭제해버리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욱 고독해지고 삭막해진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야 조금 알았다. 자존감이든 존재감이나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하여 살아가는 일에 나 자신에 대한 객관과 인식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타자와의 관계에서 내가 나 자신을 어떤 위치에 놓을 건지에 대한 자각과 인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전미경 원장이 쓴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위에 쓴 나의 오해와 생각의 결과를 정리해놓은, 답안지 같은 책이다.

 

 

  타고난 환경이나 이미 나온 결과처럼 정해진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수많은 우연이 찾아옵니다. 이 우연을 나에게 좋은 운명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정해진 것과 변화하는 것, 두 가지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나’라는 하나의 천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이건 객관적 사실입니다. 진리에 가깝습니다.
 책 13쪽

 

 그런데 여기에서 왜 연대감이 중요할까요. 연대감은 ‘나 자신’과는 별로 상관없는 거 아닌가요. 자존감에 대한 많은 조언들이 이 부분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와 열등감이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자존감을 키우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이 능력이 연대감이기 때문입니다.
책 34쪽

 

 

 송효섭 교수의 추천사에서도 읽었듯, 지금 우리는 가짜 자존감 속에서 헤매고 있다. 진짜 자존감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미경 원장은 진짜 자존감에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를 짚어내며 나에게 진짜로 필요한 자존감에 대해 설명해준다.
 심리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마음이 동화되는 이런저런 에세이도 물론 좋지만 기왕에 나 자신의 심리가 고민이어서 도움이 되는 책을 찾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오랜 시간 많은 임상을 거치고 저자 본인의 쉼 없는 관찰과 분석이 알려주는 진짜 자존감에 대해서 읽어보면 내년 2020년은 나를 상처입히는 가짜 자존감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나로 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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