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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저기 길 끄트머리의 어둠 속에서 불어온 밤바람과 함께, 그가 잠시 행복이라고 여겼던 어떤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자 그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적은, 물론 몇 번 안 되지만, 언제나 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매번 그 값을 톡톡히 치렀구요.”
108쪽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약사가 말을 잊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한 그가, 해야 할 말도 찾지 못한다면 그의 남은 생애는 어떻게 될까? 승리자를 칭송하는 중세 서사시 읊기를 즐겨하는 그에게 그런 생애란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는 이후로 무엇을 위하여, 왜 살아가야 할까?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후광에 이끌려 나는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환상문학이니 뭐니 어쩌니 떠도는 말들은 많으나 결국 가장 중요하고 주요한 것은 내가 직접 읽어보고 내가 직접 생각해보는 일이다. 나의 신조에 따라서 나는 주저없이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를 읽었다. 탁스함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나는 마치 소설의 주인공인 약사가 말을 잃듯 페이지 넘길 시간을 잃었다. 오메... 이거 나하고 안 맞는 소설이구나. 처음 열 장 정도를 읽으면서 느꼈다.
보통은 나하고 안 맞는 책이라고 느껴지만 나는 읽기를 멈춘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로부터 굳이 고생을 체험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러나 이 책의 경우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결국 다 읽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 읽는 데에만 성공했다.
이 책을 다 읽고 심증이 더욱 굳어졌다. 노벨문학상이란 한림원 평가자들의 개취에 따른 선정일 뿐이라는. 모르겠다. 내가 기꺼이 수용하는 문학 작품의 수만큼 내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문학 작품도 많은 세상이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것을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만 소설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에서 발췌한 메모들을 따로 읽어보는 지금 이 순간조차, 나는 이 책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정확히 쓰지를 못하겠다. 안개처럼 어렴풋한 분위기만 떠돌아서, 어딘가 아쉽고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