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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사랑처럼
윤보영 지음 / 행복에너지 / 2020년 1월
평점 :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서점엘 갔다. 학교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곳이 고시생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는데, 거기 대로변에 4층짜리 쇼핑몰이 있었다. 쇼핑몰 지하가 서점이었다. 그 주변 서점은 죄다 무슨 무슨 시험에 필요한 교재나 문제지들만 잔뜩 파는 곳이었는데, 그 쇼핑몰 지하 서점 만큼은 소설과 시집을 주력으로 팔았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그 손바닥만한 시집들을 읽고는,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서재에는 시집이 많았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들은 죄다 무겁고 너무나 결사적이라 무섭기까지 했다. 교과서 밖에서 만난 시들은 아주 달랐다. 그냥 순수하고 가볍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연애감정을 이야기했다. 보송보송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시들이 좋았다. 이름 없는 시인의, 대단한 시적 깊이 같은 건 생각하지 않은 시라고 해도 그런 시들을 읽다보면 마치 내가 연애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그 기분 때문에 나는 지금은 시집의 제목도, 시인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많은 시집들을 일부러 보러 가서 사오곤 했나보다.
[세상에 그저 피는 꽃은 없다 사랑처럼]은 제목에서 모든 걸 털어놓고 출발하는 시집이다. '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고, 너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담은 시들이다. '너'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를 사랑해서, 꽃처럼 핀 내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쉼터]
내 마음에
정자 하나 만들었습니다.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쉬어가고
하지만
정말 쉬어가게 하고 싶은 건
그대입니다.
(책 속에서)
이 시집을 읽다보면, 사진으로 콕 찍어서 보여주고 싶은 시들을 만난다. 책의 뒷페이지에는 이해인 수녀의 추천시도 실려 있다. 연말이라 일정도 복잡하고 마음도 복잡한데, 이런 시집 읽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시, 이 시를 같이 나누고 싶은 사람들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겠지.
보내주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도록 만듦새도 좋다. 연말이 아니라 신년에 이 책 한 권 보내주면서 인사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