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라이언 노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첫눈에 ‘도대체 이게 뭔 책인가?’ 싶다면 저자의 이력을 먼저 확인해본다. 40살도 안 된 젊은 작가 라이언 노스는 마블 코믹스 ‘스쿼럴 걸’ 시리즈의 작가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그는 그의 전공을 십분 살려서 ‘이건 분명 공학도가 쓴거야’ 싶은 이야기들을 만들어왔다. 그의 명랑발측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이 통했는지 이 책 [문명 건설 가이드]의 책 날개에 실린 작가 소개에서 그는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소개된다.

 왜 명랑 발측한 작가라고 이야기했냐면 이 책의 콘셉트 때문이다. 지은이가 멀쩡하게 라이언 노스라고 소개되고 있는 이 책에서 정작 저자는 ‘이 책을 쓴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발견했을 뿐입니다. 진짜 저자는~~’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최초로 ‘길 잃은 시간여행자를 위한 문명 건설 가이드’ 전문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밝히면서.

 

 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느껴지는 이 책의 콘셉트가 다소 생소하고 낯설어 골치아프다고 느껴진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라이언 노스가 이것저것 깔아놓은 이야기들은 이 책을 읽는 데에 크게 필요치 않다. 이 책을 읽고 재미를 느끼는 데에 필요한 건 그저 21세기 지구를 살아가는, 구글 어스에서 내가 사는 곳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정도의 부피감을 차지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가질만한 적당한 호기심 뿐이다. 무슨 호기심? 오늘날 이 세계를 있게 한 ‘문명’에 대한 호기심 말이다.

 
 

당신의 문명은 5가지 기술 체계를 바탕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각각의 체계는 정보에 기초한 것으로, 기본 개념만 갖추면 나머지는 그대로 따라옵니다. 또한 물질이 아닌 관념 형태로 존재하므로 회복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다시 말해 이 관념은 당신이 세운 문명의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한 (적어도 책의 형태로라도. 10.11.2절 참조) 파괴되지 않습니다.
 다음 페이지에 나열된 5가지 기술 체계는 밑바탕이 되는 기본 개념만 이해하면 얼마든지 쉽게 발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그 체계를 생각해내기까지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39쪽

 

 

 인류가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기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이 시작되어 어떤 흐름을 거쳤을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든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을 나름의 기준과 관점으로 정리한 책들은 대부분 저 주제를 가지고 있다. [문명 건설 가이드] 역시 마찬가지다. 인류 문명의 체계의 기반을 음성 언어, 문자 언어, 수 체계, 과학적 방법, 잉여 열량 등 5가지로 정리한 저자는 온도나 무게 등을 재는 단위, 농업, 식량, 영양소, 화학, 철학 등 문명 전체를 관통하는 굵직한 분류들을 차례로 다루면서 책을 풀어간다. 이 책 제목 아래 부제로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라고 붙어 있는데 이 말이 사실상 이 책의 제목 같다.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고 특히 폭넓은, 잡다한 과학 지식을 수집하는 독자라면 아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만한 거리들이 가득한 책이다. 그러나, 역시 전지적 서구인의 시점에서 쓴 책이라는 게 느껴진다. 문자 언어의 발명을 이야기하면서 한글을 언급하지 않다니. 저자가 언어학자가 아닌 공학도이기 때문에 놓친 점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밖에. 암튼 이제 곧 해가 바뀌는 시간, 정신없는 연말이 지나가고 새해를 시작하는 휴일을 맞았을 때 이 책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유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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