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인지, 생각의 기술 - AI 시대, 직원부터 CEO까지 메타인지로 승부하라
오봉근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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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의 기술' 이런 제목이 이제는 식상해진 2021이다. 그런 책들을 제아무리 열심히 읽어봐야 그 기술이 현실에서 빛을 보기는 어렵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기술이 빛을 보려면 개인 뿐 아니라 개인이 구성원으로 있는 집단 전체가 그 기술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개인의 기술은 아무리 잘나봐야 태풍 속의 산들바람일뿐이다. 집단의 힘은 개인이 어찌해서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이 발휘할 수 있는 기술에 접근했다는 면에서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식상함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메타인지, 메타인지... 이런 저런 책이나 기사 혹은 각종 미디어에서 메타인지를 다루고 있지만 대부분 개인으로 발휘하는 메타인지에 대한 내용이다.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은 집단, 보다 정확히는 회사가 발휘할 수 있는 메타인지를 다루는 책이다.

 

 

 

혼자가 잘해서 잘나가는 회사는 이제 없다. 아니, 원래 없었다고 해야 할까. 회사는 조직이다. 구성원들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나가느냐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갈린다. 혼자가 뛰어나서 이리저리 날뛰면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마냥, 모난 돌이 정 맞는 형국이 될수밖에 없다. 개인의 메타인지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이 조직에 큰 무기가 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메타인지가 조직적으로 형성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동이 함께 발휘하는 메타인지의 힘은 혼란한 현재의 형국을 헤쳐나갈 동력이 될 수 있다.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을 쓴 오봉근 저자는 기업의 전략컨설팅 전문가다. 개인의 '일머리'를 기업 단위에 적용하기 위하여 저자는 지난 수년 간 자신의 커리어를 이 책에 정리했다고 한다. 메타인지라는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거나 아직 메타인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에 관련한 모든 자료를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 지금, 이 책은 이 점을 명확히 한다. AI 시대에 인간만의 고유 영역으로 메타인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 메타인지의 메커니즘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고 이 책 [메타인지, 생각의 기술]에 담은 저자의 주장도 아직 가설에 근거한다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저자 스스로 밝히는 이 책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흥미롭다. 개인의 메타인지와는 상당히 다른 조직적 메타인지의 현상과 효과는 대면 업무가 보편적이던 시절보다 비대면 시대인 지금이야말로 주목할만하다. 비대면 업무는 구성원들이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 때에는 무척이나 힘들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하나의 그물망처럼 조직적인 메타인지를 발휘할 수 있다면 비대면 업무 시대에 조직력은 최고로 끌어올려지지 않을까.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기존의 질서 중 많은 것들이 바뀌면서 여러 전문가들은 언택트시대에 대해 저마다의 예측론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이든 이후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점검이 아닐까. 삶은 '이해'로부터 절대 분리될 수 없다. 나에 대한 이해는 객관화를 가능케 하고 이 객관화는 메타인지의 기본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 역시 조직적 메타인지의 기본이다. 메타인지를 발휘하려면 먼저는 나도, 상대의 의도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 이 기본 중의 기본으로부터 개인의 메타인지도, 조직적 메타인지도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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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공부 - 혼란한 세상에 맞설 내공
김종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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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숙제든 뭐든 유투브부터 찾아보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장강명 작가가 '그렇게 읽기가 싫은가?'라고 했단다. 인스타에서 스치듯 읽으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저거였다. 그렇게 읽기가 싫은가?

 

여기서 '읽기'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해독한다는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림도 읽고 감정도 읽고 온갖 신호와 사건과 분위기와 타이밍을 읽는다. 읽는다는 행위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 않다. 읽으려는 주체에게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읽어야 할 대상이 도처에 만연해도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 그렇다. 읽어내는 일이 읽기의 본질이다. 읽기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일이기에 아무것도 아닌 먼지 한 톨도 그것을 읽어내는 자에 따라 시의 재료로 승화하기도 하고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기기가 아무것도 아닌 먼지보다 못한 무가치가 되기도 한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쓰고 무언가를 듣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무언가를 읽느냐가 아닌가 한다. 사람은 자신이 읽어내는 만큼의 생애만 살게 되는 탓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중요한 읽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글자를 읽고 쓰는 거야 기초 교육으로 배우지만 진짜로 읽어내는 일에 주목하여 이 행위를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학습한 적이 없는 것이다. 독서야말로 이 읽어내는 행위가 아닌가 다들 생각하지만 단순히 글자를 읽었다고 해서 그 책을 제대로 읽은 건 아니다. 나의 세계에 투영된 저자의 세계를 포착하여 이전에 없던 감상과 사유를 직조해내는 순간이 없다면 그 책을 읽어낸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제대로 읽어내는 기쁨은 정말 어마어마하고 그것의 유익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이렇게 읽어내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여기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낫 놓고 기역자는 알지만 그 낫으로 뭘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무한한 세계를 읽어낼 수는 없는 사람들의 세상. 그런 우리들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분으로 [문해력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읽어내는 기술은 여러가지가 있다. 질문하며 읽기, 조합하여 읽기, 확장하며 읽기 등등. 이 기술은 책을 읽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음악, 미술 등 예술분야를 비롯하여 다양한 학문, 나아가 세상을 읽는 일에까지 확장되어 적용된다. 김종원 저자의 [문해력 공부]는 그런 읽기의 기술을 차근차근 정리해 놓은 책이다. 하나를 봐도 열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열을 봐도 하나를 읽어내기가 어려운 사람도 있다. 김종원 저자는 문해력의 차이가 정보 흡수와 해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지적하며 문해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렇게 쓰면 자기계발서처럼 보이는 데 스피치 잘 하는 법, 화술 좋아지는 법 같은 책은 아니다. 읽기는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문해력 차이]는 차분하게 생각하며 읽어가기에 적합한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저자가 주는 정보를 한번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내 읽기의 차원을 달리 만드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적용점을 찾아가며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읽어내는 기술이 느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책읽기가 버겁거나 싫은 사람에게 이 책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책을 보다 잘 읽고 싶은 사람, 단순한 읽기가 아닌 깊이 있는 읽기로 나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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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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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이야기들은 힘이 세다. 오래된 이야기들은 긴긴 세월의 파도를 버텨냈다. 오래될수록 끈질긴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가진 끈질김은 사람들의 공감과 해석에서 비롯한다. 이야기들이 시간의 물결 위를 타고 살아남으려면 사람들의 입이 필요했다. 입에서 입으로 거치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이를 얻었고 입을 타고 내려온 이야기가 자기 자리를 종이 위로 옮긴 후에도 그 깊이는 계속되었다. 옛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그래서 참 신기하다. 이 이야기가 기원한 몇 백년, 몇 천 년 전 사람들과 지금의 우리가 삶의 양식이나 심지어 가치관까지 많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뭔가가 있다는 걸 체감하기 때문이다.

 

신동흔 저자가 지은 [옛이야기의 힘]은 55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다. 중국, 프랑스, 러시아, 그리스 등 세계 각국의 민담을 모아 엮은 책이다. 민담을 채집하여 엮은 저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민담이 들려주는 삶과 사람을 읽어내 책에 함께 담았다.

 

 <개구리 왕자> 같은 익숙한 이야기도 있고 <굴뚝새> 처럼 생소한 이야기도 있다. 동서양의 옛이야기들은 서로 닮은 구석도 있고 전혀 다른 구석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무척 생소한 성격의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하는데 이야기를 읽으면서 '와 되게 우리나라 옛날이야기같다'라고 느끼는 민담도 있다.

 

어쨌건 민담이 담고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간됨의 법칙이 아닐까 한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인가? 인간의 감정을 인간은 어떻게 써야할까? 이 삶은 어디로 달려가는 걸까? 이런 물음은 답이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답을 구할 순 없지만 일정한 규칙을 세워두고 살아갈 순 있다. 이런 일정한 규칙은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한다. 민담은 이런 규칙을 제안한다. 성공, 홀로서기, 사랑, 성장, 인내, 구원 등 인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고민하게 되는 화두들을 나보다 먼저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민담에 담겨 있다.

 

신동흔 저자는 이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정리했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자료를 책으로 냈다. 옛이야기들인만큼 구술자료를 정리한 내용도 적지않았을텐데 그 많은 자료를 이토록 흥미로운 책으로 정리해낸 것에 박수를 보낸다.

추위가 빨리 온 덕분으로 긴긴 겨울밤, 담요를 덮어 쓰고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 [옛이야기의 힘]이 그런 즐거움에 함께하고 있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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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 선집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토 모키치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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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슈란 일본 고대의 노래 가사들을 모은 겁니다. 4천여개 이상의 가사를 모은 만요슈는 시간을 뛰어넘어 일본 고대 민생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된 가사가 아닌,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있고 내용 역시 천황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고루 담고 있어 특별합니다.

 

고대의 기록이나 유물들은 시간을 초월해서 여전히 그 시대의 면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기이하고 각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골동품 수집가들의 마음과 비슷한 마음일까요? 우리나라에도 고대 가사로 유명한 백제 가요 [정읍사]가 있죠. 달하 노피곰 도드샤~ 이렇게 입으로 되뇌어 보는 것만으로도 옛사람의 시대를 공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만요슈]를 읽는 것도 마치 그런 느낌이에요. 과연 1500년도 더 된 옛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어땠을지 들여다보게 되네요.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라는 부제를 걸고 [만요슈 선집] 을 펴냈습니다. 저는 AK커뮤니케이션즈의 교양서들은 믿고 봐요. 한번쯤 읽어볼만한 좋은 책들을 꼼꼼하게 다듬고 만들어서 펴내는 출판사이니만큼 어떤 책을 선택해서 읽어도 후회가 없습니다. 특히 인문교양서, 역사교양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곳이죠. 이번에 [만요슈 선집]도 좋습니다. 사실 하이쿠 같은 일본의 고전 문학에 저는 별 취미가 없어요. 그나름의 재미와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제 취향이 아니어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쪽인데 이번에 [만요슈 선집]을 읽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문학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광범위하지만 '시집'을 읽는다고 하면 훨씬 구체적이지요. 고대인들이 남긴 싯구들을 호흡해본다는 게 [만요슈 선집]을 읽고 난 감상입니다.

본래 만요슈는 4500여 수가 수록되어 있지만 이번에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펴낸 [만요슈 선집]에서는 그중에서도 만요슈 입문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들을 엄선해서 실었습니다. 고대 기록이라는 게, 현재의 문학적 관점에서 읽었을 때 역사적, 상황적 맥락이 맞지 않아 이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잖아요. [만요슈 선집]은 그런 독자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하여 간결하고 이해가 쉬운 역사적, 상황적 설명을 곁들여 만요슈를 들려줍니다.

문학 특히 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추합니다. 아주 색다른 맛과 멋이 있거든요. 우리나라 가사들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기 쉽고 보기에도 깔끔하게 디자인된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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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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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좋아지는 책이 있다. 특히 인문학 교양서적류에 매년 책을 출간하는, 그래서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들이 많은데 그런 저자들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알게 된다. 저자의 밑천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어떤 저자는 작년에 출간한 책에서 한 이야기를 올해의 신간에서 했는데 그게 실은 몇 년 전에 낸 책에서 했던 얘기를 표현만 조금 바꿔서 책을 내곤 한다. 재탕, 삼탕, 곰탕으로 끓인 그런 책들은 읽다보면 결국 '아, 이제 이 저자의 책은 더는 찾고 싶지 않다'는 데에까지 이른다. 반면 매해 혹은 2년에 한 권 정도 부지런히 책을 내는 어떤 저자의 책들은 매해 기대가 된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저자가 최근에 언론과 한 인터뷰들을 먼저 찾아 읽게 되고 손꼽아 그의 책을 기다린다. 이전에 그가 자신의 책에 실었던 담론들이 과연 어디까지 깊어졌고 확장되었을지를 가늠하며 책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그렇게 받아 읽은 신간을 다 읽은 후에 마음과 생각에 차곡차곡 쌓이는 성찰들은 그 이후의 일상을 윤택하게 한다. 아, 정말 이런 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왜 독자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지를 시장의 축소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사유의 축소 차원에서 접근하는 저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유현준 저자는 후자 쪽이다. 과연 우리는 '건축'으로 어디까지를, 인류의 어떤 부분까지를 해석할 수 있을까. 유현준 저자는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와 같은 도전을 벌이는 듯하다. 글을 쓰는 저자로서 이런 도전은 당연히 골치 아프고 때로 아주, 무척 고되고 재미가 없기도 하겠지만 독자에게 이런 도전을 바라보는 일, 그 도전에 슬그머니 수저를 얹어보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얼마 전 아주 정독, 탐독을 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 다시 수저를 얹어보면서 나는 유현준 저자의 밥상에 여러차례 수저를 올린 일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다.

 

 

근데 솔직히 이건 좀 민망한 이야기다.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명저를 알아보곤 '아, 기특해'라고 칭찬하면 말이 되지만 이번 경우는 말이 안 되니까.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이미 좋은 책, 정말 아주 괜찮은 책으로 수많은 매체와 독자들에게 자리매김한 책이다. 2020년이 이제 1분기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이 계절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두고 좋은 책이니 어쩌니 운운하는 건 뒷북 중의 뒷북. 그래도 꼭 내 독서록에 남기고 싶었다. 이 좋은 책, 우리 모두 같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라고.

 

 

책은 무서운 매체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저자의 생각이 영글어진 배경 등이 종이 위로 두둥실 우러난다. 저자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은 그 무형의 빛깔 속을 독자는 거침없이 해부한다. 그 빛깔에 반사된 혹은 그 빛에 고무된 독자의 내부에서는 역시 독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독자의 생각이 영근 배경 등이 저자에 호응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 이상한 세계 속에서 수백 년을 뛰어넘어 저자와 독자가 같은 경험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마치 한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견고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는 동안 이 얇지 않은 책의 곳곳에서 나는 연거푸 저자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아!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네요.' '완전!! 나도 그런 생각했는데, 그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군요!' '맞아요, 그때 그런 감정이 막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와요.' 도시의 변두리, 골목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주택가, 도심 속 구석에 파묻힌 공원, 모든 것이 네모난 학교 등 도시에서의 삶을 이토록 넓은 공감대로 해석한 책이 과연 또 있을까. [어디서 살 것인가]를 그토록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와 건축과 그 속에서의 인간 존재를 해석하는 저자의 탁월한 시선 뿐 아니라 도시 라이프가 현재 풀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도시도 그렇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그러하기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들고 (독자가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도시,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래서 질문이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싶냐고, 그래서 그런 공간을 그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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