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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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좋아지는 책이 있다. 특히 인문학 교양서적류에 매년 책을 출간하는, 그래서 다수의 책을 집필한 저자들이 많은데 그런 저자들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다보면 알게 된다. 저자의 밑천이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어떤 저자는 작년에 출간한 책에서 한 이야기를 올해의 신간에서 했는데 그게 실은 몇 년 전에 낸 책에서 했던 얘기를 표현만 조금 바꿔서 책을 내곤 한다. 재탕, 삼탕, 곰탕으로 끓인 그런 책들은 읽다보면 결국 '아, 이제 이 저자의 책은 더는 찾고 싶지 않다'는 데에까지 이른다. 반면 매해 혹은 2년에 한 권 정도 부지런히 책을 내는 어떤 저자의 책들은 매해 기대가 된다. 신간 소식이 들려오면 저자가 최근에 언론과 한 인터뷰들을 먼저 찾아 읽게 되고 손꼽아 그의 책을 기다린다. 이전에 그가 자신의 책에 실었던 담론들이 과연 어디까지 깊어졌고 확장되었을지를 가늠하며 책을 기다리는 일은 즐겁다. 그렇게 받아 읽은 신간을 다 읽은 후에 마음과 생각에 차곡차곡 쌓이는 성찰들은 그 이후의 일상을 윤택하게 한다. 아, 정말 이런 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왜 독자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지를 시장의 축소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사유의 축소 차원에서 접근하는 저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유현준 저자는 후자 쪽이다. 과연 우리는 '건축'으로 어디까지를, 인류의 어떤 부분까지를 해석할 수 있을까. 유현준 저자는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와 같은 도전을 벌이는 듯하다. 글을 쓰는 저자로서 이런 도전은 당연히 골치 아프고 때로 아주, 무척 고되고 재미가 없기도 하겠지만 독자에게 이런 도전을 바라보는 일, 그 도전에 슬그머니 수저를 얹어보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얼마 전 아주 정독, 탐독을 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 다시 수저를 얹어보면서 나는 유현준 저자의 밥상에 여러차례 수저를 올린 일을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고 있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다.

 

 

근데 솔직히 이건 좀 민망한 이야기다.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명저를 알아보곤 '아, 기특해'라고 칭찬하면 말이 되지만 이번 경우는 말이 안 되니까. [어디서 살 것인가]는 이미 좋은 책, 정말 아주 괜찮은 책으로 수많은 매체와 독자들에게 자리매김한 책이다. 2020년이 이제 1분기 정도밖에 남지 않은 이 계절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두고 좋은 책이니 어쩌니 운운하는 건 뒷북 중의 뒷북. 그래도 꼭 내 독서록에 남기고 싶었다. 이 좋은 책, 우리 모두 같이 읽으면 더 좋을 책이라고.

 

 

책은 무서운 매체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저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저자의 생각이 영글어진 배경 등이 종이 위로 두둥실 우러난다. 저자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은 그 무형의 빛깔 속을 독자는 거침없이 해부한다. 그 빛깔에 반사된 혹은 그 빛에 고무된 독자의 내부에서는 역시 독자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 독자의 생각이 영근 배경 등이 저자에 호응하면서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그 이상한 세계 속에서 수백 년을 뛰어넘어 저자와 독자가 같은 경험을 가지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마치 한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견고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는 동안 이 얇지 않은 책의 곳곳에서 나는 연거푸 저자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아!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네요.' '완전!! 나도 그런 생각했는데, 그게 나 혼자만이 아니었군요!' '맞아요, 그때 그런 감정이 막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와요.' 도시의 변두리, 골목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주택가, 도심 속 구석에 파묻힌 공원, 모든 것이 네모난 학교 등 도시에서의 삶을 이토록 넓은 공감대로 해석한 책이 과연 또 있을까. [어디서 살 것인가]를 그토록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도시와 건축과 그 속에서의 인간 존재를 해석하는 저자의 탁월한 시선 뿐 아니라 도시 라이프가 현재 풀지 못하는 수많은 난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도시도 그렇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그러하기에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들고 (독자가 책을 읽는 행위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좋은 도시,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내가 사랑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그래서 질문이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싶냐고, 그래서 그런 공간을 그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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