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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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알았다. 임진왜란이라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비참한 시대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인물을 그 한 분 외에는 몰랐다.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기도 했지만 임진왜란 속에서 자기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면서 누가 감히 민초를 지키기 위하여 나설 수 있었을까. 민초 스스로 도망치듯 목숨을 부지하는 길 외에 또 무엇이 있었을까. 왕도 도망가는 판국이었으니 말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생소했다. 처음 읽는 이름이라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싶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름을 찾아보고 그 결과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을 4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알았다니.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덕분에 아주 겸손하고 겸허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작품은 이미 사야가(김충선)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귀화를 한 이후의 행주산성을 첫 무대로 출발한다. 일본 최고의 조총부대를 이끄는 수장인 사야가는 말도 통하지 않는 권율 장군에게 조총부대의 일만 아니라 어떤 임무라도 좋으니 명령만 내려달라고 한다. 충과 선. 그는 위로부터 받은 이름 그대로 충실하고 선한 무관으로 한반도 민초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뛰어들었다.

 

 김충선 그러니까 사야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배신자 내지는 역적으로 그것도 아주 쳐죽일 인물로 취급된다. 그럴 수밖에. 히데요시가 대단한 야심을 품고 조선 정벌에 나섰던 것을 결사적으로 막아낸 인물들 중에 하나가 그이니까. 심지어 그는 본래 일본인 아닌가. 소설가 이주호는 오랜 시간의 안개 사이로 김충선 그러니까 어릴 적 이름은 김석운이고 일본에서 자랄 때의 이름은 히로인 이 인물이 어떻게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일본에서 자라는 동안 겪은 일들을 소상히 그려냈다. 


 수년의 연구와 고심 끝에 그는 역사적 사실로 전해지는 파편들 사이를 상상력으로 메꾸어 매끈하고 굵직한 작품 한 점을 비로소 완성해냈다. 김충선에 대하여 전해지는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여 소설의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읽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반신반의하며 읽었다.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며 읽었지만, 김충선이라는 인물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그 존재의 무게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심이 없다.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할 인물이라는 점에는 조금도 재론할 여지가 없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소설가 김별아가 쓴 추천사의 한 부분이 이 작품의 결정적 의미라고 생각하여 인용한다.

 
 ‘내가 이 나라에 귀화한 것은 잘되기를 구함도 아니요, 명예를 취함도 아니다. 대개 처음부터 두 가지 계획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요순 삼대의 유풍을 사모하여 동방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함이요, 또 하나는 자손을 예의의 나라에 남겨서 대대로 예의의 사람을 만들고자 함이라.’
  실제로 김충선이 [모하당집]의 녹촌지에서 밝힌 귀화의 까닭이다. 이것이 정말 어린 용병이 꿈꾸던 답일까? 소설은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다. [역랑]은 문제적 인간인 김충선과 그를 새롭게 만나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고도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414-415쪽 

p.s. 녹촌지의 저 글을 읽으면서 정말, 이 인물은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걸 사무치게 느꼈다.


"인생이란 되돌릴 수가 없지. 어떤 잘못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방도는 없을 게야. 하지만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면 그것도 다행이 아니겠는가?"
새로운 인생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말처럼 정말 죄책감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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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
단노 미유키 지음, 박제이 옮김 / 지식여행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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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 왜냐면 통장의 잔고보다 내 멘탈이 더 걱정되기 때문이야.
 
제목만 읽으면, 그러니까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저자의 외면만 보면 ‘뭐 고된 일은 하기 싫고 놀고는 싶고, 반백수로 어영부영 살고 싶다. 그야말로 욜로욜로욜로인가?’ 라고 오해하기 딱 십상인 제목이다.

 하지만 서른 아홉에 백수였다가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을 일했다가 다시 백수가 되기로 선택한 저자가 나날이 남긴 짧은 기록들을 차분히 읽어가다보면 사표를 냈다는 저자의 선택이 철없는 치기나 나태 혹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어디, 확인만 할 뿐인가? 그래, 나도 그래. 진짜 네맘내맘. 저자와 나이까지 비슷해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같은 마음, 대동단결, 위아더월드일수가!

 
 그래, 돈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나를, 내 시간을, 내 경력과 나라는 인간의 에너지를 버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런 곳에서 내 노동력을 쓰면서 돈을 벌고 싶다. 적게 벌어도 괜찮다. 그냥 그런 곳이 필요할 뿐이다.
 마흔. 도대체 이 회사에서, 이 공동체에서 내가 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저자는 ‘이 회사에서 새로 익힌 기술이나 얻은 인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제공했다. 건강 검진은 지자체에서도 받을 수 있다. 연금 제도에 거는 기대는 없다. (중략) 정직원으로 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건 회사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대출을 받아야 할 때처럼 말이다.’ 라고 정리했다. 그래서 회사를 정리하고야 만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아니, 이건 너무 허세다. 나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다고 해야 맞겠다. 내 존재 가치도 모르겠는데 인간이라는 거대 분류 따위 내 소관이 아닌 것을.

 큰 재미나 깨달음을 얻자고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그냥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는 다른 나라 땅에서 어찌 사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함에 저자가 공명했다. 내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었다는 뜻이다.
 
 단노 미유키씨. 지금은 백수인지 직원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건강하세요. 안부와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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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마음을 살린다 - 도시생활자가 일상에 자연을 담아야 하는 과학적 이유
플로렌스 윌리엄스 지음, 문희경 옮김, 신원섭 감수 / 더퀘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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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을 치유하는 자연의 위력에 대한 책이다.

숲이나 바다, 강가 등 자연의 품에 안겼을 때 사람은 쉼을 얻고 몸과 마음이 모두 치유를 받는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주말 농장이나 귀농에 눈을 돌리는 변화는 비단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그간은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몸과 마음에 든 병을 낫게 하는 자연의 치유력에 대한 여러 연구나 과학적인 검증들을 뉴스나 방송 프로그램 등으로 접했다. 환경 전문 저널리스트인 플로렌스 윌리엄스는 이 자연의 치유력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나섰다. 과학 논문이나 연구, 학술지 등을 인용하여 그래프나 수치로 확인하는 대신 직접 전 세계 자연 연구가(혹은 연구지 및 관련 장소)를 만나고 지구촌 각지의 자연 속에 파고들어 직접 체험해 보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의 기록들을 책으로 펴냈다.

 

 유럽과 미국 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 싱가포르 등 8개국의 자연을 직접 누빈 그가 쓰는 체험기는 흥미롭다. 그의 말대로 ‘영적인 것이나 인간관계나 정서적인 뭔가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복잡해서 막대그래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본문 289쪽).’. 그래서 사람이 자연의 품에서 얻는 온갖 것들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숫자나 도식으로 환산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연의 힘을 가볍게 여기고 자연이 품은 치유력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자신의 체험기로 자연의 치유력을 증명하는 이런 책을 낸 저자의 시도는 그래서 대단히 의미 있다. 저자가 몸으로 겪은, 자연이 주는 치유하는 힘과 그에 기대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각국에서 자연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거대도시의 시대에 어떤 가치를 갖는지에 대한 저자의 의견들이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그 자체로 회색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창백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을 읽어 봐야할 내용이다. 도시는 날이 갈수록 ‘모든 사람을 그야말로 돌아버리게 하지 않으면서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을 집어넣을 방법을 모색(본문 355쪽)’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고 ‘인간의 뇌는 사회적, 정서적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늘 그래왔다(본문 73쪽)’. 시스템이 제공하는 편의를 누리기 위하여 혹은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하여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기에 이제 사람이 사회적, 정서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주목할 것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 아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이를 회복하는 능력이다.

 

 나는 그동안 배운 것을 종합해서 한 가지 지극히 단순한 원칙에 도달했다.
밖에 자주 나가고 가끔은 야생의 자연으로 나가라.
친구와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다. 호흡하라.
 비틀리에 따르면 우리가 희망을 품어도 될 이유가 있다.
세계의 여러 도시들은 다채로운 자연의 요소를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뉴욕의 하이라인공원(20년간 방치된 철로를 도시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도시재생 성공 사례 – 옮긴이)부터
한국의 청계천 복원 사업까지 엄청난 효과를 보고 있다.
373쪽 

 

 우리는 자연을 좀더 기대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이 우리를 치유해주듯 우리도 자연을 치유하는 데에 좀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삭막한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점심 시간에 나무 그늘 아래를 잠시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여유를 얻는다. 장성 치유의 숲에서 근무하는 박현수 치유지도사의 말(한국은 절정의 스트레스에 진입한 것 같다)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스트레스 지수는 위험할 정도로 높다는 걸 체감한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피로와 분노와 절망과 무기력에 시달린다. 저자가 한국의 장성에서 겪은 삼림욕의 경험담은 그래서 다른 어떤 챕터보다 더 관심있게 다가왔다. 올해 안으로 나도 꼭 한번 장성을 가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울 정도로. 체험하고 취재한 모든 것을 다 좋다, 좋다 이렇게만 남발하지 않고, 좋은 건 좋지만 의아한 것은 의아하고,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부분까지 아주 진솔하게 담아낸 경험기라 더 재미있고 믿음이 간다. 


 
 자연이 사람에게 선사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 가족이 혹은 나 혼자서 자연의 품으로 찾아갔을 때 내가 받을 선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아니면 자연으로의 여행 계획을 세워놓고 이 책을 읽은 뒤에 가도 좋겠다. 자연으로 찾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보다 분명해지고, 그만큼 자연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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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저자가 한국의 여성우선주차장에 대해 써 놓은 내용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 진짜 거침없는 양반일세. 이런 내용을, 전혀 상관없는 주제의 책에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읽게 되다니.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았다. 예의상으로라도 혹은 체면치레 같은 것 없이 저자가 체험하고 보고 듣고 느낀 것 그대로 실어서.

 

“ 한국에서 분홍색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지만 최근에 서울시에서 1억 달러를 투입해서 여성우선주차장에 분홍색 페인트칠을 한 사업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라고는 하지만 여성은 운전실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담겨 있어서 결국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는커녕 모욕감만 안겨줬다. ”
109쪽

나는 그동안 배운 것을 종합해서 한 가지 지극히 단순한 원칙에 도달했다.
밖에 자주 나가고 가끔은 야생의 자연으로 나가라.
친구와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다. 호흡하라.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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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들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받을 때 우주정거장에서 가장 많이 읽은 대화책
더글러스 스톤 외 지음, 김영신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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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부터 너무 웃기다.
우주인들이 읽는 책이라니. 그것도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때 찾는 책이라니. 지구인인 나에게는 마치 ‘요즘 금성에서 가장 핫한 건데 몰랐어요?’ 라는 식으로 읽힌다. 마치 은하계 잇템을 손에 넣은 것 마냥, 어디 SNS에라도 자랑하고 싶은 이 책의 제목은 [우주인들이 인간관계로 스트레스 받을 때 우주정거장에서 가장 많이 읽은 대화책]이다. 뭐 저자들피셜이니 믿을 사람만 믿고 말 사람은 말기를.

 

 책 12쪽에 실린 ‘추천의 말’은 이 책의 태생을 밝히고 있다. ‘하버드협상프로젝트’라는 하버드식대화법이 이 책의 모태다. 협상이나 전략과 같은, 어떤 공격적인 뉘앙스를 내포한 그 이전의 대화 기술과는 달리 하버드식대화법은 너도 원하고 나도 원하는 걸 같이 이루자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이 책 전반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화의 포인트를 한 마디로 짚어주고 본문을 시작한다. 바로 ‘대화는 전달이 아니라 이해다(본문24쪽)’라고.

 

 그렇다. 대화는 나의 입장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방의 방식이 아니다. 대화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고 이 주고 받는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꿈은 버려야 한다. 이 책도 그 부분은 아주 분명히 하고 있다. 대화를 통하여 해결 방안을 찾는 걸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굳이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캬, 그래야 할 경우를 명확히 기술하고 그 사례까지 알려주는 이 책은 정말 똑똑하다. 괜히 책의 도입에서 하버드를 걸고 들어간 게 아니다.

 

 이 책은 그 다루고 있는 주제와 내용이 스마트할뿐더러 독자에게 아주아주 유용하고 심지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매우 쉽게 습득할 수 있다. 정말 잘 만든 책이고 좋은 내용이다, 누구에게 추천해도 괜찮을 책이라고 느낀 부분은 목차다. 목차만 읽어도 평소 대화와 대화의 기술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오해나 잘못된 기술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재미는 덤이다. 


 본문으로 들어가면 특히 소제목들을 주목해야 한다. 글의 본문에서 소제목만 읽으며 내용을 따라가도 저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금방 파악이 된다. 중간중간 파란색 글씨로 그간 저자들이 연구한 혹은 접한 사례들을 아주 다양하게 그리고 많이 실었는데 그 역시도 나의 대화 습관을 돌이켜보고 고치는 데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

 

 저자들은 대화의 기술을 단순히 그들의 연구 분야로만 다루고 있지 않다. 그들이 대화의 기술을 상담을 해줄 때나 강연을 할 때만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자들은 독자에게도 그들이 습득한 대화의 기술을 쓴다. 독자가 정말 원하는 내용들을 눈에 잘 보이게 쏙쏙 전달하고, 나아가 독자가 의문을 가질 내용들은 따로 모아서 책의 가장 마지막 챕터에 열거하여 실었다. 상대방이 또라이라거나, 내 아랫 사람이라거나, 내가 요청해야 할 때 등 살아가면서 인생에 한 번 정도는 꼭 겪어야 할 어려운 대화의 순간들을 잘 포착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성심껏 답변까지 제시한 저자들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꼭 지구인이 아니더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우주의 모든 인간들에게 대화는 똑같이 어려운 것이다. 미국인에게도 어렵고 한국인에게도 어렵고 우주인에게도 어려운 대화. 대화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까지도 인정하면서 배려하고 현명한 어휘가 필요하며 때로는 타이밍 선정에도 고심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고도의 기술임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절감했다. 하지만 어렵지 않게 그 대화의 기술을 잘 전달해주는 이런 책들이 있어서 대포자는 되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야.

그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말하라. 그런데 제대로 말하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즉흥적으로 해선 안 된다. 미리 계획을 세워서 말해야 한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고 싶으니 10분이 필요하다든지 1시간이 필요하다든지 원하는 시간을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 중요한 대화를 30초만에 할 수는 없으며 진정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기습적인 대화’식의 대화밖에 할 수 없다면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느니만 못하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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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의 영원한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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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낯선 작품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금 헤맸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델마 할머니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여 델마 할머니의 이야기, 루이스 할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그 두 할머니가 거리로 나서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갈 때 혼란스러웠다. 왜 제목이 델마와 루이스지? 왜 이 두 할머니는 제대로 된 이름이 나오지 않는거야? 결말 꼭지 부분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이 작품의 제목이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 빌어온 것이 맞다는 확인과 함께, 그러나 그 영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 역시 맞다는 확인을 해 준다. 불친절한 저자와는 달리 이 작품의 결말은 친절하다. 두 할머니들은 집을 나온 채로 죽음에 이르지 않을 것이고, 그 두 할머니의 가족들은 할머니들의 장사를 외지에서 치른 후에 겪을 기묘한 분노와 당혹감, 의문에 휩싸인채로 여생을 보내지 않을 터다. 할머니들은 이제까지의 삶이 그러했듯 가족의 옆에서 그들의 염치를 증명하다가 아무런 잡음도 남기지 않고 소천하고 남은 가족들은 또 그들의 생애를 따라 살아가겠지.

 

 첫 작품을 읽고 나서 <아홉번째 파도>, <토기박물관>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짚어내는 지겹고도 지겨운 삶의 맥을 따라 가게 되었다. 그 맥은 참 고단하면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징글징글하면서도 그렇게 쉽게 떨쳐지지 않는 묘한 박동이었다. 분명 더 나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 데로 하지 못하는 삶. 갯바위에서 던지면 분명 아홉 번째 파도에 이르기 전에 월척을 낚을 수 있게 될 좋은 낚싯대를 수중에 쥐고도 예전의 선택을 다시 하게 되는 여자(<아홉번째 파도>의 인물)나 남편이 죽은 후 지나온 삶의 조각을 꿰어 맞추며 이리저리 분열하며 어그적거리는 생애를 살고 있는 여자(<토기박물관>의 미라)의 이야기는 지겹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이 슬픔은 <넝쿨>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내 기억이 진실이 아닐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가 있다. 어제 술값을 계산했던 게 내 친구인 걸로 기억하는데 실은 나였을 때 다음달 카드값 청구서가 꽤나 묵직하겠지. 그리고 내 식사는 가벼워질 터다. 새로 알게 된 거래처 직원이 하도 낯이 익어 대학 동창인 걸로 기억해냈는데 실은 학부 때 미팅으로 만나 아주 더럽게 헤어진 썸남이었을 때, 당분간 회사 생활이 골치 아파지겠지. 기억이란 시간과 공간이 채색하는 대로 갖가지 색을 덧입거나 지우기 마련이다. 더구나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 자기방어력이 가장 강한 생물아닌가. 왜곡되고 비틀려진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불러온 비극. 영국의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이 주제를 아주 세련되고 날렵하게 잘 다루었는데, 그의 소설을 읽을 때보다 좀더 명료하고 쓰린 충격을 준 작품이 <넝쿨>이다. 


 <넝쿨>이 그린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다. 내가 진범이라고 지목하여 사회적으로 사형을 당하고 실제로 투옥되어 형을 살고 있는 인물이 실은 진범이 아니었다고, 진범이 따로 있었다는 전개는 아프지 않다. 그것은 놀라움의 일이지 아픔의 일이 아니다. 내가 아팠던 부분은 주인공 형윤의 의식이었다. 범인을 잡고 난 이후에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공포와 충격. 진범이 밝혀지고 난 이후에는 가해자가 응당 받기에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비난과 자기 자신이 주는 자책이라는 채찍질이 더해져, 그녀는 실로 순교자 같았다. 그녀 자신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그녀의 기억을, 단 한 번도 재생하기 싫은 그 끔찍한 순간들을 여러 번 오가며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징계는 가혹하고 처절했다. 누구에게라도 이 순간의 원인을 떠맡기고 싶어지는 밤,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가해자여서 어디 피할 데도 없어진 형윤은 하느님이야말로 이 게임의 범인이 아니냐고 묻는다. 


 같은 가해자가 된 형오(형윤의 오빠)는 타국으로 도망을 가는 길을 택했으나 그녀는 아니었다. 형윤은 그녀가 짊어져야 하는 생애를 악을 쓰고, 눈을 부릅뜨고 견디는 쪽을 택했다. 이런 삶이라도 견디고 있다는, 도망가고 싶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지만 그저 여기 있기를 택한 형윤의 의지는 <넝쿨>의 뒤를 이어 전개되는, 이 책의 표제작 <단 하루의 영원한 밤>으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분명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개체마다 다르게 시작되는 운명의 차원이나 상처의 방식도 아니라고.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더럽고, 냄새나고, 그저 꿀떡꿀떡 삼켜야 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자는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다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그것은 오직 그들이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50쪽)”

 

 이 한 구절이야말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여러 개의 이야기와 다양한 인물들과 그 수많은 삶을 꿰는 단 하나의 실이 아닐까 한다.

 

 어린 제자와 동행했던 하룻밤에 P선생은 어린 제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때 P선생은 악몽을 막아준다는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이후 P선생의 일생은 온통 악몽의 도가니에서, 도저히 삼켜지지 않는 그 생애를 삼키려 경련하는 시간이었다. P선생의 사생아인 M의 연이이었던 화자는 M으로부터 악몽을 막아준다는 깃털장식을 선물 받았다. 그러나 화자 역시 인간의 도리를 거스르는 상상, 이를테면 헤어진 M을 다시 만나려면 P선생의 장례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다 실제로 P선생의 장례 소식이 전해지고, 그 장례식장에서 화자는 P선생과 그 여인 그리고 M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입밖으로 확인하고는 그런 것 따위를, 누군가의 악몽 따위를 서슴없이 전하고 믿는 부끄러운 인생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 밤, 화자는 생이 통째로 멈출 길 없이, 덜커덕 달리고 있어 사람은 통증을 잊기 위해 꿈속으로 들어가고 참회를 하지만 그 역시 잠꼬대에 불과하며 생은 영원히 반복되는 또 하나의 밤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우리는 지금 모두 밤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밤은 깊어가도 끝나는 대신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그 밤을 빗겨가는 길은 꿈이지만 꿈에서의 생애는 잠꼬대. 그러니 살아있는, 살아가는 태도는 악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이 든 교수의 아이를 가진 미혼모가 된 여자가 보리밥을 욱여넣어 삼키고는 방귀를 뿡뿡 뀌는 우악스러운 몰골일이지라도, 이미 태어나 시작된 존재의 방식을 부정하지 못하고 살아낸다. 고고한 교수가 온갖 오물보다 더한 루머와 오명 속을 악몽을 꾸듯 거닐어도 그만의 존재 방식으로 살아간다. 


 별난 능력도 없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 그냥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도 오늘 현실 속에서 밤 같은 하루를 보냈다. 이미 시작된 생애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존재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윤처럼 자신도 모진 일을 당하고 누군가에게 역시 모진 일을 행했을지라도, 미라처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들을 더듬어 꿰어 맞추는 쓸쓸하고 혼란스러운 말년일지라도, 두 번의 이혼 끝에 실패자(본인 기분으로는 쓰레기)가 된 기분으로 아들의 눈물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아빠(<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의 주인공)일지라도 그냥 거기 살아있음으로 해서 존재한다. 그 안에서 꿈을 꾸거나, 고요한 비밀에서 가만히 빗겨 있는 채로 생이 평탄하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특별한 쓸쓸함을 마주하는 시공인 밤. 밤은 때로 고통으로 때로 위로하며 이들을 덮는다. 그래서 때로 영화 주인공 같은 순간을 보내기도 하고(델마 할머니), 슈퍼히어로가 되기도 하면서 생은 통째로 덜커덕 달리는 것이다.

 

 사람은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심지어 그 자신에 대한 것조차도 다 알지 못한 채로 생애를 살아간다. 그 사이에서 사람이 겪는 혼란과 갈증, 끝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불만들은 그 자신이 유별나게 문제적 사람이기 때문이라거나 어딘가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사람이란 다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겪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한계이자 짐인 것 아닐까. 


 사람이 겪는 이 한계와 짐 그러니까 밤 같은 인생의 어려움을 소설로 그려낸 저자는 위로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이야기를 건넨다. 말하자면 ‘인생 다 그래요. 그 생애는 그 개체만의 것, 아주 사소하고 별거 없지만 이미 시작된 것이고 나 자신에게만은 사소하지 않아요.’라는 쓸쓸하고 달콤한 느낌으로. 
 언젠가 이 쓸쓸하고 달콤한, 특별한 쓸쓸함을 지금보다 더 깊이 느끼게 되는 나이에 나는 내 단 하루의 영원한 밤을 반추하기 위하여 혹은 다가올 밤을 지낼 소박한 용기를 얻기 위하여 이 단편집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세상에는 분명히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있다고.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고 개체마다 다르게 시작되는 운명의 차원이나 상처의 방식도 아니라고. 그것은 존재의 방식이라고. 더럽고, 냄새나고, 그저 꿀떡꿀떡 삼켜야 하는.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자는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다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었고,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가장 중요한 그것은 오직 그들이 동일한 존재의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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