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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평점 :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알았다. 임진왜란이라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비참한 시대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었던 인물을 그 한 분 외에는 몰랐다.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기도 했지만 임진왜란 속에서 자기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면서 누가 감히 민초를 지키기 위하여 나설 수 있었을까. 민초 스스로 도망치듯 목숨을 부지하는 길 외에 또 무엇이 있었을까. 왕도 도망가는 판국이었으니 말이다.
소설을 읽기 전에는 김충선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생소했다. 처음 읽는 이름이라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싶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름을 찾아보고 그 결과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을 4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알았다니.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덕분에 아주 겸손하고 겸허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작품은 이미 사야가(김충선)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귀화를 한 이후의 행주산성을 첫 무대로 출발한다. 일본 최고의 조총부대를 이끄는 수장인 사야가는 말도 통하지 않는 권율 장군에게 조총부대의 일만 아니라 어떤 임무라도 좋으니 명령만 내려달라고 한다. 충과 선. 그는 위로부터 받은 이름 그대로 충실하고 선한 무관으로 한반도 민초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뛰어들었다.
김충선 그러니까 사야가라는 인물은 일본에서는 배신자 내지는 역적으로 그것도 아주 쳐죽일 인물로 취급된다. 그럴 수밖에. 히데요시가 대단한 야심을 품고 조선 정벌에 나섰던 것을 결사적으로 막아낸 인물들 중에 하나가 그이니까. 심지어 그는 본래 일본인 아닌가. 소설가 이주호는 오랜 시간의 안개 사이로 김충선 그러니까 어릴 적 이름은 김석운이고 일본에서 자랄 때의 이름은 히로인 이 인물이 어떻게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일본에서 자라는 동안 겪은 일들을 소상히 그려냈다.
수년의 연구와 고심 끝에 그는 역사적 사실로 전해지는 파편들 사이를 상상력으로 메꾸어 매끈하고 굵직한 작품 한 점을 비로소 완성해냈다. 김충선에 대하여 전해지는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여 소설의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읽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기에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드라마틱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반신반의하며 읽었다.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며 읽었지만, 김충선이라는 인물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그 존재의 무게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심이 없다. 알아야 하고 읽어야 할 인물이라는 점에는 조금도 재론할 여지가 없다.
책의 맨 뒤에 실린 소설가 김별아가 쓴 추천사의 한 부분이 이 작품의 결정적 의미라고 생각하여 인용한다.
‘내가 이 나라에 귀화한 것은 잘되기를 구함도 아니요, 명예를 취함도 아니다. 대개 처음부터 두 가지 계획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요순 삼대의 유풍을 사모하여 동방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함이요, 또 하나는 자손을 예의의 나라에 남겨서 대대로 예의의 사람을 만들고자 함이라.’
실제로 김충선이 [모하당집]의 녹촌지에서 밝힌 귀화의 까닭이다. 이것이 정말 어린 용병이 꿈꾸던 답일까? 소설은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다. [역랑]은 문제적 인간인 김충선과 그를 새롭게 만나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고도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414-415쪽
p.s. 녹촌지의 저 글을 읽으면서 정말, 이 인물은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걸 사무치게 느꼈다.
"인생이란 되돌릴 수가 없지. 어떤 잘못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방도는 없을 게야. 하지만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면 그것도 다행이 아니겠는가?" 새로운 인생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말처럼 정말 죄책감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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