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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
단노 미유키 지음, 박제이 옮김 / 지식여행 / 2018년 9월
평점 :
돈은 필요하지만 사표를 냈어. 왜냐면 통장의 잔고보다 내 멘탈이 더 걱정되기 때문이야.
제목만 읽으면, 그러니까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 저자의 외면만 보면 ‘뭐 고된 일은 하기 싫고 놀고는 싶고, 반백수로 어영부영 살고 싶다. 그야말로 욜로욜로욜로인가?’ 라고 오해하기 딱 십상인 제목이다.
하지만 서른 아홉에 백수였다가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을 일했다가 다시 백수가 되기로 선택한 저자가 나날이 남긴 짧은 기록들을 차분히 읽어가다보면 사표를 냈다는 저자의 선택이 철없는 치기나 나태 혹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어디, 확인만 할 뿐인가? 그래, 나도 그래. 진짜 네맘내맘. 저자와 나이까지 비슷해서 그런가 어쩜 이렇게 같은 마음, 대동단결, 위아더월드일수가!
그래, 돈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나를, 내 시간을, 내 경력과 나라는 인간의 에너지를 버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런 곳에서 내 노동력을 쓰면서 돈을 벌고 싶다. 적게 벌어도 괜찮다. 그냥 그런 곳이 필요할 뿐이다.
마흔. 도대체 이 회사에서, 이 공동체에서 내가 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저자는 ‘이 회사에서 새로 익힌 기술이나 얻은 인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제공했다. 건강 검진은 지자체에서도 받을 수 있다. 연금 제도에 거는 기대는 없다. (중략) 정직원으로 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건 회사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대출을 받아야 할 때처럼 말이다.’ 라고 정리했다. 그래서 회사를 정리하고야 만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아니, 이건 너무 허세다. 나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를 찾는다고 해야 맞겠다. 내 존재 가치도 모르겠는데 인간이라는 거대 분류 따위 내 소관이 아닌 것을.
큰 재미나 깨달음을 얻자고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그냥 나와 같은 처지의 누군가는 다른 나라 땅에서 어찌 사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함에 저자가 공명했다. 내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었다는 뜻이다.
단노 미유키씨. 지금은 백수인지 직원인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건강하세요. 안부와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