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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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섣불리, 가볍고 부담없이 읽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읽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어떤 비밀을 손에 쥐어본 느낌이다. 멀리서 바라만 보며 형태가 관찰한 것이 아닌, 촉감과 결이 생생하게 손 안에 남듯 분명한 생물을 쥐어보고 난 다음의 느낌이다.

북한의 현실을 7개의 단편에 담아 증언한 작가는 50년생이라고 했다.

큰 별도 세상에 많고 많건마는 하필 하룻밤 사이 작디작은 빛을 내고 흔적도 없이 물고기 밥이 되는 반디를 필명으로 했을까.

책 앞표지의 첫 날개를 읽을 때부터, 사실 마음이 아팠다. '고발'에서 알려주고 있는 인권탄압의 현장을 그가 살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 아팠지만, 이토록 날렵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작가가 그 타고난 성질을, 하늘이 준 귀한 선물을 감추고 이런 필명 속에 숨어 책을 냈다는 현실도 아팠다.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원고가 밖으로 밖으로 향하는 것을, 그의 손을 떠난 종이뭉치가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어렴풋이 가늠하면서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 같다.

발각될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이 글이 과연 어떤 것을 불러올 수 있을까 하는.....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를 지지하고, 그와 함께 저항하며 싸우는 것이라고 어느 독자가 썼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저들이 북녁에서 이토록 혹독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고 해서 그게 어떤 힘이 되겠나. 그냥 알고만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목숨을 건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독자도 응당 대가를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하지만 과연 북한의 가공할 현실을 고발한 이 글을 읽고, 마치 나의 삶이 그러한듯이 전율한 후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만 할까.

 

우선은...

3월에 열린다는 북한 인권 주제 콘퍼런스를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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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 우리가 잃어버린 보수의 가치
로저 스크러튼 지음, 박수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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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수주의자다.

한 때는 부분적 진보주의자라거나 수정주의자라거나 여러 입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겠다. 나는 보수주의자다.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하면 종이가 변색되고 활자가 세로로 떨어지는 옛날 책을 보는 것처럼 나를 아주 기이하고 생소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 애가 왜 그렇게 꽉 막혔어?’라는 소리 없는 비난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전통이란 보존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이고, 남과 여가 하나가 되어 이루는 가족이란 단위는 절대 흔들려서도 도전 받아서도 안 되는, 사회의 세포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때로 같은 진영의 다른 보수주의자들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전통이란 현재와 닿아 있지 않으면 전통이라고 불릴 수 없다. 현재가 있기에 전통이 있는 것이다. 현재와 이어져 있지 않은 전통은 과거의 잔재일 뿐 그것은 역사도, 가치도 아니다. 과거의 잔재가 현재를 괴롭게 한다면 마땅히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는 게 옳지 않은가?

 

이때 여기서 피할 수 없는 의문들을 만난다. 과연 무엇을 전통이라고 하고 무엇을 청산해야 하는 관습이라고 분류할 것인가? 분류의 기준은 무엇인가? 절대 도전받아서도, 흔들려서도 안 되는 가치가 과연 있는가? 그런 가치는 어떤 것이며 그것의 근거는 무엇인가?

옛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새것이 항상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현재의 가치관과 부딪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관습은 청산해야 하겠지만, 새로운 질서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폄하하고 인간의 본능인 관계를 방해한다면 그것을 도입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지는 신중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는 각 꼭지마다, 페이지마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다. 저자는 보수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썼고, 보수주의자인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저자가 보수주의에 대하여 쓴 모든 부분에 공감해서가 아니다. 보수주의가 소위 비판받는 단순한 꼴통이 아니라는 것을 세밀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족, 종교, 노동, 정치, 학교 등 사회의 다양한 영역과 구성 단위 그리고 구조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자의 시각으로 꼼꼼히 바라본다. 현상을 분석하고 사건의 발생과 결과를 설명하면서, 진보의 바람에 휩쓸려 자칫 상실하게 되는 중요한 유산들(평화, 자유, 질서, 공공심 등)은 보존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그를 위하여 보수주의가 존재한다고 강변한다.

 

나는 변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새로움을 쉽게 선택하지는 않는다. 진보적인 것, 발전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기존의 것들 중에 아주 중추적인 부분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소중한 부분들이 흔들리고 도전받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변화와 질서의 공존이나 전통과 개혁의 교집합이라는, 어쩌면 말도 안 되는 영역으로 나는 나아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합리적 보수는 아마도 당분간은, 계속 나에게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을 것 같다.

 

덧붙이자면, 이 책의 저자(비록 노동계급일지라도 영국의 백인 남성이다)가 제시한 가치 판단과 행위들이 합리적 보수의 표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의 사상 중 이상적인 보수주의라고 박수를 보내고 싶은 부분은 분명히 있다.

 

보수주의는 모든 성숙한 사람들이 선뜻 공감할 수 있는 생각, 즉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파괴되지만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특히 우리에게 공동의 자산으로 주어지는 훌륭한 유산, 즉 평화, 자유, , 공손함, 공공심, 재산 및 가정생활의 보장 등에 적용되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을 누리려면 우리는 타인의 협조에 기댈 수밖에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무엇 하나 누릴 수 없다. 훌륭한 유산을 파괴하는 작업은 빠르고 수월하고 신나지만, 창조하는 작업은 느리고 힘들고 지루하다. 이것은 20세기의 교훈 가운데 하나다.

6쪽 머리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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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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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는 고등학교 동창 중에 참 쉬크한 여성이 하나 있다. 나는 혈액형과 성격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친구에게 만큼은 예외다. 몸 전체에 쉬크한 B형 피가 흐르는 그녀는 '쿨한 B형 여자'라는 말이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와 알고 지내기 시작할 때 즈음, 그의 쿨한 한 마디 덕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3월 말이었던 것 같다. 아직 학교가 어마어마하게 추웠으니까. 윤리 선생님인가, 국어 선생님인가가 내주셨던 숙제 때문에 나는 꼭 그날 저녁에 피시방에 가야만 했다. 당시는 피시방 유행이 막 번지기 시작했던 시기라 그때의 나는 한번도 피시방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나는 무엇에도 적응이 느리고, 무얼 해도 꼭 나만의 안착 시간이 필요한 유형의 인간인지라 미지의 피시방을 가이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쉬는 시간 동안 나는 가이드를 물색했고 10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쿨한 B형 그녀에게 '저녁에 피시방을 같이 가자'고 제의했지만 그는 쏘쿨하게 '내가 왜?'하고 돌아섰다.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로) 심쿵한 멘탈을 부여잡고 나는 어찌어찌 종례를 마치고 저녁에 홀로 피시방을 찾아갔다.

 

장담하건데, 이 B형 친구는 3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을 기억도 못할 것이다. 단언컨대 이 친구는 그 어떤 부정적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진심으로 '내가 왜 너랑 피시방에 가야해?'라는 의문을 표현한 것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쿨내 진동하는 몇 초의 순간을 간직한 채, 덕분에 아직도 그녀에게 카톡을 하거나 연락을 할 때 나도 모르게 긴장하곤 한다. 또 한 번 '내가 왜?' 라는 답을 듣게 될까봐.

 

내가 피시방이라는 공간을 걱정한 이유는 컴퓨터 사용에 익숙치 못하다거나 낯선 공간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많고 소란한 곳에서 방전될 나의 에너지 때문이었다. 너무 시끄러운 곳에 가거나 너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나는 항상 쉽게 지치곤 했다. 환경과 사람이 낯설어서라기 보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소리와 각종 기운들과 여러 대화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랬다. 그런 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항상 꼭 혼자 있고 싶었다. 내 방이든, 방과후 운동장이든, 도서관이든. 그래서 나는 내가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밤새도록 클럽에서 춤을 추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소란한 술자리에서 제일 시끄럽게 떠드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다중인격인가 심각하게 의심을 하기도 했다. ​

 

다행스럽게도 그런 중증의 정신병이 아니었던 나는, 차갑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한 사람으로, 명랑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사람으로, 말수가 적기도 하고 수다스럽기도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적지 않다. 환경에 민감하고 에너지의 회복 속도가 평균보다 느린 사람들은 때론 내성적이거나 차가워보이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충분하게 차서 여유가 있을 때는 외향적이고 명랑하게 생활하기도 하니까.

 

덴마크에서 상담지도사,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이는 일자 샌드는 그의 책 [센서티브]에서 '민감한 사람'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책에 쓴 민감한 사람이란 이런 특징들이 있는데, 실제로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내가 민감한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다. 내가 그랬듯이.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장소에 있을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략) 남들보다 민감한 우리는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통의 임계점이 낮기 때문에 주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더 큰 고통을 받는다.

35쪽

 

그들은 남들도 그들처럼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민감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반응이 느리고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은 논쟁에서 대부분 패배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뒤늦게 자기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옳았는지 깨닫고 후회한다.

42쪽

 

이런 성향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민감한 성격은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고통을 주었을 때, 금방 자기가 한 행동을 후회한다는 점에서 경계선 성격장애와 다르다. 경계선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더 쉽게 화를 내고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데 반해, 민감한 사람들은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

51쪽

 

특히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잘못될 수 있는 결과를 미리 예축하고 대비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신의 행동의 결점에서 찾으려고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남들의 비난을 받는 불쾌한 경험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탓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67쪽

 

신생아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평균보다 민감도가 높은 유형이 전체의 약 2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즉 사람들 열 명 중에 두 명 정도는 민감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누구보다 민감한 감각과 성품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 그간 자신이 상담해 온 많은 사람들의 사례 그리고 몇 가지 연구 발표 등을 들어 민감함이란 하자가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도 자책하며 움추리고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민감한 사람들에게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전하는 위로라고도 한다. 저자의 동기가 정말 따듯하고, 책 전반에 담긴 내용은 유익하다.

 

책 뒤에 민감도 자가측정 테스트가 실려 있어서 해보니 나는 90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저자는 60점 이상이면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이 테스트의 결과를 의존하지는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이란 어떤 특정한 유형과 분류로 구분되거나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70억의 사람은 저마다의 유형이 있기에 사람은 하나의 분류로 단순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민감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게 나와 비슷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비슷한 것이지 100퍼센트 맞을 수는 없다. 다만, 세상에 이상하도록 민감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구나, 싶어 위로가 되고 나 조차도 잘 이해가 안 되던 나의 유별난 구석은 이런 심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또 다시 한 걸음,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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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폴 메이슨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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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한계 혹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사설이나 서적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

자본주의 속에 태어나 자본주의라는 질서와 체제가 마치 내 몸에 흐르는 피처럼, 콧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나에게 이런 흐름은 아주 당황스러운 일이다.

자본주의 외에 다른 경제의 세계를 경험해본 적도 없거니와 다른 질서의 출현을 생각해본 일도 없는데, 이 세상은 마치 당장이라도 다른 프레임으로 갈아 입으려는 것 같아서 그렇다.

트랜스포머에서 봤던 그 외계로봇처럼, 멀쩡하던 스마트폰이나 자동차가 내일 아침에 난데 없이 다른 물건이 되어 있다면 나는 당장 내일부터 어떤 경제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그간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돈의 개념과 가치에 대한 의문, 한국의 자본주의가 보여준 수없이 많은 부조리 때문에 나는 경제 관련 서적은 아주 골치 아픈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어떤 책을 읽어봐도 딱히 답이 없으니까.

어차피 내가 무지막지한 자본가도 아닌 마당에,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거창한 비전도 꿈도 심지어 능력도 없는 마당에 내가 알자고 덤벼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였다.

골치 아픈 건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이 스트레스 없는 삶의 원칙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런 나조차 어쩔 수 없이 최근의 경제서적들을 붙잡고 읽게 되는 이유는 별거 없다.

 

장사가 안 된다. 뉴스로 전해 듣는 간접 경험이 아니라 실제 경험으로 그렇다. 당장 작년 이맘 때의 반 정도 밖에 매출이 안 나온다.

내가 노동력을 덜 써서? 아니면 전략을 잘못 잡아서? 아니다. 우리 가게만 그랬으면 내부적인 문제구나 하고 진단했을텐데 그게 아니다. 이 동네가 다 그렇고, 온 나라가 다 그렇다.

너무너무 속상한 나머지, 대체 왜 이런 시대가 왔는지 이유를 알아야 속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

 

[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은 그런 동기에서 발견한 책이다.

기술로 인해 괴물같은 생명력과 발전 에너지를 얻은 자본주의가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에 의해 죽어 가고 있는 현실.

영생 할 것 같았던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는 신이 아니었다. 지구촌에 어마어마한 부를 낳은 이 자본주의의 생명력이 다해가는 것을 우리는 지금 온몸으로 겪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0년대에 들어 발생한 세계 곳곳의 사건과 여러 경제학자들의 진단 그리고 저자 개인이 취재하며 겪은 다양한 사례들을 근거로 죽어가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 혼란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변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지 알기 위해서는, 방향키를 제대로 돌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있는 시대적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한 대안이 현실적이다 혹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은 내가 내릴 수 없다. 아는 게 있어야 진단도 하는 법.

날고 기는 경제학자들이 십년 전 혹은 몇년 전에 내린 진단도 빗나가는 판국에 나 같은 선무당이 앞날을 점칠 수야 있나.

다만 한 가지, 이 책은 2017년 지구의 경제 현실에 대해 잘 일러준다. 5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에는 무게 만큼이나 묵직한 현실이 잘 들어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아비규환을 겪고 있는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대체 왜 이런 시대를 살게 되었나에 대한 어느 정도의 풀이를 제공한다.

일단은 그것만이라도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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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DIARY (Future Me 5 years)
윤동주 100년 포럼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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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윤동주는 청춘으로 각인된 시인이다.

나에게 각인된 윤동주는 한여름의 외로운 햇빛과 겨울 밤의 부드러운 장막이 교차하는, 묘한 촉감으로 만져지는 시인이다.

어디서라도 그 이름을 읽거나 듣거나 어쩌다 생각하게 될 때마다, 윤동주 말고는 다른 이름에게서는 떠올릴 수 없는 특정하고 고유한 기분과 정서를 일으키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이름이, 동그랗게 입 안에서 일어나 밖으로 스미듯 흘러나오는 소리로 지어졌기 때문일까.

그의 시 속에서 태어난 정서들은 시를 읽는 자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동그랗게 일어나 마음으로 스미듯 흘러간다.

어쩔 수 없다. 그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라면 더 사랑하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윤동주 다이어리는 윤동주 탄생 100년을 기념하여 그가 애독했던 시를 싣고 매일 매일의 단상을 적을 수 있도록 구성안 5년짜리 다이어리다. 최근에 5년 다이어리들이 여러가지 출간되는데, 그 중에서도 윤동주를 좋아하거나 시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깊은 밤 잠들기 전에 오롯이 혼자만의 짧은 사색을 즐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특별히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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