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티브 -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섬세한 심리학
일자 샌드 지음, 김유미 옮김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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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는 고등학교 동창 중에 참 쉬크한 여성이 하나 있다. 나는 혈액형과 성격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친구에게 만큼은 예외다. 몸 전체에 쉬크한 B형 피가 흐르는 그녀는 '쿨한 B형 여자'라는 말이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와 알고 지내기 시작할 때 즈음, 그의 쿨한 한 마디 덕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3월 말이었던 것 같다. 아직 학교가 어마어마하게 추웠으니까. 윤리 선생님인가, 국어 선생님인가가 내주셨던 숙제 때문에 나는 꼭 그날 저녁에 피시방에 가야만 했다. 당시는 피시방 유행이 막 번지기 시작했던 시기라 그때의 나는 한번도 피시방이라는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나는 무엇에도 적응이 느리고, 무얼 해도 꼭 나만의 안착 시간이 필요한 유형의 인간인지라 미지의 피시방을 가이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쉬는 시간 동안 나는 가이드를 물색했고 10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쿨한 B형 그녀에게 '저녁에 피시방을 같이 가자'고 제의했지만 그는 쏘쿨하게 '내가 왜?'하고 돌아섰다.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로) 심쿵한 멘탈을 부여잡고 나는 어찌어찌 종례를 마치고 저녁에 홀로 피시방을 찾아갔다.

 

장담하건데, 이 B형 친구는 30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을 기억도 못할 것이다. 단언컨대 이 친구는 그 어떤 부정적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진심으로 '내가 왜 너랑 피시방에 가야해?'라는 의문을 표현한 것 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쿨내 진동하는 몇 초의 순간을 간직한 채, 덕분에 아직도 그녀에게 카톡을 하거나 연락을 할 때 나도 모르게 긴장하곤 한다. 또 한 번 '내가 왜?' 라는 답을 듣게 될까봐.

 

내가 피시방이라는 공간을 걱정한 이유는 컴퓨터 사용에 익숙치 못하다거나 낯선 공간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많고 소란한 곳에서 방전될 나의 에너지 때문이었다. 너무 시끄러운 곳에 가거나 너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나는 항상 쉽게 지치곤 했다. 환경과 사람이 낯설어서라기 보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소리와 각종 기운들과 여러 대화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랬다. 그런 곳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항상 꼭 혼자 있고 싶었다. 내 방이든, 방과후 운동장이든, 도서관이든. 그래서 나는 내가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인 줄 알았다. 성인이 된 후에는 밤새도록 클럽에서 춤을 추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소란한 술자리에서 제일 시끄럽게 떠드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다중인격인가 심각하게 의심을 하기도 했다. ​

 

다행스럽게도 그런 중증의 정신병이 아니었던 나는, 차갑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한 사람으로, 명랑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사람으로, 말수가 적기도 하고 수다스럽기도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적지 않다. 환경에 민감하고 에너지의 회복 속도가 평균보다 느린 사람들은 때론 내성적이거나 차가워보이기도 하지만 에너지가 충분하게 차서 여유가 있을 때는 외향적이고 명랑하게 생활하기도 하니까.

 

덴마크에서 상담지도사,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이는 일자 샌드는 그의 책 [센서티브]에서 '민감한 사람'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책에 쓴 민감한 사람이란 이런 특징들이 있는데, 실제로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내가 민감한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다. 내가 그랬듯이.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장소에 있을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략) 남들보다 민감한 우리는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통의 임계점이 낮기 때문에 주변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더 큰 고통을 받는다.

35쪽

 

그들은 남들도 그들처럼 인간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민감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민감한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반응이 느리고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은 논쟁에서 대부분 패배하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뒤늦게 자기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옳았는지 깨닫고 후회한다.

42쪽

 

이런 성향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민감한 성격은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고통을 주었을 때, 금방 자기가 한 행동을 후회한다는 점에서 경계선 성격장애와 다르다. 경계선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더 쉽게 화를 내고 방어적인 행동을 하는데 반해, 민감한 사람들은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

51쪽

 

특히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잘못될 수 있는 결과를 미리 예축하고 대비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신의 행동의 결점에서 찾으려고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남들의 비난을 받는 불쾌한 경험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탓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67쪽

 

신생아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평균보다 민감도가 높은 유형이 전체의 약 2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즉 사람들 열 명 중에 두 명 정도는 민감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누구보다 민감한 감각과 성품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 그간 자신이 상담해 온 많은 사람들의 사례 그리고 몇 가지 연구 발표 등을 들어 민감함이란 하자가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도 자책하며 움추리고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는 민감한 사람들에게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전하는 위로라고도 한다. 저자의 동기가 정말 따듯하고, 책 전반에 담긴 내용은 유익하다.

 

책 뒤에 민감도 자가측정 테스트가 실려 있어서 해보니 나는 90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저자는 60점 이상이면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이 테스트의 결과를 의존하지는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사람이란 어떤 특정한 유형과 분류로 구분되거나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70억의 사람은 저마다의 유형이 있기에 사람은 하나의 분류로 단순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민감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게 나와 비슷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비슷한 것이지 100퍼센트 맞을 수는 없다. 다만, 세상에 이상하도록 민감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구나, 싶어 위로가 되고 나 조차도 잘 이해가 안 되던 나의 유별난 구석은 이런 심리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렇게 또 다시 한 걸음, 나는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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