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중력 - 사소하지만 소중했고 소중하지만 보내야 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숙명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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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몇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내다 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집을 두고는 짐이 정리되지 않았다. 짐과 집은 나의 삶을 한자리에 묶어놓는 닻이었고,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중력이었다. 그런 것을 ‘삶의 중심’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삶에서는 가족이나 직장이 할 법한 역할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중심을 ‘나’로 정했기 때문에 또 다른 중력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8쪽

 

 나는 가난뱅이다. 내 통장은 내일을 살지 않는다. 나와 내 통장은 둘이 한 몸이 되어 그저 오늘만 산다.
 그런 나에게 소비란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건 공기를 마시는 일이다. 자작나무 숲으로 여행을 갔던 날, 가슴을 활짝 열고 폐에 꾹꾹 눌러 담을 것처럼 그 맑은 기운을 들이마시는 일 같기도 하고 고깃집에서 나와 옷에 배인 음식점 냄새를 진저리를 치며 맡는 일 같기도 하다. 때로는 내 앞서 걸어가며 담배를 피운 예의 없는 자식이 내뿜은 담배연기를 어쩔 수 없이 들이마시는 일 같기도 하고, 피로에 절은 늦은 밤에 마음을 위로해주는 달빛 젖은 밤공기를 마시는 일 같기도 하다. 


 할 때의 기분은 각양각색이지만 하고 나서의 일은 대부분 동일하다. 물건이 남겨진다. 들숨 후에 날숨이 이어지듯 돈을 지불하면 물건이 수중에 들어온다. 소비는 굉장히 복잡하고 예민하고 복합적인 것이지만 그 결과는 항상 단순하고 명료하다.

 날숨을 다 비우면 들숨이 다시 필요하다. 바지가 한 벌 있다고 다른 바지 안 사냐. 모든 인간들은 호흡을 하듯이 물건을 사들인다. 자꾸 자꾸 물건을 사들여서 쌓아둔다. 들숨이 제대로 되려면 날숨 그러니까 비우기가 잘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의 소비는 실상 비우기에는 거의 젬병이다. 한없는 들숨, 들숨, 들숨. 그러다보니 내 수중에 들어와 있던 물건들과 내가 위치를 바꾸는 일이 자연스레 벌어진다. 주객이 전도된다고 내가 물건의 주인이 아니라 물건이 나의 주인이 되고 마는 것.  


 이숙명 작가가 그의 에세이에서 ‘짐과 집이 나의 삶을 묶어놓는 닻이었고, 나를 현실로 끌어당기는 중력’이라고 이야기한 건 바로 이런 세태를 이야기한 것 아닐까.
 하지만 저자가 이내 자기 삶의 중심을 그 자신으로 정했다고 했듯 나 역시 내 삶의 중심과 주인을 통장이나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이라고 정했기에 다른 중력들은 거추장스럽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훌훌 털어버리고 정리하고 비우는 게 답이다.

 [사물의 중력]은 이숙명 작가가 그를 묶어두는 그의 사물의 중력을 어떻게 털어버렸는지를 담은 기록이다. 작가 생애의 첫 소유라고 부를만한 물건이었던 애착인형, 자취 인생의 표상으로 삼을 만한 손톱깎기, 가난뱅이여도 가질만한 물건인 명품백이나 명품의자,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요긴한 밥솥. 그는 끊임없이 물건을 소유했다가 정리했다가 다시 소유했다가 또 다시 정리해버리곤 한다. 저자의 사물기를 읽노라면 모든 인간의 인생 플로우가 이와 같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 재미있다. 타인의 취향, 생활기, 그 물건들의 서사를 읽는 게 뭐 그리 재미있겠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저자와 내가 소비와 소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삶이 자세가 비슷해서인가.

 

 

 취향 없는 사람의 눈에는 이 세계가 포화 상태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한다. 더 새로운 것, 더 멋진 것, 더 편리한 것을 갖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고는 폭탄 돌리기하듯 서로에게 짐을 떠넘긴다. 어쩌면 우리는 그걸로 공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공허감이든 허영심이든 불안함이든 뭐든, 채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141쪽

 

 

 물건이든 집이든 뭐든, 쓰임에 맞으면 그걸로 족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편한 운동화를 사려고 해서 운동화를 샀으면 편하면 그뿐이다. 거기에 더 얹어, 내가 소유하지 않은 디자인을 또 하나 장만해야겠다든가 더 유명한 브랜드의 신상을 사겠다고 덤비는 타입이 아니라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게 좋다. 지금 짊어지고 사는 것만으로도 내 작은 방은 이미 꽉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에게 배웠다. 하나를 버리기 전엔 하나를 사지 않는다. 사면서 버릴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버려 놓고 사러 간다.

 위의 인용구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에 공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은 아주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 머리말부터 저자에게 깊은 공감을 보내며 단번에 에피소드 전체를 읽게 될 것이다.
 아, 진짜. 더 버리고 싶다. 사물의 중력이 더 이상 나를 무겁게 묶지 못하도록 더 가볍게. 
 

취향 없는 사람의 눈에는 이 세계가 포화 상태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다들 무언가를 더 갖고 싶어 한다. 더 새로운 것, 더 멋진 것, 더 편리한 것을 갖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고는 폭탄 돌리기하듯 서로에게 짐을 떠넘긴다. 어쩌면 우리는 그걸로 공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공허감이든 허영심이든 불안함이든 뭐든, 채워지지 않을 무언가를.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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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발견 - 이근철의 고품격 컬처 수다
이근철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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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워낙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 채널을 돌리다 이 프로그램의 재방송이라도 보게 되면 바로 리모컨을 내려놓고 방송에 빠져들곤 한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온 아재 3인방의 한국체험기를 방영 중인데 생소한 한국문화에 온몸을 맡기기를 마다않는 이 아저씨들의 마인드가 매우 인상적이다. 로버트였나?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인터뷰를 했더랬다. 한국에 와서 미국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한국에 왔으면 한국문화를 배우고 가고 싶다고. 그런 그들은 아침식사조차 미국식으로 먹고 싶지 않다며 한국의 로컬 푸드를 찾아 거리를 누빈다. 호텔 직원이 자주 간다는 근처 식당을 소개 받은 그들은 말도 통하지 않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현지 음식을 주문하곤 그 음식이 나오자 맛있다는 감탄을 연발하며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게, 바로 그 전날 김치박물관에서 김치를 담그고 왔던 그들이 그 배운 풍월을 그대로 살려 오이소박이니 파김치를 음미하며 김치 양념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장면이다. 김치가 생소한 외국인들이 한국식 밥상에 오르는 다양한 김치를 단번에 즐기기는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은 걸 당연한 듯 씹고 맛보고 즐기는 미국 아재 3인방을 보며 여행도 문화도 배운 만큼 만끽하게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김치박물관에서의 경험은 미국 아재들이 한국식 밥상을 보다 풍부하고 거침없이 느끼게 하는, 한국 식문화의 저 밑바닥까지 단번에 가 닿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치트키가 아니었을까.
 이근철 선생이 쓴 [교양의 발견]은 타국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저런 김치박물관 같은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고품격 컬처 수다라는 말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이 책은 19개 나라의 문화를 보다 쉽게, 보다 깊게 이해하고 맛보고 즐기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치트키의 역할을 한다.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도전이 수반된다. 하지만 여행 한 번 가자고 백과사전 펴놓고 공부하는 건 어딘가 좀 미련한 일이다. 때문에 여행서적이나 각종 문화, 역사 서적들은 가볍게 여행을 다녀오는 김에 그 나라를 좀더 이해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이드를 제공한다. [교양의 발견]은 그 가이드에 스토리텔링을 더했다. 이렇게 스토리를 더한 각 나라의 문화이야기는 독자에게는 문자 그대로 ‘교양’이 된다. 
 


 나는 교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무슨 허풍이나 있는 척으로서의 교양이 아니라, 지식으로서의 교양이라는 안경은 내가 더 높고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김치 하나만 제대로 배워도 한국식 밥상을 대하는 여행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거꾸로 나 역시, 타국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고 그 나라의 식탁을 접한다면, 그 식탁의 요모조모가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나 맛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교양의 발견]은 읽는 보람과 재미가 함께 있는 책이다. 교양 교과서라고 부를 만한 알찬 내용도 좋고 영어 문장이나 키포인트 기재 등 깨알 같은 팁들이 곳곳에 있어 한 장, 한 장 읽는 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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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둘째 별글아이 그림책 4
서숙원 지음, 김민지 그림 / 별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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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맏이다.
맏이로 사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너가 누나니까 참아. 한 살이라도 네가 더 어른이니 네가 잘 돌봐줘라. 맏이가 잘 해야 동생들이 다 보고 배우는 거야. 원래 동생이 잘못하면 큰 놈이 다 혼나는 거다.’ 등등등등.... 왜 내가 가장 먼저 태어난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책임과 부담을 다 감당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살면서 진짜 억울한 일도 많았고 정말 속 터지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동생을 미워한 적도 있다.

 

그러나 둘째는 둘째대로 얼마나 힘이 드는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걸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다. 나는 내 동생이 나 때문에 그렇게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줄 몰랐다. 뭐든지 내가 쓰던 걸 물려 받고, 학교를 가면 자기 이름이 아닌 누구누구 동생으로 불리고, 친척들을 만나면 항상 나보다 아래로 나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오만 설움을 다 당했다는 것이다.


속내를 들어보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이걸 조금만 더 일찍 알고 동생의 속사정까지 헤아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서숙원 작가가 글을 쓰고 김민지 작가가 그림을 그려 탄생한 [내 이름은 둘째]는 나중에 내 아이 중 맏이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아, 그 전에 먼저 남편하고 같이 보고 싶은 책이다. (슬하에 자녀를 하나를 둘지 둘을 둘지, 어쩌면 결혼이라는 걸 아예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의 모든 둘째의 심정을 이렇게 낱낱이 해부해서 담아낸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맏이로 사는 것도 참 피곤하고 막내로 사는 것도 참 힘이 들지만, 이 책에 담긴 둘째의 심정만 하랴. 맏이에게 치이고 아랫놈에게 치이는 둘째의 신세. 그래서 둘째들이 독립적이고 때로는 전투적이며 적극적이고 호기로운, 그러면서도 눈치도 빠르고 속이 깊은 타입이 많은건가? 내 주변에 삼남매 (혹은 삼형제나 세 자매) 중 둘째들이 유난히 저런 성격들이 많다.

 

내 이름은 첫째, 내 이름은 막내. 기왕이면 이렇게 시리즈로 나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나란히 조르륵 진열해놓고 둘째는 첫째의 사정을, 첫째는 막내의 사정을 이렇게 책으로 읽어본다면 굳이 부모님의 중재가 없이도 형제들이 서로의 사정을 좀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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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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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읽고 나서기 때문일까. 영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이 책의 제목에 ‘품격’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을 보고 ‘역시,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할 때에 신사라든가 품격이라든가 하는 귀족적인 느낌을 버릴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쩌면 저 품격이라는 단어를 반어의 용도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영국은 유럽의 작은 섬나라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신사, 팍스 브리타니카, 셰익스피어, 산업혁명, 비틀즈 그리고 브렉시트. 식견이 좁은 나는 이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세계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 영국이 강력한 해상제국이었고 단순히 군사력으로만이 아니라 문화로도 강성한 나라였다는 역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영국이라는 나라가 누렸던 부흥과 융성의 힘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제국의 품격>을 지은 박지향 교수는 평생을 영국사 연구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통 한 국가의 연구에 매진하게 되면 그 국가에 대해 친화적인 입장이 된다는 편견이 있는 나는 책을 읽기도 전부터, 심지어 제목에조차 품격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일종의 찬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역사서를 읽을 때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같은 역사라도 해도 저자에 따라 그리고 그 책을 집필하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관점의 역사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라는 과거는 현재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 현재에서 어떤 잣대를 가지고 과거를 비추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으로 달리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고정된 시선에서 영국의 역사를 비추는 것을 경계했다. 영국 역사의 양과 음을 가능하면 균형 있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 역사의 양음을 함께 이야기하면서도 비판이나 비난조보다는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서로서 교과서다운 화법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주요 역사들이 준 영향, 그 의미 등을 설명하고 식민국가 영국을 다루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도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담아낸다. 영국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와 밀접하게 관련한 세계 역사에 대해서도) 아주 얕게 대충 알고 있는 상태의 나에게 영국 문학을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토양을 다져준 책이다.

 


특히 교황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파문(1570)한 후 가톨릭을 제거하는 것은 잉글랜드인들에게 애국적인 일이 되었고, 바다 사나이들도 가톨릭 세력을 제거하여 나라의 방위를 철저히 하는 데 동원되었다. 해적 행위조차 개신교 신앙과 연결되었다. 이 시기 스페인과 벌인 모든 전쟁에서 해적 행위는 ‘즐거운 도둑질’이면서 동시에 개신교 신앙을 지키는 ‘성전’이고 ‘자유를 지키는 위업’이었다. ‘종교와 자유와 돈’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40쪽

 

 

 반노예제 운동에 직접적으로 불길을 지핀 사건은 1781년 노예무역선 종zong호 사건이었다. 종 호는 과도하게 많은 노예를 싣고 리버풀을 떠나 자메이카로 향하다가 보급 부족과 위생 문제 등 여러 문제점에 봉착했다. 그러자 선장은 133명의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익사시킨다는 사악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게다가 선주는 이 사건으로 입은 손해를 보험 회사가 보전해주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무자비하게도 선장이 배를 구하기 위해 ‘화물’을 바다에 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것이 반노예무역 운동을 자극한 계기가 되었다.
 160쪽

 


 잘생긴 외모와 걸출한 능력을 갖춘 네루는 인도인들에게는 마치 왕자 같은 인물이자 대중적 우상이었다. 인도를 근대화하는 기획, 즉 근대 국가, 민주주의, 근대적 사회를 형성하는 데 있어 네루의 역할은 간디를 능가했다. 네루는 희망했던 것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인도 역사에 남긴 영향력과 유산은 중요하다. 물론 네루에 대한 평가도 간디에 대한 평가 만큼이나 통일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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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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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진짜 진실이 우리가 바라는 진실보다 낫다.’

 얼마 전에 책 한 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괴짜 요리사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음식과 식재료를 비롯한 현지의 생생한 문화를 체험한 내용이었는데, 진짜 웃겼다. 그가 체험하는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저자 본인이 얼마나 유쾌하고 명랑하고 괴팍한지, 그의 감상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주 우연히, 나는 그 책의 저자가 올해 자살했다는 소식을 읽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저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글에서, 나는 한참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호텔에서 자살했다는 그의 안식을 비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명랑하고 유쾌한 껍데기로 가린 그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하지만 곧, 그의 사정을 아는 게 생각만큼 괜찮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껍데기가 유쾌할수록 그 안에 감춰진 사정은 더욱 음울하고 어둡겠지. 


 이제 나에게 그 저자의 책은 더 이상 기분 좋은 여행기나 식도락 체험기가 아니다. 심연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한, 어딘가 께름칙하고 껄쩍지근한 사건으로 남았다.

 

 죽음이란 동전의 양면이다. 진짜 진실은 한 쪽에, 진실이길 바라는 진실은 나머지 한 쪽에 있다. 사람이란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죽음이라는 동전을 뒤집어보지 않는가? 보통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뒤집어놓고는 그게 정말 진짜 진실인 듯 믿는다. 그러나 과학은 더 이상 죽음을 동전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기세다. 바라는 진실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드러내주는 법의학의 세계는 그래서 냉정하고 얄궂고 인정머리가 없다. 법의학자와 범죄소설가 두 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지은 이 책 [진실을 읽는 시간]은 그래서 죽음과 진실을 마주보려는 용기가 없이는 읽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 CSI 시리즈를 굉장히 즐겨 봤다. 정말 재밌었다. 죽음의 진실 앞에 드러나는 사람의 진상이라는 건 얼마나 매몰차고 얄짤 없는지.

 

 그 드라마의 재미와 흥미를 그대로 옮겨왔지만, 냉혹한 분석은 이 책이 몇 배는 더하다. 이 책에는 드라마가 없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죽음의 진실은 이렇게 냉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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