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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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읽고 나서기 때문일까. 영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이 책의 제목에 ‘품격’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을 보고 ‘역시,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야기할 때에 신사라든가 품격이라든가 하는 귀족적인 느낌을 버릴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쩌면 저 품격이라는 단어를 반어의 용도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영국은 유럽의 작은 섬나라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신사, 팍스 브리타니카, 셰익스피어, 산업혁명, 비틀즈 그리고 브렉시트. 식견이 좁은 나는 이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세계사를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 영국이 강력한 해상제국이었고 단순히 군사력으로만이 아니라 문화로도 강성한 나라였다는 역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영국이라는 나라가 누렸던 부흥과 융성의 힘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제국의 품격>을 지은 박지향 교수는 평생을 영국사 연구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통 한 국가의 연구에 매진하게 되면 그 국가에 대해 친화적인 입장이 된다는 편견이 있는 나는 책을 읽기도 전부터, 심지어 제목에조차 품격이라는 단어를 넣었으니,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일종의 찬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역사서를 읽을 때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부분은, 같은 역사라도 해도 저자에 따라 그리고 그 책을 집필하는 시기에 따라 다양한 관점의 역사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역사라는 과거는 현재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어, 현재에서 어떤 잣대를 가지고 과거를 비추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색으로 달리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고정된 시선에서 영국의 역사를 비추는 것을 경계했다. 영국 역사의 양과 음을 가능하면 균형 있게 담아내려 노력했다.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 역사의 양음을 함께 이야기하면서도 비판이나 비난조보다는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는 자세를 취하는데 이 부분이야말로 역사서로서 교과서다운 화법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주요 역사들이 준 영향, 그 의미 등을 설명하고 식민국가 영국을 다루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도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담아낸다. 영국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그와 밀접하게 관련한 세계 역사에 대해서도) 아주 얕게 대충 알고 있는 상태의 나에게 영국 문학을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토양을 다져준 책이다.

 


특히 교황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파문(1570)한 후 가톨릭을 제거하는 것은 잉글랜드인들에게 애국적인 일이 되었고, 바다 사나이들도 가톨릭 세력을 제거하여 나라의 방위를 철저히 하는 데 동원되었다. 해적 행위조차 개신교 신앙과 연결되었다. 이 시기 스페인과 벌인 모든 전쟁에서 해적 행위는 ‘즐거운 도둑질’이면서 동시에 개신교 신앙을 지키는 ‘성전’이고 ‘자유를 지키는 위업’이었다. ‘종교와 자유와 돈’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던 것이다.
 40쪽

 

 

 반노예제 운동에 직접적으로 불길을 지핀 사건은 1781년 노예무역선 종zong호 사건이었다. 종 호는 과도하게 많은 노예를 싣고 리버풀을 떠나 자메이카로 향하다가 보급 부족과 위생 문제 등 여러 문제점에 봉착했다. 그러자 선장은 133명의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익사시킨다는 사악한 해결책을 찾아냈다. 게다가 선주는 이 사건으로 입은 손해를 보험 회사가 보전해주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무자비하게도 선장이 배를 구하기 위해 ‘화물’을 바다에 버린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것이 반노예무역 운동을 자극한 계기가 되었다.
 160쪽

 


 잘생긴 외모와 걸출한 능력을 갖춘 네루는 인도인들에게는 마치 왕자 같은 인물이자 대중적 우상이었다. 인도를 근대화하는 기획, 즉 근대 국가, 민주주의, 근대적 사회를 형성하는 데 있어 네루의 역할은 간디를 능가했다. 네루는 희망했던 것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그가 인도 역사에 남긴 영향력과 유산은 중요하다. 물론 네루에 대한 평가도 간디에 대한 평가 만큼이나 통일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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