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반전의 조건 - 대전환기의 위험과 대응
김동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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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념을 잘 친, 제대로 간을 맞추고 적당한 향신료를 완벽하게 갖춘 고급 요리를 먹은 느낌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설명할 때,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수록 그리고 깊이 있는 통찰을 할수록 그의 설명은 쉬워진다. 한국경제. 읽기만 해도 숨막히게 만드는 이 네 글자. 보기 싫다고 외면하거나 뉴스에서 아예 지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참으로 돈이나 경제에 대해서 문외한에 가까운 나조차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탄식이 나오는 요즘이다. 그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 한국경제를 설명하는 책이 책장 한 장, 문단 하나를 읽기에도 버겁고 어렵고 복잡하면 뭐 그 책은 나중에 라면 받침으로 쓰이기 십상이다. 이 어려운 주제를 조리있고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한 저자의 연륜과 경력이 느껴지는 이 책 [한국경제, 반전의 조건]은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을 비교적 냉철하고 민감하게 진단하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늦지 않게) 무엇을 선택하며 어떤 태도로 이 위기를 빠져나가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매력은 표지에 실린 글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성장의 낡은 엔진에 고령화라는 무거운 짐을 싣고 선원드이 보수와 진보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을 향해 대전환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이 짧은 글 하나만 가지고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회 전체가 늙고 지친 몸체로 움직이는 듯 느리고 삐그덕 거리는 느낌이고, 선원들의 패는 단순히 보수와 진보, 두 갈래가 아니라 한 스무 가지 정도로 갈려 있는 것 같다. 모두가 나의 적, 나와 의견이 다르면 모두다 적이라는 듯한 이 세태의 대한민국을 향해 대전환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단다. 생각만해도 오싹한데, 책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다. 저 파도는 모든 걸 쓸어버려서 처참하게 무너뜨려버리겠다는 파도가 아닐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저 파도는 저자의 말대로 ‘대전환’의 파도가 될 수 도 있다. 평생에 잊지 못할 서핑을 하느냐, 파도에 짓눌려 침몰하느냐는 지금이 결정한다는 사실. 저자는 이 내용을 차근차근 깔끔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 풀어 담았다.

 

 저자가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쓴 부분들은 인상적일 뿐 아니라 큰 공부가 되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조를 완전히 배제하고, 조금이라도 정치색이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경제 그리고 정책의 관점에서 저자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특히 촛불혁명과 경제정책의 상이점을 잘 포착했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내가 그동안 답답하게 느끼고, 이상하다고 느꼈던 그러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마치 소경이 개안開眼을 하는 듯 했다면 너무 과장일까?

 

 촛불혁명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정치는 혁명이 가능하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빠지기 쉬운 착각은 정치처럼 경제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는 시장의 종말에나 가능한 경우이며, 동시에 이것은 창의와 혁신을 통한 번영 등 시장의 모든 기능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기능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한 시장기능에 혁명은 없다. 시장기능은 시장의 원리를 따라 움직일 뿐이다.
157-158쪽

 

 너무 좋은데, 옥에 티라고 할만한 오타가 곳곳에 눈에 띈다. 아쉽....

촛불혁명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정치는 혁명이 가능하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빠지기 쉬운 착각은 정치처럼 경제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는 시장의 종말에나 가능한 경우이며, 동시에 이것은 창의와 혁신을 통한 번영 등 시장의 모든 기능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기능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한 시장기능에 혁명은 없다. 시장기능은 시장의 원리를 따라 움직일 뿐이다.
157-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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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의 노트 - 계기를 찾는 일곱 가지 습관
한은 지음 / 플로우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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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아는 분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시인의 눈, 시인의 눈..... 나는 지금도 사실 저 시인의 눈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말로 설명을 못하겠다. 그런데 저 말을 들은 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 바다에 가서 파도와 함께, 파도 위를 움직이는 바다를 보고 산에 가서 바위와 함께 바위에 쌓아 둔 사람들의 바람을 보고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안목이 좋다거나 감각이 남다르다거나 하는 칭찬을 들으면 매우 기분이 좋다. 오늘 화장 좋다거나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몸매가 부럽다는 등의 칭찬보다 한 백 배는 기분 좋은 것 같다. 왜 앞선 종류의 칭찬이 뒤에 열거한 종류보다 내 기분을 더 좋게 만드는지 곰곰이 따져본다. 왜? 뒤에 열거한 종류는 내가 노력하면 어지간히 결과가 나오는데 앞에 열거한 것은 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라서 그런가보다. 감각, 비슷한 말로 발상이라고 하면 적합할까? 그것은 마음만 갖고서 혹은 시간만 들인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그래서 나는 남다른 눈, 남다른 감각, 남다른 발상 구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고 부럽다. 시기가 나고 질투가 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는데 저 사람이 먼저 했을 때나 할 수 있는 것이고, 어차피 나는 못하는 영역이구나, 싶은 일에는 시기질투 따위가 끼어들지도 못한다. 그래서 마냥 좋고 부럽다. 아마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완전한 부러움 속에서 행복했던 것 같다.

 

 책의 맨 뒤까지 읽고 나서 보니 저자는 딸을 키우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아니라, 이제 인생의 어떤 부분을 경영해가는 기로에 선 나이의. 그런 딸에게 저자는 인생을 만들어가는 일을 글을 쓰는 일로 비유했다. 그 글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서 그 글을 적어 주변에 아는 사람들과도 공유했다. 감각이나 발상만 좋은 디렉터라면 나의 감상은 ‘눈이 좋아서 부럽다’에서 그쳤을 텐데 그 발상에 깔려 있는 정신이나 의식 세계의 결이 따듯하고 다부져서 ‘되게 멋지다!’까지 이르렀다.

 

 [디렉터의 노트]는 내용은 짧지만 긴 여운과 다채로운 감흥을 남기는 책이다. 예전에 줌파 라히리의 [이 한 권의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를 읽고 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같은 버스를 보더라도 내가 3차원을 사는 동안 저자는 4차원을 살고 있겠구나 싶은 생각.
 새로운 발상의 ‘계기’를 찾는다면, 무슨 직종에 있든 어떤 배경을 가졌든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내 심장, 딸에게»

처음 쓴 원고를 초고라고 해.

아직 다듬지 않은 원고를 가리키지.

처음부터 잘 쓴 글은 없단다.
다시 고치고 다시 쓰다보면 글이 완성되는 거란다.

일상은 인생의 초고와 같다.
매일 다듬고 다듬어서 더 나은 인생을 만드는 거야.
 -277쪽

«내 심장, 딸에게»

처음 쓴 원고를 초고라고 해.

아직 다듬지 않은 원고를 가리키지.

처음부터 잘 쓴 글은 없단다.
다시 고치고 다시 쓰다보면 글이 완성되는 거란다.

일상은 인생의 초고와 같다.
매일 다듬고 다듬어서 더 나은 인생을 만드는 거야.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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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을 위한 보고서 검토 기술 - 팀원을 제대로 지도하고 상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김철수 지음 / 새로운제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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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참고하면 좀더 나은 보고서를 만들 수 있으려나?

 

 이 책에 혹한 이유는 순전히 저것 하나 였다. 지금 쓰고 있는 보고서보다는 나은 보고서를 만들고 싶다는 그것! 어찌저찌 작성하다보면 한 눈에 확 들어오게 만드는 보고서도 있지만 아무리 정리하고 이리저리 애써봐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서도 있다. 내가 잘하는 부분도 있고 못하는 부분도 있는데, 문제는 내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 그래서 아마 이 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나보다. 내가 못하는 것을 이 책은 도와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은 실전! 보고서 작성!!을 목표로 제작된 책은 아닌 듯 하다. 책의 관점은 철저하게 ‘팀장으로서’ 어떻게 보고서를 검토하고 피드백하고 보완하고 다듬어서 효율적이고 성과 높은 보고를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하! 했던 부분도 이 부분이다. 팀장이 능력이 있다는 것은 피드백을 잘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저자도 책에 썼지만, 어떤 일에 대해 피드백을 구하면 죽 훑어보고는 이건 좀 그래, 뭔가.. 그냥 느낌이 좀 그래, 다른 거 없어? 이렇게 응수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아.. 그럴 때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깊은 빡침이란..... 뭔가 느낌이 좀 그래.. 는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못하는 걸 달라고 피드백을 구하는데 그 마음을 몰라주나.... 진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어느 부분이 왜 어설프거나 아쉬운지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구구절절 설명을 달지 않아도 논지가 어떻게 부족하다든가, 구성 맥락이 적절하지 않다든가 이런 굵직한 것들 한 두가지만 수정해도 보고서가 금방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아마 저자는 이런 효과적인 검토의 기술(꼬집는 기술이라고 나는 부르고 싶다 ㅋㅋ)이 필요한 직원들이 대한민국에 적지 않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을까?

 책을 한번에 다 꼼곰하게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목차만 읽어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보고의 기술에 보면 상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배경지식을 기준으로 보고 순서를 잡거나, 자주 보고한다는 등 보고하는 형태에 따라서도 보고 후 소산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보고서 검토 사례를 보면서 진짜 웃었는데 잘 모르면 쓰지 말라!!는 룰은 보고서와 업무 상에 있어서는 적어도 웬만하면 다 통하는 진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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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머리를 완성하는 초등 독서법
남미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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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에서 초등학생까지, 아이들이 책을 읽는 데에 정 붙이도록 돕는 효과적인 방법을 아주 잘 정리한 책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의 책 읽기와 성인의 책 읽기가 다르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은 미지를 탐하는 존재다. 쉽게 말해 궁금함을 못 참는 성질이 있다는 소리다. 신상에 미치는 이유, 그 전에 가보지 않았던 여행지를 찾는 이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체험을 찾는 이유들 속에 공통점으로 ‘궁금함’ 즉 미지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다. 그런 점에서 책 만큼 광활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바다가 또 있을까?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냐는 어느 기사에 누가 댓글로 ‘이제는 더 읽을 책이 없을 지경’이라고 답을 달았던데 미안하지만 잘난 척이 과했다. 더 읽을 책이 없다고? 세상에 책이 이렇게 많은데? 책의 가짓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일 년에 한번씩 10년 동안 10번 읽어본 일이 있는 사람(혹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한 권의 책에는 하나의 세계만 있지 않다. 책은 정말 우주와 같다. 아니, 미로와 같다고 해야 하나? 전에 읽었을 때는 파란 문이 열리더니 오늘 읽으니 붉은 문이 열린다. 아마 내년 이맘 때 다시 읽으면 보라색 문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은 끝도, 한계도 없는 미지다. 사람이란 아이나 어른이나 미지의 세계를 탐하는 존재이기에 기본적으로 책에서 그 미지의 세계를 한 번 발견하기만 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언제든지 풍덩 풍덩 그 미지의 세계로 제발로 찾아가게 되어 버린다.

 

 문제는 아마 이 지점이겠지. 어떻게 저 미지의 세계, 책 속에 담긴 세계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느냐. 사실, 어른이 되어도 자기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도 이 부분인 것 같다. 원체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둔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삶 전체를 관통하는 습관이 대부분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조금이라도 책의 세계에 친숙해지고 가까워진다면 아무래도 타고난 자질이 어떻든지 책과 그리 낯설지만은 않아지리라.

 

 [공부머리를 완성하는 초등 독서법]의 저자 남미영 작가는 한 권을 읽어도 200퍼센트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책읽기의 방법들을 이 한 권에 모두 담았다. 작가의 감각이 정말 돋보이는 것은 각종 다양한 방법에 붙인 유쾌하고 명랑한 제목들이다. 군인처럼 읽기, 수학자처럼 읽기, 건축가처럼 읽기 등 각 읽기 방법에 특성을 살린 제목들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어떻게 보면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순전히 쓰임(독서 지도)을 위한 가이드로만 남을 수도 있는 책인데 저자의 센스는 이 책 읽기를 즐겁게 만든다. 


 그러나 한 번 읽는 즐거움에서만 끝내기에는 이 책이 아깝다. 만약 초등학생 자녀들을 두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에서 알려주는 여러 방법들은 가정에서 실천해보시면 좋겠다. 예전에 초등학생 아이들의 독서지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았더라면 이 방법을 써볼것을! 하며 무릎을 치게 하는 좋은 방법들이 많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유학자인 존 듀이는 "지식은 느낌의 중개를 거쳐 발생한다"고 말한다. 존 듀이의 말처럼 책도 느낌의 중개 없이는 독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기호에 불과한 문자가 인간의 머릿속에 의미가 되어 들어가려면 감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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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미친 사람들 - 급이 다른 공부의 길
김병완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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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공부란 매우 단순했다.
학창시절에는 그저 학교에서 시작종이 딩동댕 울리면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보며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보고 듣기, 어쩌다 외우기(라고 쓰고 벼락치기라고 읽기), 암기용으로 읽고 필사하기(라고 쓰고 깜지라고 읽는다). 이렇게 단순했다.


이렇게 단순했던 공부는 나이가 들면서 수준이 높아졌다. 30대에 이르러서야 내가 공부에 대하여 느낀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다. 공부란 결국 ‘사람’과 ‘나’에 대한 탐구라는 것.

 

 초등학교의 언젠가 나는 산수를 풀다가 궁금했다. 왜 사과가 몇 개인지를 셀 줄만 알면 되는 것이지 높이가 몇 미터고, 너비가 얼마고, 그 안에는 길이가 얼마고 따위,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속도나 무게 따위를 ) 왜 내가 알아야 하는가? 그런 거 몰라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살기야 살 수는 있다. 무엇이 ‘잘’ 사는 삶인가는 개인마다 의미가 다르므로 그것은 뭐라 딱히 규정할 수는 없으나, 살기는 살지. 하지만 굳이 매슬로의 5단계 욕구까지 끌어오지 않아도 어른이 되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그 모든 기초 학문, 학교에서 반강제로 주입하던 내용들은 나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맹점이 있다. 아주 분명하고 치명적인 맹점. 고등학교를 다 나오고 난 후에도 나는 나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1도 없다는 말은 여기에 써야 맞겠다.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때부터 나는 아마 은연 중에 또 다른 공부의 세계로 들어섰던 것 같다. 진짜 공부. 처음에는 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공부였는데 이제는 안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는 ‘사람’, 그래, 사람을 이해하는 게 내 공부의 첫 번째 목표였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해해야 너무나 중요한 ‘나’라는 존재도 이해가 될 테니.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여러 번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사람만 이해한다고 해서 ‘나’라는 존재까지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 아니더라.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 모든 공부 그러니까, 읽는 거의 모든 책에서 나는 저자가 쓴 글을 거울 삼아 ‘나’를 발견하려고 애썼다.

 

 이 책은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공부에 미친 사람들]. 표지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 나도 저런 제목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여기에 실린 동서고금의 지식인들은 단순히 외우고 쓰는 기계적인 암기에 능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들의 공부의 공통점을 하나 꼽자면 ‘발견’이라고 하고 싶다.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라고 그토록 강조했고 아인슈타인의 공부법 역시 자기의 세계, 자신의 상상력을 한계없이 부려보는 자기 발원 스타일이었다. 그런 공부법들의 모두 공부에 나서는 주체로 하여금 놀라운 것, 그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그 발견한 것들을 책으로 학문으로 온갖 결과물로 나타내고, 역사 속에 진한 자취를 남겼다.

 굳이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거나, 어떤 대단한 업적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의 공부 동기는 ‘사람과 나’를 제대로 발견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나의 동기가 공부 그 자체의 세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좋은 동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마 올해는 공부운이 트이려나 보다 ^^ 좋은 책의 격려를 받으며 시작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왕양명의 제자들이 스승의 어록과 편지를 엮어 집대성한 책 [전습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자고로 사람은 배워서 얻은 게 있으면 실천하여 자신을 향상시켜야 한다.
지는 행의 시작이며, 행은 지를 이룬다.
이 두 구절은 ‘지행합일론’에 대한 왕양명의 사상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왕양명전집에 나오는 "앎은 실천의 시작이요, 실천은 앎의 완성이다. 앎과 실천을 둘로 나눌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공부에 대한 왕양명의 철학을 집약하여 보여준다.
왕양명은 현실 세상과 큰 괴리를 보이며 실천은 등한시한 채 공리공론만 일삼는 주자학을 허학 또는 위학이라고 칭하며 통렬히 비판했다. 그만큼 깨달은 것을 반드시 실천해야 진정으로 아는 것임을 강조한 학문이 양명학이다. 그리고 이를 쉽게 표현한 이론이 앞에서 말한 ‘지행합일론’이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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