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정리의 힘 - 세계의 엘리트가 매일 10분씩 실천하는 감정회복습관
구제 고지 지음, 동소현 옮김 / 다산3.0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노조절장애 사회라는 말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방금 전에도 나는 포털 메인에서 누군가 홧김에 사람을 살해했다는 뉴스를 읽고 왔다. 이틀 전에도 비슷한 뉴스를 읽었고 지난 주에도 화풀이 대상으로 한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아마 지난 달에도 홧김에 저지른 강력범죄들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했던 걸로 기억한다.

분노를 못이겨 저지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를 물끄러미 보시던 아빠는 혼잣말로 탄식하셨다. '우리 나라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아마 이런 탄식을 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 한 분만은 아니겠지. 아마 올해 말에는 2016년을 정리하는 키워드 10개 중 하나로 반드시 '분노사회' 내지는 '분노조절장애' 라는 말이 들어가야 맞을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의 분노기질을 감지한 여러 학자 혹은 전문가들은 '분노사회'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다. 그래서인지 서점가에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책도 많다.

감정 연습, 감정 코칭, 감정 수업 등등등

 

생각해보면 감정이란 아주 본능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코가 간지러우면 재채기를 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것은 기쁘다고, 슬픈 것은 슬프다고 그리고 화가 나는 것은 화가 난다고, 감정은 의도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을 우리는 연습해야 하고 코칭 받아야 하고 수업을 통해 학습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모든 원흉은 스트레스다. 우리는 어쩌면 감정보다 스트레스를 더 익숙하게 느낄만큼 폭발적인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티비와 인터넷의 서라운드 속에서 어디를 보아도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남다르게 누리는 권력이 그리고 그들의 자유롭고(방탕하고) 블링블링한(천박한) 삶이 무슨 대단한 것인양 전시된다. 무한 소통의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떠오른 SNS'있어빌리티'들의 잔치판이 되었다. 회사니 학교니 사는 것은 날마다 더 팍팍해지니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오히려 정신건강을 의심해봐야 할 상황이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인문학 교육의 부재였다. 무슨 무슨 철학, 사상 이런 걸 배우고 싶었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기회 없이 나의 성장기는 지나가버렸다. 이런 허탈한 청소년기는 아마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 경험 아닌가?

우리들이 팔다리가 자라는 동안, 단 한 학기동안만이라도 저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스스로가 답을 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래서 존재의 근원에서 시작하여 희노애락이라는 자신의 감정에까지 관찰과 사유를 확대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오늘과 같은 분노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분노하며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에 즐거워하는가?

나의 기쁨을 막는 것, 나의 분노를 해소하는 것, 나의 슬픔을 달래는 것, 나의 즐거움을 멈추는 것은 무엇인가?

어쩌면 이건, 나는 자라서 무엇이 될 거야~ 라는 꿈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되는 이슈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감정 정리의 힘]을 읽으면서 내가 다짐한 것은 저 위에 적은 질문에 대한 자세다.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분노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내가 어떤 자세로 답할 것인지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자세'가 답의 질을 결정할 뿐 아니라 답을 내린 이후의 나의 행동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

어떤 답을 내리든지 감정에 대해서는 항상 솔직해야 하고 유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감정 정리의 힘]의 저자는 '감정회복습관'을 들여야 보다 효율적이고 충실한 삶을 살수 있다고,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보다 집중력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감정회복습관'이라는 걸 이 책에서 처음 접한 나는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처음에는 감정을 정리한 후 찾아온 일곱 가지 변화라고 책에 소개한 내용이 (홍보에 활용하고 있는 내용인듯한데) 너무 뻔하고 상투적이라 별로 믿음이 안 갔다. 그런데 왠걸 기대하지 않았는데 본문 내용이 아주 재미있었다.

세계의 수많은 엘리트들이 감정회복습관을 실천하고 있다는 홍보 문구에 혹한 건 아니다. 남에게 좋다고 꼭 나에게까지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

엘리트들이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것들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확실히 감정적으로 부담을 덜고 일과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번 주에 읽었던 임세원 박사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와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분노와 자책 혹은 원망 등 감정의 잔여물을 품에 안고 살지 않도록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굉장히 유익한 조언들이 많은데, 그 중에 '실패'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분노조절장애도 결국 '실패'를 직면한 인간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패배감, 아쉬움, 부끄러움, 괴로움 등등을 다스리지 못해서 생기는 것 아닌가.

 

> 실패 경험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학력과 경력이었지만, 본인은 원치 않은 대학에 진학하고 원치 않은 회사에 취직했으며 그리고 또다시 원치 않은 회사로 이직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체념해서 에이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현실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였지요.

그건 m씨가 인생의 고비마다 겪은 좌절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라린 체험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데 실패는 늘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감정회복습관이 있는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바로 다시 일어서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실패야말로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할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패 경험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실패로 인한 충격으로 생각이 정지되면 안 됩니다. 실패는 강렬한 부정적 체험이기 때문에 다 내 탓이다라며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 이후의 초기에는 생각이 정지하거나 죄책감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성실한 노력형 인간일수록 뭔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감을 느끼고 후회를 곱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실패까지도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점점 부정적인 연쇄 반응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셋째, 실패가 거듭되면 다음에 또 실패할까 봐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행동 회피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새로운 일을 거절하고 새로운 체험이나 만남의 기회까지도 멀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행동 회피라는 나쁜 습관에 물들면 자신만의 껍질 안에 갇혀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심리적인 세이프 존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합니다. 자기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됩니다.

자기 성장을 할 수 없다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장을 위해 우리는 실패했을 때 재빨리 감정회복습관을 이용해야 합니다. 감정회복습관이 있는 사람은 도중에 실패해도 곧바로 적절하게 대처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본문 171

    

실패는 누구에게나 쓰라린 체험입니다. 누구나 가능하면 피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나긴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데 실패는 늘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감정회복습관이 있는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바로 다시 일어서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실패야말로 감정회복근육을 단련할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패 경험에 관해서는 세 가지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실패로 인한 충격으로 생각이 정지되면 안 됩니다. 실패는 강렬한 부정적 체험이기 때문에 ‘다 내 탓이다’라며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고,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 이후의 초기에는 생각이 정지하거나 죄책감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성실한 노력형 인간일수록 뭔가 나쁜 일이 생기면 책임감을 느끼고 후회를 곱씹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실패까지도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끼며 점점 ‘부정적인 연쇄 반응’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셋째, 실패가 거듭되면 다음에 또 실패할까 봐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행동 회피’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임세원 지음 / 알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진심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으려는 사람 중에 진짜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의 눈길조차 단번에 사로 잡는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 정말 그렇거든.

어제 누군가에게 내가 들었던 말이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무심코 흘리는 말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20년간 우울증을 치료해 온 정신과 의사도 나름대로 실력이 좋은 의사라고 했다. 타인의 병든 마음을 치료해온 그, 수많은 정신과 이론과 임상실험 결과들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을 그에게 어느 날 맨정신으로 감당키 어려운 통증이 찾아왔다. 그가 배우고 익혔던 그리고 환자들과 학회 앞에서 입으로 전했을 수많은 이론과 실험 결과들은 거의 쓸모가 없었다. 타인의 수많은 사례들이 더이상 사례가 아닌 그의 삶이 되었을 때, 그는 분노하기도 했고 절망하기도 했고 오열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의 환자들이 그러했듯이.

 

심리학 책이라고, 그렇게만 이야기하기엔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진심이 너무 무겁다.

흔들리는 그가 걸어온 생과 사의 경계를, 그가 겪은 이승과 지옥의 사이를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의사의 말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이걸 그냥 책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 병은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앗아가 버렸다. 나는 어느때부터인가 웃음을 잃었고, 활기를 잃었으며, 무엇보다 '희망'을 잃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어김없이 지독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3년여간 끝 모를 고통을 겪으며, 나는 내가 마음의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에 갖고 있던 내 생각들 중 어떤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떤 것은 단지 나의 소망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마음이 아픈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분들의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절망에 빠지고 보니 그것이 내 온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7-8쪽 들어가는 글 중에서....

 

'나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타인은 누구도 없다.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의 고통에만 공감할 뿐이다. 타인의 목숨이 끊어지는 고통보다 내 손톱이 빠지는 고통에 더 민감한 게 인간 아닌가.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의사가 털어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간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 전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처방들...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 이토록 겸손하게 이야기하며 서문을 연 저자이기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본문 중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마다 더없는 진정성이 실려 있다.

 

한때 나도 겪었던, 정말 지독히도 건조하고 황량했던 그 어두운 터널에서 어떻게 기어나올수 있는지에 대해 감히 말하건데 방법은 없다. 그 터널에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갔지만, 거기는 약도 없고 지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냥 견뎌야 한다.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 지금 잡고 있는 것들을 더 꽉 붙들고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계속 계속 실마리를 쥐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 실마리의 끝에, 터널의 바깥에 서게 된다.

 

이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처방 역시 비슷하다. '가느다란 희망의 근거'를 놓지 말라고. 그러면 행복의 실마리를 쥐게 될 수 있다고.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그런 이를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어쩌면 의사로서 털어놓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 그의 경험들을 책으로 썼다.

어느 날 벼락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그 고통이 심해져서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때.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러다가 조금씩 희망의 근거를 찾아 행복의 실마리를 손에 쥐게 된 그는 마침내 '오늘 이 순간을 살아내는 삶'에 이른 과정을 담담하게 전한다. 그가 자기 스스로에게 적용한 심리학적인 접근과 시도들은 실제로 우을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섣부른 위로도 공감도 하지 않는 대신, 때로는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때로는 냉철한 의사로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의 말에 진심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이 마음으로 읽히는 이유는 경험담을 솔직하게 전하면서도 저자 스스로 막연한 희망과 현실을 뒤로한 이상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지금 이 순간에서, 현재의 일상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누구도 인생을 마음대로 살 수 없다. 모든 것을 선택하고 모든 것을 누리는, 모든 것이 마냥 행복하기만한 사람은 없다. 살다보면 우린 어쩌면 날마다, 내가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암초들에 부딪혀 아프고 상하고 지친다. 그럴 때.... 상한 마음을 그대로 두지 말자. 저자의 조언대로 그 어둠에 순순히 지지 말자.

( 이 책에 쓴 저자의 말 중에 추천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데)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길 것 같다.

 

-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압축세계사 - 5000년 인류 역사의 핵심을 36장의 지도로 읽는다
크리스토퍼 라셀레스 지음, 박홍경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5천 년 인류 역사의 핵심을 36장의 지도로 읽는다'는 카피에 반해서 고른 책.

 

과연 이 기나긴 세계사의 흐름을 지도 몇 장으로 어떻게 읽어내겠다는 것인지 굉장히 궁금했고 또 기대도 많이 했다.

 

최근 내가 주로 읽어온 역사책들은 스토리텔링에 신경을 쓴,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방식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압축 세계사]는 이런 스토리텔링에 기울일 노력을 과감히 덜고 속도감 있으면서도 정확하게 이해가 되는 설명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즉, 이 책은 드라마타입이 아니라 교과서타입이란 뜻이다.

 

  저자는 인상깊은 이야기로 책의 서문을 연다.

  " 문득 어릴 적에 역사를 더 이상 공부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려 버렸던 기억이 난다. 엉터리로 배운 데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탓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어디에서 사건이 발생하는지 지리적 정보가 도통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도 절망적이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대패했다는데, 대체 워털루는 어디에 있는 거지? "

 

저자의 마지막 의문과 비슷한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비슷한 예로 최근에 내게 벌어진 일은, 최근에 친구들과 영화 [곡성]을 보러 갔을 때 일어났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내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이슈로 (누구도 의도치 않은) 토론을 해야 했다.

친구1 - 근데 곡성이 어디에 있는 마을이야?

친구2 - 곡성이 실제 지명이었어?

친구3 - 어, 거기 전남 어딘가 그래.

친구4 - 전남? 아닌데. 충남 아닌가?

 

학창시절, 역사 수업 직후 나의 머릿속 상황이 딱 이 모양이었다. 국사도 국사지만 세계사는 특히 더했다. 헤이그니 베스트팔렌이니 하는 지명들을 참 많이도 들었고 이런저런 날짜들이 저자의 푸념처럼 '홍수처럼' 쏟아졌다. 인류가 걸어온 5천 년의 시간은 세계사 시간에 외워야했던 날짜의 수만큼 다사다난하고 고단했던 것 같다.

 

서문부터 독자와 폭풍공감으로 포석을 잘 깐 저자는 이후 인류의 기원부터 출발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도착하기까지의 세계사를 매끄럽게 전달한다. 위에서, 이 책은 드라마타입이 아니라 교과서타입이라고 쓴 것처럼, 쓸데없는 감상이나 소소한 내용 설명에 기력을 뺏기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이 새로운 통찰력이나 신선한 정보를 주기 위한 책이 아니라 밝히고 본문을 시작한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을 독자들로 하여금 감 잡게 하는 그런 책이라고. 지명과 인명, 사건과 시대가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뒹구는 나의 머릿속을 어느 정도 정리해주는 책이라는 뜻이다.

 

독자가 세계사의 흐름을 잘 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저자의 도움 덕분에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세계사 흐름이 뭐 그리 대단한 재미를 주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머릿속에 당최 어디 붙어 있는지 알지는 못하는데 꽤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역사적 장소가 있다거나, 사건은 잘 알고 있는데 누가, 왜 그런 사건을 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역사가 있다거나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책이다. 책을 읽어나가면 먼지처럼 부유하던 내 머릿속 역사 퍼즐들을 하나씩 꿰어서 큰 그림을 맞추는 기분이 드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당시의 지도를 곁들여 설명을 풀어가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지도에 현재 국경과 당시의 상황을 동시에 표기한 것도 센스가 넘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가 세계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최고의 세계사 입문서'라는 출판사의 설명에 지지 한 표. 세계사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기초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성들의 지위 혹은 여성이 받는 사회적 대우가 높아졌다는 게 아니다. 글자 그대로 여성 시각의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 포털사이트에서 자주 보게 되는 성논쟁이 난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 하나의 긍정적 방증, 이만큼 여성들이 자기주장을 할 수 있게 된 시대가 되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걸 그나마 위로라고 삼는 것이 씁쓸하긴 하다.)

어릴 시절 명절마다 엄마를 비롯한 여성들만 부엌에서 복닥거리며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하루 종일 음식 준비를 하는 것이 이상했다. 남동생과 같이 놀다가도 나만 할머니께 불려 들어가 꼬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과 이하 남성인 사촌들에게 어떤 불만을 표하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엄마에게 칭얼대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 왜 동생(남자아이)은 이거 안 하고 나만 해?’ ‘다 배워두면 좋은 거야.’ 여자는 이런 거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는 대답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올해 초, 우리집 구정 제사 때는 온 가족이 명절음식 준비를 함께 했다. 단편적이지만 이것이 지난 이십년에 걸친 우리 가족(부모님과 나와 동생)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명료한 증거가 아닌가 싶다.

 

지난 이십년 동안 분명 한국 사회는 변했다. 아마 그 이전 이십년 아니 백 년 동안에도 한국은 계속 변해왔을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변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직, 변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이제까지 변화되어 온 것보다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 이 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나쁜 페미니스트]를 아주 재미있게 읽게 될 것이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는 자신은 엄격한 페미니스트의 기준(솔직히 이건 대체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다.)에서 어긋나지만 그래도 아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는 것보다 조금 덜 엄격한 페미니스트 즉 나쁜 페미니스트라도 되는 편이 낫다고 썼다.

하지만 페미니스트의 자격 여부를 핑크를 싫어하고 출산과 육아를 혐오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답다는 기준과 제도가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말이 안 통하고 예민한 여자들에게 어울릴 법한 단어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사회적인 이슈, 대중 문화(음악과 영화, 방송 프로그램 전반)를 두루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은 솔직하면서도 예리하다.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보는 시선에 기반한 수많은 팝가사들, 강간과 학대를 오직 남성 위주의 흥밋거리로만 전락시키는 영화와 드라마들. 그러나 그런 대중문화를 저자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이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나 역시 저자와 같으니까. 여성을 무가치하게 소비하는 한국영화들에 열광하기도 하고 맨정신으로는 욕이 나올 가사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기도 한다. 저자와 나의 동질감에서 시작된 유대. 그 위에서 우리는 굵직한 사회적인 이슈들(테러사건, 인종차별, 낙태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선으로 교감한다. 40대 미국 여성과 30대 한국 여성은 분명 피부색이 다르고 살아온 과정과 현재의 환경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데도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끈끈한 공감대가 생긴다. 여성문제는 그만큼 세계 전반에서 아직도 해결해야 할 게 많은 숙제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는 페미니즘 도서라고 부르고는 싶지 않다. 이 책은 성차별을 비롯한 인종차별, 동성애차별 등 저자가 체험한 혹은 목도한 수많은 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혹은 동성애는 엄연히 다른 논제다. 저자는 페미니스트의 시선으로 여성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차별에 대해 논하고 있을 뿐.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페미니즘 도서라기보다는, 저자가 페미니스트인 책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저자가 머리글에서 쓴 대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진심이 이 책의 분류가 되어야 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뇌 사용법 - 공부와 업무를 정복하는 슈퍼 뇌의 비밀
마크 티글러 지음, 김경섭.최인식 옮김 / 김영사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아마 올해 상반기에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짧은 시간동안 다 읽어낸 책이다. 동시에 제일 잘 이해한 책이고 제일 도전정신을 준 책이자 제일 유용하게 사용할 지식을 전해준 책이다.

일단 책 사이즈, 무게, 레이아웃이 아주 가독성이 좋은데 심지어 문장 구성도 딱 내 타입이라, 그야말로 순식간에 읽혔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은 시종일관 책의 목적을 성실하게 달성해 나간다는 점이다. 단 한페이지도 엇나가지 않는다. 책 전체가 공부/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효과적인 독서/학습/암기 방법을 아주 충실하게 전달한다.

 

어느 정도냐면,

책 목차를 한 번 훑고 본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 페이지부터 이런 내용이 있다.

 

< 이 책을 1/4의 시간으로 더 잘 독해하는 방법 >

책의 차례를 읽습니다.

책을 훑어봅니다. 책에 굵은 글자체로 된 제목과 단어, 그림과 도표에 유의합니다.

이 책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정합니다.

이 책의 내용을 얼마만큼 알고 싶은지 결정합니다. 뇌 효율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책에서 소개된 모든 기법을 활용해보고 싶습니까?

반드시 바른 자세로 책을 읽습니다. 독서대나 노트북 거치대를 사용해서 책을 편한 각도로 펼쳐봅니다 책은 눈에서 약 40cm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읽을 때 한 번에 60분 이상 읽지 않습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짧은 휴식을 취하고 쉬는 동안 방금 읽은 내용을 요약합니다.

읽을 때 항상 옆에 형광펜을 준비해놓습니다. 명사 위주로 밑줄을 긋습니다. 페이지 여백에 메모도 해둡니다.

각 장을 읽고 나면, 읽은 부분을 다시 가볍게 훑습니다 밑줄 그은 단어 위주로 읽습니다.

각 장을 읽은 다음 요약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마인드맵 형식으로 요약을 하면 좋습니다.

읽은 다음 날, 사흘 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요약한 내용을 복습합니다.

활용할 팁과 기법을 간단히 기록합니다.

그 팁과 기법을 사용해봅니다.

-15(도입부)

 

나는 정말, 이 첫 페이지부터 완전 빠져버렸다.

이렇게 목적을 정확히 밝히며 독자를 안내하는 실용서, 그러면서도 독자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이나 내용구성 면에서 최적의 형태를 갖추면서 안내하는 실용서는 정말 오랜만이다.

 

보통 나는 실용서를 읽는 동안에는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어떻게든 실용서에서 읽은 것들을 뇌에 담아두려고 고집을 부리면서 읽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책 자체와 독서 시간을 즐기는 게 아니라 외려 잔뜩 스트레스만 만들어서 떠안은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에 비추어보자면, 이 책은 정말 정말 친절하고 매너있는 안내서다.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요점은 반드시 머리에 떠오르게 만든다.

뇌의 작동 원리와 속독, 마인드맵핑, 기억술, 생산성 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구조.

뇌의 작동 원리를 가볍게 다룬 첫 꼭지는 아주 짧게 지나가고 속독부터 이 책의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다. 이때 기술과 기법 등 방법론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속독하는 뇌, 마인드맵핑의 작동 원리, 기억술의 작동 원리 등 각 기술과 기법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고 나서 차근차근 기본기, 주의해야 할 점, 여러 기법과 응용 등에 대해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업무나 학습에 꼭 적용해봐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내 머릿속에 스쳐간 적용점들은 고스란히 다이어리와 업무 노트로 옮겨 적었다.

 

이 책이 무슨 총명탕 같은 그런 보약이라도 되는 듯이 너무 칭찬만 한 것 같아 조금 조심스러운데.

분명 [기적의 뇌 사용법[은 무슨 아인슈타인으로 만들어준다거나 뇌가 갑자기 수퍼파워가 된다거나 그런 책은 아니다. ( ''이든 뭐든 그런 게 있을리 만무....)

사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마인드맵이라든지 기억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전혀 생소한 분야도 내용도 아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듯 하다. 다만 이 책은 머릿속에 막연히 떠다니던 것들을 정리가 되게 만들어준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용이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책도 아니니 한번쯤 읽고 여기서 얻은 팁들을 독서, 암기, 학습 등에 적용해본다면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고 개선해나간다면 확실히 이전보다 능률적인 인생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