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날다 - 미투에서 평등까지
송문희 지음 / 행복에너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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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1학년 봄, 나는 풍물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 첫 엠티는 어느 호숫가 펜션. 주량이 센 편이긴 하지만 아직 선배들도 어렵고, 학번 차이가 꽤나 나는 고령의 선배들도 여럿 와 있는 자리여서 나는 분위기만 어느 정도 맞추다 일찍 잠이 들기로 했다. 악명 높은 사발식도 무사히 치르고 왁자지껄하게 한밤의 음주를 즐기기를 몇 시간, 나는 자정쯤에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한두 시간도 채 안 되었던 것 같다. 누가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는 듯 답답한 기분이 들어 잠이 깼다. 의식이 돌아오는 동시에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잠시 얼음인 상태로 굳어버렸다. 한 학년  위인 남자 선배가 내 위에 올라타서 정신없이 내 입술을 물고 빨고 있었다. 몇 초 간 이게 꿈인가 싶어 눈동자를 굴리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발딱 일으켰다. 만취 상태였는지 아니면 자고 있던 내가 깨서 놀라서였는지 그 선배는 내가 일어나는 통에 옆으로 엎어졌고 그 자세 그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는 그대로 일어나서 방을 나와 사람들이 놀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술자리가 한창인 그 방 앞에서 나는 들어가서 누구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멈춰 섰다. 나는 당황했다. 어,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방금 당한 일을 선배들에게 이야기하면 저들은 뭐라고 할까? 이게 내 수치인 건 아닐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는 게 맞는 걸까? 혼자 어리바리하게 서 있던 나는 그때 방에서 나오던 여자 선배와 마주쳤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희롱이나 성폭행은 권력을 등에 업고 하는 성적 갑질이다. 이러한 피해에 대해 세부적으로는 서로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더라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조직 내에서 너무 공고화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말해 봤자 2차, 3차 피해가 오히려 걱정되는 상황이라면 쉽게 도와주겠다고 나서기가 쉽지 않다. 성적인 문제는 어쨌든 제3자가 개입하기가 좀 어려운 부분도 있는 데다 특히 끼리끼리의 패거리가 폐쇄적인 조직 문화인 경우는 일정한 서열 체계 안에서 권력자의 눈에 비껴나게 되면 엄청난 응징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권력 갑질에 순응하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들을 외면했던 모든 사람들 역시 가해자다. 피해 여성들이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엇던 가장 큰 이유는 ‘말해봤자 안 바뀌는 사회’에 있다.
93쪽

 


 엠티를 다녀오고 난 다음주에, 나는 월요일 아침부터 동아리방을 찾아갔다. 문제의 남자 선배를 마주칠 수도 있어 너무 불편하고 싫었지만, 어쨌든 여자 선배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동방에는 여자 선배들이 분식을 먹고 있었고 나는 언니들만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 날 밤, 그 남자 선배가 나에게 한 일을 이야기하고 나자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윤김지영은 미셀 푸코의 ‘파르헤지아(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처벌이나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행위)’ 개념을 빌려 여성들의 ‘폭로’ 행위가 ‘두려움 없이 말하기’의 양식이라고 설명한다. 폭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권력 차이가 클 때 약자인 피해자가 선택하는 가장 절박한 수단이다. 이것은 ‘폭로’라는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피해를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사회문화적·인식적 기반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피해자들의 외침을 남성 중심적인 법 해석과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문화로 인해 무력화되곤 했다.
22-23쪽

 

 

 이야기를 털어 놓은 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들을 마주해야 했다. “야, 걔가 원래 그래.”, “괜찮아, 별거 아냐.”, “걔가 너 좋았나보다.”, “CC 탄생이야?”, “그냥 잊어버려, 해프닝이지, 뭐.” 나는 방 안에서 철저하게 혼자였다. 나는 그 밤에 내가 당한 일을 어떤 이유로도 이해할 수 없고, 전혀 괜찮지 않고, 대단히 불쾌했으며 너무너무 싫었고 이 일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었다. 낯선 사람이 아니라 평소에 편하게 가깝게 지내던 선배가 나에게 한 행위여서 더더욱 이상하고 소름끼쳤다.

 

 

 특히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관계성이 없는 ‘낯선 강간’만이 성폭력으로 인정된다. 아는 관계나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단순 강간’은 피해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61쪽

 

 

 나는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학교게시판에 익명으로 쓸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분명 그 후폭풍의 감당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아는 언니들한테 이야기했음에도 전혀 위로나 해결책을 얻지 못했는데 익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공감해줄리 만무했다. 잘못했다간 내가 손가락질을 당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 남자 선배를 피해 다니며 혼자 속앓이를 하다 1학년을 보냈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왜 분명 나는 피해자였고 내가 당한 피해가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가? 왜 나의 호소에 대해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는가? 그 선배가 원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왜 그 어떤 선배도 나에게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았는가? 이제야, [펭귄 날다]라는 책을 읽으면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닌 밤중에 날 덮쳤던 그 선배, 그리고 묵인과 방조로서 나를 할퀴었던 또 다른 선배들, 그들 모두가 나에겐 가해자였다

 

 

 이윤택 연출가가 연극배우들을 상대로 “내 방으로 와서 안마를 해 달라”며 지속적인 성추행을 할 때 안 들어가겠다고 저항하던 단원은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라는 주변의 비난을 들었다.
 이들은 여기서 한 술 더 떠 피해자에게 함부로 낙인찍기에도 가세한다. “너도 뭔가 잘못을 했겠지, 평소 옷차림이 좀 야했어.”, “그때 바로 문제 제기하면 되지 왜 지금 와서 말해?”, “회사 시끄러워지니까 좋냐? 좋은 게 좋은 거니 좀 참지 그래.” 이런 말들은 피해자의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무서운 독화살이 된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떠했는가? 남성, 여성을 떠나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죄의식 없이 일상처럼 되풀이되고 있는 수많은 성범죄의 순간을 목도하면서 ‘나는 당당하게 나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어쩌면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를 방조하고, 적극적으로 같이 나서 주지 못했던 우리 모두가 가해자인지도 모른다.
94쪽

 

 

 송문희 저자가 쓴 [펭귄 날다]는 요 근래 나온, 내가 읽었던 페미니즘 주제의 책 중에서 가장 대한민국 현실을 잘 반영한 책이다. 왜 ‘안태근 성추행 의혹 사건’이 아니라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이라고 불리는지, 왜 그 어느 나라보다 대한민국 남성에게도 페미니즘이 필요한지, 왜 ‘남성 몰카 편파 수사’ 주장 등에 일부 담겨 있는 극단적 남혐이 위험한지 저자는 대한민국 현실 속 성차별 문제를 낱낱이 해부하여 조명해낸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성차별 문제가 다뤄질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여자만 성차별을 당하냐? 남자도 당한다. 그러니 징징대지 말라.’라는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남자도 당한다면 남녀가 함께 성차별을 타파해야 할 게 아닌가? 피해는 다 똑같은 수준으로 당하고 있으니 다 같이 입 다물고 사는 게 옳다는 식의 주장은 참으로 기이하다. 저자는 이런 차원에서 페미니즘이란 여성의 지위 확보가 아닌, 남녀가 함께 자유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배워야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저자의 글에 십분 동의한다.

 

 2018년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모두는 저 말을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녀 모두가 배워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개념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는 양질의 토론과 양질의 독서 읽기가 필요하다. 외국의 저자들이 외국의 사례를 들어 쓴 수많은 페미니즘 책이 있지만 그런 책 몇 권 보다 이 책 한 권 읽기를 추천한다.



특히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관계성이 없는 ‘낯선 강간’만이 성폭력으로 인정된다. 아는 관계나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단순 강간’은 피해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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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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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을 나라는 개인의 차원으로 해석한, 스마트한 책이라고 이야기하면 맞겠다. 김정운 박사(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가 2014년에 출간한 [에디톨로지]의 개정판을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 특히 창조적인 사고나 활동에 삶의 추를 두고 살아가는 개인에게 얼마나 대단한 영감을 주는지를 느꼈다. 우리 시대에 혁명이니, 창조니 이런 것들은 더 이상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다. 이건 어쩌면 레고다. 색과 형태가 다른 수많은 조각들을 내 마음대로 편집하여 남과 다른,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우리 시대의 창조 행위다.

 

 제목이 다소 생소한데 ‘에디톨로지 editology’는 편집edit과 학문ology를 붙여 만든 합성어다. 지식 편집이라고 하면 될까? 오프라인 속에 온라인이 귀속되어 있던 시대가 뒤집어져 온라인 네트워크가 오프라인을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네트워크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는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다. 이제는 정보를 엮어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타고난 미술가라고 해도 좋고 문화심리학자라고 해도 좋을 저자는 그 전에는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 심리학 서적을 몇 권 썼다. 이전의 책들에서도 한 개인의 심리에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문화적 차원에서 인간과 그 의식을 읽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런데 이 책 [에디톨로지]에서는 그 시도가 보다 전방위적이고 역동적이다. 우리 시대에 적합한 창조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 저자는 언어, 영상, 방송, 음악, 미술, 전쟁, 공간, 의복, 상점 등등 20개가 넘는 분류에서의 문화 변화와 그 의미를 짚어낸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래놓고 제일 마지막에 가서는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의 허를 찌르듯 마음과 심리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다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라며 책을 끝맺는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방심할 수 없고 그래서 다이나믹하고 끝까지 한 장도 놓치지 않고 재미있다. 심지어 에필로그까지 재미있다. (이 에필로그 때문에 저자의 전작들을 찾아 읽어볼 계획까지 세웠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336쪽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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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 부작용 완치법 - 항암치료가 또 하나의 고통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장덕한방병원 면역암센터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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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함께 일을 하던 분이 뇌종양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하셨다. 당시 그 분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수술을 앞두고 찾아간 병실에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어서 얼마나 손등을 쥐어뜯었는지 기억이 선명하다. 뇌를 건드리는 수술을 받고 나면 몸의 기능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언제나 확률은 반반. 아니다. 그나마 반반이라도 되면 아주 높은 것이다. 그때는 그 분을 그렇게 잃는 줄 알았다.


 신에게도, 그분에게도 감사한 일은 그 분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몇 번의 수술 그리고 수술 후에는 어김없이 이어지는 항암치료를 견디며 그 분은 생애를 살아내고 있다. 버티고, 견디고, 이를 악물고, 절박하게 꿋꿋하게.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미움과 절망과 원망과 자괴감이 암세포보다 더 아프게 그를 공격하지만 그 분은 여전히 호흡을 멈추지 않고 살아 있다.


 올 봄에 항암치료를 막 마치신 그 분을 찾아간 자리에서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왔다. ‘당신은 나에게 기적입니다.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당신과 손을 잡고 따듯한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 이야기를 그에게 전하면서 마음 깊은 곳이 저리듯 아프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기도 했다. 삶이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명의 법칙을 확인한다.

 

 그 분이 수술 받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호소하셨던 것이 항암치료였다. 치료 후에 어김없이 오는 많은 부작용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나 역시도 옆에서 지켜보고 환자의 호소를 들어보기만 했기에 그 고통의 정도가 가늠되지 않는다. 장덕한방병원의 면역암센터에서 발간한 [항암치료 부작용 완치법]이라는 책 역시 항암치료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단계인지를 설명하며 책을 시작한다. 책을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면 항암치료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집필 의도와 배경까지 읽힌다. 암과 싸워 이겨야 하는 고단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장덕한방병원의 마음이 담긴 서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겐 아주 막연했던 항암의 과정과 그에 부산하여 진행될 필요가 있는 케어법, 조심해야 하는 내용 등을 알 수 있었다. 아끼고 존경하는 분이 암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내가 궁금하던 내용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 읽는 매 순간 유익했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책을 그 분의 보호자께 선물하려고 한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힘을 낸다면 하루라도 더 오래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따듯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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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작은 책 - 30일의 기적, 미루지 않고 살아보기
페트르 루드비크 지음, 김유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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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진짜로 오늘 하기 싫어서 미루는 사람 누가 있으랴. 오늘의 할 일은 오늘 해야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만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나이가 어릴 적에는 그러니까 아이였을 적에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훈계(때로는 체벌)가 무서워 억지로라도 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오늘 해야 할 일은 꼭 오늘 안으로 해내는 것 그러니까 미루지 않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잡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유시민 작가가 어느 방송에서 사람 나이라 50이 넘어가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얘기했는데 50까지 갈 것도 없다. 스무살만 넘어도 타의에 의하여 내 행위의 어떤 것을 바꾼다는 게 참 어려워진다.

 

그래서 미루지 않는 습관을 자리잡게 하려면 보다 정교하고 명료한 전략이 필요하다.

[미루는 습관을 이기는 작은 책]은 미루지 않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자기 변화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딱 한 달만에 좋은 습관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기적의 공식이라고 하며 이 책을 소개한다.

 

저자가 매우 낯설어서 누군가 찾아보니, 생존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후에도 자기자신을 바꾸는 데에 애를 먹어 ‘자기 변화’라는 주제를 놓고 치열하게 분석하고 고민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되었나보다는 농담이 있는데, 그 정도의 위기를 당했던 경험조차 미루는 습관을 바꿀 수가 없었나보다.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은 동서고금의 진리인 듯.

 

이 진리처럼 통용되는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해내는 인간으로, 삶과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인간으로의 전략을 제시한 것이 이 책이다.
책의 서두부터 굉장히 특이한데, 이 책은 문자에만 기대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독자가 최대한 빠르고 명료하게 저자가 제시하는 변화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페이지마다 일러스트를 아낌없이 동원한다.

 

저자는 왜 사람이 자꾸 할 일을 미루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는데 주목했다. 그리곤 미루는 일을 습관으로 만드는 인식과 생활상을 바꿀 수 있도록 여러 전략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제로 해 볼 수 있도록 실천양식까지 제공한다.

자기계발서를 남에게 권하는 일은 잘 없는데, 이 책은 중학생이든 성인이든 인생에 독이 되는 습관을 득이 되는 습관으로 고쳐보고 싶은 누구나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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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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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2017년에 초판이 나온 후 올해 개정판이 출간된 책인데, 개정판과 초판의 서문이 모두 하나같이 좋다.
 책 뒷표지에 들어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개정판 서문 중에 ‘새롭고 위대한 것들은 다 시대의 병을 고치려고 덤빈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진화한다. 이것은 또 나의 진화이기도 하다.’는 문장을 읽을 때부터 나는 이 책을 읽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나의 진화는 세상의 진화이며, 세상의 진화는 나의 진화. 떼려야 뗄 수 없는 시대와 개인의 관계는 이렇게 이 책에서 정의된다. 그리고 책의 맨 마지막 꼭지인 문답 부분에 이르러, 시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생각의 우물로 나의 손길을 이끌고 이내 시원한 위로의 문장을 읽게 만들고야 만다.

 

 흔히 ‘철학’이라고 하면 그저 가만히 앉아 머리를 굴리는 일이라고 인식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다. 어디 책상머리에라도 앉아 나는 누구이고 세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최진석 교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의 첫 고개부터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부수며 지나간다. 철학은 글자로 혹은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현실이 낳는 것이기에 그러므로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철학으로 분류되는 이론과 사상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과 진실로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저자가 그의 잘 벼린 사유를 검처럼 휘둘러 독자의 생각을 찌르고 완전히 베어버리는 것도 이 부분이다. 다른 이가 만들어 놓은 사유의 탑에 올라 이 탑을 정복했으니 이제 나의 것이라 하지 말고 그 탑을 오른 후에 다시 내려와 나만의 사유의 탑을 지으라는 저자의 외침은 아주 통렬하고 엄정하다. 더 이상 배우기만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라. 현실을 살고 있는 주체로서, 현실 속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문제에 대한 끝없는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사유의 탑은 단 한 층도 쌓을 수 없다. 그러나 사실 현실 속 우리들은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고 때로 깊은 성찰의 가치를 비현실적이니 따분하니 하는 말들로 폄훼하지 않는가? 나를 돌아보니 그렇다는 뜻이다. 


 다만 책 전반을 읽고 나서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 점은 어떻게 생각해야 사유의 탑을 쌓을 만한 생각이 되냐는 부분이다. ‘철학’에 대한 새로운 관념 그리고 개인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너무나 설득력 있게 진행되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한 부분은 다소 약하다. 기존의 가치관을 죽여야 새로운 통찰이 생긴다거나 하는 내용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부분적으로 제시하긴 하지만 그것이 선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밥을 차리지만 말고 아예 떠 먹여 달라는 독자인 것인가, 나는.

 

  건명원에서 한 5회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이 책은 부정(버리다), 선도(이끌다), 독립(홀로 서다), 진인(참된 나를 찾다) 그리고 문답의 다섯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버리고 이끌고 홀로 서서 결국 참된 나를 깨닫도록 인도하는 네 개의 강의 꼭지가 모두 좋지만 다섯 번째 꼭지인 문답이 제일 재미있었다. 제일 짧아서 그런가. 일단 질문들 자체가 정말 명민하고 특별했다. 철학자도 종교가 있는지, 참된 진리는 무엇인지, 한국에서 독립된 주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등등 질문이 좋으니 답변도 좋다. 현문현답. 어디서도 쉽게 던질 수 없는 저런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변은 꼭 이 책을 읽고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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