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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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진짜 진실이 우리가 바라는 진실보다 낫다.’

 얼마 전에 책 한 권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괴짜 요리사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음식과 식재료를 비롯한 현지의 생생한 문화를 체험한 내용이었는데, 진짜 웃겼다. 그가 체험하는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저자 본인이 얼마나 유쾌하고 명랑하고 괴팍한지, 그의 감상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주 우연히, 나는 그 책의 저자가 올해 자살했다는 소식을 읽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저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글에서, 나는 한참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호텔에서 자살했다는 그의 안식을 비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명랑하고 유쾌한 껍데기로 가린 그의 속사정이 궁금했다. 하지만 곧, 그의 사정을 아는 게 생각만큼 괜찮은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껍데기가 유쾌할수록 그 안에 감춰진 사정은 더욱 음울하고 어둡겠지. 


 이제 나에게 그 저자의 책은 더 이상 기분 좋은 여행기나 식도락 체험기가 아니다. 심연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한, 어딘가 께름칙하고 껄쩍지근한 사건으로 남았다.

 

 죽음이란 동전의 양면이다. 진짜 진실은 한 쪽에, 진실이길 바라는 진실은 나머지 한 쪽에 있다. 사람이란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죽음이라는 동전을 뒤집어보지 않는가? 보통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뒤집어놓고는 그게 정말 진짜 진실인 듯 믿는다. 그러나 과학은 더 이상 죽음을 동전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기세다. 바라는 진실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드러내주는 법의학의 세계는 그래서 냉정하고 얄궂고 인정머리가 없다. 법의학자와 범죄소설가 두 명의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지은 이 책 [진실을 읽는 시간]은 그래서 죽음과 진실을 마주보려는 용기가 없이는 읽기가 쉽지 않다.

 

 예전에 CSI 시리즈를 굉장히 즐겨 봤다. 정말 재밌었다. 죽음의 진실 앞에 드러나는 사람의 진상이라는 건 얼마나 매몰차고 얄짤 없는지.

 

 그 드라마의 재미와 흥미를 그대로 옮겨왔지만, 냉혹한 분석은 이 책이 몇 배는 더하다. 이 책에는 드라마가 없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죽음의 진실은 이렇게 냉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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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 -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줄 글배우의 마음 수업
글배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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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 지금 당장 힘들어서 곧 고꾸라질 것처럼 지쳤는데, ‘괜찮아, 다 잘 될거야.’라는 위로를 들으면 힘이 나기는커녕 짜증이 난다. 내가 괜찮지 않는데 뭐가 괜찮아? 안 괜찮고요, 다 싫고 진절머리나고 피곤해. 이런 마음에 더러 위로가 되는 것은 같이 욕해주는 말이다. ‘그래, 말이야! 이 더러운 세상! 추접스럽다, 야.’라며 같이 씹고 물고 뜯어주는 말이 차라리 낫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눈 앞에 닥친 산이 지나가면 나는 더 발전하고 나아지고 성숙해지고 더 잘될 거라는 그런 투의 서적들을 싫어한다. 읽다보면 괜히 심통만 더 난다. 그만큼 안 힘들어봤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고.

 

 이렇게 청개구리 같은 독자의 마음도 슬며시 누그러뜨리는 책이 있다. 분명 위로하고 격려하는 책인 건 맞는데 다른 책들과는 좀 다르다. ‘내가 너무 싫어!’라고 자괴감에 빠져있는 날에 ‘아니야, 너는 소중해요~’가 아니라, ‘그래, 그런 날도 있어. 싫으면 싫어야지.’라고 여유 있게 받아쳐 주는 상대를 만난 기분이다.


 필명 ‘글배우’는 어디서 따서 지은 걸까? 무슨 뜻일까? 그가 운영하는 고민상담소는 벌써 수백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왜 사람들이 그가 앉은 책상 앞으로 다가가 앉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적당히 어르고 달래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은 말로 퉁쳐주지 않는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알려주고, 내가 위로 받아야 할 부분에서는 제대로 위로해주는 저자의 내공은 참 친절하고 유연하다.

 

 
배려한 사람은 억울해지고
배려받은 사람은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진정한 배려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 어때?
무엇이 필요해?
내가 어떻게 하면 너한테 도움이 될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지속할 수 있고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83쪽

 

 

기대란 정확히 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거라는 생각입니다.

작은 것이든 무엇이든
내가 바라는 것을 해줄 거라는 생각,
그 생각을 내려놓아야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102쪽

 

 

 이 책은 시처럼 넉넉한 여백을 넣어 지었다. 그래서 활자를 읽는 것 같지 않다. 실제로 저자를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저자는 말이 많지 않다. 말은 독자가 더 많이 한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을 정리할 시간, 감정을 다스릴 시간을 충분히 주며 그의 말을 차분하게 잇는다. 이 책은 그래서 조용히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한다. 시끄러운 거리나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간이 아니라 내 감정과 생각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오직 나 자신에게만 농밀하게 집중된 장소에서.

 책 제목처럼 정말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어른스러운 대화상대가 필요할 때 다시 읽고싶어질 책이다.

기대란 정확히 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거라는 생각입니다.

작은 것이든 무엇이든
내가 바라는 것을 해줄 거라는 생각,
그 생각을 내려놓아야지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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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 풀 수 있겠어? - 단 125개의 퍼즐로 전세계 2%의 두뇌에 도전한다! 이 문제 풀 수 있겠어? 시리즈
알렉스 벨로스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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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잖아!
‘이 문제 풀어봐’도 아니고, ‘이 문제 어때?’도 아니고, ‘이 문제 풀 수 있을까?’도 아니고!
고개를 약간 30도 정도 기울이고, 미간은 살짝 구기거나 눈썹산을 조금 치켜 올린 채 마치 ‘너 조금 하찮다’는 느낌으로 <이 문제 풀 수 있겠어?> 라고 물어보다니. 너무 도전적이잖아.

이 물음에 자신 있게, 패기 넘치고 화끈하게 답하지 못하는 나는 다소 구질구질하게.... 대답을 회피하느라 서두가 길었다.

책을 펴보기도 전에 나는 솔직히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지고 들어갔다. 뭐, 인생이 늘 이기기만 하면 뭔 재민가. 넘 어려운 싸움이면 나는 그냥 질래.....
이런 마음으로, 나는 정말 많이 내려두고 이 책을 열었다. 왜냐면 나는 어릴 때부터 퀴즈니 퍼즐이니 이런 데는 영 젬병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아는 걸. 심지어 책 표지에 ‘단 125개 퍼즐로 전세계 2%의 두뇌에 도전한다!’고 위풍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지는데 내가 거기에 뭐라고 응답할 수 있담?

2%의 두뇌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지만, 읽기만 해도 두뇌가 10년 젊어진다고 하기에 나는 또 혹시나 적시나 하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퍼즐풀기에 도전을 해봤다. 이 문제를 하나 둘씩 야금야금 풀어가다보면 혹시라도 저질기억력이 회춘이라도 할까봐 ^^;;

이 책에는 논리, 기하학, 실용, 소품, 숫자 이렇게 5개의 테마로 구분된 125개의 문제가 실려 있다. 목차만 봐도 정수리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통째로 신기한 퍼즐사전이라고 하면 어울린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이 양념처럼 가르쳐주던 퀴즈 같은 문제나 넌센스 문제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쉬운 문제부터 도저히 나라는 인간의 머리로는 풀기 어려울 것 같은 고도의 문제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문제들이 실려있다. 자그마치 천 년의 시간을 훌쩍 넘는 세월동안 인류의 지성과 사고력을 시험해온 문제들을 모은 주인공은 이 책의 저자 알렉스 벨로스. 영국의 수학자라는 저자에게 일단, 이런 흥미로운 문제들을 책으로 엮어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왠지 이 문제들을 다 잘 푸실 듯. 설마 이 책의 시리즈로 2권을 기획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여름이 저물어간다는 걸 알려주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문제를 풀다가, 올 가을에 여행갈 때 이 책을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혹은 숙소에서 쉬는 늦은 밤에 간간히 이 책을 펴보면 여행이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싶다. 여행에서 이 문제를 풀 재미를 기약하며 이걸 아껴 풀고 싶지만 ㅋㅋ 실은 이건 내가 아낄래야 아끼는 게 아니라 못 푸는 게 많아서 강제 절약 되는 기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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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죽음
김석범 지음, 김석희 옮김 / 각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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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 김석범은 ‘한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가지지 않은 한 마디로 무국적자’다. 아흔살 평생에 한국 땅에서 지낸 해가 다섯 손가락이 채 안 되는, 남이나 북이 아닌 통일 한국이라는 국적을 원하는 사람이다. 기묘한 위치에 서 있는 저자의 특별한 관점과 통찰이 오롯이 담긴 다섯 편의 단편을 엮은 것이 [까마귀의 죽음]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를 매우 좋아하는 이유와 김석범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같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단단히 머무른 삶이 아니라 언제나 부유하고 유리하는 듯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래서 관찰에 충실한 입지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작가들의 작품이란 이렇게 분명하게 닮은 데가 있다.

 책의 첫 번째 작품은 ‘간수 박 서방’이다. 제주경찰서 간수인 박백선은 얼굴은 본래 노비였다. 노비 시절 이름 대신 곰보라고 불리거나 죄수들에게 나쓰미깡(일본어로 귤)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의 얼굴을 한 이 남자는 키는 작고 나이는 마흔 가까이 되었다. 해방이 되어 노비에서 평민이 된 그는 제주도로 흘러들어와 간수가 되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찌질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형편없는 인간으로 비치는 그가 그의 인생 끝에서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 되어 죽는지 그린 작품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를 않아요.'라는 그의 유언이 아주 아주 강렬하다.

 

 두 번째 작품은 [까마귀의 죽음]이다. (첫 번째 작품인 간수 박 서방, 이 작품 까마귀의 죽음 그리고 세 번째 수록 작품인 관덕정은 연작이다. 시대와 상황이 같고 다만 인물이 다르다.)

 

 '간수 박서방'에 비하여 훨씬 복잡하고 밀도 높은 작품이다. 주인공인 정기준의 행적을 따라가며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선인도, 악인도 없다. 다만 사람은 선택할 뿐이고 때에 따라 변화할 뿐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절대적 최후 앞에서 나 자신은 과연 선과 악 둘 중 무엇에 가까운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저자가 독자에게 펼쳐 보여준 당시 제주도의 민낯과 인물의 대사와 행동을 빌어 던지는 질문들이 교차하며, 제주4.3사건은 역사로만 묻히기엔 아직 이르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진단한 제주4.3사건의 원인은 오늘날의 한반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불씨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사상과 국적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저자는 이야기 전반에서 제주의 비극은 사상 싸움도, 아둔한 민중 간의 혈투도 아닌 미국의 폭정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호소한다. 열강의 무자비한 전략에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생명을 잃어야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에도 언제든지 비슷한 사건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것을 인지하게 하는 것만으로 제주4.3사건 그리고 그를 그 어떤 소설보다 면밀하게 분석하고 묘사한 이 작품 [까마귀의 죽음]은 시간을 초월하여 오늘날 한반도에서 여전히 뜨거운 사건이고 작품이어야 한다.

백선은 명순이 생각나서 가슴이 메었다. 그 처녀는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자기가 죽여야 할 노파를 찌르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노파는 처녀에게 등을 돌리고 주저앉아 있다가, 합장했던 손을 떼며 갑자기 숨이 끊어질 듯 외쳤다.
"아이고, 이게 무슨 지랄 같은 놈의 세상인고."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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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아픔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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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박경리 기념관이었다.

 

 작가 박경리가 그의 일생동안 무엇을 쓰기 위하여 그토록 애썼는지 알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그가 쓴 소설들을 여러 권 읽었고 보통은 남성 작가의 이름으로 오해하는 이름을 가지고 살며 그가 만만치 않은 생애를 보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진실로 글로써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박경리 기념관에서 너무나도 낯설고 새롭고 기묘한 작가 박경리를 만났다. 아, 이미 내가 그 얼굴을 익히 만나고 있었으나 제대로 본 것은 기념관에서가 처음이었다고 말해야 옳을까?

 기념관에서 건져온 가장 값진 생각은 이제 박경리의 소설이 아니라 그가 남긴 에세이를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전시관의 거의 끝 자락에서였던가, 벽면에 게시되었던 박경리 작가의 에세이 한 편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자본주의와 생명, 산업과 농업의 대비를 이토록 깊고 무겁고 넓은 파동의 울림으로 전달하는 글이라니. 나는 몇 번이고 그 글을 읽고 그 글귀를 사진으로 찍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 기차에서 꺼내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따금 저장했던 사진을 거듭 꺼내보곤 했다.

 

 [생명의 아픔]은 박경리 작가가 여러 가지 경로로 발표했던 원고나 강연 내용을 모아 엮은 책이다. 29편의 글이 담겨 있고 모든 글은 ‘생명’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 여러 모양과 형태의 맥박으로 뛰고 흐른다.

 

 세계는 지금 개방되어 지구라는 단위 속에 인류는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되고, 부정해야 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을 저해하는 것이지 인간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37쪽

 

언어는 내용의 수단이기 때문에. 41쪽

 

 사실 신물 나는 경제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외국에서 돈을 더 빌려온다고 권도살림이 끝날 것인지 의심스럽고 생산을 독력한다 하더라도 세계의 시장은 무한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우리들 인류가 살아남을 길은 어디에 잇을까.
 그것은 단순 명료하다. 먹을 것, 입을 것, 눈비 가릴 주거의 확보. 이같이 생존을 위한 기본만 보장이 된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기본을 보장하는 것이 지구라는 터전이며 땅이다.
 우리는 지구를, 땅을 얼마나 생각했을까. 진실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생태계를 얼마나 생각했을까.
 지폐보다, 황금보다 우리의 생존을 떠받쳐주는 것은 바로 터전인 것이다.
 먹을 것도 거기서 나고 입을 것도 거기서 나고 집도 터전 위에 세운다. 무엇이 먼저이며 나중인지 사람들은 그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기본은 줄어들고 상처 받으면 훼손되고, 생존의 방식보다 생활양식이 우선되어 쓰레기만 쌓이는 세상, 시장이나 상점을 상상해면 알 것이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자는 한정되어 있다. 에너지도 한정되어 있다.  218-219쪽

 

 

한 편, 한 편을 얼마나 차지게 물고 씹고 되새기며 읽었는지 모른다.
일본을 논하는 글에서조차, 그저 일본을 책망하는 글로만 남지 않는다. 그 글이 엄중한 규탄으로 폭발적인 함성으로 터져 나오게 만드는 불씨, 그 불씨는 ‘생명은 소중하다’는 작가의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그 불씨 덕에 책 전체에서 작가가 그의 생애 동안 일관되게 이야기 했던 ‘생명’이라는 주제가 그 의미 그대로 생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생명이라는 것의 가치를 이토록 귀하고 빛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의 글이란 너무나 강력하다.

새삼스럽지만, 영면에 든 박경리 작가가 너무 그립다. 단 한 번도 말이나 시선을 섞어본 일이 없는 분이지만, 같은 공기라도 마시고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내용의 수단이기 때문에.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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