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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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빨간 구두를 신는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되어 이 땅에 출현하는 그 순간에 이미 각자는 발에 빨간 구두를 신고 태어나 있다. 우리의 발에 채워진 저주는 삶의 불확실성을 무곡舞曲 삼고 어쩔 수 없는 박자를 따라 나를 끌고 간다. 한 순간도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때로는 쫓기듯, 때로는 신들린 듯 춤을 추는 일은 고통이다. 삶의 박자는 고정되지도 않고 예측할 수도 없다. 나를 끌고 가시덤불로 들어간 구두가 숲을 뒹굴며 나를 고슴도치로 만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삶이 신겨준 빨간 구두의 저주를 알아차리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 소녀가 숲의 나무꾼더러 발을 잘라달라고 소리친 건 비극일까? 이 저주에서 빠져 나올 길을 선택한 그녀의 결정을, 그 시도를 우리는 어쩌면 부러워하고 있진 않는가? 

 

 

 폴 카트라킬리스는 기묘한 가족력을 소유한 남자다. 할아버지인 스피리돈 카트라킬리스, 삼촌인 쥘 갈리에니, 엄마인 안나 갈리에니, 아버지 아드리안 카트라킬리스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자살했다. 스탈린의 뇌조각을 잘라와 평생 그것을 전시한 채로 살았던 할아버지로부터 남동생과 부부처럼 지내면서 정작 자기 남편과 아들에 대한 애정 표현에는 무감각했던 엄마, 무기력한 시계공으로 살다 어느 날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화를 받고 사흘 후에 130km 속도로 오토바이를 몰아 벽으로 돌진한 삼촌 그리고 가족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가시덤불 속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 없이 병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폴은 이들을 ‘각자가 세상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다른 가족의 삶에는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운 사람들’(101쪽)이라고 회상한다. 이들의 유전자를 상속받은 폴은 자기 자신 역시 그 사람들 안에 묶어 넣었다. 끝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다. 


 자기 세포 하나하나 속에 화인으로 뿌리 박혀 있는 카트라킬리스와 갈리에니의 유산을 부정하고 싶었던 폴은 의사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펠로타 선수가 되어 마이애미 하이알라이로 도망친다. 펠로타는 버들가지로 짠 라켓을 손에 끼고 화양목을 둥글게 깎아 염소가죽을 씌운 공을 치는 경기다. 베팅을 한 1만 5천명의 관중 앞에서 허공으로 뛰어 올라 시속 300km로 공을 쳐내는 일로 자기 삶에 내려진 저주를 이기려고 했던 폴은 어느 날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고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그동안 잊고 싶었지만 잊지 못했던 ‘가족의 유산’을 마주하게 된 폴은 모든 절차를 마친 후 다시 한 번 더 하이알라이로 가서 삶에 붙어있으려는 시도를 한다. 바다에서 빠져 죽어가던 걸 건져준 이후 평생에 가족이 된 개 왓슨, 재치와 열의로 무장한 채 삶에 맞서는 펠로타 동지 조이 에피파니오, 인생의 여인이 된 잊지 못할 첫사랑 잉빌 룬데. 인생의 황혼에 이른 어느 날 ‘그때 참 행복했다’라고 추억 할 수 있는 보통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은 그는 잉빌 룬데와 헤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업을 이어 아버지가 하던 병원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비로소 자기가 처한, 자기가 상속받은 유산의 실체를 발견한다. 카트라킬리스와 갈리에니로부터 상속 받은 그것은 실은 지구상 천지개벽 이래 1천 80억명의 사람 모두가 빠져나가지 못했던 보편적 저주였다. 우리 모두가 신고 있는 빨간 구두를 직시한 폴은 자기 몫의 저주를 풀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장폴 뒤부아가 쓴 [상속]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삶의 열망으로 들끓거나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한 인물도, 세상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살아온 배경, 그들의 직업, 그들이 사는 세계 등 모든 것이 이미 소멸했거나 소멸하고 있는 중이다. 스피리돈 할아버지는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질 때 간신히 탈출했으면서도, 그 시대의 유물(스탈린의 뇌조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던 인물이고 엄마와 삼촌의 직업은 더 이상의 비전도 미래도 없는 시계공이다.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 아드리안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생의 소멸을 돕는 조력자였다. 시간이 먼지가 되어 풍화하는 듯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젊은 폴이 꽂힌 건 스포츠 ‘펠로타‘였다. 한때 올림픽종목이었으나 이제는 베팅에 관심 있는 구경꾼들의 경기가 된 이 스포츠는 그나마도 경제논리에 밀려 구장이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른다. 폴의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함께 만들었던 잉빌은 신체 기능은 물론 기억까지 잃는 불치병에 걸리고 폴의 우울한 생애에 너무나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반려견 왓슨은 폴의 품에서 요단강을 건넌다. ’살아간다‘곤 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음을, 그 안에서 잠시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깊은 심연으로 우리는 침몰한다는 사실을, 쉼없이 소멸하고 사라지고 있음을 이 소설이 알려준다.

 

 천지개벽 이래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늘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세상을 빛 없는 시공간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빛은 소중한 축복일진대 다른 어떤 우주만을 비추고, 그 우주 둘레를 이 세상을 포함한 암흑이 둘러싸고 있다는 관점이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을 빛이 없는 어떤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그 지하세계란 까마득히 깊은 검은 구멍 같은 것으로 천지개벽 이래 1천80억 명의 인간을 삼켜왔다. 스스로 영혼을 지녔다고 믿을 만큼 갈망이 크고 자만심도 큰 인간을 말이다.
342쪽

 

 

 

 장폴 뒤부아 작가의 전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대부분 폴이었다는 것도 이 소설을 번역한 임미경 님이 쓴 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이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피도 눈물도 없이 현실을 직시하는 매서움을 자랑한다는 것 역시 역자의 글을 읽고 알았다. 자기의 생을 이 땅에 발 붙여 보려는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을 택한 주인공의 마지막 기록을 읽고 나서 한동안은 너무나 우울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었다면 장폴 뒤부아는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 듯했다. 폴의 삼촌인 쥘이 “삶은 길을 잘못 들면 안 돼. 후진이 안 되거든.”(114쪽)이라고 했던 말은 애초에 태어난 것이 잘못 든 길이라는 뜻처럼 읽혔다. 할아버지가 폴에게 이야기 해준 ‘콰가’의 멸종은 모든 개체가 서서히 사라지고 지상의 단 한 마리의 콰가가 죽어가는 과정이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폴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사랑한 이도, 친구도, 아끼던 반려견도 있었으나 이들이 사라진 후 그들과의 친밀했던 시간은 도리어 깊은 슬픔이 되어 우리를 덮친다. 아무리 붙잡으려 애써도 스러질 뿐이고, 간직하려 하는 아름다운 것들 역시 모조리 시간 속에 저물어 버리는 게 삶이라면, 이 속에서 빨간 구두를 신고 온 몸이 망가지도록 춤을 추는 인간들의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나? 


 바로 이 지점에 저자는 펠로타 선수들이 손뼈가 으스러지면서도 무엇 때문에 이 스포츠를 지속하는지를 대입한다. 관중이 없어도, 연봉이 시원찮아도 펠로타 선수의 길을 가기로 했던 폴의 선택이야말로 이 답 없는 인간의 생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전언이다. 열심히 살다보면, 노력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테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건 고문이다. 마치 종교에서 ‘신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는 믿음과 다름없는 이런 희망은 도리어 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삶은 그저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일은 어디로 갈지 그리고 내 삶을 지속할지 여부까지도 나의 선택이고 결정에 달린 일이다.

 

 

 장폴 뒤부아는 폴 카트라킬리스의 기묘한 가족사와 구 소련의 붕괴, 문을 닫은 시계 공방과 하이알라이 구장 등 현대 정치 및 산업사를 직조하여 낡고 부패하고 소멸해가는 우리의 현실을 가차 없이 그렸다. 소소하고 소박한 즐거움들은 계주를 하듯 이어지고, 꿈이 현실이 된 어떤 순간들은 고스란히 포르말린 병으로 들어가 유물이 된다. 삶에 빛나는 순간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빨간 구두를 신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지속될 거라는 낭만은 나를 함정에 빠뜨린다. 그러니 ‘잘될거야’라는 미신에 취하지 않기를. 폴이 상속 받은 유산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지구상에 없으니까. 내가 삶을 선택하지 않으면 삶이 나를 제멋대로 끌고 가버린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의자에 걸터앉았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본 것에 대해, 내가 한 일에 대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후회하는지 아니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여기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2층에 포르말린에 잠겨 있는 구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의 기억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이 집은 공허하고 말없는 무덤이었다. 나는 이 무덤의 유일한 하숙인이었다. 왓슨은 긴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잉빌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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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아티스트 하우스 에디션)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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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 책 [방구석 미술관]이 36쇄까지 찍을 정도로 잘 팔렸는지 알겠다. 더 찍어도 괜찮을 만큼, 너무나 독보적으로 잘 쓴 책이다. 서양 미술사와 주요 작가들을 소개한 책들은 굉장히 많다. 정말로 많다. 한 분야에 많은 책이 (특히 신간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이 많음을 방증한다. 또한 이런 경우 각 책의 개성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같은 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개성이 특별하지 않으면 이 책이 그 책 같고 그 책이 저 책 같고, 또 저 책이 이 책 같은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실제로 나는 작년에 서양 미술사와 주요 작가들을 소개한 책을 네 권 가량 읽었는데 그 중에 책 이름이 기억나는 책은 한 권 뿐이다. 아, 근데 이건 나의 기억력이 별로인 이유도 있으니 책 탓은 하지 않는 걸로....

 

어쨌거나, 비슷비슷한 내용과 개성을 가지고 있는 책들 중에서 이 책 [방구석 미술관]이 이토록 오래 그리고 뜨거운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알고 싶으니 읽어야 했다. 읽으면서 놀랬다. 너무 재미있어서. 이미 팟캐스트에서 내용의 질과 재미가 증명된 덕분일까?

 

 

 조원재 저자는 미술 분야 팟캐스트 1위인 「방구석 미술관」의 기획자이자 진행자다. 팟캐스트에서 검증된 저자의 입담은 책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뭉크, 고흐, 드가, 고갱, 피카소 등 이미 익숙하게 이름이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과 인생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도록 저자는 스토리텔링에 아낌없이 정성을 들였다. 화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 마디로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카피와 사진으로 첫 장을 시작하여 한 편의 소설처럼 화가의 서사를 읊어준 저자는 제일 마지막 장에 가선, 마치 교과서에 실리는 요약 코너처럼 해당 꼭지의 주요 부분이 한 눈에 읽히도록 정리까지 해준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미술 분야 기초서적이라고 누구에게 추천해도 성공각. 추천 고맙다는 후기를 보장하는 책 [방구석 미술관]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반 고흐, 고갱 등 화가를 미술사 관점에서 주로 봐왔습니다. 그 외에 다른 부분은 편집된 채 말이죠. 그래서 ‘미술’하면 고상하고,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요?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미술이 고상하고 우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역사에 남은 거장들은 우리와 다를까요? 그들도 우리처럼 울고, 웃고, 두려움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인간 아닌가요?

 이 책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술가를 생생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은 예술가의 작품 탄생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방구석에서 낄낄대며 만나게 될 것입니다. 거장이라 불리게 되는 예술가는 사후에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대상이 되며, 그에 따라 다양한 학설이 등장하는데요, 이 책은 일반적으로 사실로 인정되는 것과 더불어 여전히 논쟁이 활발한 학설까지도 적극 끌어왔습니다. 이를 통해, 미술을 보는 당신의 관점을 보다 다양하게 열어드리고자 합니다.
[방구석 미술관] 저자의 서문 중에서

 

 [방구석 미술관]은 14명의 화가 개개인을 챕터별로 소개하면서도, 미술사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걸 놓치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각 화가들이 태어나고 자랐던, 활동했던 나라와 사회는 제각각 다르나 시대가 바뀌는 징조와 결과, 세계사 속 굵직한 사건, 동시대를 살았던 화가들이 서로 주고 받았던 영향이 함께 설명된다. 독자는 커다란 퍼즐을 맞춰가듯 하나의 액자 속에서 확고한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가들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교집합 없는 단편들을 여러 개 모아 출판만 같이한 그런 책자가 아니라, 단편 속 인물들이 서로 상응하고 조우하는 촘촘한 짜임새의 소설모음집을 읽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 데, 그건 바로 몇 백 년 전을 살았던 화가와 나의 서사의 교집합을 발견하는 일이다. 약자들의 빈곤하고 처절한 삶을 화폭에 옮긴 사회적 감성지수 만랩의 에드가 드가나 퇴사 후 개고생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남긴 고갱 같은 화가들의 생애는 미술사측면에서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일상의 나, 평범한 개인의 서사와도 공명을 한다. 이런 화가들이 겪었을 당시의 고뇌와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마치 내 것처럼 익숙하고 선명해서, 그들이 동시대에 동병상련의 지인인 것 같은 동지애까지 느낀다. 바로 이 부분이 [방구석 미술관]이 같은 내용을 다룬 여러 책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이다. 별에서 살 것 같은 화가들과 나의 연,결,고,리^^

 

 

 

 조원재 저자에게 박수를 쳤던 부분이, 각 화가의 입장에서 그의 작품세계, 사상, 생애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독자의 관점을 이끄는 해설 능력이다. [방구석 미술관]을 배달 받은 그 날 ‘그냥 가볍게 한 두 꼭지만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첫 장을 펴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 한 권을 다 읽어가고 있었다.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대략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면 여러 책을 읽기보다 이 책을 여러 번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읽기에 좋은 미술 분야 서적으로 이만한 재미는 또 없지 싶다. 강력 추천. 

 

이 책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술가를 생생한 시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 책을 펼친 당신은 예술가의 작품 탄생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방구석에서 낄낄대며 만나게 될 것입니다. 거장이라 불리게 되는 예술가는 사후에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대상이 되며, 그에 따라 다양한 학설이 등장하는데요, 이 책은 일반적으로 사실로 인정되는 것과 더불어 여전히 논쟁이 활발한 학설까지도 적극 끌어왔습니다. 이를 통해, 미술을 보는 당신의 관점을 보다 다양하게 열어드리고자 합니다.
[방구석 미술관] 저자의 서문 중에서 -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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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낸시 다이어리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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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잡아먹혀도 괜찮아요? 아기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이는 더거 아저씨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고양이를 쥐들의 마을에서 기르다간 자칫 이 만화가 명랑 힐링물이 아니라 범죄 스릴러물이 되어 버릴까봐서요. 그런데 지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저씨가 아들 지미를 데리고 아기 낸시를 먹일 우유를 가득 사가지고 오는 길에서요, 아기가 먹을 것을 가져간다는 뿌듯함에 들뜬 지미에게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지미가 얼마나 신이 났냐면요, 지나가다 마주친 친구 제시에게 우유를 나눠주고는 다 같이 맛있어라고 콧노래를 부르거든요. 파란을 불러올 일임을 알면서도 약자를 외면할 수 없는 아빠 더거와 천진난만하고 사려 깊은 아들 지미의 고양이 낸시 육아! [고양이 낸시]는 이렇게 설레는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쥐에게 고양이는 천적입니다.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죠. 그렇다면 쥐들이라는 다수 앞에서 고양이는 무엇일까, 여전히 공포의 대상일까요? 눈 두 개인 사람이 눈 하나인 사람들만 사는 마을에 가면 뭐라고 불리게요? 다수의 세계에서 다수와 다른 조건은 약점이고 결점이 됩니다. 쥐들의 세계에서 고양이의 발톱과 뾰족한 귀는 더 이상 강점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과 다르기에 약점이자 결점이 되고, 이 결격사유는 차별과 혐오의 명분이 되기 마련이지요.

 

[고양이 낸시]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만화입니다. 쥐들의 마을에 유기된 아기 고양이라는 설정 이면에 다수와 소수, 동등과 다름, 존중과 차별에 대한 작가의 은밀한 시선이 숨어 있습니다.

여자 아기 고양이 낸시는 하필 아빠쥐와 아들쥐가 함께 사는 집에 버려졌습니다. ()도 다른데 성별까지 다른 더거 부자(父子)와 고양이 낸시. 접점이 하나도 없지만 더거와 지미는 낸시를 키우기로 합니다. 이 소식에 동네 주민들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누가 봐도 고양이를 쫓아내는 게 당연한 상황인 거지요. 그런데 잠깐, 이 마을 좀 수상합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천적을 쫓아내려했지만 이 고양이의 이름을 알게 되고, 이 아가와 눈을 맞추었을 때 그들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사르르 녹고 말았습니다.이건 고양이가 아니라 낸시야.’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 와서 북쪽에서 온 쥐가 되어주었습니다.

 

 책 36쪽  쥐와 다르게 생긴 낸시는 '북쪽에서 온 쥐'랍니다 ^^

 

 

그렇게 낸시는 마을의 귀염둥이가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사건사고 없이 평화로운 어느 날, 여행자로 세계를 떠도는 헥터 삼촌이 오랜만에 마을로 돌아옵니다. 동네 아이들이 고양이와 어울리는 걸 본 삼촌은 경악합니다. 고양이가 쥐의 천적임을 알려주는 책을 증거(명분)로 내밀며 마을 어른들을 책망합니다. 모든 책에서 고양이는 위험하다고 되어 있어요! 쫓아내야죠.” 삼촌의 아버지는 책에서 눈을 들어 낸시를 제대로 보기를 권합니다.너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가까이에서 책을 보곤 했었지.” 현실은 책이 아니라 책 밖에, 실물은 종이에 박제된 것이 아닌 눈앞에 움직이고 있는 법입니다. 한사코 낸시가 아닌 고양이밖에 보지 않는, 그래서 쫓아내야 한다는 삼촌의 인식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남다른 것은 경계부터하는 우리의 그 많은 편견과 선입견은 또 다 어디서부터 온 걸까요?

 

헥터 삼촌이 낸시를 쫓아내려 한다는 걸 알게 된 지미와 아이들은 쥐벤져스가 됩니다. 낸시를 지키기 위해서요. 아이들의 노력 끝에 헥터 삼촌도 결국 낸시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진짜 쥐들과 북쪽에서 온 가짜 쥐 낸시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 책이 끝나느냐구요? 아니, 이 책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책 231쪽 헥터 삼촌의 팩트폭격! "낸시에게 진실을 알려줘야죠!"

 

 

헥터 삼촌은 이제 낸시를 걱정합니다. 낸시가 스스로를 쥐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낸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속여선 안된다고 일깨웁니다. 그렇죠, 낸시는 고양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낸시가 쥐와 닮아서 혹은 쥐와 비슷해서 사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낸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 사랑은 낸시가 확실하고 견고한 자존감을 갖도록 배려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 마을 어른들과 아빠 더거는 낸시가 혹시라도 스스로를 쥐로 생각하지 않도록, 그녀가 자기 자신을 잊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낸시, 너는 우리와 다르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야. 너는 쥐와는 다른낸시가 상처 받을까 싶어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는 더거의 진지한 얼굴 앞에서 낸시는 해맑게 대답합니다. “나는 고양이야, 아빠. 알고 있어.” 세상에나 마상에나.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이것 역시 쥐벤져스의 작품이었어요. 아이들은 쥐들의 세계 속에서 낸시가 혼란스러워 할까봐 함께 낸시를 찾아갑니다. 그리곤 너는 고양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널 사랑할거야라고 든든한 포옹으로 낸시를 감싸 안아줍니다. 다름 자체를 무시하거나 숨기지 않고, 낸시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가 다름 그대로를 인정하고 껴안는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고양이인 채로 쥐들과 함께 사는 낸시, 이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또 있을까요?

 

 

책 244쪽 "조금 다르지만 괜찮아" 낸시도 다 알아요~ 자기의 다름을.

 

 

  작가는 나와 다른 타자를 배척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남과 다른 나를 혐오하는 우리의 생각 옆구리를 낸시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풍성한 꼬리로 살살 간지럼을 태웁니다. ‘당신에게도 퇴치해야 할 고양이가 있는 건 아니냐고 눈짓을 합니다. 남다름이 빌미가 되어 배척을 당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며 다름을 포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전히 우리 각자의 마음 어딘가에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과 다른 나의 모습을 숨기거나 다수와 같은 모습이 되려고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일도 빈번하지요.

약자 혹은 소수가 원하는 건 약한 만큼, 다른 만큼 배려해달라거나 위로 혹은 보상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름은 그저 하나의 개성으로, 약점 역시 그저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주기를, 그래서 투명인간처럼 외면 당하거나 온실 속 화초처럼 과보호를 받는 대신 동등한 존재로 같은 편이 되어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싶은 멋진 세상이겠지요. 우리는 각자 서로 다 다르잖아요. 모두에게는 조금씩 소수의 얼굴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면 내 편, 네 편 없이 모두 같은 편이 될 수 있을텐데요.

관습과 기득권이 세워 놓은 기준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 다름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헥터 삼촌이 책에만 눈을 고정한 동안에는 낸시의 그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결코 보지 못했듯이 말이죠. 독자는 이 지점에서 진정한 천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천적은 고양이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단단히 박혀 있는 이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사실.

 

쥐들의 무리 속에 아기 고양이는 여러 가지 종류의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를 연상시킵니다. 낸시는 입양아, 장애인, 이주여성, 왕따 피해 청소년 등 일상의 평범한 풍경 속에 하나쯤은 발견하게 되는 수많은 소수자 및 약자의 얼굴이 됩니다. 나는 그 얼굴 앞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입장에 서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헥터 삼촌이 된 적은 없었는지? 낸시가 고양이인 자신을 인정하듯 나는 나의 다름을 스스로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쥐벤져스의 대활약! 인정과 사랑은 자존감을 쑥쑥 키웁니다.

 

 

[고양이 낸시]는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그림과 엄마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드는 훈훈한 스토리로 빚은 웰메이드 만화입니다. 단 한 권이지만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여러 시간이 필요합니다. 책을 보는 시간의 몇 배를 들여, 고양이 낸시와 친구들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려 깊은 인물들이 서로의 편견을 극복하고 약점을 껴안는 장면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만날 때면 보통은 현실에선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하고 선을 그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낸시에게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 혹은 나의 얼굴을 대입하면 금방 생각이 달라집니다. 나와 다른 상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방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더거 아저씨네 마을 사람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남다른 나를 숨기고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장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면 낸시를 만나보세요.

 

요즘 어른들이 함께 모여 그림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많은데, 그런 모임에 꼭 이 책이 주제도서로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낸시와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 역시 자녀와 이 책을 함께 읽고 가정에서 대화를 나누어 보는 일도 좋겠네요. 다수가 소수자를 껴안는 방식, 남다른 소수자로 살아가는 방식,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과 배려의 방식에 대한 멋진 힌트가 가득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질수록 우리의 마을이 낸시네 마을과 닮아가리라 기대합니다.

 

 

고양이라도 상관 없어! 그냥 조금 다른 거야! 아냐 더 멋진 거야!
낸시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 내 동생!!! 공주님!!일테니까.
우리는 언제나 낸시를 사랑할거야.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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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심리법칙 75가지를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 심리학 서적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이미 중국에서 150만 독자를 만나고 한국으로 왔다. 150만 독자의 검증이라니, 서점가에 이토록 많은 심리학 책 중에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뭘까?
 저자 장원청은 심리와 경제 분야 도서를 저술해왔다. 심리와 경제는 개인의 생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야다. 학문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접근하는 이론서들도 많지만 일반 시민으로서의 독자에게 가장 와 닿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일들을 심리와 경제로 설명하는 책이 아닐까.

 

 [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는 우리 일상과 제일 밀접한 심리법칙 75가지를 설명한다. 인간 관계, 경제 현상, 소비 심리, 진로와 직업 부분까지 우리가 매일 매순간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식해야 하는지를 도움을 주려는 책이다. 물론 이 책이 내가 실제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수리수리마수리’ 같은 마법 주문은 아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착각 중에 하나가, 환경이 변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인생이 불확실한 것은 맞지만 환경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변해야 하는 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심리 관련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자 귀찮음,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환경을 바꾸기 보다, 내가 이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를 먼저 바꾸는 게 효율적이다. 이 책은 문제를 나에게 좀더 도움이 되고 발전이 되는 방향으로 바라보는 데에 작지 않은 도움을 준다. 내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해설해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어려움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해주는 게 심리학 서적의 역할이라면, 이 책은 좋은 심리학 서적이다.

 

일상의 자잘한 불편함, 잡음, 어려움, 귀찮음으로 피곤하다고 느낀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를 잠식하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기결정권을 침범하는 온갖 주변의 자극으로부터 내 중심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 방향과 전략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므로.

 

; 이 책은 단편적인 심리 법칙 몇 가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관련된 최신 연구결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75가지를 망라했다.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인 독자에게 능동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주변 환경에 필요한 심리 법칙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저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법칙의 적용은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절대 가볍지 않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이 책은 단편적인 심리 법칙 몇 가지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인간 심리와 관련된 최신 연구결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75가지를 망라했다. 살아가는 방식이 제각각인 독자에게 능동적으로 자신의 성격과 주변 환경에 필요한 심리 법칙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저자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법칙의 적용은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절대 가볍지 않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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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별과 인간의 경이로운 여정 서가명강 시리즈 9
윤성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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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윤성철 교수가 서울대 교양과목인 <인간과 우주>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현대 천문학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우주관, 그 우주관이 어떤 발견들을 통하여 뒤집어졌고 엎어졌다가 새로운 이론과 법칙들로 발전해왔는지를 정리하고, 현대 천문학이 발견하고 정립한 우주와 생명체에 대하여 안내한다.

 

 이 책을 읽고 빅뱅 이론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천문학이나 우주물리학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던 나였는데 이 책에서 우주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을 따른 뒤에 ‘그럼 빅뱅 전엔 뭐가 있었지?’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찾아보니 빅뱅 전에는 시간과 공간도 없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럼 그 전이야말로 ‘영원’의 상태였다는 거 아닌가? 백년인생 밖에 안 되는 내가 수십억, 수백억 년 전을 너머 시간과 공간조차 없던 시절을 가늠하는 건 신기하고 묘한 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별을 구성하는 물질과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같다는 것을 여러 근거와 이론을 들어 자세하게 설명한다. 별들의 세계, 우주는 하나의 형태와 구성으로 고정되어 존속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공간이 팽창하거나 수축되며 별들이 태어나거나 소멸하면서 우주는 계속 다른 얼굴로 살아왔다. 원래 그런 모습으로 있었던 것도, 고정된 모습인 것도 아니다. 별과 우리의 몸을 이루는 성분이 같다는 사실은, 인간의 몸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변화는 생명의 속성이다.

 

 이 책은 우주와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생명체들을 관통하는 이 생명의 속성에 집중한다. 우주의 장엄한 역사도, 그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의 역사도 생명의 속성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설명이 펼쳐진다. 교양수업 내용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 그런지, 문장 곳곳이 매우 감성적이다. 천문학은 우주를 숫자와 계산의 공간으로 만드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낭만적이다.

 

 그러나 우연성, 가능성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부분들은 읽기에 난해하다. 인간의 모습, 현재의 세계가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때로 ‘우연성’이 등장하는데 (물론 무작위와는 다른 의미로) 이런 부분을 읽으면 의문이 가시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다고? 우연히?’라는 반문이 더해진다. 아마 이런 부분은 현대 과학이 아직 풀지 못한 부분인가보다.

 

  과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과학 논문에는 오류가 없을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 또한 과학자의 말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틀렸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기 때문이다.
120-121쪽

 

 그러하기에 이러한 서적을 읽을 때는 현재까지 측정된 데이터는 이러하며, 실제 값으로  이런 저런 점을 추측하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구별되어야 하겠다. 실제와 추측을 구분 짓는 건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모두 필요한 부분이리라. 예를 들면 외계문명에 대한 네 번째 꼭지에서 ‘가능성’이라고 언급한다면 자칫 ‘외계문명이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무리하게 확장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결과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만 적어도 100억 개 이상, 최대 400억 개의 지구형 행성이 존재한다. 우리 은하와 유사한 은하들이 우주에 약 2조 개가 존재하고 있으니 우주 전체에는 무려 10의 22승개가 넘는 지구형 행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지구에는 약 78억 명의 인구가 있다. 만약 100억 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이 있다면 현재 살고 있는 사람 중 거의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기적이라 부른다. 인간의 존재도 이런 기적일까? 만약 골디락스 존 행성에서 인간과 같은 고등 지능을 지닌 생명체가 등장할 확률이 100억 분의 1이라면, 지구의 관점에서 이는 100억 분의 1의 극히 희박한 확률이 실현된 것이다.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전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는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우주에 10의 22승개가 넘는 골디락스 존 행성이 있다면 그 중에 1조 개가 넘는 곳에서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체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적 생명체의 존재는 오히려 우주적 필연이다. 이처럼 우주는 기적을 평범함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광대하다. 우주에 관해 점점 더 잘 이해할수록 우리는 혼자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236-237쪽

 

 기대만으로 점치듯 예측하는 건 과학이 아닌 경우여야 한다. 빅뱅으로 인간이라는 고등생명체가 탄생한 경우와 인간이라는 고등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한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그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 저자의 말처럼 생각을 구체적인 ‘숫자’로 구현할 수 없다면 과학이 아닌 공상이니까(178쪽).

 

 우주라는 거대한 생명체와 나라는 한 인간이 하나의 유기체임을 마주보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 사실을 타당한 근거와 설득적인 해설로 설명을 듣는 건 무척 재미있는 일이다. 아마 그래서 ‘서가명강’시리즈가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앞으로 과학이 어떤 발견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반 세기 동안 이전의 역사와 전혀 다른 서사를 써온 현대 천문학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앞으로 거듭 뒤집어지고 엎어져서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게 될 테니까.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넘어올 때가 그랬고 정상우주론에서 빅뱅이론으로 넘어올 때가 그랬다.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고 있는 게 더 많은 지금, 앞으로 또 어떤 미지가 언제 어떻게 우리의 눈에 발견될지 기대가 된다.

과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과학 논문에는 오류가 없을 수 없다.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이유 또한 과학자의 말이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틀렸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하기 때문이다.
120-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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