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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장폴 뒤부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월
평점 :
누구나 빨간 구두를 신는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되어 이 땅에 출현하는 그 순간에 이미 각자는 발에 빨간 구두를 신고 태어나 있다. 우리의 발에 채워진 저주는 삶의 불확실성을 무곡舞曲 삼고 어쩔 수 없는 박자를 따라 나를 끌고 간다. 한 순간도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때로는 쫓기듯, 때로는 신들린 듯 춤을 추는 일은 고통이다. 삶의 박자는 고정되지도 않고 예측할 수도 없다. 나를 끌고 가시덤불로 들어간 구두가 숲을 뒹굴며 나를 고슴도치로 만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삶이 신겨준 빨간 구두의 저주를 알아차리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 소녀가 숲의 나무꾼더러 발을 잘라달라고 소리친 건 비극일까? 이 저주에서 빠져 나올 길을 선택한 그녀의 결정을, 그 시도를 우리는 어쩌면 부러워하고 있진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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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트라킬리스는 기묘한 가족력을 소유한 남자다. 할아버지인 스피리돈 카트라킬리스, 삼촌인 쥘 갈리에니, 엄마인 안나 갈리에니, 아버지 아드리안 카트라킬리스가 몇 년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자살했다. 스탈린의 뇌조각을 잘라와 평생 그것을 전시한 채로 살았던 할아버지로부터 남동생과 부부처럼 지내면서 정작 자기 남편과 아들에 대한 애정 표현에는 무감각했던 엄마, 무기력한 시계공으로 살다 어느 날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화를 받고 사흘 후에 130km 속도로 오토바이를 몰아 벽으로 돌진한 삼촌 그리고 가족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가시덤불 속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 없이 병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폴은 이들을 ‘각자가 세상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다른 가족의 삶에는 관심을 기울이기 어려운 사람들’(101쪽)이라고 회상한다. 이들의 유전자를 상속받은 폴은 자기 자신 역시 그 사람들 안에 묶어 넣었다. 끝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다.
자기 세포 하나하나 속에 화인으로 뿌리 박혀 있는 카트라킬리스와 갈리에니의 유산을 부정하고 싶었던 폴은 의사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펠로타 선수가 되어 마이애미 하이알라이로 도망친다. 펠로타는 버들가지로 짠 라켓을 손에 끼고 화양목을 둥글게 깎아 염소가죽을 씌운 공을 치는 경기다. 베팅을 한 1만 5천명의 관중 앞에서 허공으로 뛰어 올라 시속 300km로 공을 쳐내는 일로 자기 삶에 내려진 저주를 이기려고 했던 폴은 어느 날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고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그동안 잊고 싶었지만 잊지 못했던 ‘가족의 유산’을 마주하게 된 폴은 모든 절차를 마친 후 다시 한 번 더 하이알라이로 가서 삶에 붙어있으려는 시도를 한다. 바다에서 빠져 죽어가던 걸 건져준 이후 평생에 가족이 된 개 왓슨, 재치와 열의로 무장한 채 삶에 맞서는 펠로타 동지 조이 에피파니오, 인생의 여인이 된 잊지 못할 첫사랑 잉빌 룬데. 인생의 황혼에 이른 어느 날 ‘그때 참 행복했다’라고 추억 할 수 있는 보통의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은 그는 잉빌 룬데와 헤어지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업을 이어 아버지가 하던 병원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비로소 자기가 처한, 자기가 상속받은 유산의 실체를 발견한다. 카트라킬리스와 갈리에니로부터 상속 받은 그것은 실은 지구상 천지개벽 이래 1천 80억명의 사람 모두가 빠져나가지 못했던 보편적 저주였다. 우리 모두가 신고 있는 빨간 구두를 직시한 폴은 자기 몫의 저주를 풀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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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뒤부아가 쓴 [상속]은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삶의 열망으로 들끓거나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한 인물도, 세상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살아온 배경, 그들의 직업, 그들이 사는 세계 등 모든 것이 이미 소멸했거나 소멸하고 있는 중이다. 스피리돈 할아버지는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질 때 간신히 탈출했으면서도, 그 시대의 유물(스탈린의 뇌조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았던 인물이고 엄마와 삼촌의 직업은 더 이상의 비전도 미래도 없는 시계공이다.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 아드리안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생의 소멸을 돕는 조력자였다. 시간이 먼지가 되어 풍화하는 듯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젊은 폴이 꽂힌 건 스포츠 ‘펠로타‘였다. 한때 올림픽종목이었으나 이제는 베팅에 관심 있는 구경꾼들의 경기가 된 이 스포츠는 그나마도 경제논리에 밀려 구장이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른다. 폴의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함께 만들었던 잉빌은 신체 기능은 물론 기억까지 잃는 불치병에 걸리고 폴의 우울한 생애에 너무나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반려견 왓슨은 폴의 품에서 요단강을 건넌다. ’살아간다‘곤 하지만 실은 모든 것이 죽어가고 있음을, 그 안에서 잠시 찬란하게 빛나는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더 깊은 심연으로 우리는 침몰한다는 사실을, 쉼없이 소멸하고 사라지고 있음을 이 소설이 알려준다.
천지개벽 이래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늘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세상을 빛 없는 시공간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빛은 소중한 축복일진대 다른 어떤 우주만을 비추고, 그 우주 둘레를 이 세상을 포함한 암흑이 둘러싸고 있다는 관점이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을 빛이 없는 어떤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그 지하세계란 까마득히 깊은 검은 구멍 같은 것으로 천지개벽 이래 1천80억 명의 인간을 삼켜왔다. 스스로 영혼을 지녔다고 믿을 만큼 갈망이 크고 자만심도 큰 인간을 말이다.
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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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뒤부아 작가의 전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대부분 폴이었다는 것도 이 소설을 번역한 임미경 님이 쓴 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이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피도 눈물도 없이 현실을 직시하는 매서움을 자랑한다는 것 역시 역자의 글을 읽고 알았다. 자기의 생을 이 땅에 발 붙여 보려는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살을 택한 주인공의 마지막 기록을 읽고 나서 한동안은 너무나 우울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었다면 장폴 뒤부아는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 듯했다. 폴의 삼촌인 쥘이 “삶은 길을 잘못 들면 안 돼. 후진이 안 되거든.”(114쪽)이라고 했던 말은 애초에 태어난 것이 잘못 든 길이라는 뜻처럼 읽혔다. 할아버지가 폴에게 이야기 해준 ‘콰가’의 멸종은 모든 개체가 서서히 사라지고 지상의 단 한 마리의 콰가가 죽어가는 과정이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폴이 죽음으로 다가가는 과정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사랑한 이도, 친구도, 아끼던 반려견도 있었으나 이들이 사라진 후 그들과의 친밀했던 시간은 도리어 깊은 슬픔이 되어 우리를 덮친다. 아무리 붙잡으려 애써도 스러질 뿐이고, 간직하려 하는 아름다운 것들 역시 모조리 시간 속에 저물어 버리는 게 삶이라면, 이 속에서 빨간 구두를 신고 온 몸이 망가지도록 춤을 추는 인간들의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나?
바로 이 지점에 저자는 펠로타 선수들이 손뼈가 으스러지면서도 무엇 때문에 이 스포츠를 지속하는지를 대입한다. 관중이 없어도, 연봉이 시원찮아도 펠로타 선수의 길을 가기로 했던 폴의 선택이야말로 이 답 없는 인간의 생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전언이다. 열심히 살다보면, 노력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테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건 고문이다. 마치 종교에서 ‘신이 나를 도와줄 것이다’는 믿음과 다름없는 이런 희망은 도리어 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삶은 그저 선택의 연속일 뿐이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일은 어디로 갈지 그리고 내 삶을 지속할지 여부까지도 나의 선택이고 결정에 달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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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 뒤부아는 폴 카트라킬리스의 기묘한 가족사와 구 소련의 붕괴, 문을 닫은 시계 공방과 하이알라이 구장 등 현대 정치 및 산업사를 직조하여 낡고 부패하고 소멸해가는 우리의 현실을 가차 없이 그렸다. 소소하고 소박한 즐거움들은 계주를 하듯 이어지고, 꿈이 현실이 된 어떤 순간들은 고스란히 포르말린 병으로 들어가 유물이 된다. 삶에 빛나는 순간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빨간 구두를 신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지속될 거라는 낭만은 나를 함정에 빠뜨린다. 그러니 ‘잘될거야’라는 미신에 취하지 않기를. 폴이 상속 받은 유산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지구상에 없으니까. 내가 삶을 선택하지 않으면 삶이 나를 제멋대로 끌고 가버린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의자에 걸터앉았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본 것에 대해, 내가 한 일에 대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후회하는지 아니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여기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2층에 포르말린에 잠겨 있는 구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의 기억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이 집은 공허하고 말없는 무덤이었다. 나는 이 무덤의 유일한 하숙인이었다. 왓슨은 긴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었고, 잉빌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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