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낸시 다이어리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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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잡아먹혀도 괜찮아요? 아기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이는 더거 아저씨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고양이를 쥐들의 마을에서 기르다간 자칫 이 만화가 명랑 힐링물이 아니라 범죄 스릴러물이 되어 버릴까봐서요. 그런데 지미의 행동을 보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저씨가 아들 지미를 데리고 아기 낸시를 먹일 우유를 가득 사가지고 오는 길에서요, 아기가 먹을 것을 가져간다는 뿌듯함에 들뜬 지미에게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지미가 얼마나 신이 났냐면요, 지나가다 마주친 친구 제시에게 우유를 나눠주고는 다 같이 맛있어라고 콧노래를 부르거든요. 파란을 불러올 일임을 알면서도 약자를 외면할 수 없는 아빠 더거와 천진난만하고 사려 깊은 아들 지미의 고양이 낸시 육아! [고양이 낸시]는 이렇게 설레는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쥐에게 고양이는 천적입니다. 공포와 경계의 대상이죠. 그렇다면 쥐들이라는 다수 앞에서 고양이는 무엇일까, 여전히 공포의 대상일까요? 눈 두 개인 사람이 눈 하나인 사람들만 사는 마을에 가면 뭐라고 불리게요? 다수의 세계에서 다수와 다른 조건은 약점이고 결점이 됩니다. 쥐들의 세계에서 고양이의 발톱과 뾰족한 귀는 더 이상 강점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과 다르기에 약점이자 결점이 되고, 이 결격사유는 차별과 혐오의 명분이 되기 마련이지요.

 

[고양이 낸시]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만화입니다. 쥐들의 마을에 유기된 아기 고양이라는 설정 이면에 다수와 소수, 동등과 다름, 존중과 차별에 대한 작가의 은밀한 시선이 숨어 있습니다.

여자 아기 고양이 낸시는 하필 아빠쥐와 아들쥐가 함께 사는 집에 버려졌습니다. ()도 다른데 성별까지 다른 더거 부자(父子)와 고양이 낸시. 접점이 하나도 없지만 더거와 지미는 낸시를 키우기로 합니다. 이 소식에 동네 주민들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누가 봐도 고양이를 쫓아내는 게 당연한 상황인 거지요. 그런데 잠깐, 이 마을 좀 수상합니다. 생존을 위협하는 천적을 쫓아내려했지만 이 고양이의 이름을 알게 되고, 이 아가와 눈을 맞추었을 때 그들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사르르 녹고 말았습니다.이건 고양이가 아니라 낸시야.’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 와서 북쪽에서 온 쥐가 되어주었습니다.

 

 책 36쪽  쥐와 다르게 생긴 낸시는 '북쪽에서 온 쥐'랍니다 ^^

 

 

그렇게 낸시는 마을의 귀염둥이가 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을 하고 사건사고 없이 평화로운 어느 날, 여행자로 세계를 떠도는 헥터 삼촌이 오랜만에 마을로 돌아옵니다. 동네 아이들이 고양이와 어울리는 걸 본 삼촌은 경악합니다. 고양이가 쥐의 천적임을 알려주는 책을 증거(명분)로 내밀며 마을 어른들을 책망합니다. 모든 책에서 고양이는 위험하다고 되어 있어요! 쫓아내야죠.” 삼촌의 아버지는 책에서 눈을 들어 낸시를 제대로 보기를 권합니다.너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가까이에서 책을 보곤 했었지.” 현실은 책이 아니라 책 밖에, 실물은 종이에 박제된 것이 아닌 눈앞에 움직이고 있는 법입니다. 한사코 낸시가 아닌 고양이밖에 보지 않는, 그래서 쫓아내야 한다는 삼촌의 인식은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남다른 것은 경계부터하는 우리의 그 많은 편견과 선입견은 또 다 어디서부터 온 걸까요?

 

헥터 삼촌이 낸시를 쫓아내려 한다는 걸 알게 된 지미와 아이들은 쥐벤져스가 됩니다. 낸시를 지키기 위해서요. 아이들의 노력 끝에 헥터 삼촌도 결국 낸시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진짜 쥐들과 북쪽에서 온 가짜 쥐 낸시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이 책이 끝나느냐구요? 아니, 이 책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책 231쪽 헥터 삼촌의 팩트폭격! "낸시에게 진실을 알려줘야죠!"

 

 

헥터 삼촌은 이제 낸시를 걱정합니다. 낸시가 스스로를 쥐라고 여기는 건 아닌지, 낸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속여선 안된다고 일깨웁니다. 그렇죠, 낸시는 고양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낸시가 쥐와 닮아서 혹은 쥐와 비슷해서 사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낸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 사랑은 낸시가 확실하고 견고한 자존감을 갖도록 배려합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 마을 어른들과 아빠 더거는 낸시가 혹시라도 스스로를 쥐로 생각하지 않도록, 그녀가 자기 자신을 잊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낸시, 너는 우리와 다르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야. 너는 쥐와는 다른낸시가 상처 받을까 싶어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는 더거의 진지한 얼굴 앞에서 낸시는 해맑게 대답합니다. “나는 고양이야, 아빠. 알고 있어.” 세상에나 마상에나. 알고 있었다고? 어떻게? 이것 역시 쥐벤져스의 작품이었어요. 아이들은 쥐들의 세계 속에서 낸시가 혼란스러워 할까봐 함께 낸시를 찾아갑니다. 그리곤 너는 고양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널 사랑할거야라고 든든한 포옹으로 낸시를 감싸 안아줍니다. 다름 자체를 무시하거나 숨기지 않고, 낸시 자신과 주변 사람 모두가 다름 그대로를 인정하고 껴안는 [고양이 낸시]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고양이인 채로 쥐들과 함께 사는 낸시, 이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또 있을까요?

 

 

책 244쪽 "조금 다르지만 괜찮아" 낸시도 다 알아요~ 자기의 다름을.

 

 

  작가는 나와 다른 타자를 배척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남과 다른 나를 혐오하는 우리의 생각 옆구리를 낸시의 그것처럼 부드럽고 풍성한 꼬리로 살살 간지럼을 태웁니다. ‘당신에게도 퇴치해야 할 고양이가 있는 건 아니냐고 눈짓을 합니다. 남다름이 빌미가 되어 배척을 당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며 다름을 포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전히 우리 각자의 마음 어딘가에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과 다른 나의 모습을 숨기거나 다수와 같은 모습이 되려고 나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일도 빈번하지요.

약자 혹은 소수가 원하는 건 약한 만큼, 다른 만큼 배려해달라거나 위로 혹은 보상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름은 그저 하나의 개성으로, 약점 역시 그저 하나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주기를, 그래서 투명인간처럼 외면 당하거나 온실 속 화초처럼 과보호를 받는 대신 동등한 존재로 같은 편이 되어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싶은 멋진 세상이겠지요. 우리는 각자 서로 다 다르잖아요. 모두에게는 조금씩 소수의 얼굴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게 된다면 내 편, 네 편 없이 모두 같은 편이 될 수 있을텐데요.

관습과 기득권이 세워 놓은 기준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 다름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헥터 삼촌이 책에만 눈을 고정한 동안에는 낸시의 그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결코 보지 못했듯이 말이죠. 독자는 이 지점에서 진정한 천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천적은 고양이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단단히 박혀 있는 이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사실.

 

쥐들의 무리 속에 아기 고양이는 여러 가지 종류의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를 연상시킵니다. 낸시는 입양아, 장애인, 이주여성, 왕따 피해 청소년 등 일상의 평범한 풍경 속에 하나쯤은 발견하게 되는 수많은 소수자 및 약자의 얼굴이 됩니다. 나는 그 얼굴 앞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입장에 서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헥터 삼촌이 된 적은 없었는지? 낸시가 고양이인 자신을 인정하듯 나는 나의 다름을 스스로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쥐벤져스의 대활약! 인정과 사랑은 자존감을 쑥쑥 키웁니다.

 

 

[고양이 낸시]는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그림과 엄마 미소를 절로 짓게 만드는 훈훈한 스토리로 빚은 웰메이드 만화입니다. 단 한 권이지만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여러 시간이 필요합니다. 책을 보는 시간의 몇 배를 들여, 고양이 낸시와 친구들 이야기의 여운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려 깊은 인물들이 서로의 편견을 극복하고 약점을 껴안는 장면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만날 때면 보통은 현실에선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지하고 선을 그어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낸시에게 내가 아는 사람의 얼굴, 혹은 나의 얼굴을 대입하면 금방 생각이 달라집니다. 나와 다른 상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괜찮은 방식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더거 아저씨네 마을 사람들이 조언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남다른 나를 숨기고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장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면 낸시를 만나보세요.

 

요즘 어른들이 함께 모여 그림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 많은데, 그런 모임에 꼭 이 책이 주제도서로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낸시와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 역시 자녀와 이 책을 함께 읽고 가정에서 대화를 나누어 보는 일도 좋겠네요. 다수가 소수자를 껴안는 방식, 남다른 소수자로 살아가는 방식,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과 배려의 방식에 대한 멋진 힌트가 가득한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넓고 깊게 만들어질수록 우리의 마을이 낸시네 마을과 닮아가리라 기대합니다.

 

 

고양이라도 상관 없어! 그냥 조금 다른 거야! 아냐 더 멋진 거야!
낸시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 내 동생!!! 공주님!!일테니까.
우리는 언제나 낸시를 사랑할거야.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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