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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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작은 언제 읽어도 환상적이다. 고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로워진다. 세계적인 전염병(심지어 아직 백신 계발도 되지 않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확진자는 16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6천 4백여명에 이른 심각한 전염병)으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충격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나가고 있는 지금 어떤 이는 [페스트]를 다시 읽고 또 다른 이는 세계를 바꾼 질병의 역사에 대한 책을 탐색한다. 당연한 일인 듯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는 행동 양상. 코로나19가 세계를 잠시 멈추게 한 동안 시간도둑들에게 저당 잡혔던 시간들이 풀려나 우리에게 돌아왔다. 요즘만큼 독서하기에 넉넉한 시간이 있었던가. 이제 우린 이 시기의 혼란과 두려움을 치료할 백신을 책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모모]는 미하엘 엔데가 자그마치 46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미하엘 엔데는 독일의 동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를 ‘동화’ 작가로 이야기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가 한다. 철학이라는 그릇에 담긴 관념과 개념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동화라는 형식을 빌어 왔을 뿐이다. 미하엘 엔데가 환상적인 동화 작가라는 유명세만 믿고 유아들과 함께 [모모] 읽기에 도전하시는 부모님들께 혹시라도 싶어 말씀드리자면, 모모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아이들과 읽었을 때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고 이 연사 외치는 바.

 

 [모모]는 특히 이 작품을 한국어로 처음 번역한 차경아 번역가와 인연이 깊은데, 이 인연 덕에 미하엘 엔데와 한국의 인연도 꽤 깊어졌다는 후문이 있다. 작가가 번역가에게 자기 작품에 대하여 조언을 구할 정도였다니 그 인연이 너무나 부럽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외국작가를 생각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장 먼저 (그리고 나에겐 유일하게) 떠오르는데 미하엘 엔데가 그 선구자 격인 셈이다.

 

 

 모모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모]의 주인공은 모모다.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르는, 그래서 백 두 살이라고 어렵게 답했을 때 상대 어른을 당황하게 만드는 모모는 사람이 뜸한 옛 극장터 무대 바닥 공간에 혼자 살고 있는 여자 아이다. 모모는 특별하다. 상대의 이야기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귀를 기울이는 특별한 사람이다. 모모는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자기 시간을 기꺼이 들이고 사람들 역시 모모에게 시간을 주기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모모는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회색 신사’들의 적이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아끼라”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하는 시간,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들고 찾아가는 시간, 가게를 찾아온 고객과 편안한 담소를 주고 받는 시간, 잠자리에 들기전 하루를 돌아보며 명상을 하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며 사람들을 부추겨 오직 효율과 성장, 목표와 성공지향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 그렇게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고스란히 회색 신사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사용된다. 회색 신사들의 계략을 알게 된 모모는 두 친구, 베포 아저씨와 이야기꾼 기기와 함께 회색 신사에 맞서려 하지만 회색 신사들은 기기와 베포의 시간 마저 사로잡아 버린다.
 회색 신사들은 모모를 이용해 사람들의 시간을 영원히 지배하려는 야욕을 펼치고, 모모는 시간의 근원지를 지키는 호라 영감과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용기를 낸다. 호라 영감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칠 단 하나의 방안을 결심하고 모모에게 시간의 꽃을 맡겨 모모에게만 시간의 유예를 준 뒤 모든 시간을 멈춰 버린다. 시간이 멈추자 생명 연장에 위기를 느낀 회색 신사들은 그동안 저장해두었던 시간 창고로 몰려가고 거기서 서로 싸우며 소멸된다. 그들을 쫓아가 그들의 시간 창고 즉, 사람들의 시간이 잡혀 있는 곳을 알게 된 모모는 마지막으로 남은 두 명의 회색 신사마저 따돌리고 시간 창고를 열어 모든 시간을 풀려나게 한다. 시간을 다시 찾은 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새의 노래에, 거리의 햇빛에 감탄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눈을 들여다보며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의 꽃을 피운다.

 

 

 

 


 시간과 관심은 동의어다. 미하엘 엔데 아저씨는 시간의 꽃을 피웠고 나는 그로부터 관심의 향기를 맡는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관심으로 응답하는 모모. 모모에게 하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모처럼 산다면 정말 백 두살이 될때까지 어린아이처럼 순결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베포 아저씨와 이야기꾼 기기의 서사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베포와 모모의 재회는 눈물과 감동으로 마치고 기기와 모모의 그 뒷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아서 궁금하다. 기기는 정말 사기꾼인 상태로 끝난 걸까? 피터팬이었던 기기가, 몽상가인 기기가 사기꾼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 현실적이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호라 박사님이 모모에게 들려준 삼형제 이야기에 하나를 더해보자면. 과거는 집을 나가지만 추억은 집을 지킨다. 현재와 함께 있는 추억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은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죽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시간은 꽃으로 형상화되는 생명력으로 대비되는 이유는,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쏟는 중에 시간을 추억으로 만드는 유일한 존재들 그래서 지나간 시간마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읽으면서 정말 행복했다. 돈과 시간, 사람과 그 사람이 사는 과정에 대하여, 매 순간 삶의 어떤 순간에 마음 속에 두어야할 생각과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 책은 독자를 너무나 행복하게 한다. 최근에 계속 심각하고 무거운, 생각의 근육들에 젖산을 마구마구 쌓게 만드는 빡세고 격한 책들을 내리 읽다가 [모모]를 읽으니 이렇게 독서가 행복할 수가 없다. 시칠리아의 이야기꾼을 자청한 저자가 들려주는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근데 실은 지금일수도, 어쩌면 미래의 일이기도 한 신비로운 이야기’.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내 마음 힐링은 이런 책에게 맡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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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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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는 그대로 소설이 된다면 이런 책이겠지. 얼마 전 읽었던 [진주]가 자기 자신의 증언을 소설로 빚었다면, 이 책은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0여 명의 참전 여성들로부터 채집한 목소리를 소설로 빚은 결과다. ‘소설’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허구, 꾸민 이야기, 극적인 즉 인위적인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가 담긴 글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극화劇化를 철저히 경계한 저자의 예민함에 힘입어 그런 류의 글에서 벗어난다. 이런 작품을 소설, 일명 목소리 소설(저자 자신은 소설-코러스)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야기가 허구여서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가 나 자신의 것인 듯 전이되고 확장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은 읽는 데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 당연한 대가라고 느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자들 뿐 아니라 저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쟁으로 얻은 훈장을 비추는 대신 ‘냄새나는 속옷’을 드러내는 저자의 책들 때문에 재판도 열렸다고 한다. 마땅히 기억되어야 하는 소리들을 남기는 일로 인하여 저자가 감수해야 했던 시간들 역시,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시간들이다. 그런 사람의 여정을 동행하는 데 그저 하루이틀, 부드러운 이부자리나 소파에서 엉덩이를 부비며 책장을 넘기는 태도는 무례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지복의 성자]와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보이기도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보였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을 얼마 전에 읽어서 그런가 보다. 그러고 보면 독서는 인연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그러하듯이. 어제 만났던 사람, 오늘 처음 만나는 사람, 내일 만나게 될 사람. 그 사람 사람을 어떤 타이밍에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사람과의 관계와 인생의 맥이 달라지듯, 책과 책 그리고 그 다음 책으로 이어지는 책과의 인연에 따라 그 책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달라진다.

 

 책의 면면이 너무 아까워서, 적어도 아직 전쟁 중인(휴전이지 종전이 아니므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은 전쟁에 휩싸인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못 들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이 책의 발췌문들을 옮긴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한다. 전쟁의 세상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었고, 전쟁의 사람들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다른 세상, 다른 세상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기나 했던 걸까?
 14쪽

 

 

 나의 목적은 무엇보다 그때의 진실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날들의 진실. 감정의 속임수가 없는 진실.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지라도 전쟁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와 수십 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는 같을 수가 없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담는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읽고 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은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24쪽

 

 


 이름 없는 전쟁의 목격자나 참전자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나는 역사. 그렇다. 나는 바로 그런 역사가 알고 싶다. 그런 역사를 문학으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야기하는 사람은 단순히 목격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나 창작자에 가깝다. 아주 가까이, 얼굴을 마주할 만큼 가까이 실제 현실에 다가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과 우리 사이엔 감정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장과 견해가 있으며, 수없이 엇갈리는 입장과 견해들로부터 새로운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형상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시간 속에 살고 구체적인 사건을 겪는 구체적인 사람을 연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한 인간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영원의 떨림을, 사람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25쪽

 

 

 그랬다. 그네들은 많이 울었다. 소리도 질렀다. 내가 떠나고 나면 그네들은 심장약을 먹었다. ‘구급차’가 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나에게 와달라고 부탁했다. “와요. 꼭 다시 와야 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하고 살았어. 40년이나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았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이 일이 워낙 그렇다. 그렇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늘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든다. 사람은 전쟁터에서 가장 잘 보이고 잘 드러난다. 내면의 깊은 곳까지, 저 깊숙한 피하조직까지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사랑할 때도 그럴지 모르겠다. 죽음의 얼굴 앞에서는 모든 사상과 이념이 그 의미를 잃는다. 누구도 미리 대비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런 영원의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여전히 역사 속에 살고 있다. 우주가 아니라.
31쪽 

 

 

나는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에 큰 사람은 쓸모없고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큰 사람은 완성되는 데 손이 많이 간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을 찾는다. 작으면서도 큰 사람. 그는 멸시당하고 짓밟히고 학대당했지만, 스탈린 수용소와 배반의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은 승리를 거뒀다. 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몰래 바꿔치기해버렸다. 작으면서 큰 사람, 그가 직접 그 사실을 말해줄 것이다.
 37쪽

 

-당신은 전쟁의 추악한 면만 보여주고 있소. 냄새나는 속옷만 보여줬단 말이오. 우리의 승리가 당신한테는 무섭고 끔찍한 것에 불과한 거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 진실들.
 - 당신은 삶 속에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거리에 있다고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진실은 천박해요. 지나치게 세속적이오. 아니, 진실은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것이오. 우리가 되고자 하는 그것!

48쪽

 

 

전쟁이 몇 년 동안 있었지? 4년. 그래, 참 길기도 했네…… 그런데 그 4년 동안 꽃이고 새고 전혀 본 기억이 없어. 당연히 꽃도 피고 새도 울었을 텐데. 그래, 그래… 참 이상한 일이지? 그런데 정말 전쟁영화에 색이 있을 수 있을까? 전쟁은 모든 게 검은색이야. 오로지 피만 다를 뿐, 피만 붉은색이지…
 83쪽

 

 

 

우리 소녀병사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냐고? 체르노바라는, 임신 중인 친구가 있었지. 그 친구는 지뢰를 자기 옆구리에 끼워 날랐어. 새 생명의 심장이 뛰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이제 좀 이해가 될 거야.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우리가 왜 그랬는지 굳이 따져볼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그냥 그런 사람들이었을 뿐이야. 우리는 조국과 우리는 하나라고 배우며 자랐지. 어린 딸을 데리고 시내 임무에 나선 친구도 있어. 딸아이 몸에 선전 삐라를 칭칭 돌려 감고 원피스를 입혀 감췄지.
132쪽

 

 

 전쟁은 이 집에서 아직도 진행중이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171쪽

 

 

 

나의 목적은 무엇보다 그때의 진실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날들의 진실. 감정의 속임수가 없는 진실. 한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지라도 전쟁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와 수십 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는 같을 수가 없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삶을 기억 속에 차곡차곡 쌓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담는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읽고 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속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람은 행복하거나 불행하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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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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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세기 중반 흑사병이라 불리던 페스트가 창궐하면서 유럽 인구 3분의 1이 사망했다. 그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경제적 여파에 대해서는 상세한 연구들이 진행된 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거시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미시적 관점, 즉 역사의 물줄기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결정권을 지닌 정치가들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뜻밖에 찾아온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다루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거물급 정치가 한 사람이 역사의 진행 방향을 좌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가 없었다면 20세기의 유럽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미하일 고르바초브가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되지 않았더라면 냉전 시대가 평화롭게 종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책 8쪽 – 프롤로그

 

 중국 우한에서 발발한 코로나19의 여파로 나라가 멈춘 지 3주째에 접어들었다. 교육계는 3월 23일로 연기했던 개학 일자를 다시 한 번 연기해야 하는지를 긴급히 논의 중에 있고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등 (주로 문화, 예술 목적의) 공기관들은 언제 다시 문을 열지 아무도 모른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그나마도 마스크를 사기 위하여 약국에 길게 줄을 서 있는 인파로부터 ‘저기에도 나 같이’ 이 전염병의 충격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연대감을 간신히 확인할 뿐이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에서 읽은, 전염병이 도는 유럽의 중세에 와 있는 것 같은 공포는 나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렇게 적절한 주제와 내용을 가지고 신간이 나오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폈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로날트 게르슈테 저자가 2019년에 출간한 책이다. 코로나19의 사태를 통하여 뼈저리게 배우고 있는 사실이란, 전염병은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바꾸는 동시에 전 국가, 세계의 역사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페스트나 매독 등의 전염병이 지나간 역사 속에서 얼마나 큰 파괴력을 발휘했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다. 저자는 이런 전염병의 영향을 받은 사회와 국가라는 거시적 관점과 더불어 지구촌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관여한 질병의 영향을 탐구하는 미시적 관점을 더하여 이 책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를 집필했다.

 

 스스로를 글쟁이 의학자이자 수다쟁이 역사학자인 저자가 쓴 책인 덕분으로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의학과 역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다. 케네디가 호르몬 문제로 불안정했다든가 슈베르트는 매독 환자였고 하이네와 바흐는 돌팔이 의사에게 불법 안과 수술을 받은 후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을 아는 역사 덕후라면 이 책이 전혀 새롭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역사의 비밀 이야기를 읽는 듯한 신선함으로 이 책이 다가왔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26개의 꼭지로 구성된 이 책은 크게 페스트, 매독, 천연두, 통풍, 독감 등 국경을 초월하여 몇 세기 동안 인류를 괴롭힌 전염병을 주제로 한 내용과 아돌프 히틀러, 조지 워싱턴, 스탈린과 닉슨, 바흐 등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만든 주요 인물들이 앓고 있던 질병을 주제로 한 내용, 두 가지로 나뉜다. 26개의 꼭지가 개별 에피소드 형식이라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도 책의 재미가 떨어지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프랑스아 미테랑 등 현재의 정치가에 이르기까지 정치사가 주로 등장하니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라면 특히 추천한다. ‘집콕독서‘가 유행하는 이때를 함께 보낼 책으로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가 잘 어울릴 것 같다.

 

 펜데믹이 선포된 지금, 시류에 편승하는 책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세 번째 꼭지인 <페스트>만 읽어봐도 질병과 역사의 상관관계에 대한 저자의 남다른 안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저자는 ‘전염병이나 질병이 무조건 나쁘다, 악영향을 주어 극심한 피해만 입혔다’라는 1차원적인 시각에서 탈피한다. 질병과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는 대신, 병이 남긴 호재나 좋은 영향까지도 탐색하고 몸의 질병으로 인해 드러나는 사람들 정신 속의 병까지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를 준다.

 

 훗날 매독이라고 불리게 된 이 질병은 당시 교통수단이 이동하는 것과 동일한 속도로, 나아가 당시 진군하는 군대의 속도와 유사한 속도로 퍼졌다. 이번 질병 전파의 주역은 샤를 8세의 군대였다. 프랑스에서는 해당 질병을 ‘나폴리 질병’이라 불렀다. 프랑스인들이 보기에는 나폴리가 매독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나 독일어권 국가, 나아가 영국에서는 그 질병을 ‘프랑스 질병’이라 불렀다. 그런가하면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질병’이라 부렀고, 폴란드에서는 ‘독일 질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 질병’이라 불렀다. 그 이름들을 보면 매독의 진행 경로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
책 67쪽

 

흑사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희생양 찾기에 나섰고, 그런가 하면 세상이 저지른 죄를 대속하기 위해 채찍질하는, 이른바 ‘고행자’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중세는 종교의 힘이 강해 페스트가 진노한 신이 세상에 내리는 벌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신을 분노하게 만든 이들을 색출하여 벌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광신도들의 목표가 된 이들은 이번에도 유대인들이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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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꽃처럼 내게 피어났으니
이경선 지음 / 꿈공장 플러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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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은 피는 때가 있고 지는 때가 있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꽃이란 한철임을, 그래서 그것이 피어날 때 그 향기에 흠뻑 취해야 하고 그것이 질 때 미련 없이 보내주어야 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이 따라준다면 이 세상에 이 수많은 멜로는 왜 있으며, 애틋한 이별 노래들은 누구를 위하여 지어졌을까. 꽃이 만개한 채로 영원히 함께 있어준다면 세상에 뿌려진 슬픔의 절반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경선 시인의 시집은 연인과의 한 계절을 그렸다.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 산에 진달래들은 벌써 달아오른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진분홍 눈웃음을 지었더라. 소리도 없이 입술을 달싹이다 불현 듯 토해지는 고백처럼 꽃들의 함성이 이제 산 지천에 깔릴 터다. 살그머니 다가온 연인과의 인연은 봄꽃 피듯이, 사랑이 문득 식어지고 연인과의 이별 역시 꽃 지듯 한다. 이경선 시인은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시들을 이 시집에 담았다.

 

 한창 연애를 할 때 그리고 이별을 겪으면서도 나는 시에 의지해본 적이 없다. 연인만큼 무궁무진한 영감을 주는 건 없다고, 나도 그에 동의는 하면서도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시든, 대중가요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듣고 흘리곤 했다. 감성이 무딘 탓이라고, 지금은 겸허하게 나를 성찰하는 중.

 

 예전에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SNS에 사랑을 주제로 한 시나 짧은 글귀들이 무척이나 많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개인 채널이 많아진 덕분이겠지만, 아무리 개인 채널이 많아도 사람들이 ‘사랑’에 관심이 적다면 관련한 콘텐츠도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사랑에 대하여, 이별에 대하여, 그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노래하는 시가 많다는 건 아직 우리는 그런 감성이, 감정이 죽지 않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그대가 피었다.
 그대가 저문다.

 

시집의 소제목 두 문장만으로 한 편의 시가 되고야 만다.
피었다 저무는 그대는 또 어디 다른 사람에게 가 닿아 다시 피어날테고, 나 역시 그대가 아닌 다른 사람과 인연이 닿아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겠지. 그러다가 또 지고, 피고 다시 지고. 심수봉 님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가, 수많은 꽃이 피고 나는 별나라로 갈 거라는 아름다운 가사가 왜 그리 슬펐는지 이 시집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내 삶은 너로 인해 빛났어
지난날들에 후회로 가득했던 내게
그날들이 모두 너를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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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비행 - 생계독서가 금정연 매문기
금정연 지음 / 마티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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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서평이 있고, 그 책을 읽은 듯이 만드는 서평이 있고, 그 책이 왜 팔리는지 알게 만드는 서평이 있다. 이 서평들은 모두 책으로부터 내용을 길어와 책에 직결된 형태로 쓴 서평이다. 한 권의 책을 주인공으로 두고 관련한 다른 책들을 조연들로 등장시키는 형태도 있고, 두 권의 책을 대조하여 쓴 서평도 있다. 한편 책으로부터 내용이 아니라 영감을 길어와 쓴 서평도 있다. 책을 소개하거나 책 내용을 간추리거나 책의 특징과 의미를 설계하는 대신 에세이를 지어놓은 형태가 이런 서평이다.

이 책 [서서비행] 한 권에는 이 모든 종류의 서평이 다 있다.

 

책 한 권을 읽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가? (중략) 평균 4일이 걸린다고 하자. 그렇다면 [봄피아니 작품 사전]에 실린 모든 작품에다 4일을 곱하면 65,400일이 된다. 365일로 나누면 거의 180년이 된다. 이런 계산은 틀림없다. 그 누구도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31

 

표지에 대놓고 매문기賣文記라고 적힌 이 책은 금정연 저자가 쓴 서평의 모음집이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수많은 서평문 사이에 틈틈이) ‘왜 서평을 읽냐?’를 물어보는데, 움베르토 에코가 이미 답을 했다. 사람이 살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의 한계, 독서가능영역의 국경선 위로 가뿐히 날아오르고 싶으니까 [서서비행] 같은 서평모음집에 몸을 맡기기 마련이다.

 

[서서비행]의 저자 금정연은 온라인 서점 MD로 일하다 현재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중이다. 이 책은 책을 팔다가 글을 팔게 된 저자가 서평문을 기고하면서 느낀 독서의 기쁨과 슬픔이다. 저자에게 독서는 오롯하게 취미, 재미, 의미의 온실 속에만 머무르지 못한다. 왜냐면 책 읽은 소감을, 책에 대한 소개를, 책 읽기를 추천하는 바를 글로 써서 팔아야 하거든. ‘먹고 사는 게 다 뭔지싶다가도 먹고 사는 게 전부지, 하고 마무리하게 되는 세상살이가 읽기와 쓰기를 생계 수단으로 삼게 되면 어떤 의식의 흐름을 보이는지 이 책이 잘 보여준다. 시종일관 마감과 생계의 족쇄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그 무겁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 두드리는 실로폰 놀이라도 하듯 쓴 서평이 이어진다.

 

사실, 초반부에 저자가 온라인 서점 MD로 일할 때의 경험들, 구체적으로 병아리 고르듯이 무감하게 수십 편의 서평을 본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내 서평도 그런 취급을 받겠구나 하는 자괴감에 이거 더 읽어야 해, 말아야 해?’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초반부는 그 정도의 현타를 감수하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 마시길. 비행준비를 거쳐 이륙 초반을 지나면 이 비행飛行은 참으로 흥미진진해진다. 재밌다. 야간비행과 악천후 따위도 문제없다. “희망 같은 건 없는 좇같은 상황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맞는 경로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야간비행><악천후> 꼭지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현실에 대한 염증을 더하기는커녕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다. 낭만주의의 엔진을 꺼보면 진짜 현실로 우리는 착륙한다.

 

이 책의 제목은 비행이지만 어쩌면 이건 메트로놈이다. 빠르기를 맞추기 위하여 피아노 위에서 연이어 손가락을 흔들던 그 놈. 내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을 즐긴다면 메트로놈 같은 건 불필요하다. 메트로놈은 나의 연주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갖추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만 기능한다. 서평가는 그래서 독서 그 자체에만 매달려서는 안될는지 모른다. 우리 시대에 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원고가 팔려야 원고를 쓰는 사람이 계속 생기고, 책을 팔아야 원고를 사서 책을 만드는 사람도 계속 생긴다. 독서는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소비하는 일과 상품으로서 소비하는 일이 교차한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읽는 행위 자체에만 매진하는 독서가는 어쩌면 자기가 연주를 했다는 일에만 만족하는 연주가에 그칠 밖에. 소비자인 동시에 판매자였다가 이제는 생산자가 된 저자가 쓴 서평은 그런 면에서 메트로놈으로 기능한다. 책은 많이 팔릴수록 좋고, 어떤 출판사도 손해를 보거나 적자가 안 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나 그렇다고 너무 티 나게, 말도 안 되는 책들을 팔거나 독자에게 권하는 건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빠르지만 다정하고 위엄있게라든지 느리지만 경쾌하고 산뜻하게연주하라는 세상에 없을 밸런스를 요구하는 피아노 악보를 연주하는 일, 까다로운 세상 속에서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는 건 이런 것이다.

 

서평이라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의 기록은 메트로놈이 될 수 있겠지만 메트로놈이 필요치 않은, 독서 그 자체에 충실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상술한 움베르토 에코의 글처럼 우리가 제아무리 부지런히 독서를 한다고 해도 현실은 언제나 빡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을 놓쳐버리고 마는지. 저자 금정연은 눈 밝은 독자들을 위한 선견자다. 설령 허점이 분명한 책, 참으로 읽기 난해한 책이더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발견하여 일러준다. 저자의 소개가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책을 알게 되는 기분 좋은 일이 바로 이런 서평을 읽을 때에 일어난다. 특히 이 선견자가 설탕을 입힌 것처럼 달콤한 일반론을 경계하는눈 밝은 독자라면 어찌 믿을만하지 아니한가. 독자에게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비지식인, 문명인이라는 흑백논리를 들이대거나, 자신의 화려한 문장이나 문체에 도취되거나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는 등 별의별 서평이 온라인에 가득하다. 믿을만한 책을 소개해달라거나, 참고가 될 만한 서평문을 가르쳐달라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한 권으로 대답이 되겠다.

 

 

p.s. 1)

원숭이와의 섹시 대결 : <모비 딕> 허먼 멜빌의 서평 ( 77)

책과 영화를 모두 좋아하는 저자의 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 책 중에서 최고로 웃겼던 글을 한 편 꼽자면 이것. 영화 <혹성탈출>을 본 여자친구가 섹시한 원숭이, 마초적인 킹콩에 대하여 던진 말들에서 털복숭이도 아니고, 우어어어하며 칠 갑빠도 변변치 않은데다 읽기와 쓰기라는 영 섹시하지 않은 취미와 생업을 가진 저자가 여성의 선택을 받지 못하여 도태되는 멸종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고군분투기를 쓴 내용이다. 자기 이름도 못 쓸게 분명한 털북숭이들에게 도저히 질 수 없었던, 져서는 안 되는 현대 남성(적어도 글로 여자는 못 꼬셔도 독자는 꼬실 수 있는)으로서 대항할 수 있는 문학적 섹시함을 찾아 치열하게 책들을 뒤지다가 허먼 멜빌 찬가로 글을 끝내는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 보시길. 웬만한 코미디를 가뿐하게 이긴다, 이 글이.

 

p.s. 2)

* 책에 직결된 형태로서의 서평, 가장 보편적이고 참고할만한 형식으로서의 서평

나태해진 영혼에 죽비를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 출판 49

쉼표 하나만큼의 성장 <담배 한 개비의 시간> 문진영, 창비 137~

어른이 자라는 법 <마르크스 평전> 프랜시스 윈, 푸른숲 145~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 페테르 샌디, 문학동네 159~

김훈은 김훈이다 <흑산> 김훈, 학고재 169~

 

* 북에세이라고 부를만한 서평: 에세이 읽는 재미와 책 소개 받는 재미 이렇게 일타쌍피네.

낭만도 서른도 모두 병이다 <빵 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134~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리> 서효인, 다산책방 342~

 

p.s. 3) 저자 금정연은 좋은 서평의 기준은 어쨌든 좋은 글이어야 한다고 에필로그에 썼는데, 전지적 독자의 솔직한 마음으로서는, 책을 정성스럽게 읽고 공들여 솔직하게 썼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썼든 읽어볼만한 서평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평은 그가 평하고 있는 책을 꼭 닮은, 닮으려고 노력하는 서평이다. 따분한 플롯의 책에 대해서는 따분한 서평을,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의 책이라면 마찬가지의 서평을, 문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하고 있는 책이라면 폭력적인 서평을,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책이라면 그 한계를 똑같이 공유하는 서평 말이다. 나는 그것이 독서라는 경험을 단순한 ‘목격담’으로 축소시키지 않기 위해 서평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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