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작은 언제 읽어도 환상적이다. 고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로워진다. 세계적인 전염병(심지어 아직 백신 계발도 되지 않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확진자는 16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6천 4백여명에 이른 심각한 전염병)으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충격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나가고 있는 지금 어떤 이는 [페스트]를 다시 읽고 또 다른 이는 세계를 바꾼 질병의 역사에 대한 책을 탐색한다. 당연한 일인 듯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는 행동 양상. 코로나19가 세계를 잠시 멈추게 한 동안 시간도둑들에게 저당 잡혔던 시간들이 풀려나 우리에게 돌아왔다. 요즘만큼 독서하기에 넉넉한 시간이 있었던가. 이제 우린 이 시기의 혼란과 두려움을 치료할 백신을 책으로부터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모모]는 미하엘 엔데가 자그마치 46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미하엘 엔데는 독일의 동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를 ‘동화’ 작가로 이야기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가 한다. 철학이라는 그릇에 담긴 관념과 개념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동화라는 형식을 빌어 왔을 뿐이다. 미하엘 엔데가 환상적인 동화 작가라는 유명세만 믿고 유아들과 함께 [모모] 읽기에 도전하시는 부모님들께 혹시라도 싶어 말씀드리자면, 모모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아이들과 읽었을 때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고 이 연사 외치는 바.

 

 [모모]는 특히 이 작품을 한국어로 처음 번역한 차경아 번역가와 인연이 깊은데, 이 인연 덕에 미하엘 엔데와 한국의 인연도 꽤 깊어졌다는 후문이 있다. 작가가 번역가에게 자기 작품에 대하여 조언을 구할 정도였다니 그 인연이 너무나 부럽다. 한국과 인연이 깊은 외국작가를 생각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장 먼저 (그리고 나에겐 유일하게) 떠오르는데 미하엘 엔데가 그 선구자 격인 셈이다.

 

 

 모모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모]의 주인공은 모모다.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르는, 그래서 백 두 살이라고 어렵게 답했을 때 상대 어른을 당황하게 만드는 모모는 사람이 뜸한 옛 극장터 무대 바닥 공간에 혼자 살고 있는 여자 아이다. 모모는 특별하다. 상대의 이야기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귀를 기울이는 특별한 사람이다. 모모는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자기 시간을 기꺼이 들이고 사람들 역시 모모에게 시간을 주기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모모는 사람들의 시간을 뺏는 ‘회색 신사’들의 적이다. 회색 신사들은 “시간을 아끼라”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하는 시간,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들고 찾아가는 시간, 가게를 찾아온 고객과 편안한 담소를 주고 받는 시간, 잠자리에 들기전 하루를 돌아보며 명상을 하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며 사람들을 부추겨 오직 효율과 성장, 목표와 성공지향적인 삶을 살게 만든다. 그렇게 사람들이 아낀 시간은 고스란히 회색 신사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사용된다. 회색 신사들의 계략을 알게 된 모모는 두 친구, 베포 아저씨와 이야기꾼 기기와 함께 회색 신사에 맞서려 하지만 회색 신사들은 기기와 베포의 시간 마저 사로잡아 버린다.
 회색 신사들은 모모를 이용해 사람들의 시간을 영원히 지배하려는 야욕을 펼치고, 모모는 시간의 근원지를 지키는 호라 영감과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용기를 낸다. 호라 영감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칠 단 하나의 방안을 결심하고 모모에게 시간의 꽃을 맡겨 모모에게만 시간의 유예를 준 뒤 모든 시간을 멈춰 버린다. 시간이 멈추자 생명 연장에 위기를 느낀 회색 신사들은 그동안 저장해두었던 시간 창고로 몰려가고 거기서 서로 싸우며 소멸된다. 그들을 쫓아가 그들의 시간 창고 즉, 사람들의 시간이 잡혀 있는 곳을 알게 된 모모는 마지막으로 남은 두 명의 회색 신사마저 따돌리고 시간 창고를 열어 모든 시간을 풀려나게 한다. 시간을 다시 찾은 사람들은 꽃의 아름다움에, 새의 노래에, 거리의 햇빛에 감탄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눈을 들여다보며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의 꽃을 피운다.

 

 

 

 


 시간과 관심은 동의어다. 미하엘 엔데 아저씨는 시간의 꽃을 피웠고 나는 그로부터 관심의 향기를 맡는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관심으로 응답하는 모모. 모모에게 하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모처럼 산다면 정말 백 두살이 될때까지 어린아이처럼 순결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베포 아저씨와 이야기꾼 기기의 서사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베포와 모모의 재회는 눈물과 감동으로 마치고 기기와 모모의 그 뒷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아서 궁금하다. 기기는 정말 사기꾼인 상태로 끝난 걸까? 피터팬이었던 기기가, 몽상가인 기기가 사기꾼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 현실적이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호라 박사님이 모모에게 들려준 삼형제 이야기에 하나를 더해보자면. 과거는 집을 나가지만 추억은 집을 지킨다. 현재와 함께 있는 추억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회색 신사들에게 시간은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죽은 것으로, 사람들에게 시간은 꽃으로 형상화되는 생명력으로 대비되는 이유는, 사람은 서로에게 관심을 쏟는 중에 시간을 추억으로 만드는 유일한 존재들 그래서 지나간 시간마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읽으면서 정말 행복했다. 돈과 시간, 사람과 그 사람이 사는 과정에 대하여, 매 순간 삶의 어떤 순간에 마음 속에 두어야할 생각과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 책은 독자를 너무나 행복하게 한다. 최근에 계속 심각하고 무거운, 생각의 근육들에 젖산을 마구마구 쌓게 만드는 빡세고 격한 책들을 내리 읽다가 [모모]를 읽으니 이렇게 독서가 행복할 수가 없다. 시칠리아의 이야기꾼을 자청한 저자가 들려주는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근데 실은 지금일수도, 어쩌면 미래의 일이기도 한 신비로운 이야기’.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내 마음 힐링은 이런 책에게 맡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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