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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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내친 김에 <아주 사적인 독서>를 읽었다.

그 두 권은 같은 날 주문한 책으로, 내 나름 로쟈 컬렉션이다.(민망하지만)

 

우선 <책을 읽을 자유>를 읽을 때 속도가 더디었던 반면 이 책은 수월한 편이다.

둘은 내용이나 분량 자체도 다르지만 책장을 넘길 때 종이 두께도 다르다.

먼저 읽었던 책은 종이가 얇아서 두 장씩 넘어가곤 했는데 이 책은 종이가 두껍다.

별로 안 읽었는데 상당히 읽은 것 같은 두께감 때문에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 줄 알면 출판사 직원들이 더 섬세해지려나.

 

일곱 편의 고전 문학작품을 저자가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주는 게 책의 주내용이다.

원래는 강의한 내용인데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 '그럼 공적인 독서는 뭐지? 공적으로 기여하는 독서인가?' 생각했다.

나처럼 제목에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많았을까.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이란 말이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독서'라는 의미로 쓰고자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교양으로서의 독서는 '읽은 척 매뉴얼'을 참고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를 가리킵니다. 나의 관심과 열망, 그리고 성찰을 위한 독서입니다."(6쪽)

마치 공적인 독서와 사적인 독서가 흑과 백처럼 확연히 다른 듯이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념 설정을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독서는 남에게 뽐내기 위한 독서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독서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대화를 나누고(논의의 토대) 소통하기 위해 읽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기도 하니까. 그 둘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 같지는 않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마담 보바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 7편이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 봐서(<석상 손님>은 빼고) 마치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저자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표현을 쓴다.)

나도 한 두 권은 확실히 읽었는데 나머지는 긴가민가하다. 어린이 시절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중요하지도 않은데 왠지 세어보게 된다는…)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읽은 책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마담 보바리>와 <주홍 글자>, <햄릿>이 그랬다.(확실히 읽은 책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니, 엠마가 저런 짓을 한 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였어?!'

'헐, 저런 게 있었나?'

속으로 이 비슷한 말을 주절거리며 읽게 된다. 결국 내가 읽은 책이 진짜 저 책이 맞는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만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쁜 유형이다.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의 대사나 행동, 사건에 일일이 흥분하고,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온갖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안 본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도 읽고 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좋게 말하면 몰입도가 뛰어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다.

그런데 성찰이라니?! 내가 문학작품을 읽고 과연 성찰할 수 있을까?! 내가 '아주 사적인 독서'를 할 수 있을까?!! 로쟈사마처럼 저런 해석을 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다.

 

로쟈가 펼쳐 보이는 고전 작품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물론 저자의 훌륭한 해석과 빼어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나도 이제 고전 작품을 로쟈처럼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로쟈사마에게도 몰입하다니, 난 진짜 몰입능력이 좋은 것 같다) 

그러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싫어서(열정은 좋으니까) 책을 다시 훑어 보는데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나온다.

 

"(…) 저는 고전을 최대한 우리 가까이에 갖다놓고 싶었습니다. (…) 작품이 갖는 보편성을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발견은 자기 발견의 구문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라는 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질 때, 고전 독서는 시간이 남아돌 때나 가능한 독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독서로서 의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7~8쪽)

 

난 저 부분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처음 읽을 땐 왜 몰랐을까?) 난 이미 저자가 말하는 독자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 ……

날카롭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읽을 때 난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주인공(또는 꽂히는 인물)인데.

 

문제는 내가 작품 속 인물과 완전 합체(?)되던가 아니면 아예 따로 놀던가 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달까.

포인트는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아, 소중한 깨달음.

이야기, 해석, 정보 게다가 깨달음까지 빼곡하게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도 읽고 싶어졌고, 이미 읽었던 책들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책에 나온 저자의 가르침(?)이 도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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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2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부터 아직까지도 돈키호테입니다ㅎ 앞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고요.
누군가, 그건 틀렸어. 하려나요ㅎ

cobomi 2015-05-13 06:01   좋아요 0 | URL
돈키호테요?! 틀렸을 리가 있나요. 그냥 다를 뿐이죠 ㅎㅎ
전 아직 안 읽어 봐서 깊이 와닿는 느낌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에 따르면... 이상주의자? 시대착오적 인물? 이런 정도의 평이었던 거 같네요.
아무래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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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첫 출간된 책을 이제야 읽다니 늦은 감이 있다. 더구나 로쟈의 책을.

그는 서평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유명한데, 나처럼 너무나도 안 유명한 사람이 그의 서평집을 읽고 리뷰를 쓰려니 심히 부담스럽고 쫄린다.

 

서평은 왜 읽는 걸까? 저자는 신기주와의 인터뷰에서 서평의 기능이 세 가지라 말했다. 첫째는 읽게끔 해주는 것(좋은 책을 사서’ 읽게 만드는 것), 둘째는 안 읽게끔 해주는 것(특히 번역이 엉망인 경우), 셋째는 읽은 척하게 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평을 읽는 이유도 이 세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로쟈의 서평을 읽는가?’ 하는 거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도 저자가 말한 세 가지 기능을 탑재한 서평을, 그것도 쉽고 재미있게 잘 쓰는데 말이다. 궁금한가? (특별히 500원을 받지 않고) 책을 읽을 자유를 읽은 후 나름대로 찾은 답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먼저, 로쟈의 서평은 그 자체로 다른 독자들에게 축복이라는 점이다. 뻥이 너무 심하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서점과 도서관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널려 있다. 그 무수한 책 중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읽고 싶은 책이 끊임없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내 생각엔 드물지만) 상관없겠지만, 읽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에겐 로쟈의 서평이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일종의 여행안내책자인 셈이다. 그의 서평을 읽으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래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적어도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있어서는). 특정한 사람이나 주제를 다룰 때, 저자는 관련 책들을 몇 권씩 나열해서 조감도를 그려준다. 각각의 장단점 설명은 물론이고 어떤 관점으로 읽는 것이 좋은지, 저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쓴 책인지도 알려준다. 그야말로 친절한 로쟈씨다.

 

두 번째는 앞서 말한 것과 관련이 있는데, 독자의 관심 영역이 확대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이 책 재미있겠다를 넘어서 이런 주제로 공부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 내가 이런 것에도 관심이 있었던가, 스스로도 낯설 정도로 흥미로운 내용을 가득 담고 있다. ‘나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독자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로쟈의 서평은 곧 그의 책읽기다. 그가 어떻게 책을 읽어내고 공부했는지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때문에 읽을 책을 목록으로 만드는 것에서부터 책을 읽을 때 주목해야 할 부분, 참고 자료를 찾아보는 습관, 미심쩍은 것은 원서와 대조해보고 다른 자료도 확인해보는 것 등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서 혼자 책을 볼 때도 도움이 된다. 내 경우엔 뭘 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자주 있어서, 제대로 읽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로쟈의 서평을 찬찬히 읽으며 내용과는 상관없이 독서(공부)를 이렇게 하면 좋겠구나, 싶을 때가 많았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저자의 인터뷰를 참고하는 게 좋겠다.

저는 읽기 위해 써요. 읽고 쓰는 게 서로 순환하는 거죠. 잘 읽으려면 잘 써야 해요. 잘 쓰면 더 잘 읽게 됩니다. 자기가 뭘 읽었는지 알게 되거든요.”(인물과사상204(2015.4), 24)

역시, 써야 한다. 읽기만 해서는 뭘 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 포인트는 읽기 위해 쓰는 것이다. ‘참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의 수준(내 수준)이 아니라, 잘 읽기 위해 쓰는 것. 막연한 느낌이지만 쓰는 것이 읽는 것과 별개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네 번째는 번역에 관심을 갖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번역이라고? 번역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도록 용기를 준다는 게 아니다.(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겠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인문사회과학서의 절반 이상이 번역서이며, 학술교양서의 경우에는 번역서의 비중이 60퍼센트를 넘는”(159) 현실이기에, 그만큼 독서에 있어 번역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처럼 외국어라고는 거의 모르는(그래서 원서와 병행해서 읽는 건 고려대상조차 되지 않는) 독자의 경우에도 번역은 중요한 사항인데, 자칫 건강을 해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무늬만 한국어일 뿐 마법의 주문처럼 번역해놓은 책을 읽을 때마다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혈압이 치솟곤 한다. 그런 분노유발 번역서는 읽다가 팽개친다는 장점(?)이라도 있지만, 이름이나 개념 등을 잘못 번역한 경우엔 문제가 심각하다. 나처럼 원서를 못 읽는(슬프다) 독자들은 번역서의 가독성이 좋을 경우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신나게 읽을 테니까. 그러니 독자 여러분, 잘못 번역된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널리 알려주세요.

 

마지막으로 독서와 글쓰기(리뷰)에 대한 투지를 불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난 읽는 내내 그를 능가하고 싶다는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나도 뭔가 폼 나게 읽고 쓰고 싶다는. , 물론 읽은 지 하루 정도 지나니까 저런 생각을 했었나 싶게 열정이 희미해지긴 했다.

 

2010년에 출간된 책인 만큼 그 이후에 나온 책에 대한 서평은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모쪼록 로쟈의 이 책과 블로그가 책 세계를 여행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변함없이 좋은 안내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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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obomi님 (괄호) 속 자학유머 은근 재밌습니다ㅎ

cobomi 2015-05-11 12:3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그런가요ㅎㅎㅎ 나름 진지한데요 ㅎㅎㅎㅎ

cyrus 2015-05-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집을 읽으면 글쓴이가 어떻게 글 쓰는지 보는 것이 아니라 그책 속에 언급되는 책들이 뭐가 있는지 보게 되요. 그래서 책 속의 책들이 읽고 싶어져요. ^^

cobomi 2015-05-11 23: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장바구니가 대책없이 가득 차죠ㅎㅎ

albatros 2015-07-0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는 책이 로쟈의 손을 거쳐갔다는 걸 알면 왠지 안심이 되더라구요. 아, 이 책은 나름대로 검증된 책이구나! 하고요.
 
아무 날도 아닌 날 - 인생에서 술이 필요한 순간
최고운 지음 / 라의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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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한다. 참 좋아한다. 어제 오후에 최고운의 <아무 날도 아닌 날>을 펼쳤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책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단숨에 볼까, 싶기도 했지만 왠지 그 타이밍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만 같았다. 이런 걸 두고 사람들은 '자기합리화'라고 하는 모양인데 난 그저 예의가 바를 뿐이다.

 

어제 미처 다 보지 못하고 남은 부분은 오늘 아침 학교에서 읽었다. 처음엔 분명 텅 빈 강의실이었는데 싸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보니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만 있었다면 조금 덜 부끄러웠겠지만 교수님도 와 계셨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낄낄대며 책을 보고 있었다니. 대단한 책인 건 틀림없다. 심지어 철학사 수업이었는데(상상하는 그대로의 분위기). 어쩌면 오늘도 술을 마시게 될지 모르겠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을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일단은 재미있고 거침 없고 그리고 또... 또오.... 한잔 생각나는 거? 뭔가 뭉클해지는 부분도 있다.

놀라운 건, 책에 나온 거의 모든 에피소드와 주석에 격렬히 공감했다는 사실이다. 난 어쩐지 '반듯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는데 이 책은 그런 게 없다. 그래서 빨려든 건지도. 저자는 사랑스럽다 못해 만나서 소주(두꺼비 소주가 좋겠다) 마시며 두런두런 얘기나누고픈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나도 모르게 상상하는 것이라 쉽게 멈출 수가 없다.

 

대신 내가 처음 들어 보는 술과 안주의 이름, 잘 모르는 영화나 배우 이름이 나와서 살짝 주눅들었다는 게 단점이랄까. 나중엔 묘한 경쟁의식마저 생겼다. 내가 더 많은 종류의 술을 정복해 보겠다는, 뭐 그런.

이래서 사람들이 대도시(서울?)에 사는 건가, 갑자기 이해가 되고 그들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여긴 지방 소도시이고, 내가 사는 마을은 자정 무렵이면 밥집이건 술집이건 불 켜진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자카야(응? 그게 뭐임, 먹는 거임?)는 고사하고 선택지가 열 손가락도 안 되니 씁쓸하다. 더군다나 가게 문 닫을 시간 걱정하느라 초조해서 술 마시는 데 몰입도가 떨어진달까. 간혹 제대로 술을 마시려면 멀리 나가야 하는데, 교통편도 마땅치 않다. 택시를 타거나 대리를 부르거나, 운전할 줄 알면서 술 안먹는 사람과 같이 살거나, 집을 '술집화' 하는 수밖에 없다.(그 어느 것도 만만한 선택은 아니다) 저자가 여기저기서 맛있어 보이는 안주에 다양한 술을 즐기는 걸 보니 진심으로, 그리고 처음으로 서울시민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서울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비용(집값+이사비용)으로 마을 경제에 기여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지,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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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에서 술이 빠지면 앙코없는 찐빵같아서..급땡깁니다...

cobomi 2015-05-07 18:52   좋아요 1 | URL
저도 땡겨요 아하핳하하하하핳 쪽갈비에 쏘주(이건 이렇게 발음해야 제맛)로 결정했습니다 함께 해요 하하핳하하

cyrus 2015-05-0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서재 바탕 화면이 소주잔과 어묵탕이군요. 코보미님의 취향이 반영되었군요. ^^

cobomi 2015-05-07 18:53   좋아요 0 | URL
헐 눈치 채셨군요.. 맘에 드는 게 그거 뿐이더라구요ㅎㅎ

AgalmA 2015-05-08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살아도 남산케이블카 안 타보고(저;) 카페모카가 뭔지 모르고(제 지인;) 그렇게 각자의 취향대로 사는 거지요^^;

cobomi 2015-05-08 14:23   좋아요 1 | URL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지의 문제죠 ㅠㅠ
서울 살아도 남산케이블카 안 타보는 거랑, 남산케이블카 자체가 없어서 못 타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하지만 나름대로 여기서만 가능한 것들이 서울에선 못 하기도 하겠죠? ㅎㅎ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아우름 5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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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한 책이 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뜬구름 잡는 듯 하고 특별한 재미도 없는데 끝까지 읽게 되는 책이다. 우치다 타츠루의 책이 그렇다. 일본어를 모르니 이런 신묘한 느낌이 저자 탓인지 번역 탓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하류지향>을 읽고 '이 사람 뭐지?' 싶었다. 알 듯 말 듯 한 얘기를 동네 할아버지처럼 풀어놓는데, 단순하고 거친 표현 때문에 왠지 읽는 내가 혼나는 기분이랄까.(전혀 혼내고 있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 이상한 기분 때문에 신간도 나오자마자 구매했다. 읽고 나니 더 모르겠다. 신묘한 느낌만 커졌다.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는 제목이다.(원제는 수업론(修業論)’)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계산해서 배우는 것은 진정한 배움이 아니니라. 배움이란 자고로 뭘 배울지, 뭘 얻을 수 있는지 모르고 배운 후에 깨닫게 되는 것이란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부제가 수업론: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이니, 수업하는 자세를 논하는 책인가.

 

책의 내용은 온통 무도(武道)에 관한 얘기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합기도 유단자로, 40년 이상 무도 수련의 길을 걸어왔으니 이상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무도 얘기만 나온다면 별 흥미가 없었을 테지만, 저자는 신체와 사상(?)이 별개라고 보지 않는 사람이다. 공부는 몸으로 해야 하는 것, 이론은 실천과 한 몸이라는 거다. 그 점에서 저자의 수업론은 무도의 관점에서 보아도 되지만 일반적인 공부론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문제는 내용이 어렵다는 것. 내 이해력이 몹시 달리는 것인지, 몇 번씩 되풀이해 읽은 부분이 많다. 그래도 어렴풋하다. 선명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더듬거리며 읽다 보면 조그만 깨달음이랄까, ‘!’ 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그 순간이 극히 드물다는 게 문제지만)

 

배움은 효율성과 이해득실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무엇을 배운 것인지는 배운 후에야 알 수 있다. 그러니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고, 모두가 똑같은 능력을 기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배움의 성과를 점수나 자격증 같은 수치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업은 동일한 트랙을 달리는 경주가 아니다. 수업은 각자의 특별한 트랙을 달리는 것. 저자의 말처럼 결승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트랙을 달리는 것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자아 해체에 관한 부분이다. , 자아, 주체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요모조모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다.

적을 없애기 위해서는 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이게 적이라 생각하는 를 지우면 됩니다.”(62)

경쟁 상대, , 타자는 결국 가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 적을 없애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지우면 적도 사라진다는 소리다. ‘라는 확고한 관념은 결국 아집이 되고, 아집은 곧 무지로 이어진다.

인간은 잘 몰라서 무지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세상사를 잘 알고 있어도 지금 자신이 채용한 정보처리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몸소 나서서 무지해집니다. 자신의 지적 틀을 바꾸도록 요구해 오는 정보의 입력을 거부하는 아집이 바로 무지라 불리는 것이지요.”(85)

따라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학 교육이란, 무언가 유용한 지식이나 기술을 덧셈으로 보태는 것이 아닙니다(그렇다고 믿는 교사도 적지 않지만요). 그것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충동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방해하는, 학생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안주를 해제하는 것이지요.”(87)

 

무지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를 해체하는 것이다. ‘라는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도와 공부가 추구하는 방향이어야 하고, (책의 말미에서) 그것은 신앙과도 연결된다. 저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부친 서문의 제목이 “‘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길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많은 말을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저자는 나처럼 무식한 독자가 염려되었는지, 친절하게도 이런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다지 읽기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말린 오징어같은 책이 되기를 원하기에, 앞으로도 이 책을 곁에 두고 때때로 그것은 이걸 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책을 펼쳐 보길 바랍니다.”(182)

말린 오징어 같은 책이라니. 턱이 나갈 수도 있으니 가끔씩 씹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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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06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무도 문화가 생소한 독자라면 이 책이 어렵게 읽힐 것 같습니다.

cobomi 2015-05-06 20:4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서 저한테 어려웠나 봐요. 몇 번씩 되풀이 읽었거든요ㅠㅠ

cyrus 2015-05-06 20:4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으면 어렵게 느껴졌을거예요. ^^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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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이 두 책은 유명하다.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미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읽었는데, 별 다른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역시 서른에 봤어야 하나...)

작가의 탓이 아니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데, 나는 소위 '힐링' 의 느낌을 자아내는 책에 감흥이 없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야"라는, 뻔하고 맥빠지는 결론이 싫어서다.

 

그럼에도 김혜남의 신간(문득 신간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을 구입한 까닭은, 작가가 <인물과사상> 205호(2015.5) 표지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란 제목의 인터뷰가 실렸다.

 

"여자 한쪽만 부당하게 명절에 일한다는 건 문제죠. 다만 그런 갈등을 풀 생각을 안 하고 신드롬으로 만들어버리면,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어지는 질환이 되는 거예요. 해당자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고요. 스스로 극복하기보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죠." (<인물과사상> 205호, 20쪽)

 

책 얘기와 상관이 없었음에도 이 부분에서 궁금증이 돋았다.

뭔가 여성 문제도 다루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

앞뒤로 이어지는 인터뷰 내용은 그러니까, 힐링이 아니라 결핍을 인정하고 메워가는 '성장'을 해보자는 것이다.

저자가 '삶과 연애하'면서 오늘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이유들을 풀어놓은 거구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구나,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하아….

읽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갸우뚱하기도 한다.

대체로 답답한 기분이다.

 

그 중 한 가지.

애써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라는 말이 눈에 띈다.

'왜 저러나' 생각하지 말고, '저 사람은 원래 저래'하면서 인정해버리라고.

책에서는 시댁과의 갈등이 일례로 등장하는데, 괜히 이해하려 들고 바꾸려 들면 본인만 피곤하니까 그냥 인정해버리고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는 것이 좋다는 거다.

이 대목에서 고민이 깊어진다.

해결책이 진정 저것 뿐인가 싶어서다.

책 겉표지에 무려 빨간색 글씨로 적힌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라는 문구를 떠올린다면, 저자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텐데….

 

나의 의문은 이러하다.

갈등과 스트레스는 꼭 나쁜 것인가? 즉, 갈등과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가 반드시 평화롭고 좋은 상태인가?

개인적으로는 '원래 저래'라고 인정해버리는 것이 지혜일지 모르겠으나, 모든 사람이 저러한 '지혜'를 발휘한다면 어떻게 될까?

뭐랄까. 이면을 보려 하지 않고 겉만 보고서 단정지어 버리는 느낌?

 

내가 너무 삐딱한 건가 싶다.

만일 내가 저자처럼 불치병을 앓고 있다면 이런 고민들이 부질 없게 느껴질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려니 하며 살 걸 그랬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역시 관계는 어려운 문제다.

아무래도 저자는 정신분석 전문의니까,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저자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좋겠지?

게다가 저자가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조언들이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그러려니' 인정해버리기로 한다.

 

어쨌든 매사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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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5-05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있긴해요. 그런사람들까지 이해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될거에요. 그렇게 에너지가 소모되더라도 이해를 할수 있으면 좋은데요~~
그런 경우에만 저 사람은 원래 그래~ 하고 넘어가는거죠~~ ㅎㅎ
나 당신한테 더 이상 에너지 쓰기싫어~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 관계는 끝이라고 생각해요~ 슬픈거 같아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말...

cobomi 2015-05-05 11:2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슬픈 느낌이었거든요. 더구나 사례가 고부갈등이라서요. 저 방법 뿐인가 싶었죠...

AgalmA 2015-05-05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인들은 애쓴다 볼 테지만, 내가 옳다 라는 걸 상대에게 강요하는 바꿈의 노력이 아니라, 서로 당신에게 이런 부분이 있다는 조언의 노력 정도는 있어야 관계 아닌가요. 물론 그 조언도 충분히 객관적인가를 살펴야겠죠. 그럼에도 상대에게 간섭이나 지적질로 보일 수 있다는 문제가 있으니 참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문화가 제대로 없으니 사회나가면 위계와 폭력의 구도가 더 강력하게 작동해 더 괴로운 것이잖아요....

cobomi 2015-05-05 11:3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려니 하는 게 본인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개선의 여지는 없달까요.
아이들이나 후배들이 제게 ˝그러려니˝ 한다고 생각하면, 전 서로 망가질 듯 싶거든요.

AgalmA 2015-05-0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내 맘이야!˝가 예사로 안 들려요....
언제나 있어왔던 생각이기도 하니....그래서 세상이 또 이런가...싶기도 하고.

cobomi 2015-05-05 11:33   좋아요 0 | URL
ㅠㅠ

cyrus 2015-05-05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갈등과 스트레스가 적당히 있어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많아서 혼자 감당하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

cobomi 2015-05-05 17:0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래서 전 티비를 잘 안 틀죠....ㅎㅎ(특히 뉴스)
김혜남 선생님 말씀도 일리 있지만, 전 좀더 적극적인 제스쳐도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다시 그 부분을 살펴보니까, 어차피 이해안될테니 인정하라는 데... 아마도 하다하다 도저히 이해 안될 땐 그러려니, 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조언 같네요.
다시 봐도 100% 수긍은 안 되지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까요. 생각해볼 문제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