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청소부 풀빛 그림 아이 33
모니카 페트 지음,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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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어떤 한 분을 만났다.

자동차 뒤 꽁무니가 빨갛게 울던 어두운 아침이 '사회 생활'로 무르익어 깊은 밤이 될 때까지 어제는 하루종일 많은 일이 있었다. 평소처럼 걷고, 평소처럼 웃었고, 하루치 복용해야 할 음악도 삼켰지만 어쩐지 수어개의 내가 이런저런 곳에서 분산되어 있다가 한꺼번에 '합체'라도 해야 할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묘한 공간. 빈 자리는 하얀 백지로 채워진다. 나는 말해야할 때 하지 못했고, 웃어야 할 때 그러지 못했다. 그 때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걸까? 중얼중얼중얼중얼.

그러던 날의 어떤 자리에서 처음 뵙게 된 분의 목소리가 귀에 참 좋았는데 느린듯 어눌한 듯 겸손한 웃음과 어울리는 조용한 목소리가 번잡한 하루의 소란스러움을 떨치게 해 주었다.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림책의 한 인물에게 그 목소리를 얹어주고 싶어지는데 어제는 주인공을 발견한게다. 요즘은 겸손이라는 단어가 별로 인기가 없겠지만 자신에 대한 튼튼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만이 단호함을 겸비한 겸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아니, 단호하지 않는 것은 거짓 겸손이겠다.

오늘 만난 이 행복한 청소부에게 어제의 그 겸손한 목소리를 선물해주고싶고, 어서 이 주저리 서평도 마무리짓고 싶다. 그가 만난 음악과 글의 세계는 얼마나 알콩달콩했을까. 나도 또 어서 책 읽고 싶다, 어서!

-소리를 지배하는 사람이 권력자라는 생각은 오류일까? 여튼, 목소리는 그 사람의 소리이고 나는 그것만큼 정직한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라는 산만한 이야기로 마무리짓는다.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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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
이응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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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또한 2년전 여름. 어릴때 좋아하던 이응준을 옮겨왔다.그 때 나는 왜 그랬을까?학교 문학패 동아리도 온라인 모임을 달.뒤로 정했는데.그 때 우리는 또 왜 그랬을까?그리고 지금 나는 왜?

 
<아버진 철학자였다.
그리고 늘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선량한 인간이었다.
아버지는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낳지 말것을 내게 권고하셨다.
'창우야,삶이란 너무 고달프고 외롭기때문이란다.'>

-'집과 수영장의 건전한 행로'에서 이탈한 채 버스에 올랐다.
탕탕탕,오늘은 울증,
하루하루 영화잡지 별점을 매기듯,달력밑에 조증과 울증을
가려가며 기록하고있는 여자를 생각해보면,아.상상만으로
충분히 암울한데 말이다.

사는게 치사스럽게 느껴져서 아무리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되뇌이고(이게 더 졸렬한가;),이러저러한 이유가 잠시 나의
기분을 절망스럽게 느끼게 한 것뿐이라고 침착하게 타일러봐도 그게
잘안먹혀서 힘들때.하면,

근처 서점에
열지어있는 한무리의 책들을 가지런하게 쓸어본다.
발목을 잡고있던 친구 니힐,군은 잠시나마 잊혀진다.

하여,
그런식으로 우리동네 늙은서점에서 데려온
이응준씨를 베낭에 넣고 어릴때 살던 바닷가로 갔다.

*
<생각이 많다는 것은 죄악이다.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들에게 절대로 책 따위는 권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난 내 아이가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하고 즐길 줄 아는
생활인이 되기를 원했었으니까.

우리나라에선 프라하의 봄으로 소개된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
움에선,어느 농부가 자신이 애완용으로 기르는 메피스토란 돼지를 보
고 이런 놀라운 대사를 한다.자네,내가 왜 저놈을 좋아하는지 아나?
바로 똑똑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네.

나는 내 아들을 그 현명한 돼지처럼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 상념이 많은 인간으로 교육시켰다.
그래서 솔직히 삶 자체가 불편하고 귀찮은 적이 많은 것이다.
나는 조그만 고통도 생각없이 흘려보내질 못한다.
나는 나의 고통에 관한 나약한 감상들을
나의 불구로 끄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3년치의 공백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때와 달라진것이 있다면,
고작 모래판에 배를 깔고 스스로의 낭만에 감격하며
편지를 썼던 스무살의 조심스러운 자태에서,

이제는 신촌 한 복판에서 담배를 나누던만큼의 수치심도 필요없이
맨몸으로 드러누워버리는
-등판이냐,아니면 그 반대편이냐 하는,자세의 한끗차 뿐이었으니까.

*
<왜 우린 우리가 미워하고 쓰러졌던 이유를 별 때문이었노라 말하지
못하는가,그냥 그래서 그랬던 것이라고,비극을 그냥 한 편의 이해하
기 힘들었던 연극으로 치부하지 못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논리력으로
인해,우린 어느새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오노요코와 구본창
떼추,산울림을 지나 부천 팬태스틱 피엄 페스티벌(!),
문학패 동지들이 점령하고 있는 인천근교의 조그만 섬에서 정점을 이룰,
제헌절을 기점으로 한 완벽하게 잘 짜여진 상경스케줄은
스스로에게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기이한 영화들을 만난다.
8년동안 200번쯤 죽다 살아난 빨간머리 여자도,
미조구치 겐지의 오래된 영화속 요녀도,
모두가 나였다가,아니었다가,

나는 왜 여행만 가면 비가 올까.
아니,선후관계의 오류였을 뿐이다.
나는 비만 오면 가방을 쌌다.
비가 내린다.


...이응준,<그 시절을 위한 잠언>,<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문학과지성사,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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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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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여름.
"저마다의 일생에는,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 빛이 찾아들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장 그르니에의 <섬>과는,정작 작가에 대한 신뢰보다는
번역자인 김화영선생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이랄까,
까뮈가 스무살때 처음 읽은 책이라는 주변적인 이유에서
첫만남을 갖게되었다.

"떠나야 한다
떠나야 한다

곶처럼 벋어나가 눈 감고 머문 뒤
또다시 떠나야 한다"

시인 고은의 <머나먼 길> 그 장대한 대서사시를 여는 몰아치는 힘..
그르니에의 첫 문장을 읽을 때도 동일한 질량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물론 다른 성질의 힘이었으나 그 얼마나 또 같을 수 있는가.

처음 읽고서 3년이 지난 후 다시 읽게되니
보이지않았던 다른 부분들이 보이게된다.
가지런한 책장들을 쓸어내리면서,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
겨울 숲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 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그런 글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아무나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주워온 지식들로 길고 긴 논리를 펴는'요즈음에 김화영선생님의 표현처럼 <아름다운 글>로 채워진
책을 만난다는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의 글과 어울리는 몇가지를 생각해본다.하여,
이루마의 앨범과 '철수'씨의 판화와 현패방의 벽색깔같은 것들.

내일은 글을 써서 돈을 버는 몇안되는 선배중에 하나와
이메일 끄트머리에 이응준씨의 시를 적어보낸후로 죽이맞아버린
수영장친구 셋이서 만나기로했다.

<어바웃어보이>인가,잘생긴 휴 그랜트가
인간은 섬이다,하고 말하던게?

섬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섬에 대해 썼다.
some One,some 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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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dohyosae > 戰慄

1

어머니는 아기에게서 젖을 떼려면 젖에다가 까만 먹칠을 한다.  아기에게 젖을 먹여서는 안 되게 된 때에 젖을 예쁘게 보이게 한다는 것은 무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젖을 까맣게 칠하면 아기는 어머니의 젖이 달라졌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제나 같은 어머니이며, 어머니의 눈길은 항상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아기의 젖을 떼기 위해서 이보다 더 잔인한 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에게 복이 있으라.

2.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어야 할 때가 되면, 어머니는 처녀처럼 젖을 감춘다. 그러면 아기에게는 더 이상 어머니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와 다른 방도로 어머니를 잃어버리지 않는 아기에게는 복이 있을 지어다!

3..

아기의 젖을 떼어야 할 때가 되면 어머니와 아기는 서로 멀어져야 되는 것을 알게 되며 어머니의 마음은 슬퍼진다. 어머니의 태내에서 지내다가 얼마 후에는 어머니의 가슴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아기가,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와 가까이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아기는 슬퍼진다.  어머니와 아기는 얼마 동안 이러한 괴로움을 함께 지니고 슬퍼하게 되는 것이다. 제 아이를 가까이 두고 이보다 더 슬퍼할 필요가 없는 자에겐 복이 있으라.

4...

아기의 젖을 떼려면 어머니는 아기가 죽을까 봐 더 많은 영양분이 함유된 음식을 준비한다. 그 더 많은 영양분이 함유된 음식을 준비하는 자에겐 복이 있으라.

 

                                                    - 키에르케고올의 '공포와 전율' 가운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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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랑
자크 프레베르 / 창현문화사(CHBOOK)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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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말 한마리 오솔길 한가운데 쓰러진다

그 위에 나뭇잎이 떨어진다

   우리의 사랑이 오열한다

      그리고 태양도.

 

 -Jacques Prevert

 *김화영-시,눈뜨다 <예감>(시와 시학사)에서 처음 본 시였다.열화당에서 나온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있다>(1985) 역시 김화영 선생님의 번역이다.대학로에서 '금요일의 문학이야기'를 진행하셨을 때 뵈었던 선생님의 인상이 참 푸근하고 좋았다.

 

어떤 해 였던가. 프레베르의 성찬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풍성한 프레베르식 아침식사가 한창이었는데.나는 그 중에서도 시창작 수업시간의 프레베르와 홍대 앞 기찻길 앞에서 건네받은 프레베르가 가장 좋았다.무엇을,어떻게 더 말해야 할까. 해는 짧고 그림자가 긴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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