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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2년전 여름. 어릴때 좋아하던 이응준을 옮겨왔다.그 때 나는 왜 그랬을까?학교 문학패 동아리도 온라인 모임을 달.뒤로 정했는데.그 때 우리는 또 왜 그랬을까?그리고 지금 나는 왜?
<아버진 철학자였다. 그리고 늘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선량한 인간이었다. 아버지는 될 수 있으면 아이를 낳지 말것을 내게 권고하셨다. '창우야,삶이란 너무 고달프고 외롭기때문이란다.'>
-'집과 수영장의 건전한 행로'에서 이탈한 채 버스에 올랐다. 탕탕탕,오늘은 울증, 하루하루 영화잡지 별점을 매기듯,달력밑에 조증과 울증을 가려가며 기록하고있는 여자를 생각해보면,아.상상만으로 충분히 암울한데 말이다.
사는게 치사스럽게 느껴져서 아무리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되뇌이고(이게 더 졸렬한가;),이러저러한 이유가 잠시 나의 기분을 절망스럽게 느끼게 한 것뿐이라고 침착하게 타일러봐도 그게 잘안먹혀서 힘들때.하면,
근처 서점에 열지어있는 한무리의 책들을 가지런하게 쓸어본다. 발목을 잡고있던 친구 니힐,군은 잠시나마 잊혀진다.
하여, 그런식으로 우리동네 늙은서점에서 데려온 이응준씨를 베낭에 넣고 어릴때 살던 바닷가로 갔다.
* <생각이 많다는 것은 죄악이다.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들에게 절대로 책 따위는 권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난 내 아이가 세상을 단순하게 파악하고 즐길 줄 아는 생활인이 되기를 원했었으니까.
우리나라에선 프라하의 봄으로 소개된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 움에선,어느 농부가 자신이 애완용으로 기르는 메피스토란 돼지를 보 고 이런 놀라운 대사를 한다.자네,내가 왜 저놈을 좋아하는지 아나? 바로 똑똑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네.
나는 내 아들을 그 현명한 돼지처럼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아버지는 나를 너무 상념이 많은 인간으로 교육시켰다. 그래서 솔직히 삶 자체가 불편하고 귀찮은 적이 많은 것이다. 나는 조그만 고통도 생각없이 흘려보내질 못한다. 나는 나의 고통에 관한 나약한 감상들을 나의 불구로 끄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3년치의 공백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때와 달라진것이 있다면, 고작 모래판에 배를 깔고 스스로의 낭만에 감격하며 편지를 썼던 스무살의 조심스러운 자태에서,
이제는 신촌 한 복판에서 담배를 나누던만큼의 수치심도 필요없이 맨몸으로 드러누워버리는 -등판이냐,아니면 그 반대편이냐 하는,자세의 한끗차 뿐이었으니까.
* <왜 우린 우리가 미워하고 쓰러졌던 이유를 별 때문이었노라 말하지 못하는가,그냥 그래서 그랬던 것이라고,비극을 그냥 한 편의 이해하 기 힘들었던 연극으로 치부하지 못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논리력으로 인해,우린 어느새 아무것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오노요코와 구본창 떼추,산울림을 지나 부천 팬태스틱 피엄 페스티벌(!), 문학패 동지들이 점령하고 있는 인천근교의 조그만 섬에서 정점을 이룰, 제헌절을 기점으로 한 완벽하게 잘 짜여진 상경스케줄은 스스로에게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주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기이한 영화들을 만난다. 8년동안 200번쯤 죽다 살아난 빨간머리 여자도, 미조구치 겐지의 오래된 영화속 요녀도, 모두가 나였다가,아니었다가,
나는 왜 여행만 가면 비가 올까. 아니,선후관계의 오류였을 뿐이다. 나는 비만 오면 가방을 쌌다. 비가 내린다.
...이응준,<그 시절을 위한 잠언>,<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 여행>>,문학과지성사,1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