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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평점 :
파올로 코엘료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설레지만,
인류의 영적 유산에 속하는 글들,
삶의 경험을 나누어주는 지혜를 읽어보게 되는 책입니다.
각 장에서 간단간단한 내용이 산뜻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책이다 싶습니다.
▷마크툽 : 아랍어로 모든 것은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뜻
그리하여, 영적 유산은 이미 기록되어 있는 진리였던 걸까요?
정형적인 지적능력이 인류가 기계보다 못하다 하더라도,
'울림'이라는 정성적인 영역은 기계도 따를 수 없으리 싶습니다.
스승이 진리를 추구하는 제자에게 묻기를 생활비를 무엇으로 버느냐 했습니다.
제자는 부모님이 생활비를 벌어 부양하시고, 제자는 그저 진리추구에만 매진한다 답하죠.
스승은 제자에게 삼십 초 동안 해를 쳐다보라 합니다.
그리고 주위를 보라 하지요.
보이지 않지요.
진리란 그런 것이지요.
분명 명확히 밝습니다.
하지만 그 밝음을 쫓기만 한다 하여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주위를 보지 못한다면, 그 진리가 무슨 소용일지요?
파올로 코엘료의 '마크툽'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세지는
우리가 사는 지금, 긍정적인 따스함을 품은 현실적인 지혜들이랍니다.
네가 나쁜 욕망에 유혹받지 않는다면,
그 욕망은 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단다.
우리는 욕심을 줄여야 하되,
그런 욕심이 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해야 하는 '살아있는 감정'이고
그를 제어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의지'가 필요하지요.
그 자체로 나쁘다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단다 하는 관용의 마음에 따뜻해집니다.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아마 그런 경험, 많이 있으리 싶습니다.
두려움에 두려워서 그 무게에 움직이 쉽지 않았던 경험.
일이 많아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서.
그 두려움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적들이 있죠.
이미 일어난 일,
해야 할 일이라면,
힘을 마련하고 해결해야겠습니다.
함께 하는 삶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 우월해 보이고
스스로에대한 확신이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의지 부족'으로 하지 못하는 일은 바로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라 합니다.
권위 있는 출처에서만 깨우침을 주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이웃들에게서, 처음 보는 낯선이에게서
우리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설에 의하면
누이 셋이 마법사 아버지와 함께 남편감을 구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운 한 누이만을 부인으로 엊고프다고 이야기하니,
마법사는 그러면 둘이 슬퍼할 것이라 셋을 모두 부양해줄 남편감을 구해야 한다 했습니다.
그런데, 여정이 지나도 남편감을 구할 수 없이 나이가 들었습니다.
한 누이가 하나라도 결혼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니,
마법사는 세 누이를 돌로 변하게 합니다.
물론 조금 과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사람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슬픔이 되지 않겠다 생각하며
나 자신만의 행복에만 집중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서로를 그 자체로 존중해주기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지내는 것.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발전하도록 돕는것.
이것이 신과 공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다.
마크툽 속에는 '함께'라는 의미가 녹아있습니다.
따져들며 이념을 이야기하지 말고,
'사람'이라는 우리를 봅시다.
따뜻한 대화를 통해 마음이 훈훈해지고
그런 따뜻한 마음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전파하곤 하죠.
그런데 종종 우리는 따뜻한 마음에 의하지만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에 급급하기도 합니다.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나와 상대방은 다른 사람입니다.
각자의 생각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따뜻함이 필요하겠습니다.
사랑은 상냥함이다.
완고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신의 형상대로 빚음 받지 못한다.
물론, 우리가 더불어 살자 하면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태도는 참 중요합니다.
정원에 누워 있는 농부가 꽃들을 짓누르는 것에 대해
농부의 대답은 그리 추천하고픈 태도는 아니긴 합니다.
죄송하게도, 이 책의 100%를 동감은 못합니다만,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배워야 할 덕목이 있겠으니-
그것은 온유함이겠습니다.
농부도 언젠가는 꽃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보자하면,
누군가 우리 생각과 다른 일을 한다면 여유롭게 보는 눈을 가져야겠습니다.
나 자신의 속도로 걷는다
'성지순례'라는 시간은 자체로 영적인 시간이죠.
목표는 분명 숭고한 것입니다만, 그렇지만
성지순례를 다녀온 여성의 이야기처럼
모두 같은 속도로 걸어야하여 도달하는 길이
피곤함으로 다가온다면,
그리하여 그 순간이 고통스럽고 힘들어 진다면,
그렇다면 목표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지요.
고유의 리듬으로 길을 가며 여정을 느껴야겠습니다.
삶도 또한 그런것이 아닐지요.
신의 섭리에 따라 빚어진 인간.
하지만 신의 의지대로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유의지로 움직이며 각자의 길을 걷게 되지요.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
여행자, 파올로 코엘료의 문장들을 보며,
차분하게 감사를 해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귀중히 꾸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