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맞아 축구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올 초부터 하나 둘 나오더니 지난 달부터는 매주 서너 권씩 출간되는 실정이다. 올해 나온 축구 책만 해도 수십 종에 달한다.


출판계가 축구 책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였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분석한 ‘세계를 놀라게 한 히딩크의 힘’과 홍명보 선수의 자서전 ‘영원한 리베로’는 베스트셀러 1·2위를 나란히 기록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출판계는 이때부터 ‘월드컵 비수기’ 대신 ‘월드컵 특수’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2년과 비교할 때 올해 축구 책 바람은 더 세다. 책 종류가 다양해졌고 종수도 크게 늘었다. 2002년에 나온 축구 책들이 주로 스타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는 축구의 역사와 사회사,문화사 등으로 주제가 확장됐다는 특징을 갖는다. 축구 전문가나 기자 등으로 국한됐던 필자층도 넓어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필자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강 교수는 최근 ‘축구는 한국이다’(인물과사상사)라는 제목으로 한국 축구 124년사(1882∼2006년)를 정리하는 책을 냈다. 그는 한국 축구사를 특징짓는 유별난 집단주의와 민족주의에 주목하며 축구 국가 대항전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한(恨)풀이와 존재 증명,그리고 놀자판으로 해석했다.
수준높은 축구 에세이집도 나왔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좌파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쓴 ‘축구,그 빛과 그림자’(예림기획)로 갈레아노는 유머와 위트,인문적 향기를 가득 담아 축구의 힘과 가치를 그려낸다. 특히 후반부 국제축구연맹의 내부적 타락과 모순,권력과의 유착관계나 이권다툼을 다룬 부분은 축구의 국제정치학을 보여준다.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는 축구소설이라는 장르의 시장성을 보여줬다. 축구소설이라는 게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문학성과 상업성 양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유럽축구 마니아인 남녀 주인공을 등장시켜 연애와 축구를 비유시켜 나간 솜씨가 탁월하다.

한국 축구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도 축구 책 출판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축구다’와 ‘한사’(살림)같은 책들이 출간되며 한국 축구사가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출판사들은 잊혀진 과거의 선수들을 복원하는 책을 준비 중이다.
2002년 개척된 축구 책 시장은 올해 양적·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히트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가장 잘 팔리는 책은 지난 3월 출간된 박지성 선수의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랜덤하우스중앙). 출판사에 따르면 누적 판매부수가 7만부 정도. 아드보카트 감독의 책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랜덤하우스중앙)도 나왔으나 독자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다.

올 들어 4권의 축구 책을 낸 살림출판사 임중혁 인문팀장은 “판매상황이 만족스럽지는 않다”면서 “인터넷이나 뉴스매체에서 볼 수 없는 차별화된 컨텐츠를 발굴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임 팀장은 1만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 ‘유럽축구기행’(2005년)의 사례를 들며 “타겟을 정확히 잡고 공들여 만들어야지 단순히 월드컵에 편승하려고만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국민일보 2006-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