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생생뉴스 2006-05-05
[커버스토리] 의심하라! 그림을보고소설을써라
세계적 베스트셀러`다빈치 코드`열풍 따라하기
`최후의 만찬``퍼플라인`등 명작소재 추리소설 잇단 히트







`지금 당장 책꽂이에서 아무 미술책이나 뽑아들고 의심스러운 눈길로 세계적인 명화를 뚫어져라 쳐다 봐라. 혹시 머리 속에 어떤 스토리가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다. 그것도 월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는 작가 말이다.` 책들이 그림 속 이야기를 찾아나서고 있다. 선봉에는 `다빈치 코드`가 섰다.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작품의 대열에 오르면서 최근 명화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 출간이 붐을 이루고 있다. 서점 인기소설 코너에는 미술 교과서에서나 감상했을 법한 세계적인 그림들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판계에서는 이 소설들을 그림과 소설이 만난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그림이란 엄연한 팩트(fact)에 작가의 상상력(픽션ㆍfiction)이 덫칠됐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들은 이런 추세를 "명화에 대한 재해석이자, 반란"이라고 분석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일까, 아니면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즐기는 신세대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문학을 관통하는 것일까. 명화를 소재로 한 출판붐을 일으킨 것은 단연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대교베텔스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나가는 `다빈치 코드`는 기독교 전통에 맞서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모든 힌트는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암굴 속의 성모` 등 다빈치의 그림으로부터 나온다.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도 이루어져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트 주연으로 5월 개봉 예정인 `다빈치 코드`는 다빈치의 명화 몇 장이 댄 브라운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했다면 아예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문서 뿐 아니라 그림도 엄연한 팩트(Fact)의 한 종류다. 그러니 팩션 붐을 타고 유명 그림을 소재로 한 `역사 예술 미스터리 소설`이 유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림만큼 무궁무진한 역사의 보고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 정지원(21.여)씨는 "그림에 숨겨진 암호 같은 것들을 풀어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6년 나왔던 국내 팩션작품이 재출간되기도 했다. `헤르메스의 기둥`(문학동네)은 16세기 화가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에 그려진 특이한 기둥을 소재로 삼고 있는 소설이다. 미술학도인 주인공은 이 범상치 않은 그림 속에 숨어있는 뜻 일부를 해독해 내면서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그림 속의 비밀에 얽혀있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만다는 내용. 문학동네는 "다빈치코드로 붐이 일었고 국내 팩션소설로서 매니아들 사이에 나름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라며 재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그림 한 장에서 소설 한 권이 `튀어 나오는` 것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하비에르 시에라의 `최후의 만찬`(노마드북스)은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하나만을 집중 해부한다. 단도를 쥔 손, 식탁 끝의 매듭, 후광의 유무, 사라진 성배와 같은 아이콘을 섬세한 눈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술술 풀려나온다. 작년 8월 출간된 `퍼플라인`(휴먼앤북스)의 소재가 된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그 자매`라는 그림은 그 자체로 신비스러움이 넘친다. 두 여인이 나체로 욕조 속에 들어가 있고 왼쪽 여인이 오른쪽 여인의 젖꼭지를 쥐고 있고 왼쪽 여인은 양 왼손가락으로 반지를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다. 왠지 사연이 많을 듯한 이 그림은 작자 미상의 작품이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작가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는 "철저한 역사적 문헌 발굴, 연구를 통해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정부로 알려진 그림 속 여인을 중심으로 `1% 상상의 채색`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 눈에 띄는 화가는 17세기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라 할 수 있다. 2년새 `벨라스케스의 거울`(베텔스만), `벨라스께스 미스터리`(북스페인)외에 청소년 문학 `베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는 작품까지 총 3권의 팩션소설이 출간됐다. 벨라스케스 그림을 모티브로 한 책이 유독 많은 이유에 대해 출판사 측은 "팩션소설의 진원지 중 하나인 스페인 쪽에서 화가로서 그의 인기가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스페인어권 도서 번역이 많이 이뤄지면서 벨라스케스는 더욱 더 알려질 전망이다. 또한 그의 `궁녀들` 같은 작품처럼 바라보기만 해도 궁정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올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자체의 신비함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
이준 북스페인 대표는 "과거 미술 애호가라는 사람들은 그림을 있는 그대로 감상했다면 요즘은 그림에 숨겨진 사연, 배경, 작가의 의도까지 알고 감상할 정도로 문화적인 수준과 욕구가 커졌다"고 설명한다. 이런 독자들의 변화와 더불어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재로 만들어진 소설은 일단 대중적 호기심을 끌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라파엘로의 유혹`(서해문집), `렘브란트 블루`(한스미디어)는 유명 화가의 이름을 제목에 집에 넣어 일단 주목도를 높이는데 성공한 셈이다.


또한 실제 독자가 보면서 유추할 수 있는 실물 대상이 있기 때문에 흡입력도 강하다. 친근한 그림을 새롭고, 낯설게 보기를 시도하는 추리소설 구도에 흥미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 작가 입장에서 보면 특히 중세시대의 그림은 신비한 배경과 이야기가 많고 정확한 역사적 검증도 어려워 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소재가 된다.
한편 추리소설이 아닌 팩션도 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귀고리 소녀`(강)는 베르메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소녀가 과연 누구인가, 알듯 모를 듯한 미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진주귀고리를 달고 있는가 등 궁금증에 한 편의 멋진 드라마로 대답했다. 베르메르 집의 하녀, 모델, 그가 사랑한 한 명의 여자로서 재탄생한 소녀는 책 속에서 생동감이 넘치는데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그림 속 이야기를 실감나게 창조한 작가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교보문고 홍석용 대리는 이처럼 예술을 다룬 팩션소설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인문ㆍ예술 분야의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내용들을 소설 등 형태로 대중적으로 쉽게 써서 재해석하는 책들이 인기를 끈다`"며 "요즘 사람들은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는 "원래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며 "그림 공부라고 해서 예술사조만 외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이야기를 만들고 재해석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출판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2~3년 전부터 시작된 그림과 소설의 이 매력적인 퓨전상품의 인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진단한다. 이 유행에 적극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당장 머리 속에 박제된 명화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길 권한다.
오연주 기자 (oh@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