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 저자 이형근 씨 인터뷰-         출처- 인터넷 서점 리브로 (2004.08.06)

다시 삼국지의 계절이다. 난세에 태어나 천하를 한번 잡아보려는 영웅들, 그들을 도와 머리를 짜내는 모사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싸움꾼들. 그들이 펼치는 한편의 장대한 대하 드라마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삼국지 논객’ 이형근 씨(필명 나그네)도 그런 사람 중의 한명으로 얼마 전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책을 냈다. 나그네란 필명은 삼국지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름이다. 삼국지 ‘준 마니아’를 자처하는 필자에게 이형근 씨는 인터뷰 1순위일 수밖에 없었다. 이형근 씨가 일하고 있는 남산 서울타워 한식당 풀향기에 찾아가 그의 삼국지론을 들어보기로 했다

<글 - 박수호 psh4039@libro.co.kr>

최고의 모사는 제갈량 아닌 곽가

 
일터인 한정식 식당에서 만난 이형근씨
‘거꾸로 읽는 인물만평’이란 부제가 붙은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의 특징은 두 가지다. 모사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과 부제처럼 기존의 관점과는 매우 다른 평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다른 삼국지 비평서들은 보통 군주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제갈량을 제외한 모사들은 부록격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거의 정반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97년부터 삼국지 관련 카페에 인물론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다룬 것이 바로 모사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모사에 제일 관심이 많습니다. 힘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난세에 태어나 머리를 쓰면서 전술을 개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죠.”


모사를 가장 좋아한다면 제갈량 마니아가 아닐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럼 누가 최고의 모사일까? 의외로 조조 휘하에 있던 곽가를 들었다. 제갈량, 방통, 순욱, 순유, 사마의 등 쟁쟁한 인물들을 제치고 곽가를 최고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조 휘하에 있던 곽가가 최고의 모사라 생각합니다. 등장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조조가 원소를 이길 수 있는 힘의 기반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망설이는 주군을 설득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것도 그렇구요. 이런 모사는 별로 없어요. ”

하긴 조조가 대세를 잡을 수 있던 계기는 원소와의 관도대전 승리였고 여기에는 원소 진영의 내분도 있었지만 곽가의 공이 상당히 컸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자연히 삼국지 최고 스타들인 관우, 조조 등에 대한 그의 평가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적나라한 평이다.

“관우는 거의 무신(武神)으로 추앙받고 있잖아요. 저는 솔직히 그것이 이해가 잘 안 되요. 인격적으로도 관우는 그리 훌륭한 인물이 아니거든요. 이건 아마도 송대에 들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해요. 이른바 충 이데올로기라는 거죠. 조조가 벼슬과 돈과 적토마 등 엄청난 특혜를 주면서 그를 영입했잖아요. 헤드헌터 식으로. 그런데도 관우는 유비의 소식을 듣자마자 아무것도 없지만 그에게 달려갔거든요. 이것이 의를 내세우는 후대 유학자들에게 얼마나 어필이 되었겠어요. 여기에 도가의 제신의식이 결합된 것이 관우 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비도 좀 그래요. 그가 인의 군주라는 것은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촉한정통론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구요. 삼국이 진(晉)으로 통일되고 얼마 못가서 5호 16국 시대가 오잖아요. 한족이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들이 중국대륙을 차지하게 되니까 상대적으로 ‘한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고 여기에 유비와 촉한이 들어맞았던 거죠.”

한국은 조자룡, 중국은 관우, 일본은 제갈량이 최고 스타

관우 숭배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 중, 일 삼국의 흥미로운 비교가 이어졌다. 중국이 관우를 좋아하는 반면, 일본은 제갈량, 우리나라는 조자룡을 유독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자룡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왜 하필 조자룡일까? 그의 책 <쾌도난담 삼국지 죽이기>에는 조자룡이 국가주의 안드로이드(인조인간)로 묘사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인물이 각기 틀린 것은 문화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나라가 조자룡을 좋아하는 것도 문화적인 요인이 분명 있습니다. 영화 ‘비트’에서도 나오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해 이기는 것을 높이 치는 경향이 있잖아요. 배짱과 대담함도 좋아하고. 자, 그런데 삼국지에서 이것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조자룡이죠. 유비의 아들 아두를 품에 안고 수백만 군의 포위를 혼자서 뚫고 나오는 모습이 상당히 멋있어 보이는 거죠. 관우나 장비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어요.”

다소 유치할 수도 있겠지만, 무장 이야기가 나와 자연스럽게 물어보기로 했다. 삼국지에서 누가 가장 싸움을 잘 할까? 질문하면서 필자는 여포를 들었고 그도 여기에는 흔쾌히 동의했다. 일반적인 관점과 달리 책에는 여포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힘만으로 따지자면 여포를 따라올 사람은 없죠. 유비, 관우, 장비 세 형제가 덤벼도 이기지 못했고 복양 전투에서 조조의 무장 5명과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게 바로 여포였으니까요. 어느 누구도 이렇게 싸운 사람은 없어요. 여포 다음을 굳이 꼽자면 장비나 허저가 아닐까요? 장비와 허저는 둘이 싸워서 무승부였고 장비와 허저 모두 마초와 싸워 비겼는데, 당시 마초는 20대의 한창 나이, 두 사람은 40대의 아저씨였죠. 그런데도 비겼다는 것은 결국 마초가 두 사람보다 한 수 아래라는 것이죠. 또 장비 같은 경우는 오만한 관우도 칭찬을 할 정도였으니 매우 강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장비는 형임에도 관우를 칭찬한 적이 없어요. 전위는 허저보다 한참 아래죠.”

"제갈 량 죽었을 때 울다가 학교 못 갔죠."

사실 책도 책이지만 필자가 가장 궁금했던 건 중국문학이나 중국사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삼국지에 빠지고 그것을 분석하는 ‘삼국지 논객’ 혹은 ‘삼국지 매니아’들의 세계였다. 이들은 삼국지를 얼마나 보았고, 어떻게 삼국지를 읽어내고,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떻게 마니아가 되었을까.

“보통 남자아이들이 그렇듯이 저도 어렸을 적 아버지가 사준, 유비가 한중왕이 되면서 끝나는 삼국지를 보고 삼국지에 빠지게 되었죠. 그 후 다양한 종류의 삼국지를 보면서 저만의 관점을 가지게 되었고 글도 쓰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오프모임 카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열정적인 회원은 10명 정도 되지만 ‘눈팅족’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삼국지 게임도 물론 섭렵했죠.”

삼국지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논쟁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후배가 그려준 캐리커쳐.

“예전 삼국지 카페에서 황건적의 난과 관련해 논쟁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황건적의 난을 프랑스 혁명과 비교하면서 의미를 부여한 반면 상대방은 단순한 반란으로 평가했죠. 저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날 당시에 많은 민중들이 합류한 정황에 주목하면서 이것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봤던 것인데 그 친구는 역사는 결과만을 기록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과정을 쓰는 역사는 없다는 거죠. 보통 게시판에서 논쟁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도 끼어들게 마련인데 그 때는 모두 숨죽이며 지켜보기만 했죠. 게시판 페이지수가 3개가 넘어갈 정도로 상당히 치열했는데, 결국 그냥 ‘상호인정’에서 끝났어요. 어렸을 적에는 제갈량이 죽었을 때 울면서 학교 안 간 적도 있죠(웃음).”


황석영, 이문열 삼국지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고 다른 삼국지들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삼국지 시장’에서 그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삼국지는 무엇일지, 그 이유는 뭔지 궁금해졌다.

"정비석 삼국지가 가장 좋죠"
 

“저는 정비석 선생의 삼국지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68년 초판본도 소장하고 있지요. 정비석 삼국지는 여타의 번역본과는 달리 삼국지를 ‘역사 소설화’했다는 장점이 있어요. 번역도 평역도 아닌 편역인 셈이죠. 다른 삼국지들이 모두 “천하대세란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또 반드시 나누어지는 법이라 했으니…”라고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정비석 삼국지는 유일하게 “탁현 누상촌에 유비가 살았다”로 시작해요. 기본 스토리 라인은 삼국지를 따라가면서도 역사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다는 거죠. 그 다음이 삼국지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박종화 삼국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보면 맨 처음 물어봤어야 할 질문을 던졌다. 삼국지는 무엇인가? 왜 삼국지를 읽는가? 어떻게 하면 삼국지를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삼국지는 정말 재미있어요. 그래서 읽고 또 읽게 되는 거죠. 이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있는 음모, 모략, 술수 등은 그것을 한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음모나 모략을 부릴 때 방어하는 차원에서 유용하구요. 또 무장들의 의리와 싸움 등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구요. 삼국지에는 정말로 ‘모든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삼국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책 선택이 가장 중요합니다. 처음 삼국지 세계에 입문하시는 분들은 정비석이나 박종화 삼국지로 시작하시고 그 다음에 다양한 관점의 삼국지를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나만의 삼국지’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이 삼국지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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