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6-02-17
시오노 나나미 역사쓰기 점검
“삼국지 견줄 역사로망” vs “프로 흉내내는 아마추어”
고정 팬 10만 명을 끌고 다니는 인문서, 1995년에 첫 선을 보인 뒤 통권 200만 권 이상이 팔린 책, 무엇보다 국내 오피니언 리더가 즐겨 읽는 책…. 출판계의 빅 타이틀인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시리즈 중 제14권 '그리스도의 승리'(김석희 옮김, 한길사)가 출간됐다. 올해 말로 예정된 마지막 권인 제15권 출간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행복한 책읽기'는 시오노 식 역사쓰기의 공과를 검증한다. 과연 우리를 역사 로망의 세계로 끌어주는 서술인가, 아니면 힘(권력)과 제국주의적 복선을 깔고 있는 아마추어의 소설일까. 지병인 당뇨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대미(大尾)장식을 위해 로마에서 고군분투하는 시오노의 근황도 함께 소개한다.

“삼국지 견줄 역사로망” -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서양지성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 제14권 '그리스도의 승리'가 나왔다. 1995년에 첫 권이 번역 출간된 지 10여 년, 고대 로마를 무대로 하는 역사 이야기를, 그것도 서양인이 아닌 일본작가에 의해 쓰인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지적하고 싶은 점은 그의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상 세계최대의 로마 제국을 무대로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역사 로망이라는 사실이다. 방대한 사료 해석에 작가적 상상력을 담은 문장, 그리고 주제에 알맞은 필치는 독자들을 놔주지 않는다.
책상에 앉아야 할 시간을 번번이 뺏는 이 시리즈의 재미를 나는 20세 전후에 밤을 새며 읽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견줘본다. 역사소설의 공덕은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로망의 세계로 비상하게 한다. '로마인 이야기'가 롱셀러로서 행세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역사를 읽는 재미다. "인물을 묘사하며 시대를 묘사하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목표다." 시오노의 말대로 '로마인 이야기'는 인물 중심이다.
이 점에서도 유비.관우.장비 그리고 제갈공명을 중심으로 다룬 '삼국지연의'와 맥을 함께 한다. '로마인 이야기'의 대주역은 단연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저자에게 카이사르는 연인이자 이상적 남성이다. 나는 안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힘(권력) 지향적이니 영웅주의니 하는 비판이 따른다. 그러나 시오노의 인물들은 국가나 한 종파가 간계를 부려 급조한 영웅들과는 딴판이다. 관우.장비가 한족(漢族) 민중의 영웅이듯, 제갈공명은 사대부 계층의 이상적 인간이다. 걸출한 정치가.장군이자 키케로와 함께 라틴어 고전의 모범으로 일컬어지는 교양인 카이사르는 전통적으로 유럽 민중의 영웅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그를 중심에 설정한 것은 자연스럽다. 생각해보면 역사가 시대의 거울이듯 좋은 역사소설이란 메시지를 전하기 마련이다. '로마인 이야기'로부터 정치가나 기업가는 리더십, 혹은 경영 전략을 배운다고 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뒤떨어지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도 뒤떨어진 로마인이 어떻게 팍스 로마나를 누릴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미 유명해진 이 물음을 제기하면서 그 해답을 로마인의 현실주의와 관용성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러한 로마적 예지를 그리스도교의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들의 다신교(多神敎)와 관련지어 밝혀준다. "(그리스도교적)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남의 신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있다. 남의 신을 인정하는 것은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가톨릭 본산 이탈리아에 40년이 넘도록 거주하면서도 비(非)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종파나 국가, 이데올로기로부터도 자유로운 한 정신이 역사소설 형식을 빌어 써내려간 로마사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탈리아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로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국가훈장을 받았다. 그 소감을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훈장보다도 파워를,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갖도록 하는 파워를 원합니다." 이 말이 세계시민 시오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프로 흉내내는 아마추어”
- 김경헌 고려대 교수·로마사
전문 역사가는 대체로 대중 취향의 역사책을 쓰는 데 소질이 없다. 식자우환이라고 할까, 전문성은 대중을 위해 쉽고 간명하게 글을 쓰는 데 오히려 거리낌과 죄책감의 원천이 된다. 역설이다. 성공한 역사책은 대개 아마추어리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즐거움을 위해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요리하려면, 아는 것 못지않게 모르는 것도 많아야 한다. '로마인 이야기'시리즈의 성공도 그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1권에서 아마추어리즘을 천명한다.







"확실한 사료의 뒷받침이 없으면 다룰 수 없는 학자나 연구자와는 달리 우리는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는 자유롭게 추측하고 상상하는 것도 허용된다." 그렇게 추측.상상으로 쓴 방대한 책의 구석구석에서, 내가 전문가랍시고 작은 허물들을 들춰내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내가 아는 일본의 로마사학자들 십중팔구가 그 책을 화제로 삼기를 피했던 것처럼 말이다. 도쿄대의 모토무라 료지 교수만은 예외였다. 그는 시오노가 "천하 국가인 로마를 훌륭하게 그려낸, 역사가에 버금가는 작가"라며 경외감을 표했다.
모토무라와 달리 나는 시오노의 아마추어리즘에 보이는 한 가지 기묘한 특징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로마인 이야기'는 차츰 각 권 말미에 수록되는 참고문헌의 분량이 늘어난다. 과연 그처럼 방대한 참고문헌은 필요했으며, 또 작가는 실제로 그것을 모두 활용했을까? 나는 그것을 상당부분 작가의 수집목록이거나 장식품쯤으로 생각한다. 장식품이란 물론 전문가와 같은 권위의 효과를 겨냥한다. 역사소설이 아니라 통사를 써서 대중의 호응을 얻자, 처음 천명과 달리 자신이 그저 아마추어에 불과하지 않음을 과시한다.
그래도 참고문헌 가운데 사료는 활용도가 높은 편이었고 또 그것이 장점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사료의 향기가 옅어진다. 노령의 작가가 역시 장기전에 힘이 달리는 징후인가? 가령 최근 나온 14권 '그리스도의 승리'에서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문집을 충실하게 읽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좀더 리얼하게 읽히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거나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15권으로 완결된다. 이 대하 역사서에 대해 나는 줄곧 근본적인 의문 하나를 갖고 있다. 거기에 통일된 역사인식이 있는가?
처음에는 있는 듯 보였다. 5권까지를 꿰뚫는 로마사의 주요 양상은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공화국과 엘리트에 대한 평민층의 복종과 충성, 지중해 제국으로의 눈부신 성장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현실주의.영웅주의.성공제일주의.제국주의 같은 가치가 우월하다는 교훈을 준다. 그 책이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호응을 받은 것도 그런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마의 팽창, 그것은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과연 로마 인민은 조직과 엘리트를 따르고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었는가? 카이사르의 사후 로마사가 전개되는 모습은 그런 물음을 갖게 한다.
그것은 황제 권력을 위협하는 궁정과 군대의 음모, 그리고 제국방위에 시달리던 대부분의 무능한 황제들의 이야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6~15권). 아쉽게도 작가에게 그런 문제의식이 없으며, 그래서 5권까지와 달리 6권 이하 '로마인 이야기'에는 일관된 역사인식이 거의 없다. 작가는 다만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속 썼다고 생각된다. 


